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첫 달 극장가에선 세 편의 한국영화, 두 편의 해외 애니메이션이 두드러진 흥행세를 보였다. 한국영화는 <더 킹>과 <공조>, <마스터>라는 비교적 일관된 색채의 범죄·액션물이 흥행을 주도했고 애니메이션은 신카이 마코토의 <너의 이름은.>과 방학시즌 아이들을 타깃으로 한 디즈니의 <모아나>가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었다.

당초 기대를 모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패신저스>와 <얼라이드>,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는 엇갈리는 평가 속에 앞의 영화들에 스크린을 내줘야 했다.

다가오는 2월엔 해외 유수 영화제에서 호평받은 기대작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컨택트>, <문라이트>, <사랑의 시대>가 그와 같은 작품으로 앞의 두 작품은 아카데미 영화제 주요부문 후보로 이름을 올린 상태다.

정유년 시샘달 극장가의 주인공은 과연 누가 될까? 여기 기대작 다섯 편을 추려 소개한다.

[하나] <컨택트>

컨택트 포스터

▲ 컨택트 포스터 ⓒ UPI 코리아


영화팬에게, 특별히 이 땅의 수많은 할리우드 키드에게 2월은 아카데미 시상식 시즌으로 기억된다. 어느덧 89회째를 맞은 아카데미 시상식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이며 권위 있는 영화상으로 자리잡았다. 오스카 트로피 뒤에 끊임없이 혁신을 거듭하는 할리우드의 저력과 수상과정 전반에 공신력을 기하는 운영위원회의 노력이 자리한 당연한 결과라 하겠다.

<컨택트>는 올 아카데미 시상식 주인공이 될 가능성이 꽤나 높은 작품이다. 작품, 감독, 촬영, 각색, 미술 등 8개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아카데미 시상식의 전초전쯤으로 불리는 전미비평가위원회 작품상을 수상해 주요부문 수상 가능성도 한껏 높였다. 국내에서 아카데미 시상식 이전인 2일 개봉일을 잡았는데 작품에 대한 입소문이 충분히 퍼졌다는 자신감이 자리한다.

2015년 최고 화제작으로 꼽힌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를 감독한 드니 빌뇌브가 연출을 맡았다. 탄탄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쉽게 예상할 수 없는 전개, 돋보이는 촬영과 음향 등 종합예술로써의 영화의 장점을 한껏 살려온 드니 빌뇌브가 첫 SF 연출을 시도해 눈길을 끈다. 에이미 아담스, 제레미 레너, 포레스트 휘테커 등 한국에도 잘 알려진 연기파 배우들이 총출동한다.

아카데미 각색상 유력후보로 원작 역시 SF소설에 주어지는 각종 권위 있는 상을 죄다 휩쓴 명작으로 알려졌다. 원작은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로 전 세계에 날아든 12개의 쉘, 그들이 지구에 보내온 의문의 신호를 파헤치는 언어학자와 물리학자의 이야기를 다뤘다. 2일 개봉하는 이 영화를 보는 건 성공이 예견된 영화를 성공의 정점 이전에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가 될 것이다.

[둘] <사랑의 시대>

사랑의 시대 포스터

▲ 사랑의 시대 포스터 ⓒ 찬란


'남편에게 여자가 생겼다. 나는 그녀와도 같이 살기로 했다'는 도발적인 카피가 눈길을 끄는 <사랑의 시대>는 한국영화 <아내가 결혼했다>가 미처 나아가지 못한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긴 문제작으로 주목받는다. 남자 다섯과 여자 다섯의 공동체 생활, 그 가운데서 벌어지는 로맨스. 결혼이란 제도를 뒤흔드는 감정과 이 감정을 공동체 안으로 받아들이는 선택이 미묘한 물음을 던진다.

감독은 <셀레브레이션>, <더 헌트>를 통해 라스 폰 트리에를 잇는 덴마크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토마스 빈터베르그. <더 헌트>와 마찬가지로 감독 자신의 자전적 경험을 살려 공동체 내부의 균열과 연대, 미묘한 감정과 느낌들을 담아냈다. 다섯의 남자, 다섯의 여자가 함께 꾸리는 공동체를 중점적으로 담아내 로맨스뿐 아니라 책임과 모험, 우정과 이기주의 등 다양한 이야기가 담겼다고 전한다.

