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캐피탈이 안방에서 귀중한 1승을 선점하며 챔프전 진출 가능성을 높혔다.

최태웅 감독이 이끄는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는 지난 19일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열린 NH농협 2016-2017 V리그 남자부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한국전력 빅스톰을 세트스코어 3-0(25-20,25-1,25-18)로 가볍게 제압했다. V리그 출범 후 지난 12번의 플레이오프에서 1차전 승리팀이 챔프전에 오른 경우는 무려 11번이었다. 현대캐피탈은 이날 승리로 91.7%의 확률을 거머쥔 셈이다.

외국인 선수 다니엘 갈리치(등록명 대니)가 63.16%의 높은 공격 성공률을 과시하며 14득점을 올렸고 주포 문성민도 서브득점 2개를 포함해 12득점으로 뒤를 받쳤다. 하지만 역시 1차전 승리의 주역은 블로킹 4개와 공격성공률 63.64%를 기록하며 누구도 예상치 못한 맹활약을 펼친 현대캐피탈의 '조용한 영웅' 박주형이었다.

 박주형은 주전 입성 후 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해마다 커지고 있다.

박주형은 주전 입성 후 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해마다 커지고 있다.ⓒ 한국배구연맹


프로 입단 1년 만에 팀을 옮겨야 했던 유망주

2000년대 초반 인하대와 경기대에게 대학배구의 주도권을 빼앗기며 침체기에 빠졌던 전통의 배구 명문 성균관대는 2000년대 중반부터 야심찬 스카우트를 추진했다. 당시 동명고의 김광국, 송림고의 신으뜸(이상 우리카드)과 함께 06학번으로 성균관대에 입학한 선수가 바로 성지고의 박주형이었다(성균관대는 2008년 서재덕과 전진용, 2010년 전광인이 입학하면서 다시 대학 최강의 자리를 되찾았다).

대학시절 부상 치료 차 1년 휴학을 한 박주형은 2010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2순위로 우리캐피탈(현 우리카드)에 지명됐다. 박주형은 훗날 국가대표가 되는 대한항공 점보스의 살림꾼 곽승석이나 삼성화재 블루팡스에서 4번이나 우승을 경험한 지태환보다도 먼저 이름이 불렸을 정도로 손꼽히는 유망주였다. 하지만 박주형과 우리카드의 인연은 한 시즌 만에 끝나고 말았다.

현대캐피탈은 2010년 세터 송병일과 레프트 이철규를 순차적으로 우리캐피탈로 보내고 2011년 드래프트 1차 지명을 받아오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이 거래가 최종 성사됐다면 현대캐피탈은 최홍석이나 서재덕을 영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에 반발한 이철규가 은퇴를 선언하면서 우리캐피탈이 박주형을 현대캐피탈로 보내는 것으로 트레이드 내용이 수정됐다. 결과적으로 송병일 세터와 박주형의 맞트레이드가 된 셈이다.

박주형은 현대캐피탈 이적 후에도 좀처럼 자리를 잡지 못했다. 같은 포지션에 비슷한 신장과 플레이 스타일을 가지고 경험은 훨씬 더 많은 임동규(은퇴)가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3년 동안 백업으로 와신상담하던 박주형은 2014-2015 시즌 임동규의 부진을 틈타 현대캐피탈의 주전 선수로 자리잡았다. 공격성공률 53.79%와 서브리시브 성공률 59.97%로 공수에서 전혀 나무랄 데 없는 활약이었다.

박주형은 최태웅 감독이 부임한 2015-2016 시즌에도 현대캐피탈의 풀타임 주전으로 활약하면서 220득점을 올렸다. 박주형은 서브 리시브를 전담하는 수비형 레프트 치고는 신장(194cm)이 다소 큰 편이지만 대신 공격에서는 더욱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현대캐피탈은 프로 초창기에도 송인석이라는 장신(196cm)의 뛰어난 수비형 레프트를 보유했던 적이 있다(송인석은 박주형의 롤모델이기도 하다).

현대캐피탈의 살림꾼, 일일 '거미손 아르바이트'에 나서다

박주형은 2016-2017 시즌에도 현대캐피탈 부동의 수비형 레프트로 활약했다. 공격력이 좋은 송준호나 패기 넘치는 신인 허수봉 등이 종종 코트를 밟으며 팀에 활기를 불어 넣었지만 이들과 교체된 선수는 박주형이 아닌 외국인 선수 톤 밴 랭크벨트나 대니일 때가 많았다. 그만큼 박주형이 현대캐피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는 뜻이다.

박주형은 이번 시즌 34경기에 출전해 데뷔 후 최다인 256득점을 올렸다. 특히 상대 블로커들이 문성민을 경계하고 있을 때 기습적인 퀵오픈이나 중앙후위공격으로 현대캐피탈 공격을 더욱 다양하게 했다. 특히 지난 8일 한국전력과의 정규리그 마지막 맞대결에서는 팀 내 최다인 15득점을 기록하며 한국전력전 5연패의 사슬을 끊어내는 데 일등공신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박주형은 한국전력과의 6라운드 경기에서 얻은 기운을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도 그대로 이어갔다. 사실 세트당 5.33개의 수비 성공(디그+서브 리시브)과 63.64%의 공격성공률은 컨디션이 좋은 박주형에게서 충분히 기대할 수 있는 수치였다. 하지만 정규리그에서 세트당 평균 0.23개의 블로킹에 그쳤던 박주형이 블로킹에서 큰 활약을 펼치리라고는 최태웅 감독조차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박주형은 이날 무려 4개의 블로킹을 성공시키며 국가대표 센터 신영석과 함께 팀 내에서 가장 많은 블로킹을 기록했다. 특히 한국전력의 외국인 선수 아르파드 바로티의 공격을 2개나 잡아냈고 현대캐피탈이 승기를 잡았던 2세트에서 3개의 블로킹을 집중시켰다. 현대캐피탈에서 상대적으로 높이가 낮은 박주형이 이 정도의 블로킹 감각을 뽐내준다면 현대캐피탈은 정말 두려울 게 없는 팀이 된다.

대부분의 수비형 레프트가 그렇듯 박주형 역시 화려한 플레이보다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서브 리시브나 수비 등으로 팀에 많은 공헌을 하는 선수다. 하지만 플레이오프 같은 큰 무대에서는 조금 튀어도 상관 없다. 자고로 단기전에서는 '미치는 선수'가 필요하고 박주형처럼 예상치 못한 곳에서 그런 선수가 등장한다면 팀의 사기에 더욱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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