이제 1년이 지났다. 2016년 6월 12일, 미국 올란도의 게이 클럽 펄스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49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세상을 떠났고 58명이 부상을 입었다. 자긍심의 달을 맞아 한창 들떠있던 전 세계의 성 소수자들은 비탄과 충격에 빠졌다. 특히나 한국은 바로 전날 서울 퀴어문화축제를 치렀고 축제의 여흥이 채 가시기도 전에 비극적인 소식을 접해야 했다. 희비가 잔혹하리만치 극단적으로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고양된 자긍심이 잔혹한 사건 때문에 끝도 없이 추락하는 기분이었던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광장에서 느꼈던 해방감 그 밖으로도 끌고 가기에 세상은 너무 위험하고 무서운 곳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사건 이후 성 소수자 공동체에 통탄과 움츠러듦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다시 모였고 촛불을 들었으며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또한, 성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폭력이 종식되어야 함을 주장했고, 이를 위해 무너지지 않고 연대해 세상을 바꾸어 나갈 것을 다짐했다. 또한, 광장 밖에서도 추모와 연대의 목소리는 이어졌는데, 특히 몇몇 뮤지션과 스타들은 노래를 발표하며 함께했고 수익금을 희생자와 피해자들을 위해 기부하기도 했다. 애도와 염원이 담긴 그 노래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미국 올랜도 성소수자클럽 총격 희생자 추모 촛불문화제 13일 오후 마포구 홍대입구역 부근 경의선숲길공원에서 '미국 올랜도 성소수자(LGBT)클럽 총격사건 희생자 추모 촛불문화제'가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 회원과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미국 올랜도 성 소수자 클럽 총격 희생자 추모 촛불문화제 지난 2016년 6월 13일 오후 마포구 홍대입구역 부근 경의선숲길공원에서 '미국 올랜도 성 소수자(LGBT)클럽 총격사건 희생자 추모 촛불문화제'가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 회원과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권우성


남겨진 이들의 감정을 대변하며 위로하기: 'The Greatest'

추모는 죽은 사람을 기리는 행위이지만 이는 남겨진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망자를 애도하고 제대로 떠나보내지 못하면 산 사람의 삶은 슬픔 속에서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추모의 노래는 죽은 이들을 기리기도 하지만 때로 살아남은 사람들을 향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펄스 총격 사건을 주제로 시아(Sia)가 발표한 'The Greatest'가 바로 그런 노래다. 특히나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에는 그녀의 페르소나라 할 댄서 매디 지글러가 희생자를 상징하는 49명의 댄서와 함께 등장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뮤직비디오 속에서 매디 지글러는 쓰러진 희생자들을 독려하고 그들을 일으키며 함께 춤을 춘다. 그녀는 세트를 종횡무진 뛰어다니며 율동을 이어가지만, 그 움직임 속에선 어딘지 모를 불안과 다급함이 느껴진다. 마치 죽음을 은유하듯 댄서들의 얼굴에는 회색 분칠이 되어 있으며 노래가 끝난 후 결국 예정된 그 일은 벌어진다. 다시 댄서들은 쓰러져 눈을 감고 지글러는 카메라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아직도 살아 있는 것 같은데, 아니 꼭 살아 있어야만 하는데, 다시 눈을 뜨면 죽은 사람은 떠나고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그 느낌. 시아는 올란도 참사를 바라본 이들의 불가능하지만 간절한 염원을 노래와 영상으로 재현하며 위로와 공감을 전한다.

"난 거리낌 없이 최고가 될 수 있어, 난 살아있어/ 난 오늘 밤 이 곳에서 자유롭게 최고가 될 수 있어, 최고/ 최고, 살아남아." (I'm free to be the greatest, I'm alive/ I'm free to be the greatest here tonight, the greatest/ The greatest, the greatest alive)

연대를 통한 변화와 희망을 노래하기: 'Change'

언젠가 책에서 한 페미니스트가 이렇게 쓴 문장을 본 적이 있다. 세상의 모든 반(反) 페미니스트들처럼 자신도 여성주의가 사라지길 바란다고. 여성에 대한 차별과 혐오, 배제가 사라져 더 페미니즘의 효용이 없어짐으로써 말이다. 올란도 참사 이후 크리스티나 아길레라(Christina Aguilera)가 발표한 노래 'Change'에도 이와 유사한 역설적인 희망의 메시지가 등장한다. 그녀는 우리가 열심히 싸우면 '언젠가 이 코러스를 노래하지 않아도 될 거야'라고 노래하니 말이다. 즉 노래의 또 다른 가사가 전하듯 'Change'는 '당신이 누구를 사랑하고 피부색이 어떠하며, 어느 곳에서 태어났듯 그것이 당신을 대하는 방식을 결정하지 않는 세상'을 바라는 노래다.

