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전쟁영화는 화려한 액션 장면에 비해 대체로 선악의 구조가 단순하다. 그러나 관후(管虎) 감독의 영화 <주자·희자·비자(廚子·戲子·痞子)>(2013, 한국 개봉명 '놈놈놈 주자·희자·비자')는 복잡하고 코믹한 과정을 통해 어려운 화학식 같은 수수께끼를 풀어가야 하는, 흥미진진한 미스터리 전쟁영화다. 주도면밀한 구성력과 배우들의 뛰어난 코믹 연기가 결합하여 강한 흡입력으로 시선을 고정시킨다. 영화 자체의 완성도도 높다.    
왼쪽부터 희자, 벙어리 아내, 주자, 희자 등장인물들의 코믹 연기와 호흡이 영화의 재미를 더 한다.

▲ 왼쪽부터 희자, 벙어리 아내, 주자, 희자등장인물들의 코믹 연기와 호흡이 영화의 재미를 더 한다.ⓒ 제5악장(第五樂章)문화미디어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일본은 중국 침략을 가속화한다. 내륙으로 들어갈수록 보급로가 길어지고, 중국 팔로군이 산악 근거지를 기반으로 게릴라전을 펴자 일본은 삼광(三光)정책으로 응수한다. "모두 불태우고(燒光), 모두 죽이고(殺光), 모두 빼앗는(搶光)" 작전이다. 이 초토화 작전으로 270만 명의 중국인이 희생된다. 일본은 이것도 모자라 보다 손쉽게 중국인을 살해하기 위해 731부대에서 생체실험을 통해 콜레라 바이러스를 개발해 세균전에 나선다.

영화 <주자·희자·비자>는 콜레라 바이러스가 변이를 일으켜 화북지방의 중국인은 물론 일본군까지 감염되자 해독제를 가진 생화학 전문가를 불러들이는 것에서 시작된다. 한 건달(비자)이 두 명의 일본인을 납치해 베이징의 한 일본식당으로 데려간다. 건달, 식당 주인이자 주방장(주자)과 벙어리 부인, 그리고 식당에서 경극 공연을 하는 배우(희자)는 일본인을 어떻게 처리할지 한바탕 실랑이를 벌인다. 일본인이 가져온 철통에는 콜레라 병균이, 서류에는 그들이 731부대 생화학 장교라고 적혀 있다. 주자, 희자, 비자는 두 명의 일본 장교를 심문하고, 바비큐 하듯 고문하고 희롱하며, 역사적으로 중국이 일본에 당한 아픔을 영화 속에서나마 유쾌하고 낭만적인 웃음으로 치환해 놓는다.

두 명의 일본 포로와 네 명의 중국인 콜레라 치료제를 구한다는 목적을 철저히 감추고 각자가 맡은 배역을 연기한다.

▲ 두 명의 일본 포로와 네 명의 중국인콜레라 치료제를 구한다는 목적을 철저히 감추고 각자가 맡은 배역을 연기한다.ⓒ 제5악장(第五樂章)문화미디어


그리고 이야기는 5시간 전, 이틀 전으로 돌아간다. 이를 통해 위의 모든 상황이 콜레라 백신을 획득하기 위한 치밀한 계획에 따른 연극이었음이 밝혀진다. 화북지역 300만 명이 콜레라에 감염된 상황에서 3일 안에 백신을 얻어야 희생을 막을 수 있다. 어떻게 해서든 일본 장교만 알고 있는 치료제 제조법을 캐내야 하는 것이 바로 주자, 희자, 비자의 임무다.

무지하고 돈만 아는 무지한 중국인 연기를 하며 일본 장교의 경계심을 풀어 치료제를 구하려 하지만, 치밀하게 역할을 나눈 온갖 협박과 회유에도 백신 제조법을 캐내기란 쉽지 않다. 그러던 중 일본군 2명이 식당에 식사를 위해 들어왔다가 수상함을 눈치 채고 주자의 벙어리 부인을 데리고 간다. 주자, 희자, 비자는 일본군에게 두 인질을 구하도록 유도하고, 그 과정에서 치료제 제조법을 알아내려는 새로운 작전을 세운다.

# 1 주자(廚子)

일본식당 요리사로 일본어를 구사하며, 일본 장교를 도와주는 척하며 정보를 빼내려고 한다. 원래 독일에서 유학한 의사 출신이다.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짧은 단도로 긴 칼을 휘두르는 일본군을 제압한다. 요리사, 의사의 작은 칼이 생명을 살리는 도구라면 일본군의 긴 칼은 야욕으로 가득 찬, 죽음을 부르는 이미지임을 보여준다. 칼을 통한 죽음의 의식인 할복은 영화에서 치료제를 구할 소중한 시간을 벌어주기도 한다.

주자와 벙어리 아내 주자는 일본어를 구사하며 일본 장교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한다.

