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성산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리그 클래식 FC서울과 수원 삼성의 경기. 수원 삼성 구자룡,이정수가 FC 서울 데얀과 볼다툼을 벌이고 있다.

지난 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성산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리그 클래식 FC서울과 수원 삼성의 경기. 수원 삼성 구자룡,이정수(왼쪽)가 FC 서울 데얀과 볼다툼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 사건 1.
지난 16일 오후 3시 수원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EB하나은행 K리그 클래식 2017 6라운드 수원 삼성(수원)과 광주FC의 경기가 0대0 무승부로 끝나자 경기장은 팬들의 야유로 뒤덮였다. 리그 여섯 경기째 승리를 챙기지 못하고 있는 수원을 향해 팬들은 강한 불만이 섞인 야유를 보냈다.

쏟아지는 야유에도 불구하고 수원 선수들은 언제나 그렇듯 경기장을 돌며 팬들에게 인사를 건냈다. 이날 경기에 나서지 않았지만 팀의 최고참인 이정수도 경기에 출전한 선수들과 함께 그라운드를 돌았다. 하지만 그라운드를 도는 선수들을 향한 것은 위로와 격려가 아닌 욕설과 비난이었다. 일부 팬들의 과도한 비난과 욕설에 흥분한 이정수를 동료 선수들이 말리는 상황까지 연출됐다.

# 사건 2. 지난 16일 일요일(현지시각) 아르헨티나의 코르도바 에스타디오 마리오 알베르토 켐페스에서 열린 CA 벨그라노와 타예레스와의 경기. 이 경기에서 벨그라노의 팬인 임마누엘 발보라는 청년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외신에 따르면 사건 당시 발보는 4년 전 동생의 교통사고 사망의 가해자인 고메스와 마주치게 됐다. 고메스는 발보의 접근에 위협감을 느낀 나머지 '타예레스 서포터가 나타났다'고 외쳤다. 정확한 상황 판단 없이 벨그라노의 일부 팬들이 발보를 구타하고 밀치는 과정에서 발보가 9m 난간 밑으로 떨어졌고, 혼수상태에 빠진 발보는 결국 사망했다.

지난 16일 축구장에서 나온, 안타깝고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두 사건이었다. 이날 발생한 두 사건 모두 현상을 다르지만 본질은 비슷해 보인다. 사건이 일어난 두 경기장에는 '존중'이라곤 찾아 볼 수 없었다.

대한축구협회(KFA)는 지난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리스펙트 캠페인'을 시작했다. 유럽에서는 이미 적극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이 캠페인을 KFA가 수용했다. 작년 4월에는 'KFA 리스펙트 주간'까지 정해 K리그를 비롯 그 기간 KFA가 주관하는 모든 경기에서 기념 의식을 가졌다. 매년 선수들의 과격한 플레이가 나오면 '동업자 정신 상실'이란 제목의 뉴스로 공격을 받곤 했던 K리그를 개선하기 위한 긍정적인 움직임이었다.

사실 리스펙트 캠페인은 선수들에게만 존중을 요구하는 캠페인이 아니다. 선수들을 비롯해 경기장을 찾는 모든 이들이 서로를 존중하자는 의미에서 시작됐다. 캠페인의 탄생 이유 자체가 선수들이 아닌 경기장에서 과도한 모욕과 욕설에 시달리는 심판 요원들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비교적 선수들은 리스펙트 캠페인을 잘 수용하는 듯하다. 기본적으로 어린 시절 공을 같이 차고 성장한 선수들이 많고 축구장 밖에서는 친구 혹은 선후배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에 충돌 이후에도 빠른 사과와 화해가 따른다. 또 갈수록 선수들의 모습 하나하나를 비교적 잘 담아내는 중계 카메라의 무서움도 선수들은 무시 못할 것이다.

절대 갑인 '팬'

변하고 있는 선수들과 다르게 팬들은 요지부동이다. 지난 16일 수원 월드컵경기장에선 팬들은 무소불위의 권력자였고 선수들과 코치진은 죄인이었다. 누구보다 수원을 사랑하고 지지한다는 '강성 팬'들은 선수 말년에 수원에 봉사하는 마음으로 돌아온 이정수를 향해 거침없이 욕설과 비난을 쏟아냈다.

