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는 영화 <미이라>의 스포일러가 포함 되어있습니다.

1915년에 설립한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1920년대 할리우드 황금기에 메이저 스튜디오로 빠르게 부상했다. 비슷한 시기 영화산업을 점령했던 빅5 스튜디오들(MGM, Paramount, RKO, Warner Bros, Fox)과 다른 특징이 있다면 유니버설은 호러 장르를 주요 상품으로 했다는 점이다. 1920년대에서 1950년대에 이르기까지 '유니버설 호러'라는 용어가 하나의 장르로 인식될 정도로 유니버설은 호러 영화의 정통 스튜디오로 군림했다.

 유니버설 호러 캐릭터들

유니버설 호러 캐릭터들 ⓒ 유니버설픽처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단번에 떠올릴 수 있는 공포 혹은 판타지 영화의 대명사들, 예컨대 <드라큐라>(Dracula, Tod Browning,1931),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 James Whale, 1931), <미이라>(The Mummy, Karl Freund, 1932), <투명 인간>(The Invisible Man, 1933), <늑대 인간>(The Wolf Man, 1941) 등은 모두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처음 영화로 제작했거나, 히트시킨 캐릭터들이다.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유독 호러 장르로 성공한 이유 중 하나로 할리우드 황금기 동안 성행했던 스튜디오의 독점 계약(1927-1948)을 들 수 있을 듯하다. 당시 할리우드 스튜디오는 배우들과 7년 독점 계약을 맺었는데, 이 계약으로 배우들은 계약한 스튜디오와만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 유니버설이 당시 보유(?)했던 배우 중 벨라 루고시(드라큐라의 시초)와 보리스 칼로프(프랑켄슈타인의 시초)가 그들의 데뷔작인 <드라큐라>와 <프랑켄슈타인>을 메가 히트시켰고 대대적인 인기를 얻었다. 동유럽 이민자 출신의 이 배우들이 맡았던 이국적인 '악'의 캐릭터가 이들의 피지컬한 이미지와 너무나도 잘 맞아 떨어졌던 것이다. 곧 <드라큐라의 딸들>(1936), <프랑켄슈타인의 신부>(1935) 등 속편이 쏟아져 나왔고, 이들이 계약기간 동안 엄청난 양의 속편과 아류작에 참여하게 되면서 이른바 '유니버설 호러'가 자리 잡게 된 것이다.

 <프랑켄스타인의 신부>

<프랑켄스타인의 신부> ⓒ Universal Studio


'유니버설 호러'의 탄생, 그리고 <미이라>

최근 개봉작인 <미이라>역시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만들어진 작품이다. 과거 유니버설 호러 영화들을 디시나 마블처럼 하나의 세계관으로 묶겠다는 '다크 유니버스' 프로젝트의 첫 작품이기도 하다. 따라서 <미이라>에는 미라뿐 아니라 좀비와 닥터 지킬 등 '메이드 인 유니버설' 공포 캐릭터들이 총 집합한다.

스토리는 과거 '머미(Mummy) 시리즈'에서 반복되는, 즉 '고고학자가 실수로 미라화 되어 잠들어 있는 악을 실수로 깨워내지만 가까스로 응징한다'는 기본 골자의 연장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영화의 주인공 닉(톰 크루즈)은 고대 이집트 미라의 관을 우연히 발견한다. 관의 주인공은 과거 악마에게 영혼을 팔고 파라오와 그 아내를 죽인 죄로 산 채로 봉인 당한 아마네트 공주다. 자신을 이 세상으로 다시 '불러들인 것'에 대한 보상으로 아마네트는 비행기 사고를 당해 죽을 수밖에 없었을 닉에게 또 한 번의 생명을 주고 '선택 받은 자'로서 자신과 함께 하길 바란다. 그리고 '악'과 타협하기를 거부하는 닉과 아마네트의 대결이 영화의 후반부를 채운다. 

