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수사과정에서 문화를 대하는 현 정부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 정권 비판적 콘텐츠, 그 관련자들을 지원에서 배제하는 '문화예술계블랙리스트'가 사실상 존재했습니다. 블랙리스트에 명단이 올라간 영화인들의 글을 <오마이스타>에서 전합니다. [편집자말]
 27일 오후 서울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열린 다큐멘터리 <천안함 프로젝트> 시사회에서 백승우 감독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은 제작자인 정지영 감독.

27일 오후 서울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열린 다큐멘터리 <천안함 프로젝트> 시사회에서 백승우 감독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은 제작자인 정지영 감독.ⓒ 이정민


현재의 일이라고, 지금의 일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현실이 아닌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었구나'라고 깨닫는 순간이 '어른'이 되는 시점이라고들 한다. 그렇다면 나는 마흔을 훌쩍 넘겨서 어른이 된 것일까?

2013년 9월, 나는 한 편의 영화를 어렵게 영화관에 올렸다. <천안함 프로젝트>라는 영화다. 개봉 첫날, 이 영화는 다양성 영화 차트에서 1위를 하며 뜨거워졌다. 당시 왕가위 감독의 <일대종사>도 상영 중이었는데 <천안함 프로젝트>가 개봉하며 <일대종사>는 다양성 영화 2위로 내려갔다. 신인 감독의 독립영화가 세계적 거장인 왕가위 감독을 이기고(?) 만 것이다. 그것도 극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 영화가 말이다. 서울의 한 극장에 무대 인사를 하러 갔을 때, 극장 측에서 관객의 반응이 좋아서 극장 수를 늘리려 한다고 했다. 그렇게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제작사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내일부터 전국의 모든 영화관에서 영화를 내리기로 했으니 사무실로 와서 회의를 좀 하자."

그리고 다음 날, 전국에는 4개의 영화관만 남았다. 서울에 3개, 강릉에 1개로 말이다.

알 수 없는 이유

그 날부터 지금까지 왜 메가박스에서 영화를 내리기로 했는지 나는 그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화가 나기 위해서는, 일단 상황 파악이 되어야 하는데, 여전히 나는 그런 일이 왜 일어났는지 알아낼 수가 없었다. 그 날부터 여러 가지 상황을 혼자 상상해봤다. 아마도 메가박스의 총 책임자가 저 위의 높은 누군가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고 '앗, 뜨거!' 했을 것이라는 게 내가 생각해낼 수 있는 가장 근접한 답이었다. 그런데 그런 상상만으로 화를 내는 내가 너무 우스워서 화를 낼 수가 없었다. 화를 내야 어느 정도라도 감정이 해소될 것이고 그래야 최소한 잊기라도 할 텐데 말이다.

메가박스 내의 일부 직원, 그나마 상식적인 사람들이 제작자인 정지영 감독님께는 사과했다는 얘기를 인편으로 들었다. 그런데 나에게는 사과하러 안 온다. 그래서 나는 이 사람들이 운영하는 영화관에는 내 영화를 올리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고, 지금까지도 메가박스에는 관객으로도 안 간다. 그런데 그 후부터는 대기업 영화관의 횡포가 계속 눈에 들어오는 거다. 물론 그 전에도 인지는 하고 있었지만, 막상 당하고 나니 더 안까지 시선이 간다. 우리는 영화관에 가서 '내 돈'을 내고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골라'서 자유롭게 보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지금도 전 세계에서는 끊임없이 좋은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고, 그 후엔 우리나라의 많은 회사들이 그 영화들을 수입해 온다. 그런데 그 좋은 외국영화와 우리 영화(특히 독립영화)를 볼 자유가 우리에겐 없는 것이다. 단지 대기업 영화관들이 골라준 영화만 볼 자유가 있는 것이다. 극장가에 걸려있는 한국 영화는 대부분 해당 극장이 이리저리 투자한 영화이다. 할리우드 영화를 제외한 유럽 영화들, 아시아 영화들, 제3세계의 영화들은 아주 늦은 시간 정도에 몇 번 틀어주고는 다시 자신들이 투자한 영화들로 바꿔서 튼다. 그런 모습을 몇 년간 지켜보자니, 그냥 '얘들이랑은 안 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대기업 극장에는 내 영화를 올리지 말아야지 하는 결심을 또 했다.

물론 내 영화를 안 틀어주는 건 그들에게 아무런 상처가 되지 않는 일이다. 잘 안다. 그들을 혼내주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같이 안 놀고 싶'은 거다.

그런 생각을 한 다음엔 시나리오를 쓰기도 전에 먼저 어떤 계산을 해봤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곳을 제외한 영화관에만 영화를 올리려면 어느 정도 예산으로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지를 알고, 그 예산에 맞춰서 영화를 만들자는 계획이었다. 우선 전국의 독립예술영화관은 10여 개 뿐이다. 그나마 계속 줄고 있다. 우선 10개관만 잡는다고 계산해보자. 그 영화관들은 하루에 1회 상영, 잘해야 2회 상영이 최대다. 이성적으로 하루 1회 상영한다고 예상하고 1회에 관객이 2, 3명 정도일 테니 하루에 전국에서 30명의 관객이 들어올 것이다. 1주일 정도 상영하면 210명이다. 입장료를 극장과 내가 반반씩 나누면 세금을 떼기 전 수입이 84만원. 절망적이다. 극장을 열심히 설득해서 2주일을 상영한다고 계산하면 168만원이다. 나는 어떤 영화를 생각해내야 1년 동안 168만원을 가지고 한 편을 만들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 1년 동안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민해야 한다.

