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방영한 JTBC <차이나는 클라스-질문 있습니다>(이하 <차이나는 클라스>) 3회에서 지난 1, 2회에 이어 강사로 참여한 유시민은 박정희 시대를 두고 "독재를 했지만 경제 성장을 이루는 국가로 발전"했다고 평했다. 실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집권하던 60~70년대 당시에는 1인당 국민소득이 20배 넘게 뛰었고, 국가 주도 하에 연평균 10%의 고도성장을 거두었다. 그 시절 굶주림에서 벗어나 경제 발전을 몸소 경험한 기성세대들이 여전히 박정희 향수에 젖어있는 근본적인 이유다.

하지만 박정희 신화는 그가 죽었던 1979년과 함께 끝났어야 한다. 산업사회로 대표되는 1970년대와 지식 기반 사회로 전환한 2010년대는 국가를 운영하고 이끌어나가는 비전, 방식 자체가 달라야 한다. 그러나 1997년 정치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정치인, 대통령으로서 내세웠던 것은 박정희, 육영수의 딸 그 이상을 넘지 못했다.

 지난 19일 방영한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한 장면

지난 19일 방영한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한 장면ⓒ JTBC


'미스' 프레지던트... 미혼의, 신화의, 잘못된

19일 방영한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는 <트루맛쇼>(2011), <MB의 추억>(2012) 등을 연출했던 김재환 감독의 신작 <미스 프레지던트>의 영상 푸티지들을 활용하여 박근혜를 향한 일부 친박단체 회원들의 열렬한 지지가 2004년부터 시작됐다고 제기한다. 2004년은 정치인 박근혜에게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대통령 노무현을 탄핵 소추했지만 오히려 국민들의 반감을 사 강한 역풍을 맞았다. 이 때 구세주처럼 나타나 위기의 한나라당을 구한 이는 박정희의 딸 박근혜였다. 아버지 박정희의 강인한 리더십과 어머니 육영수로 대표되는 모성애로 이미지 메이킹에 성공한 박근혜(feat. 최순실)는 가는 곳마다 박정희 시절 향수를 잊지 못하는 사람들의 열광을 이끌었고, 유력 대선후보로 입지를 굳히게 된다.

지금은 지난해 터진 최순실 국정농단 이후, 여러 언론 매체를 통해 보도된 바 있지만 정치인 박근혜가 국회의원으로 재직하던 15년 동안 법안 대표발의 건수가 총 15건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물론 박근혜보다 대표 발의건수가 떨어지는 중진 의원도 더러 있고, 법안 발의 건수가 많다고 무조건 좋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박근혜가 아버지 후광에 힘입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서 각광받던 시절. 정작 한 나라를 이끌어갈 수 있는 리더로서 이렇다할 뚜렷한 비전, 정책을 제시한 적이 있던가.

다큐멘터리 영화 <미스 프레지던트>의 일부 영상을 인용한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는 대한민국 헌정사상 첫 파면으로 대통령직을 마감한 박근혜의 몰락을 박근혜 개인만의 문제로 돌리지 않는다. 국정농단을 일으킨 박근혜 측근들을 비롯해 박정희, 육영수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박근혜에게 맹목적인 지지를 보냈던 시민들. 정치인 박근혜에 대한 명확한 검증은 쏙 피한 채, 그녀를 향한 열광을 부추기는데 일조한 언론. 그런 여론에 편승하여 출세를 꿈꾸었던 오늘날의 친박 국회의원들. 박정희, 육영수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박근혜를 제18대 대통령으로 선출한 대가는 혹독했다.

<미스 프레지던트>의 '미스'는 중의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법적으로 결혼을 하지 않았던 여성 대통령 박근혜를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이 영화가 주안점에 두는 'miss'는 성차별적 뉘앙스가 느껴지는 미스가 아니라 신화를 상징하는 'Myth-' 혹은 실책, 오류, 실수를 뜻하는 'miss'에 더 가까워 보인다.

박근혜는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자신을 '준비된 여성 대통령'으로 소개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박근혜를 대통령직에서 끌어내리는데 성공한 다수의 국민들은 박사모를 제외한 어느 누구도 박근혜를 '준비 되었던 여성 대통령'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엎어진 물을 다시 담을 수는 없다. 이제부터라도 제2의 박근혜가 나오지 않도록 언론과 시민사회가 제 역할을 해야한다.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를 통해 맛보기 식으로 공개된 <미스 프레지던트>의 풀버전이 언제쯤 상영될 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만약 영화가 완성 되었다면 빠르면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늦어도 DMZ국제다큐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이 영화를 선공개하고 극장에서 대대적으로 개봉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난 19일 방영한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한 장면

지난 19일 방영한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한 장면ⓒ JTBC


박근혜 이미지 정치의 허상, 그리고 공범들

개인적으로 이슈에 기댄 소재를 앞세워, 영화적 완성도가 심히 떨어짐에도 불구 당위성과 메시지만 앞서는 영화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미스 프레지던트>는 김재환 감독이 2004년부터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시절 선거유세 현장을 촬영한 푸티지들에서 보다시피, 박근혜 탄핵정국, 최순실 국정농단 이슈에 편승하여 졸속 기획된 다큐멘터리 영화는 아닌 듯하다.

지난 1월 9일 한겨레가 보도한 김재환 감독 인터뷰 기사에 따르면, 김 감독은 오래 전부터 정치인 혹은 인간 박근혜를 분석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기획해왔고, 작년 봄 경, 박근혜, 엄밀히 말해서 박정희, 육영수 신화를 숭배하는 사람들을 밀착 취재하는 방식으로 제작 방향을 틀었다.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서는 짤막한 자료화면으로만 인용된 <미스 프레지던트>가 어떤 영화가 될 지는 아직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다만, 1961년부터 2017년까지, 대한민국 곳곳에 뿌리내린 박정희 신화와 그 맹목적인 믿음을 전적으로 활용해 대통령 자리까지 올랐던 박정희 딸 박근혜를 정리하는 데 있어 효과적으로 되새김질 할 수 있는 도움은 줄 것 같다.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어 삼성동 자택에서 칩거를 하는 와중에도 올림머리 담당 미용사가 출근 도장을 찍는 다는 소식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박근혜에게 올림머리는 그녀의 어머니 육영수를 떠올리게 하는 가장 강력한 정치적 무기였다. 국민들에게 보여지는 이미지 역시 중요한 정치인에게 헤어스타일은 자신이 가진 장점을 어필할 수 있는 효과적인 장치로 활용될 수 있다. 그러나 박근혜는 '올림머리' 그 이상을 보여주지 못했고, 박정희, 육영수 향수를 자극하여 기성세대의 지지를 이끌어낸 것 외에 21세기 지도자로서 걸맞은 그 어떠한 것도 충족시키지 못했던 역대 최악의 대통령으로 남았다.

 지난 19일 방영한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한 장면

지난 19일 방영한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한 장면ⓒ JTBC


박근혜의 대선 공약인 '국민 대통합' 대신 '국민 대분란'만 일으킨 박근혜 전 대통령을 '미스 프레지던트'로 부를 수 있는 명분은 확실하다. 그렇다고 사고방식이 70년대 유신시대에 머물러있는 시대착오적인 대통령을 만들었던 공범들의 잘못까지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박근혜 하나를 끌어내린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다. 기나긴 세월 동안 대한민국을 지배했던 박정희 패러다임과의 결별은 이제 겨우 첫 발을 내디뎠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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