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한화 이글스가 김성근(75) 감독을 전격 경질했다. 한화는 23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에서 열리는 KIA 타이거즈와 홈경기를 앞두고 김 감독의 지휘봉을 빼앗았다. 2017.5.23 [연합뉴스 자료사진]

김성근 전 한화 감독. ⓒ 연합뉴스


김성근 전 감독의 사퇴로 공석이 된 한화 이글스의 차기 사령탑 자리를 두고 팬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한화는 지난 5월 23일 김 전 감독이 사퇴한 이후 현재 이상군 투수코치가 임시 감독대행으로 팀을 이끌고 있다. 한화는 현재 신중하게 차기 감독 후보군을 물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누가 한화의 새로운 선장이 되든지 적지 않은 부담과 진통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한화는 2007년을 끝으로 최근 9년간 단 한번도 가을야구에 나가보지 못했다. 이 기간 최하위만 5번이나 차지하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올시즌도 20승 29패로 5강권에서 4.5게임차 뒤진 9위에 머물고 있다. 만일 한화가 올시즌도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한다면 LG 트윈스(2003-2012)의 KBO 역대 최장 기간 PS 탈락 기록인 10년 연속과 타이를 이루게 된다. 시즌 중반에 갑작스럽게 부임하는 새 감독으로서는 누구라도 부담스러운 상황일 수밖에 없다.

일관성 없는 감독 선임... 한화의 암흑기 초래했다

또한 만년 약체 이미지보다 어쩌면 더 좋지 못한 징크스는 언제부터인가 한화에 '감독의 무덤'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는 점이다. 최근 10년간 한화를 거쳐간 역대 감독들의 면면을 보면 김인식(2004-2009), 김응용(2013-14), 김성근(2015-17) 등 KBO에서 나름 손꼽히는 거물급 명장들이 잇달아 지휘봉을 잡았음에도 결과적으로 한화를 재건하는 데는 모두 실패했다. 이들에게도 한화 감독 경력이 지도자 인생의 흑역사가 되었음은 마찬가지다. 저마다 속사정은 조금씩 다르지만, 결과적으로는 내노라하는 백전노장들도 유독 한화에서만큼은 쓴 맛을 보면서 '한화는 누가 맡아도 답이 없는 팀'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널리 퍼진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징크스는 정작 지난 10년간의 암흑기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었다. 공교롭게도 한화의 역대 사령탑들은 한화에서의 감독 시절을 기점으로 지도자 인생의 내리막길을 걷거나 아예 재기하지 못하는 경우가 유독 많았다.

초대 배성서 감독(1986-87)을 비롯하여 김영덕(1988~1993), 강병철(1994-98), 이광환(2001-02), 유승안(2003-2004), 한대화(2010-12) 전 감독 등은 모두 한화를 거쳐간 이후로는 프로 감독으로서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화의 유일무이한 한국시리즈 우승 감독인 이희수(1999-2000) 전 감독도 한화에서 물러난 이후로는 아예 더 이상 프로 1군 지휘봉을 잡은 일도 없다.

김인식과 김응용 전 감독은 아예 현역 지도자로서 은퇴 수순을 밟았다. 가장 최근에 물러난 김성근 전 감독도 한화를 맡기 직전까지는 '야구의 신'으로까지 추앙받을 만큼 엄청난 주가를 올리던 인물임을 떠올려보면 격세지감이다. 한화가 정말로 감독들의 커리어를 끝장내는 '극한직업' 혹은 '명장 분쇄기'라는 웃지 못할 별명이 생긴 것도 무리는 아니다.

물론 한화를 거쳐간 전임 감독들의 실패는 단순히 우연의 일치이거나 불운 때문만은 아니다. LG나 롯데도 2000년대 한창 암흑기를 보내던 시절에 감독들의 무덤으로 불리던 때가 있었다. 한화가 더 이상 똑같은 시행착오를 거듭하지 않으려면 왜 나름 유능하다고 평가받던 인물들이 유독 이 팀에만 오면 실패했는지 인과 과정을 냉철하게 돌아봐야할 필요가 있다.

한화는 그동안 역대 감독을 선임할 때마다 감독의 배경이나 이름값을 중시하는 인사가 많았다. 타 팀에서 성공한 경력이 있는 검증된 백전노장을 데려오거나, 아니면 지역색이나 역사적으로 구단과 어떻게든 연결고리가 있는 인물을 선임하거나 거의 둘 중의 하나였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팀 고유의 색깔이나 연속성을 안정적으로 추구하기보다는, 감독 개인의 역량에만 의존하여 방향성이 오락가락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는 사실이다.

