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 영화가 걸리는 것도 힘들지만, 흥행에 성공하는 것은 더 힘들다. 운이 좋게 많은 관객에게 사랑을 받은 영화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영화가 더 많다.

하지만 유독 <싱글라이더>(2017)의 흥행 실패는 뼈아프게 다가온다. 총 45억 원의 제작비가 들어간 <싱글라이더>는 애초 큰 흥행을 바라지 않았다. 더 많은 관객이 이 영화를 보러 오길 바랐지만, 150만 명이 들어도 족할 영화였다. 눈에 띄는 경쟁작도 없었고, 이병헌이 주연으로 참여하는 만큼 100만 관객 동원은 당연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개봉 주 박스오피스 3위로 비교적 순조로운 출발을 보인 <싱글라이더>는 개봉 1주일 만에 박스오피스 10위권 밖으로 밀려나며 지금까지 33만3780 관객 수(3월 5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에 그쳤다. 신작들의 연이은 개봉에도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지키고 있는 <재심>(221만 5726 관객 수)과 대조되는 행보다. <싱글라이더> 같은 경우는 일일 관객 수 동원이 5000명 안팎에 그치고 있고, 영화제 수상 등 별다른 이슈가 없으므로 몇 주 사이에 대부분 극장에서 내려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싱글라이더>는 애초 흥행과는 거리가 먼 영화였다. 영화 막판에 반전이 있긴 하지만, 별다른 큰 사건 없이 잔잔하게 흘러간다. 남자 주인공(이병헌)의 시점에서 영화가 진행되다 보니, 자칫 지루하고 단조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반전이 오히려 영화에 대한 몰입도를 방해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이래저래 흥행에 실패한 상업영화는 할 말이 없다.

<싱글라이더>의 흥행 실패

 영화 <싱글라이더>는 흥행에 있어서 아쉬운 성적을 보이고 있다.

영화 <싱글라이더>는 흥행에 있어서 아쉬운 성적을 보이고 있다.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흥행에 실패한 대다수 영화는 망한 이유가 명백하다. 대체로 관객 동원에 실패한 영화들의 완성도는 허술하고 헐겁기 그지없다. 그런데 <싱글라이더>는 극적인 전개에 아쉬움이 들긴 하지만, 못 만든 영화라고 할 수는 없다. 요즘 만들어진 한국 영화 중에서 <싱글라이더>처럼 배우의 얼굴과 움직임이 인상 깊게 다가온 영화는 드물었다. 어떤 이는 <싱글라이더>를 두고 그나마 영화적인 언어를 보여주고자 했던 영화로 평가하기도 한다.

많은 등장인물만큼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보여주는 최근의 한국 영화와 달리 <싱글라이더>의 시놉시스는 대단히 간략하다. 다니던 증권 회사의 부도로 돈, 명예, 사람 모두를 잃은 재훈(이병헌 분)이 아내 수진(공효진 분)과 아들이 있는 호주로 떠난다. 그리고 워킹홀리데이를 하던 중 어려움에 부닥친 지나(안소희 분)를 도우면서, 아내와 아들의 주위만 빙빙 맴돈다. 이게 <싱글라이더> 줄거리 전부다. 반전이 있다고 해도, 재훈이 가족들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그들을 멀리서 지켜보는 이야기 자체에는 아무런 변화를 주지 못한다. 차라리 반전이 없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 바로 이 지점에 있었다. 반전이라고 하면 영화 자체를 뒤흔들어야 하는데 <싱글라이더>의 반전은 어설픈 <식스센스>를 보는 것처럼 헛웃음만 나온다.

제작진 입장에서는 어설픈 반전이라도 시도해야만 했다. 순전히 흥행을 위해서다. 만약 <싱글라이더>가 시종일관 박진감 넘치는 액션 영화 혹은 사회 비판적 요소가 가미된 범죄 드라마였다면 굳이 반전이 없어도 재미있겠지만(이런 영화에도 대부분 반전이 숨어 있다), <싱글라이더>처럼 특정 사건 없이 인물의 감정, 동선에 따라 전개되는 터라 자칫 지루하게 느낄 수 있는 영화들은 분위기를 환기할 수 있는 반전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싱글라이더>가 애초 반전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재훈의 감정선을 오롯이 따라갔다면, 더 깊은 여운을 남기는 좋은 영화로 남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이지만, 그렇게 갔더라도 관객 수는 비슷했을 것이다. <싱글라이더>는 완성도가 떨어져서 흥행에 실패한 영화가 아니다. 범죄 액션물, 휴머니즘을 표방한 신파에 익숙한 관객들의 취향에 맞지 않아 관객 동원에 쓴맛을 본 것이다.