▲ 주자와 벙어리 아내주자는 일본어를 구사하며 일본 장교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한다.ⓒ 제5악장(第五樂章)문화미디어


희자 조자룡 분장에 그의 대사는 제갈공명의 <공성계>에 나오는 말이다.

▲ 희자조자룡 분장에 그의 대사는 제갈공명의 <공성계>에 나오는 말이다.ⓒ 제5악장(第五樂章)문화미디어


# 2 희자(戲子)

식당에서 경극 공연을 하는 배우로 특수 임무대의 주요 사항을 결정하는 맏이다. 희자의 분장은 조자룡이고, 그의 대사는 제갈공명이 <공성계(空城計)>에서 하는 말이다. 조자룡의 용맹과 제갈공명의 지혜를 겸비했다는 의미다. 희자는 냉철하고 임기응변에 강하고, 지혜로우면서도 용맹하다. 중국 전통문화 요소인 경극의 무예와 지혜를 은근히 드러내며 상대를 서서히 제압하는 스토리 전개는 중국영화의 한 전형일 것이다.

영화 <주자·희자·비자>에서는 제갈공명의 공성계처럼 치밀한 계략이 쉴 새 없이 펼쳐진다. , 전체가 한 편의 잘 짜인 연극처럼 서로가 서로를 은밀하게 기만하고, 등장인물 모두가 새로운 사건이 생길 때마다 새로운 배역의 희자가 되는 느낌이다.

# 3 비자(痞子)

건달 역할로 등장하는 비자는 사실은 미생물학자로 해독제 제조법을 알아내야 한다. 힘겹게 적의 암호를 가로채서 해독제를 개발하지만, 세균은 이미 변종 바이러스로 진화해 무용지물이다. 설상가상으로 일본군이 공격해 와 고육지책으로 일본 장교가 가져온 변종 바이러스를 깨뜨려 적을 물리치지만, 대원들은 모두 콜레라균에 감염되고 만다.

죽음을 앞둔 일본 장교는 남미의 도롱뇽이 해독제라고 알려주지만, 구할 길이 없다. 비자는 도롱뇽 독의 분자구조(C11H17N308)와 복어 독의 분자구조가 비슷하다는 점에 착안해 식당에 있던 복어를 목숨을 걸고 먹는다. 비자는 깨어나고 콜레라균의 새로운 해독제를 구한다. 식당에 있던 남은 한 머리 복어를 가지고 일본군의 포탄이 날아오는 순간, 대원들은 극적으로 탈출해 치료제를 만드는데 성공한다.

비자 비자는 치료제 개발을 위해 자신이 임상실험에 직접 나선다.

▲ 비자비자는 치료제 개발을 위해 자신이 임상실험에 직접 나선다.ⓒ 제5악장(第五樂章)문화미디어


일본 장교의 암호 콜레라 치료제 암호를 발가락을 이용해 모스부호 전송하고 있다.

▲ 일본 장교의 암호콜레라 치료제 암호를 발가락을 이용해 모스부호 전송하고 있다.ⓒ 제5악장(第五樂章)문화미디어


# 4 주자의 부인

주방장 부인은 말을 못하지만 힘이 세다. 영화에는 중국어, 일본어, 독어 외에도 수화, 모스부호, 북소리 신호, 화학 기호 등 다양한 언어가 등장한다. 언어를 잃어버린 장애인 설정은 오히려 이런 은밀한 언어 소통에 능숙하다는 암시이기도 하며, 장애인 부인은 영화에서 적을 기만하고 은밀하게 암호를 알아내는 역할을 수행한다.

# 5 희자의 애인

희자가 연경(燕京)대학을 다닐 때 사귀었던 애인으로 일본군이지만 해독제를 개발할 결정적인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을 한다. 영화에 나오는 중국인 규찰대가 중국인이면서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일본군을 돕는 반면, 희자의 애인은 일본군이면서 중국 특수 임무대를 돕는 독특한 대립구도가 흥미롭다.

콜레라 치료제를 봄바람에 뿌리는 주인공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겠지만 낭만적 과장과 상상력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 콜레라 치료제를 봄바람에 뿌리는 주인공들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겠지만 낭만적 과장과 상상력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제5악장(第五樂章)문화미디어


영화 <주자·희자·비자>는 전쟁영화의 단순한 선악구도를 교묘하게 우회하여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듯한 흥미를 유발하는, 주도면밀함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특수 임무대가 콜레라 치료제를 목화에 배양해 봄바람에 씨를 뿌리는 것으로 콜레라가 사라진다는 설정은 비현실적이지만 영화적 과장과 상상력으로 웃어넘길 수 있다. 그러나 마지막에 인물들의 생몰 연도를 소개하며 영화 속 주인공을 마치 실존 인물처럼 그린 것은 지나친 교태를 부린 것 같아 '옥에 티'처럼 다가온다. 역사의 아픔을 달래는 힐링의 치료제를 막판에 너무 과잉 투여한 것 같은 느낌이 다소 아쉽다.

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