김응용이나 김인식은 말할 것도 없고, 김영덕-강병철-이광환 등도 소위 프로야구 '1세대' 명장으로 손꼽히던 거물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성향상으로는 동세대라는 점만 빼면 연결고리가 미미하고  야구관이나 지도 스타일도 전혀 다를 정도로 영입의 일관성이 없었다. 또한 이들은 대부분 다른 팀에서 전성기를 보내고 한화 감독을 맡을 무렵에서는 지도자로서의 커리어가 서서히 하향세로 접어들던 시점이었고 물리적인 나이로도 이미 고령에 해당하는 인물이 많았다. 한화 시절을 끝으로 은퇴 시기에 접어든 인물이 많았던 현상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더구나 지도 스타일상 긴 안목에서 팀을 만들어가는 유형보다는 주로 '단기간에 성과를 끌어내는 야구에만 최적화된' 노감독들이 많았다는 것은, 리빌딩과 세대교체가 가장 절실하던 한화의 팀사정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선택이었다. 이는 한화가 전통적으로 10개 구단을 통틀어 가장 세대교체가 느리고 변화에 인색한 '노인정 구단'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빌미가 되었다.

감독 한명이 바꿀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한화가 세대교체와 리빌딩이 처음 화두로 떠오른 것이 거의 2000년대 초반부터다. 열악함으로 악명높은 인프라로 인하여 서산 2군 훈련장이 겨우 건립된 것도 2010년대 최근에 들어서의 일이었다. 그동안에도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꾸준히 거론되어 왔지만 치일피일 변화를 미루던 한화 구단이 체계적인 투자와 시스템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은 얼마되지 않는다.

그나마 한대화-김응용 전 감독 시절부터 조금씩 리빌딩을 시도하기 시작했지만 구단의 체계적인 지원 부족과 일관성없는 팀운영으로 크게 빛을 발하지 못했다. 이후 김성근 감독 부임으로 구단 정책이 180도 바뀌며 그나마 키워오던 유망주 팜마저 붕괴되는 등 혹독한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한화 박종훈 단장

한화 박종훈 단장 ⓒ 한화 이글스


한화는 이미 지난 겨울부터 뒤늦게 '프런트 야구'로의 변화를 대안으로 모색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하지만 한화 구단이 정말 프런트 야구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거나 실행할 의지가 있는지는 여전히 의구심을 갖고 보는 시선이 더 많다. 현재 한화의 '강한 프런트'를 이끌고 있는 박종훈 단장이 정작 프런트 야구에 어울리는 적임자인지도 검증이 되지않았다. 거기에다 성향상 프런트 야구와 상극인 김성근 전 감독을 진작에 교체하지 않고 방치했다가 현장과 프런트의 주도권을 둘러싼 '정치 싸움'으로 파국을 자초한 오락가락 행보는, 한화 구단의 변화 의지와 역량에 회의를 품게하는 요소다.

오히려 이제는 누가 차기 감독이 되든지 제대로 된 감독으로서 역량을 발휘할수 있겠냐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2년간 비정상적으로 감독 1인에게 권력이 집중된 것이 김성근 전 감독의 전횡이라는 부작용을 초래했다면, 이제는 그 권력이 다시 프런트로 넘어갔을 뿐 한화를 둘러싼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히 달라진 게 없지 않느냐는 지적도 일리가 있다.

명장 한 명만으로 조직 전체를 바꿔놓을 수 있다는 막연한 환상은 이미 깨진 지 오래다. 한화의 차기 감독이 누가 되든 이번에야말로 화려한 경력이나 이름값보다는, 현대야구의 흐름을 제대로 이해하고 구단의 장기적인 비전과 체질개선에도 함께 소통하고 발을 맞출 수 있을 정도로 '깨어있는 인물'이 필요해 보인다. 무엇보다 더 이상 화제성이나 여론몰이에 치우친 '포퓰리즘 인사'는 곤란하다. 단순히 과거의  지명도에 기대어 검증되지 않은 슈퍼스타나 프랜차이즈 출신을 깜짝 낙점하는 것은 또다른 형태의 포퓰리즘일 뿐이다.

또한 향후 차기 감독의 권한과 프런트와의 역할분담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명확한 교통정리가 필요하다. 김성근 전 감독 시절의 실패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해서, 프런트에 무조건 고분고분한 허수아비를 앉혀놓는 것을 바라는게 아니다. 건강한 시스템은 현장과 프런트가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며 공존하는 것이지 어떤 인물이 구단의 '실세'냐를 둘러싼 주도권 싸움에 좌우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번에야말로 단순히 한화의 차기 감독이 누가 되느냐는 인물 중심보다, 한화가 어떤 체계와 비전을 중심으로 팀을 재건해나갈 것인지 '시스템'에 더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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