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적의 '청춘(靑春)'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가 있다면 그 곳은 어디일까. 아마도 서울시 동작구에 위치한 '노량진'이 아닐까. 그곳에 머물러 보지 않았던 사람들은 노량진의 공기가 얼마나 '꿉꿉'한지 알지 못한다. 그곳은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묘한 장소이다. '공무원'이라는 꿈을 안고 첫발을 내디딘 '신참'의 도전 정신과 몇 번의 실패를 경험하고서 더욱 악바리가 된 '고참'의 날선 비애가 공존하고, 누적된 낙방에 익숙해져 반전의 계기마저 잡지 못한 '장수생'의 패배주의가 길거리에 스며들어 음습한 기운을 내뱉는다.

ⓒ JTBC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라고 마음을 다잡지만, 그것이 어디 마음대로 되겠는가. 매년 경쟁률은 '살인적'이고, 날마다 쌩쌩한 뇌를 지닌 새로운 경쟁자들이 끊임없이 유입된다. 2평 남짓한 고시원에서 컵라면과 삼각김밥 따위를 먹으며 '꼬질꼬질'하게 공부에 매진하지만, '합격'이라는 꿈은 매순간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만다. 그곳을 JTBC <한끼줍쇼>가 찾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노량진 고시촌의 '공기'를 느끼고, 그 안에서 자신의 꿈을 위해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청춘들을 위로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요즘 청년들은 도전 정신이 없어. 우리 때는 말이야..' 기성세대라 불리는 누군가는 그렇게 말하며 제 얼굴에 침을 뱉는다. '공무원이 꿈인 나라에 무슨 미래가 있겠어?' 그렇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질문이 잘못됐다. 청(소)년들이 자신의 꿈을 공무원이라 말할 수밖에 없는 나라를 만든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그들이 '미래'를 말할 자격이 있을까. 과연 지금의 청년들은 '용기'가 없을까. 노량진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지 그들은 알지 못할 것이다.

불안함을 넘어서 처절한 취업 현실 속에서 청년들이 공무원 시험을 치르겠다고 노량진으로 모여드는 건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적어도 공무원 시험은 '숟가락'에 의해 결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외모, 스펙, 인맥 등에 의해 결정되지 않고, 오로지 '노력'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청년들은 그 '공정함'에 자신의 미래를 맡긴 것이다. 씁쓸하게도 공무원이야말로 대한민국의 흙수저들이 비교적 적은 비용을 투자해 노려볼 수 있는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직업이다.

노량진으로 간 <한끼줍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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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끼줍쇼>는 JTBC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했던 김풍 작가와 미카엘 셰프를 섭외해 노량진에 뛰어들었다. 한 끼 밥을 얻어먹는 것이 프로그램의 규칙이었지만, 이번만큼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그도 그럴것이 노량진 고시촌은 취사를 통해 끼니를 마련하기보다 식당이나 편의점 등에서 가볍게 '때우는' 것이 일반적인 장소였기 때문이다. 그보다 다리를 쭉 뻗기도 힘든 2평 남짓한 방에서 살아가고 있는 공시생들에게 밥을 얻어먹는다는 건 정서상 용납되기 어려웠다.