문화라는 생태계

 <천안함 프로젝트> 포스터

<천안함 프로젝트> 포스터ⓒ 아우라픽처스


이처럼 시장은 이미 뒤틀려 있다. 이렇게 턱없이 부족한 독립예술영화관을 유지하는 것은 정부와 같은 공적인 단체가 해야 할 일이다. 몇 십 킬로미터 안에 인가가 한 채뿐이라면 그 어떤 사기업도 비용을 들여 전기선을 내지 않는다. 이윤이 절대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건 공기업이 해야 할 일이다. 이윤이 목표가 아닌 사람이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만드는 것, 그것이 공기업의 존재 이유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연히 그래야 할 정부가 오히려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독립예술영화관을 죽이고 있다. 절이 싫으면 절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절 내부로 들어가서 최소한 상식적으로 바꿔야 하는 것이다.

거칠게 한 번 생각해보자. 한국 음악은 왜 세계인들이 좋아하는 것일까? 한국 영화를 지구 건너편에 있는 사람들이 왜 좋아하는 것일까? 물론 가장 많이 알려진 음악과 영화는 국내에서 큰 자본이 개입된 규모 있는 작품들이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그 음악과 영화가 큰 자본에 의해서 오늘날 갑자기 태어난 게 아니지 않은가. 예술가들이 살고 있는 토양이 먼저 있었던 거다. 인디 음악에 의해서, 독립영화에 의해서 메이저 음악과 영화가 자극을 받는 거고….

그런 보이지 않는 순환들. 언젠가 한 과학자의 공개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청계천은 죽어 있는 천"이란다. 천과 강이 살기 위해선 다양성이 있어야 한다. 작은 물고기도 있고 큰 물고기도 있고, 또 어떤 물고기는 깊은 물속에서만 살고, 어떤 고기는 깨끗하고 낮은 물속에서만 살고, 강에는 물고기뿐만 아니라 다양한 어종이 서식해야 한다. 이런 다양성이 있어야지 강이 건강해지고 스스로 살아가는 강이 되는 거라 했다. 이건 문화계도 마찬가지다. 엄청난 예산이 들어갔어도 형편없다고 느껴지는 영화도 있을 수 있고, 거칠고 무거운 종이에 인쇄되었지만 한 문장, 한 문장 내부를 파고드는 감동적인 소설도 있는 것이고, 또 내 삶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이는 이해할 수 없는 현대 회화 한 장이 회사 디자이너를 자극해서 회사의 얼굴이 되는 로고가 탄생할 수도 있다. 그런 생태가 문화계를 건강하게 하고 사회를 앞으로 나가게 만드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수준 낮은 정치

그런데 청와대와 또 그와 관련된 고위 관료들은 블랙리스트를 만들어서 우리 문화계를 '청계천'으로 만들었다. 이 정도 지적 수준과 현실 파악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한국을 이끌어가는 자리에 있다는 것이 모든 불행의 시작점이 아닐까 한다. 한국 문화계에서 나온 작품들은, 클래식 음악에서 TV드라마, 비보잉에 이르기까지 세계인이 열광하는 수준 높은 결과물들이다.

여기에 비할 때 일본과 더불어 한국의 고질적인 문제인 정치인들의 수준을 생각해보자. 한국의 정치와 고위관료 수준은 '3류'라는 딱지를 떼지 못하는 부끄러운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다시 말해 제일 못하는 사람들이 제일 잘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고 있는 상황인데, 당연히 사회가 건강해질 리가 없다.

어렸을 때, 현대철학의 흐름을 보면서 왜 해체주의가 나왔을까 잘 이해되지 않았다. 공자나 맹자의 글 속에서도, 붓다에 관한 글 속에서도, 또 서양 철학자의 글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조금 더 생각해보고 싶은 게 많은데 왜 서양 사람들은 해체란 단어를 쓸까 하고 의아해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요즘 그 용어가 조금 더 직접적으로 내게 들어온다. 우리가 가진 개념들 속에 오염되고 변질된 수많은 내용이 있는 것이고 이제 우리는 그 잘못된 해석을 해체하고 재정립을 해야 하는 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리하자면, 블랙리스트에 관여한 모든 정치인과 고위 관료는 강력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건 시작이다. 드러난 질병을 치료하지 못한다면 우리 모두의 목숨을 위협하는 큰 병이 될 것이다. 그 후에 다시 자연에 관하여, 사회에 관하여, 인간에 관하여, 각자 고민하고 정립해서 나름의 개똥철학이 판치는 다양한 사회로 나가야 할 것이다. 나는 그런 날이 올 때까지 어떻게든 '어른'이 되는 것을 거부하고 재미있게 놀아야겠다.

백승우 감독은?
 27일 오후 서울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열린 다큐멘터리 <천안함 프로젝트> 시사회에서 백승우 감독이 생각에 잠겨 있다.

27일 오후 서울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열린 다큐멘터리 <천안함 프로젝트> 시사회에서 백승우 감독이 생각에 잠겨 있다.ⓒ 이정민


백승우 감독은 2013년 다큐멘터리 <천안함 프로젝트>로 데뷔한 신진 영화인이다. <부러진 화살>의 편집, <남영동 1985> 등에 참여하며 현장 경험을 쌓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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