<미이라> 영화 포스터

▲ <미이라> 영화 포스터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이 작품이 기존의 미라 시리즈로부터 가장 차별되는 점은 악마가 여성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아마네트 공주는 무술에 능한 무사였으며 그녀의 기술은 남자들을 제치고도 남을 정도의 가공할 만하다. 영화의 주인공 격인 미라를 과거 이모탭(브랜든 프레이저가 주연했던 과거 미라 시리즈의 악역)과 같은 마초적 남성이 아닌 파워풀한 여성 캐릭터로 설정한 것은 가히 큰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멋진 전사의 피를 타고난 그녀가 악마와 합세하는 결정적 이유가 '질투'라는 것이다. 왕위를 계승받을 것이라고 믿었지만, 공주의 아버지인 파라오가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하게 되고 그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나면서 그녀는 왕위 계승에서 밀리게 된다. 갓 태어난 아이를 안아 올리는 파라오를 지켜보는 아마네트의 눈에는 아버지와 그의 새 아내를 향한 분노가 넘친다. 곧 아마네트는 악마의 영혼을 불러들여 파라오와 아내, 그리고 아이까지 살해하게 되고 그 죄로 산 채로 매장되어 한을 품은 악녀가 되는 것이다.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여성의 악마화, 그런데 이유가

유년의 기억을 범람하는 수많은 동화들, 혹은 신화에서 '질투'는 여성만의 독점적 '악'으로 묘사되어 왔다. 그리고 그녀들의 질투가 서사의 기반이 된다. 제우스의 아내, 헬레나의 신화는 틈만 나면 바람을 피워대는 제우스의 여자들을 벌하는 것으로 거의 모든 에피소드가 꾸려지고, 백설공주의 계모는 자신이 제 1의 미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질투에 눈이 멀게 되며, 신데렐라의 계모와 언니들은 그녀와 왕자의 사랑을 막기 위해 오만 악행을 일삼는 것이 스토리가 빚어내는 주요 갈등 요소들이다(비슷한 맥락에서의 '소공녀' 역시 여성의 질투로 고통 받는 캐릭터). 이 이야기들에서 질투를 품은 여자는 죗값을 받고, 세대를 걸치는 전설의 '악인'으로 낙인찍히는 것이다.

1932년에 시작된 시리즈를 기반으로 80년여 년이 지난 지금 화려한 비주얼과 캐스팅으로, 또한 유구한 유니버설 호러가 만들어낸 매력 넘치는 캐릭터들까지 총 동원해 리부트 프로젝트까지 만들었으나 절대 악의 여성이 파멸할 수밖에 없는 요소를 결국 질투로 국한한 것은 이 작품이 이루어낸 다양한 요소의 진보를 무색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이라>는 분명 유니버설 호러 전통에 새로운 획을 긋는 작품으로 남을 것이다.

 <더 머미> 오리지널

<더 머미> 오리지널 ⓒ Universal Studio


가장 큰 이유는 이 작품의 포용 능력이다. <미이라>는 분명 우리가 보아왔던 '미라 영화'의 자장 안에 있지만, 그 장르적 범위 안에서 다양한 호러 캐릭터를 유동적으로 활용한다. 가령, 닉의 탐험 파트너 크리스는 아마네트의 저주로 영화 초반에 죽게 되는데 그 후로도 줄 곧 등장하여 닉의 길잡이가 되어준다. 죽은 크리스의 형상은 미라가 아닌, '좀비'다. 혈색이 사라진 그의 회색 얼굴과 목을 덮고 있는 것은 검은 핏줄이다. 그가 맞은 총상 자국이 그대로 검은 상처로 변하고, 죽은 후에도 이 곳 저 곳을 종횡무진하며 뛰어다니는 그의 모습은 우리가 숱하게 봐왔던 좀비의 행태인 것이다.

또한 지하 철로를 탈출하는 닉과 고고학자인 제니를 쫓는 것은 과거 미라 영화에서 등장했던 이집트 군인들이 아닌, 다리를 절며 괴상한 비명을 지르는 대규모의 좀비 떼다. 아마도, 죽어서도 종횡무진 해야 하는 크리스나 지하 통로를 '가득 메우는 (빠르게 움직이는) 적'이라는 특성을 고려할 때, 미라나 고대 병사들보다는 기동력이 좋은 좀비 캐릭터가 훨씬 더 효율적이고, 세련되게 활용할 수 있었을 거라는 계산이 적용된 것이 아닌가 싶다.

트레일러를 본 대다수의 관객들이 <미이라>가 선사하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매력을 인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80년을 아우르는 전통의 호러 캐릭터들이 집대성 되고, 마음 좋고 늙지도 않는 톰 아저씨가 스크린을 메우는 유쾌한 이 블록버스터를 통해 유니버설은 또 하나의 전통을 빚어냈다.

미이라 탐 크루즈 유니버설 호러 헐리우드 영화 블록버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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