제작진이 김풍 작가와 미카엘 셰프를 섭외한 건 그 때문이었을 게다. 오히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꿋꿋이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공시생들에게 한 끼를 선물하기 위해서. 실제로 김풍 작가는 제작진에게 받은 돈 6000원을 탈탈 털어서 장을 봤고, 그 재료를 가지고 간단한 음식을 만들어 공시생에게 제공했다. 미카엘 셰프는 옆방에서 냄비를 빌려 계란과 식초로 수란을 만들었고, 완성된 수란을 김치찌개에 넣어 한 끼 식사를 함께 했다. 하지만 여기에서 '논란'이 싹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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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을 시청했던 시청자들은 '불편함'을 제기했다. 애초에 누군가의 주거 지역을 마음대로 탐방하고, 아무 집이나 초인종을 함부로 눌러 '한 끼만 주세요'라고 조르는 무례를 범하는 '민폐'적 성격에 대한 지적은 별개로 하자. 핵심은 이런 것이다. 굳이 노량진까지 가서, 그 열악한 환경 속에서 공부하고 있는 청년들에게 풍성한 저녁 밥상을 차려주지 못한 제작진의 물색없음에 대한 노여움이다. '김풍 작가가 6000원을 들고 장을 보러 뛰어다닐 때 짜증이 솟구쳤다'는 반응도 있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칼럼니스트 정덕현은 '제 아무리 규칙이 중요하다고 해도 예외 규정을 만들든 아니면 차라리 이경규가 제작진에게 호통을 치거나 강호동이 떼를 써서라도 좀 더 풍성한 저녁 밥상 한 끼를 고생하는 청춘들에게 대접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꼬집었다. 그러니까 <한끼줍쇼>가 맞닥뜨린 논란은 '규칙 vs. 융통성'의 대결 구도인 셈이다. 어쩌면 밥차를 제공해서 공시생들이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하거나 거금을 들여 풍성한 저녁 한 끼를 대접했으면 분명 '그림'은 좋았을 것이다.

방송 후 쏟아진 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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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가 있는 지적이다. 심정적으로 공감이 간다. 하지만 만약 제작진이 밥차를 제공했다면 민폐의 수준은 훨씬 더 올라가지 않았을까. "방송 사상 가장 조용한 방송"이라며 (나름대로) 조심했던 노력은 우스꽝스러워졌을 것이다. 프로그램에는 '규칙'이 있고, 이를 함부로 어긴다면 프로그램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 '예외'를 적용하는 건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예외'를 한번 적용해 버리면, 그 '기준'을 마련하느라 제작진은 골머리를 앓아야 한다. 일각에서는 <한끼줍쇼> 제작진이 융통성이 없다고 투덜거리지만, 이미 제작진으로서는 주어진 범위 안에서 최대치의 융통성을 발휘했다.

애초에 만들어 놀았던 원칙, 그러니까 한 동네를 '방문'해서 기꺼이 문을 열어주는 주민에게 '한 끼를 얻어먹는다'는 규칙을 최대한 보존하면서도 노량진 고시촌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해 그들을 위해 요리를 만들어 줌으로써, 얻어먹는다는 규칙은 훼손했지만 그들의 공간에서 함께 식사를 한다는 대원칙은 지켜냈다. 이 정도면 <한끼줍쇼> 측으로서는 난리법석을 떨지 않으면서 할 일을 한 것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만약 노량진의 고시촌에서 그 대원칙을 깨버린다면 앞으로 방문할 다른 곳에서 이와 같은 '아우성'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대처를 하겠는가.

게다가 노량진의 공시생들에게 필요한 건, 자신이 처해있는 이 갑갑한 현실에 대한 공감이지 비싼 저녁 한 끼를 얻어먹는 것이 아니지 않을까. 공부에 매진하는 공시생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고 그곳의 분위기를 뒤숭숭하게 만들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오히려 분위기를 한번 바꿔주는 이와 같은 '환기'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실제로 2012년 대선에 출마했던 문재인 당시 후보가 노량진에서 만났던 공시생이 결국 경찰 시험에 합격했고, 제복을 입고서 두 사람이 다시 만난 사례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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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끼줍쇼>가 융통성이 없었다는 비난을 받고 있지만, 오히려 원칙과 규칙을 망가뜨리지 않는 선에서 적절한 융통성을 발휘했다고 생각한다. 많은 문제의 발단이 그 성급한 '예외주의'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상기하면 좋겠다. 주어진 범위 내에서 최선의 밥상을 차려 공시생들을 대접한 <한끼줍쇼>의 탁월한 선택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덧붙여서 방송에 출연했던 공시생들이 당당히 합격을 해서, 이경규와 강호동이 그들의 집을 방문하게 된다면 꼭 따뜻한 밥 한끼를 나누며 지금의 추억을 나눌 수 있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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