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가 맥을 못 춘 한 달이었다. 엠마 왓슨이 <라라랜드> 대신 선택했다며 화제를 모은 <미녀와 야수>에만 340만 명이 넘는 관객이 몰렸고 울버린의 마지막을 담아낸 <로건>에도 200만명이 넘는 관객이 들었다. 3월 박스오피스 3위 자리를 놓고 <프리즌>과 경쟁한 <콩: 스컬 아일랜드>는 관객수 160만명을 기록했다.

한국영화는 한석규, 김래원 주연의 <프리즌>과 조진웅, 김대명을 내세운 <해빙>이 100만 관객을 여유롭게 넘기며 체면치레했으나 그밖의 영화는 부진을 면치 못했다. <해빙>은 올해 개봉한 한국영화 가운데 네 번째로 손익분기점을 넘어섰고 <프리즌>이 다음 주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 극장가에서 지난해 4월은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시기였다. 기대를 한 몸에 받은 DC코믹스의 대작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이 형편 없는 평가를 받고 침몰한 가운데 <시간이탈자> <날, 보러와요> <해어화> 등 한국영화 라인업도 기대이하의 성적을 받아들었다. 4월 한 달 관객수는 999만명으로 2016년 월별 관객수 최하치를 기록했다.

다가오는 4월 개봉 예정작 면면을 보면 지난해의 아픔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가득 엿보인다. 크고 작은 영화 모두 저마다의 스타일이 엿보여 극장을 찾는 관객들은 입맛에 맞는 영화를 고를 수 있어 보인다.

그럼 잎새달 기대작 5편을 가려 뽑아 소개한다.

[하나] <어느날>

어느날 포스터

▲ 어느날 포스터 ⓒ 오퍼스픽쳐스


<여자, 정혜>, <멋진 하루>의 감독 이윤기의 신작. 그의 섬세한 표현과 감수성을 그리워한 영화팬들에겐 놓칠 수 없는 작품이다.

김남길과 천우희가 주연한 <어느날>은 어느 날 밤 사또의 방에 찾아든 장화와 홍련의 이야기처럼 귀신의 소원을 산 사람이 들어준다는 설정을 가졌다. 귀신이라니, 그 귀신의 소원이라니, 절로 섬뜩한 생각이 들지만 이윤기 감독과 공포물이 좀처럼 어울리지 않아 전혀 다른 분위기의 영화가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어느덧 신인의 티를 벗고 믿음직한 연기자로 거듭난 김남길과 천우희의 감성 연기도 기대를 모은다. 성별을 뛰어넘어 적잖은 팬을 보유한 두 배우의 주연작이란 점에서 영화 개봉을 목빠지게 기다린 관객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당초 11월 중 개봉할 것으로 여겨졌으나 후반작업이 순탄치 않아 개봉시기가 많이 늦춰진 것으로 알려졌다. 5일 개봉.

[둘] <어느 독재자>

어느 독재자 포스터

▲ 어느 독재자 포스터 ⓒ (주)디씨드


제3세계 영화강국 이란을 대표하는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 신작이 6일 개봉한다. 2014년 제작돼 도쿄, 바르샤바, 리우 데 자네이루, 싱가포르, 홍콩, 카이로 등 세계 각지 영화제에 초청 상영된 <어느 독재자>는 3년 만에 한국 개봉이 확정돼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한순간에 권력을 잃고 도망자 신세로 전락한 독재자의 여정으로부터 권력에 대한 색색깔 감상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라 전한다. 대통령 탄핵과 검찰수사가 이뤄지고 있는 작금의 우리네 상황과 맞물려 적잖은 흥미가 일어난다.

이란 출신의 세계적인 영화감독, 모흐센 마흐말바프가 제작과 각본, 연출을 맡아 재능을 뽐냈다. 영화엔 열일곱의 나이에 반정부 활동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1979년 이란 혁명으로 사면되기까지 6년여에 걸친 수감생활을 한 마흐말바프 자신의 삶도 상당부분 녹아 있는 듯하다.

아내와 두 딸 모두가 영화감독으로 이란의 영화명문가를 이룬 마흐말바프 가문 가장의 영화는 과연 어떤 작품일까. 결코 길지 않을 상영기간이 예상되므로 일찌감치 극장을 찾아야 할 것이다.

[셋] <패트리어트 데이>

패트리어트 데이 포스터

▲ 패트리어트 데이 포스터 ⓒ (주)이수C&E


2013년 4월 15일 발생한 보스턴 마라톤 테러 실화를 다룬 <패트리어트 데이>가 6일 개봉한다. 연출자는 <프라이데이 나잇 라이트> <론 서바이버> <딥워터 호라이즌>을 감독하며 현실감 넘치는 연출력을 갈고 닦아온 피터 버그다. 스포츠와 전쟁, 재난으로 장르를 바꿔가며 실력을 키운 그가 테러와 범인검거에 이르는 긴박한 과정을 영화화하는 숙제를 떠안아 기대를 모은다.

