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에 미국은 영화 검열제를 폐지했다. 기존의 검열제도가 등급제 (rating system)로 교체되면서 다양한 장르의 (특히 심의제가 없어지면서 수혜를 입을 만한 성과 폭력성이 난무한) 영화들의 생산이 가능해지게 된다.

그 당시 쏟아져 나왔던 블렉스플로이테이션이나 선정성이 눈에 띄게 높아진 에로 호러 영화(erotic horror films)가 그 예이다. (Blaxploitation: 흑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흑인을 주인공으로 한 착취 장르 영화, 주로 검열제 당시에는 다루지 못했던 인종 차별에 대한 비판이나 백인 위주의 사회를 경멸하는 폭력적인 액션물들이 이 장르의 주류를 이루었다)

그중에서도 소프트코어 장르-하드코어 포르노보다는 수위가 낮고 일반 주류 영화보다는 높은 성인영화-의 부상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의 탄생과 함께 주목할 만한 현상이었다. 소프트코어의 부상은 1960대를 시작으로 하여 1970년대에 전성기를 이루었고 이러한 현상은 미국뿐만이 아닌 일본이나 유럽 쪽에서도 관찰된다.

물론 국가적 특성에 기반을 둔 사회문화적 요인을 고려해야 하지만,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 1970년대 초에 대두하였던 호스티스 영화와 1970년대 말에 시작되어 1980년대까지 범람했던 성애영화들의 홍수를 이러한 세계적인 에로 영화들의 인기몰이 현상과 완전히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특히 이러한 영화들이 1970년대 초부터 우리나라 영화시장으로도 수입되기 시작한 것을 고려하면 말이다.

[미국] 린다 러브레이스 주연의 <딥 스로트>

 미국 영화사의 한 획을 그은 작품이었다.

미국 영화사의 한 획을 그은 작품이었다. ⓒ Bryanston Pictures


표면적으로 보면 소프트 코어는 검열제의 부재를 이용한 지극히 상업적인 문화상품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상 이러한 성인영화들은 정치적인 메시지, 특히 저항의식을 표현하기 위한 도구로 '성' 이라는 주제를 이용한 경우도 많았다. 미국의 경우 1960년대 베트남전에 대한 반전 운동으로 'Make Love Not War' 라는 캠페인이 히피들에 의해 주창되었고 이 당시 많은 다큐멘터리나 독립 영화들이 그들의 반전 의식을 '성'이라는 모티프를 통해 담기도 했다.

영화 <딥 스로트(Deep Throat)>(성 불감증을 갖고 있던 한 여성이 성을 탐험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을 두고 많은 학자들이 이 영화가 여성이 성욕을 자유롭게 표현한 데 있어서 급진적인 영화로 볼 수 있고 따라서 2세대 페미니즘의 영향을 받은 텍스트로 읽을 수도 있다고 주장 한 바 있다.

[일본] 오시마 나기사의 <감각의 제국>

 영화 <감각의 제국>은 파격적인 수위의 작품이었다.

영화 <감각의 제국>은 파격적인 수위의 작품이었다. ⓒ 조이앤클래식


좀 더 가까운 나라인 일본의 예를 들자면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감각의 제국(1976)>을 그러한 급진적인 텍스트로 읽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충격적인 작품 <감각의 제국>은 당시 보수적이었던 일본 사회에서 매우 큰 파장을 일으켰다.

영화는 한 기생과 그녀의 연인(흔히 기둥서방으로 일컫는)이 밤낮으로 벌이는 가학적이고 변태적인 성행위를 그려내고 있다. 그들은 성행위 중 서로의 목을 조르는 '놀이'를 일삼는데 그 수위가 점점 높아져 급기야 남자가 여자에게 목졸려 죽게되고 이에 충격을 받은 기생은 그의 성기를 잘라 삼일 밤낮을 거리를 쏘다니며 갖고 다니다가 경찰에 붙잡힌다.

현시대에 봐도 꽤나 파격적인 이 줄거리는 사실 1920년대 일본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나기사 감독은 이 두 배우에게 실제로 성관계를 할 것을 요구했는데 헤어 누드신은 물론이며 흔히 포르노 영화에서나 보여지는 이른바 '삽입 신' 등이 영화 전반에 걸쳐 '의도적으로' 등장한다. 어렴풋이 지나가거나 은유적으로 비치는 것이 아닌 노골적으로 보여진다는 뜻이다. 나기사 감독의 이러한 엄청난 시도들을 영화학자 도날드 리치는 (Donald Richie) 세계 대전 패망 이후  1970년대 일본 사회를 잠식하였던 극보수파에 대한 강한 저항으로 읽은 바 있다. 나기사 감독이 급진적 정치운동의 활동가였던것을 고려하면 이러한 읽기는 꽤 설득력이 있다. 

[한국] 호스티스 영화와 저항으로서의 강간 모티프

 국내 성애영화의 대표격인 작품이 바로 <산불>이다.

국내 성애영화의 대표격인 작품이 바로 <산불>이다. ⓒ 영상자료원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우리나라의 예로, 문학 평론가 용석원은 1970년대 호스티스 소설을 영화화 한 호스티스 영화들이 소설보다도 훨씬 더 성적인 수위를 높여 제작된 경우가 많은데 이를 상업적 수단으로만 읽을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금기시 되어오던 성이라는 매개체를 통한 저항의 상징으로도 읽어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엄밀히 말하면 그 당시 한국 영화 시장이 텔레비전의 부상으로 인해 많이 침체되어 있었고 그러한 텔레비전과의 경쟁에 이기기 위한 전략으로 성인물 콘텐츠들이 기획, 생산되었다라는 것을 고려하면 용석원의 주장은 다소 설득력이 부족하다. 하지만 이 당시 양산된 다수의 성인물들에서 여자 주인공이 남성의 폭력에 의해, 더 흔하게는 강간이라는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고통 받고 파멸에 이른다는 플롯이 다루어지는 것을 고려하면 성이라는 모티브가 권력의 은유화에 일정 부분 관여 했다는 것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주장일 수 있다.

많은 영화들이 굵직한 역사적 사건에 영향을 받아 생성되고 소멸하기도 한다. 허나 유독 성애장르의 경우 영화들이 가진 선정성 때문에 그들의 정치성, 혹은 급진성이 가려지거나 묵인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 씁쓸한 사실은 일본의 로망 포르노 장르나 미국의 선정 착취 장르들이 나중에라도 역사적으로 조명받았던 반면 우리 나라의 70, 80년대 호스티스 장르나 에로 사극들이 그 제작 편수나 경제적 스케일이 괄목할 만한 것이었던 것에 비해 그에 대한 논의는 아직도 깊이 있게 다루어진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일단 이러한 연구들이 활발해 지기를 바라는 것과 아울러 현재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영화 장르들이 100년 전도 아니고 50년 전도 아닌, 불과 30년 남짓 전에 한국 영화 시장을 휩쓸었다는 사실 정도라도 인식되었으면 한다. 한국 근대 문화사의 의미 있는 하나의 조각 찾기 정도로 박스오피스를 장식했던 성애 영화 한 편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문화 블로그, 월간 <이리>에 실렸던 글을 수정·재구성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야한 영화 호스티스 영화 감각의 제국 영화 검열 70년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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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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