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스테이션


3년 만에 바다 위로 올라온 세월호. 요즘 많은 분이 가슴 먹먹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 것 같다. 고등학생 아들을 둔 나 역시, 2014년 4월 16일 이후부터의 아픔이 요즘 더욱 생생하게 새 살처럼 돋아난다. 눈물이 차올라 넘칠 기회만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일본 영화 '행복 목욕탕'을 보게 되었는데, 한없이 울었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객석의 모든 이들이 우는 모양이었다. 내내 눈물 콧물 훌쩍이는 소리가 작은 극장을 가득 메웠으니까.

영화 <행복 목욕탕>은 엄마에 대한 영화다. 엄마, 따뜻하게 품어주는 엄마, 희생하는 엄마, 용기를 주는 엄마…. 영화는 세상의 모든 엄마에게 바치는 노래 같기도 하다. 그래서 동화 같기도 하고 만화 같기도 하다. 에이. 그런 엄마가 어디 있어? 그거 다 남자들 로망 아냐? 무조건 다 받아주고 용서해주고 돌봐주는 엄마 말이야. 영화를 보고 나면 그런 생각도 든다. 그러나 영화는 '엄마는 이래야 해'라고 가르치려 드는 건 아니다. 그런 엄마가 어디 있어?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그럼 엄마에게 위로받고 싶고 그런 엄마에게 안겨 울고 싶어진다.

영화는 (포스터에 나온 표현을 빌리자면) '강철 멘탈 대인배 엄마'인 후타바가 남편이 다른 여자를 쫓아 집을 나가고 다시 돌아오는 사이, 그 남편이 다른 여자들과 낳아 온 두 딸을 키우며 생기는 좌충우돌 이야기이다. 그 와중에 엄마는 말기 암 판정을 받고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위기가 닥친다.

남편이 가정을 버리고 나간 사이, 먹고 살기 위해 생고생을 하는 엄마, 고등학생 딸은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해 맨날 시달리고 학교 가기 싫다 하고, 겨우 집에 돌아온 남편은 생판 모르는 애를 딸이라도 또 데려오고…. 가족들을 다독이며 격려하며 열심히 살아보려고 고군분투하는 엄마에겐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겨우 몇 개월. 그러니 영화 내내 울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영화 <행복 목욕탕>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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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남자들은 무책임하거나 (남편), 철없이 방황하거나 (떠도는 청년), 돌봄이 필요해 보인다 (아내와 사별한 탐정). 큰딸은 왕따를 극복해야 하고, 작은딸은 친엄마에게 버림받은 아픔을 극복해야 한다. 이 모든 걸 엄마인 후타바는 한다. 에너지를 주고,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고, 믿어 주고 낯선 이도 안아준다. 만약 오직 여자에게만 이런 헌신을 요구한다면 모성에 대해 과도하게 무게 지우는 거로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는 않은 것이 후타바를 빼고 다른 엄마들은 다 자식을 버리는 무책임한 엄마들이다. 후타바 자신이 엄마에게 버림을 받은 상처가 있고, 또 딸들의 생모들도 자식을 버린다. 오직 후타바만이 모든 이들의 엄마 노릇을 한다. 자신은 죽어가는 순간에까지.

엄마의 헌신으로 남자들도 아이들도 달라진다. 남자들은 철이 들고, 아이들은 성숙해진다. 엄마 후타바의 장례식 장면은 그래서 상징적이다. 가족들과 친구들은 서로 웃으며 피크닉처럼 샌드위치를 먹으며 장례식을 치른다. 엄마가 죽으면서 남긴 유산이 가족들과 이웃들에게 고루 나누어진 것이다.

마지막에 엄마의 사랑으로 데운 목욕물에 다 같이 몸을 담그며, 모두 '따뜻해'라고 말한다. 죽은 엄마를 더는 만날 순 없지만, 엄마가 남기고 간 사랑이 그들의 몸과 마음속 깊이 적셔주었다.

우리가 세월호 비극으로 눈물짓는 것은,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엄마들과 아이들의 삶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까지 '엄마'를 불렀을 아이들을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 죽음이 이생의 인연을 가를지라도, 부디 사랑만은, 그 온기만은 절대 잊히지 않으리라. 펑펑 울고 싶은 당신에게 이 영화를 권한다.

행복 목욕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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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산책하는 삶을 삽니다. 2011년부터 북클럽 문학의 숲을 운영하고 있으며, 강과 사람, 자연과 문화를 연결하는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의 공동대표이자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강'에서 환대의 공동체를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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