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포로=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 경기 종료 후 울려 퍼진 애국가에 선수들은 눈물을 펑펑 쏟았다.

메달과 상관없는 1승이었지만 그들에게 이 승리가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지난 20일 일본 삿포로 츠키사무 체육관에서 열린 2017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여자 아이스하키 한국(파란색)과 일본의 경기. 일본의 3대0 승리로 경기가 끝나자 한국 선수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2017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에 출전한 여자 아이스하키 한국팀. ⓒ 연합뉴스


그들이 이 순간을 맞이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을 흘렸는지도 그 한 장면으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가 제8회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에서 사상 처음으로 중국을 격파하는 개가를 올렸다.

한국은 지난 23일 중국과 대회 4차전에서 연장전에 이어 승부샷(승부치기)까지 가는 혈투를 펼친 끝에 3-2(1-1 1-1 0-0 0-0 <승부샷> 1-0) 역전승을 거뒀다.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역사에 남을 만한 짜릿한 한판 대결이었다.

한국은 선제골과 두 번째 골을 먼저 내줬으나 박종아와 캐나다 교포 박은정(캐롤라인 박)의 득점포에 힘입어 경기를 연장으로 끌고 갔다.

승부를 가리지 못해 돌입한 승부샷에서는 수문장 신소정의 철벽 방어와 박종아의 결승 페널티샷에 힘입어 감동적인 역전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한국(세계 랭킹 23위)이 동계올림픽에 세 차례나 출전했던 전통의 강호 중국(16위)에 7전 8기 끝에 거둔 첫 승리였다.

선수들은 경기 전날 밤에 중국전 비디오 분석은 잠시 제쳐두고 새러 머레이(미국) 감독과 함께 허심탄회하게 대화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지난 21일 카자흐스타전 0-1 석패로 목표로 했던 메달의 꿈이 사실상 물거품이 된 뒤였다.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의 유일한 팀은 국가대표 뿐이다. 학교팀은 물론 실업팀조차 없다.

대표팀을 나온 팀에는 갈곳도 없어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선수들은 스틱을 놓지 못하고 있다. 한 달 훈련비는 고작 120만원.

선수들은 이처럼 열악한 상황에서 아무도 몰라주는 아이스하키를 왜 포기하지 못하는지에 대해서 한명씩 얘기했다. 그리고 서로 위로를 받았다.

머레이 감독은 "어린 선수들은 학교가 끝난 뒤 어머니가 운전하는 차에서 잠을 보충하며 훈련장에 도착해 새벽 12시 30분까지 훈련하고, 다시 아침에 학교에 간다"며 "과제물이 많은 대학생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나이 많은 선수들은 제대로 된 직업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상황에서 우리 선수들이 얼마나 아이스하키를 사랑하고, 왜 대표팀을 위해 희생하는지에 대한 얘기를 들으니 감동적이었다"며 "그 자리가 우리를 좀 더 끈끈하게 만들어줬다"고 덧붙였다.

피아노를 전공한 음대생부터 의대생 출신까지 이색경력의 선수들은 아이스하키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하나로 뭉쳤고, 중국을 상대로 작은 기적을 일으켰다.

승리의 일등공신인 골리 신소정은 "중국을 반드시 이겨 우리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고 우리끼리 굳게 다짐했다"고 말했다.

대표팀 선수들의 열정은 헛되지 않았다. 삿포로 빙판에서 이변을 일으킨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는 내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또 하나의 기적에 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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