사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가 성 소수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 것이 이번은 처음은 아니다. 이전에도 그녀는 자긍심을 다룬 노래 'Beautiful'에 트렌스젠더 여성과 게이 커플을 등장시킨 바 있다. 그리고 이 뮤직비디오에는 왕따 당하는 소녀, 거식증에 걸린 여성, 백인 모델 뿐인 잡지 사진들을 태워 버리는 흑인 또한 출연한다. 'Change'에서처럼 다양한 사회적 약자들의 존재를 직조하며 연결한 것이다. 어쩌면 이 같은 연대의 감각은 아길레라의 성장기 경험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어린 시절을 일본에서 외국인으로 살았으며, 아버지의 가정폭력으로 얼룩진 유년기를 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길레라는 무너지는 대신 일어서는 것을 선택했고 고통받는 다른 이들에게 독려의 손길을 뻗었다. 이 노래처럼 말이다.

"우리를 떠나간 모든 대담함과 영혼들을 위해/ 우뚝 일어서, 자긍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높이세요." (For all the brave and the souls who went before us/ Stand tall, be proud and lift your voices)

그럼에도 우리의 손으로 할 수 있는 것들: 'Hands'

펄스 총기 난사 사건과 같은 대형 인재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어떻게 인간의 손으로 저런 짓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달라지지 않는 사실은 가해자 역시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류 전체에 대한 냉소에 빠지곤 한다. 그리고 고뇌한다. 이런 것이 인간이라면 우리는 다른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하지만 노래 'Hands'는 이런 감정 앞에서 단호하게 말한다. 상처를 줄 수 있지만, 치유를 할 수도 있다. 세상을 무너뜨릴 수 있지만,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 백만 개의 손이 벽을 세울 수 있다면 역시 백 만개의 손이 벽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 우리의 손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는 여전히 우리가 결정할 수 있다.

'Hands'는 이렇게 올란도 참사 이후 인간에 대해, 그리고 스스로에 대해 회의하는 이들을 다독인다. 이 노래는 미디어 속 성 소수자들의 이미지를 모니터링 하고 증진하기 위한 단체인 '명예 훼손에 대항하는 게이와 레즈비언 연대(GLAAD)'와 인터스코프 레코드의 협업으로 탄생했다. 또한, 충실한 성 소수자 팬들을 가진 브리티니 스피어스와 그웬 스테파니, 메간 트레이너, 핑크, 트로이 시반, 셀레나 고메즈 같은 인기 팝스타들이 녹음에 참여했다. 하지만 누구보다 큰 감동을 선사한 출연진은 바로 코러스를 맡은 '로스앤젤레스의 트랜스 코러스(TCLA)'가 아닐까 싶다. 이들은 트랜스젠더 커뮤니티를 향한 사회의 시선을 바꾸기 위해 활동 중이며 이번 노래에서도 함께 변화와 희망을 노래했다.

"왜냐면 그들은 사랑을 할 수도/ 혹은 사랑을 받을 수도/ 안전할 때까지 일어나 싸울 수도/  세상을 부술 수도/ 그것을 바꿀 수도 있으니까요." (Cause they can love/ Or they can take/ They can fight up/ Until they save/ They can break the world/ They can change it too)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 'What the World Needs Now Is Love'

위로와 추모의 움직임에는 뮤지컬계도 함께했다. 우리에겐 <겨울 왕국>으로 유명한 이디나 멘젤, <섹스 앤 더 시티>로 스타덤에 올랐던 사라 제시카 파커, 시트콤 <윌 앤 그레이스>에서 게이 캐릭터인 잭 맥팔랜드를 연기했고 실제로도 동성애자인 션 해이즈 등 브로드웨이의 굵직한 연기자들이 모여 올란도 참사로 상처받은 이들을 치유하기 위한 노래를 부른 것이다. 이들이 부른 노래는 재키 드핸슨의 인기곡인 'What the World Needs Now Is Love'. 워낙에 유명하고 리메이크도 많이 된 노래이니 부연할 말은 없다. 다만 참혹한 사건 앞에서 떨고 있을 사람들에게 따스한 목소리로 사랑을 전하는 이들의 선택이 너무도 탁월했음은 언급하고 싶다.

아무리 무슨 소용인가 싶고 지금 이 상황에서 이러는 게 맞는가 싶어도, 우리는 더욱 온기를 나누고 사랑을 이야기해야만 한다. 그렇게 서로를 보듬고 지지하고 다독여야만 한다. 그렇게 힘을 얻어야 일어 설 수도 있고, 목소리를 낼 수도 있고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연기자들이 말한 것처럼, 오직 사랑만이 혐오를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올랜도 참사일은 내년에도 그 후에도 다시 돌아올 것이다. 슬픔 속에 홀로 남겨진 사람이 아무도 없기를 바란다.

성소수자 올란도 참사 혐오 사랑 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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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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