수원 팬들에게 '레전드' 대우를 받으며 돌아온 이정수에게 이날 팬들의 태도는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이정수가 은퇴하기로 결심했다'라는 언론 보도가 쏟아질 정도 이정수를 비롯한 수원 선수단 전체는 이날의 충격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팬들의 과도한 행동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2011년 당시 인천 유나이티드의 수장이었던 허정무 감독은 성적 부진에 대해 강한 비난에 시달린 끝에 팬들 앞에서 직접 부진을 해명하는 자리를 가졌다. 1시간 가량 진행된 '허정무 청문회'에서 팬들은 우두커니 서있는 허정무 감독에게 치킨과 맥주를 먹으면서 불만을 쏟아냈다. 허정무 감독이 직접 구단의 어려운 사정을 토로했음에도 인천 팬들의 태도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사상 최초로 '원정 16강'이란 업적을 세운 감독은 팬들에게 상처만 받은 채 돌아갔다.

지난 해에는 팀의 경기력에 불만을 가진 수원과 울산 현대의 일부 팬들이 경기가 끝나고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선수단 버스를 가로막았다. 욕설과 비난이 선수들이 탄 버스에 난무했다. 당시 울산의 윤정환 감독의 사과와 수원의 주장 염기훈의 눈물로 팬들의 '버스 막기'는 일단락됐다.

팬들의 행동에 대해 '그럴 만했다'는 일부 의견도 있었지만 전혀 동의하기 어려워 보인다. 정당히 값을 지불하고 경기를 보러 간 팬들은 선수들의 플레이를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경기가 끝나고 돌아가는 선수들을 붙잡고 불만을 토로할 권리까지 있는 것은 아니다.

팬들 입장에선 구단과 선수들에게 본인들의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팬들이 목소리를 내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구단이 운영하는 홈페이지도 있고 경기장에 걸개를 걸어 표현할 수 있다. 어쩌면 구단이 가장 무서워 하는, 경기장을 찾지 않는 것으로 압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소수 팬들은 순간의 감정에 휩쓸려 과도한 행동을 하고 있다. 도를 넘은 행동은 구단과 팀을 멀어지게 할 뿐이다. 구단이 팬들과의 소통 창구를 만드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구단을 대하는 팬들의 존중도 중요하다.  

존중과 이해가 있어야 축구도 있다

   만원 관중은 '열혈 팬'의 힘으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만원 관중은 '열혈 팬'의 힘으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프로축구연맹


지난 시즌부터 이어져온 무승부 행진에 잔뜩 뿔이 난 수원 팬들의 입장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경기장을 찾아와 응원하는 팬들의 열정도 잘 안다. 선수들도 팬들의 응원과 열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 것이다. 수원은 팬들의 관심과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홈경기마다 여러 가지 행사는 물론이고, 주장 염기훈이 팬의 집에 찾아가는 '한끼줍쇼' 같은 이벤트로 팬들에게 보답하고 있다.

누군가는 '팬들에게 가장 큰 기쁨은 성적과 경기력'이라 말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당장 성적과 경기력에 따라 본인의 상품가치가 정해지는 프로 선수들이 안일한 모습으로 경기에 임하지는 않을 것이다. 

팬이 없으면 프로 스포츠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때문에 팬들이 다소 과도한 비난과 요구를 해도 구단은 감내한다. 그러나 이 날 사건은 도를 넘었다. 구단은 팬들을 존중했지만 팬들은 그렇지 않았다.

먼 원정길을 따라가고 팀이 지더라도 경기장을 찾아주는 사람들은 우리뿐이라는 '강성 팬'들의 목소리도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묵묵히 뒤에서 팀을 응원하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팬들 99%가 있기에 구단이 존재하기도 한다.

축구는 축구일 뿐이다. 경기 이후에도 과도한 욕설로 선수를 모욕하는 것은 '팬심'이 아니라 '폭력'이다. K리그를 좋아하고 축구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존중'의 의미를 다시 곱씹어 봐야 한다.

  •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