영화의 배경이 된 보스턴 마라톤 테러는 미국 심장부에서 260여명의 사상자를 발생시킨 충격적 테러사건이다. 9·11 테러 이후 미국 본토에 가해진 대표적 테러사건으로 사건 당시 전 세계에 실시간 보도됐을 만큼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

보스턴이 가진 힘은 이 같은 테러를 고통스런 기억으로만 남기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미국 수사기관이 사건발생 나흘 만에 용의자를 체포했고 사상자와 피해수습 역시 순조롭게 이뤄져 도시 전체가 빠르게 안정을 찾았다. 여기엔 시민들의 적극적인 협조와 수사기관의 걸출한 수사력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수년 간 할리우드는 미국사회가 과거 이룩한 승리의 기록을 영화화하며 그들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을 드러내왔다. 이 같은 현상은 영광된 승리의 순간뿐 아니라 고통과 절망의 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올리버 스톤의 <월드 트레이드 센터>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이 그와 같은 영화였다. 빌딩이 무너지고 비행기가 추락해도 시스템이 작동하고 제 역할을 다 하는 사람들이 있었음을 할리우드는 강조했다. 이 같은 영화가 그들 스스로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승리와 극복의 드라마보다 자조적인 블랙코미디가 설득력을 얻는 한국의 현실과 대조적이다.

주연은 <론 서바이버> <딥워터 호라이즌>에 연이어 출연하며 피터 버그의 페르소나로 자리매김한 마크 월버그가 맡았다. 여기에 더해 케빈 베이컨, 존 굿맨, J. K. 시몬스, 미셸 모나한 등 전 세계적인 명성을 쌓은 배우들이 여럿 참여한다. 또 한 편의 완성도 높은 실화영화가 탄생했을 가능성이 상당하다.

[넷] <분노의 질주: 더 익스트림>

분노의 질주: 더 익스트림 포스터

▲ 분노의 질주: 더 익스트림 포스터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어느덧 여덟번째 시리즈다. 출연배우, 관객들과 함께 나이들어온 할리우드 액션 블록버스터 <분노의 질주> 여덟번째 시리즈가 첫편이 개봉한 지 17년이 지난 2017년 개봉한다. 저스틴 린과 제임스 완에 이어 바통을 넘겨받는 감독은 범죄물로 능력을 검증 받은 F. 게리 그레이다.

2003년작 <이탈리안 잡>으로 명성을 얻고 <모범시민>과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을 연출한 그레이의 최대 과제는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 폴 워커 없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었다. <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빼놓을 수 없는 캐릭터로 여겨져 온 브라이언 오코너가 빠진 상태에서 영화는 도미닉 토레토(빈 디젤 분)를 악역으로 변신시키고 지난 시리즈의 악당 제이슨 스타뎀을 선역으로 영입하는 파격적 결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시리즈가 갈수록 규모를 키워온 <분노의 질주: 더 익스트림>이 내용과 규모 면에서 어떤 파격을 거듭했을지 주목된다. 4월 개봉작 가운데 규모 면에선 단연 최고의 작품이다. 12일 개봉.

[다섯] <로즈>

로즈 포스터

▲ 로즈 포스터 ⓒ BoXoo 엔터테인먼트


아일랜드의 유명 연극 연출가에서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영화를 찍어내는 세계적인 영화감독이 되기까지 짐 쉐리단은 모험을 거듭하는 용감한 창작자로 살아 왔다. 명문 뉴욕대 영화학과를 졸업한 뒤 찍어낸 첫 영화가 다니엘 데이 루이스에게 오스카를 안긴 <나의 왼발>이었으며 4년 뒤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모두 걸출한 작품 <아버지의 이름으로>를 내놨다.

꾸준히 아일랜드와 아일랜드 출신 미국 이민자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화해온 그가 이제는 1940년대 아일랜드를 무대로 섬세한 멜로드라마를 찍어냈다. 평범한 멜로물은 아닌 것이 영화의 주인공인 로즈는 자신의 아이를 살해한 죄로 50년째 정신병원에 갇혀 지낸 노인으로 등장하고 그녀가 사랑한 남자는 오간 데 없다. 영화는 다짜고짜 과거로 향해 로즈가 자신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어떤 모험을 감행했는지를 조금씩 풀어낸다.

로즈를 연기한 루니 마라는 최근 몇년 간 할리우드에서 주목받아온 젊은 배우다. 케이트 블란쳇과 공연한 <캐롤>로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토드 헤인즈, 데이빗 핀처, 스티븐 소더버그, 구스 반 산트, 테렌스 멜릭, 레오 까락스 등 세계적 거장들과도 호흡을 맞췄다. 루니 마라가 자유롭고 매혹적인 여성 로즈를 어떻게 표현했을지 궁금한 사람이라면 13일 극장으로 향하라.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기대작을 소개합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 어느날 어느 독재자 패트리어트 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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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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