니시카와 미와 감독의 <아주 긴 변명>(2016),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문라이트>(2016)를 보고 특별한 반전 없이도, 인물의 시선과 감정에 기대어 한 편의 근사한 영화를 만드는 그들의 솜씨가 부러웠다. <문라이트> 같은 경우는 흑인, 그것도 게이라는 메인 캐릭터를 내세운 것만으로도 여전히 인종 차별이 존재하고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성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심해지는 미국에 대한 일종의 저항정신을 보여주지만, 특별히 인종 차별, 성 소수자 혐오를 비판하는 영화는 아니다.

주인공 샤이론을 괴롭히고 상처를 주는 이들은 백인이 아니라 그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흑인 또래들이다. 샤이론의 유년시절, 청소년 시절, 성인이 된 이후 등 세 단계로 나뉘어 게이로 살아가는 흑인 남성의 일대기를 보여준다. 아버지가 없는 샤이론이 후안을 만나서 아버지 품의 따스함을 알게 되고, 사춘기에 접어든 샤이론이 교우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사건들이 종종 등장하지만, 인물(샤이론)이 느끼는 감정, 시선을 중심으로 장면이 전환된다.

어설픈 반전, 꼭 필요했나

 영화 <싱글라이더>의 반전은 다소 어설펐다.

영화 <싱글라이더>의 반전은 다소 어설펐다.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아주 긴 변명>은 사고로 아내를 잃은 남자가 뒤늦게 후회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소중한 것을 잃고서야 비로소 그 중요성을 깨닫는 과정을 그려 냈다는 점에 있어서 <싱글라이더>와 비슷한 구석이 많다. 그러나 <아주 긴 변명>은 주인공 사치오 주변 인물들의 풍성한 스토리 덕분에 지루할 틈을 주지 않기도 하지만, 반전과 같은 기교 대신 사치오의 감정선을 따라가며 이야기를 완성하는 우직함을 보여준다. 지난 16일 국내 개봉한 <아주 긴 변명>도 한국에서 흥행에 성공한 영화는 아니다. 미국에서 인디 영화에 속하는 <문라이트>도 자국 내 흥행 성적이 만족스러운 편은 아니라고 한다. 다행히 <문라이트>는 아카데미 작품성을 수상하며, 다시 주목을 받는 데 성공했고, 한국에서도 박스오피스 역주행을 기록 중이다.

굳이 <아주 긴 변명>, <문라이트>를 언급한 것은 소재와 내용, 표현 방식에 있어서 어느 정도 다양성을 보여주는 미국과 일본 영화 시장과 그렇지 못한 한국 영화 시장을 거론하기 위해서다. 물론 한국 영화계에도 독립(인디) 영화 진영이 존재하고, 주류 상업영화에는 다룰 수 없는 소재와 영화 미학을 보여주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대다수 독립영화는 어렵게 극장 개봉에 도전한다고 하더라도 상영관 확보에 힘겨운 사투를 벌여야 한다. 극장들이 독립영화에 유독 인색한 이유는 관객동원이 어렵다는 데 있다. 기존에 보았던 상업영화들과 영화 문법 자체가 다른데, 유명 배우들까지 나오지 않으니까. 만약 <싱글라이더>에 이병헌, 공효진이 출연하지 않았다면 30만 명의 관객이 이 영화를 봤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이병헌이 출연하고,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가 투자, 배급을 맡아서 30만 명이라도 동원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싱글라이더> 흥행 실패가 보여준 한국 영화 시장의 현주소는 냉혹했다. 이병헌처럼 출중한 연기력에 스타성을 갖춘 톱배우가 출연해도 영화가 다수 관객의 취향과 정서에 맞지 않으면 흥행에서 참패를 겪는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흥행에 실패한 상업 영화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이 영화를 보지 않고, 보더라도 좋게 보지 않은 관객들의 수준을 탓하면 안 된다.

그러나 흥행 공식에 철저히 맞춘 영화들이 즐비한 나머지 다양성을 잃어가는 한국 영화 시장이 이대로 가도 옳은지에 대해서는 계속 문제 제기가 필요하다. 수백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 한국 영화 시장의 전체 파이를 키우는 것도 의미는 있겠지만, 주류 영화의 문법을 벗어난 좋은 영화들도 관객들의 사랑을 받고, 충분한 흥행을 거둘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생태학에서 말하는 생물학적 다양성의 중요성만큼, 한국 영화계도 다양한 영화들이 서로 상호 보완 작용과 신선함 유지를 통해 한국 영화 시장이 지속해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 적어도 영화를 만드는 기법에 대해서 최근 한국 상업 영화들이 보여주는 전형성을 탈피하고자 했던 <싱글라이더>의 흥행 실패가 아쉽지만, 한국 영화계에서 낯선 영화를 만드는 시도는 계속되어야 한다. 그래야 한국 영화계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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