주연한 트린 디어홈은 덴마크를 대표하는 배우 가운데 하나로 이 영화를 통해 세계무대에 얼굴을 알리게 됐다. 이 영화에서 펼친 열연으로 덴마크 여배우 중 최초로 베를린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실제 출연배우들로부터 자연스런 감정을 끌어내기 위해 사전 공동체생활을 일부나마 경험하게 했다는 감독. 이 영화를 보는 건 빼다박은 삶을 사는 상당수 한국 관객들에게 다른 삶의 방식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는 소중한 경험이 되어줄 것이다. 2일 개봉.

[셋] <그레이트 월>

그레이트 윌 포스터

▲ 그레이트 윌 포스터 ⓒ UPI 코리아


중국을 대표하는 거장 장이머우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들고 돌아왔다. <붉은 수수밭> <홍등> <귀주 이야기> <인생> <5일의 마중> 등 숱한 걸작을 내놓으며 역사에 짓눌리는 인간과 삶을 이야기했던 거장이 이제 중국과 할리우드 자본의 합작투자를 몰아받고 압도적인 규모의 영화를 연출했다니 어찌 궁금하지 않을 수 있겠나.

중미 합작으로 미국대표 멧 데이먼과 윌렘 대포, 중국대표 유덕화, 한국팬을 노려 아이돌 그룹 EXO(엑소)의 루한까지 투입했다. 정체불명의 적으로부터 인류를 수호하기 위해 뭉친 이들의 활약을 그렸다는데 자본이 주도하고 사람이 뒤를 따르는 수많은 졸작의 전철을 밟을 것인지, 오래도록 기억되는 선례로 남아 중미 합작 블록버스터의 선봉이 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장기인 정통 드라마를 연출하는데 그치지 않고 틈틈이 블록버스터 연출에도 관심을 보여온 장이머우, 중국영화가 나아갈 길을 다채롭게 모색해온 그의 새 도전이 어떤 결과로 귀결될지 관심이 상당하다. 홍콩과 프랑스, 한국영화가 잘 나가던 시기, 비슷한 도전과 실패 사례가 여럿 있었다는 점에서 우려되지만 무려 장이머우가 직접 연출을 맡은 만큼 호락호락한 영화는 아니니라 기대한다. 16일 개봉.

[넷] <재심>

재심 포스터

▲ 재심 포스터 ⓒ 오퍼스픽쳐스


열 다섯 소년이 살인범으로 지목됐다. 소년은 항소심 재판에서 자신이 살인범이라고 자백했고 용서해 달라며 고개를 숙였다. 소년은 살인죄로 10년을 복역하고 2010년 8월 만기 출소했다. 그로부터 3년 뒤 그는 "경찰의 폭행 때문에 허위자백을 했다"며 재심을 청구했다. 일명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이야기다.

올해로 서른 셋이 된 최아무개씨는 지난해 11월 살인범이란 누명을 벗었다. 재심판결을 진행한 재판부가 최씨의 살인혐의에 무죄를 선고했기 때문이다. 살인혐의로 구속된 지 무려 16년, 재심을 청구한 지 3년 만의 일이다. 이제 최씨는 국가를 상대로 형사보상과 국가배상 청구 등 지난 세월의 대가를 받아내야 할 일이 남아 있다.

경찰과 검찰의 강압조사, 재판부의 허술한 판결로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쓴 피해자들이 누명을 벗게 된 데는 박준영 변호사의 도움이 컸다. 직접 발로 뛰며 피해자와 목격자들을 만나고 증거를 수집해 검·경 수사의 문제점을 파헤친 그의 활약이 있어 이 나라 사법부는 그 스스로의 오욕을 뒤집을 수 있었다. 영화 <재심>은 박 변호사의 활약으로 지난해 무죄판결을 받은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사건'과 '약촌 오거리 살인사건' 가운데 약촌 오거리 살인사건 이야기를 다룬다.

삼성 반도체공장 백혈병사건 문제를 다룬 <또 하나의 약속>의 감독 김태윤이 연출했고 정우와 강하늘 등 유명 배우들이 출연한다. 정우가 박준영 변호사를 모티브로 한 이준영 변호사 역을, 강하늘이 피해자 현우를 연기한다. 대기업 삼성을 직접적으로 다룬 전작 때보다 제작여건이 훨씬 나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블랙리스트도 불거져 방해요소도 사라졌다.

한편 약촌오거리 사건 무죄판결에도 사건과 관계된 책임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현직에서 근무 중이다. 사건 담당 검사와 진범을 풀어준 검사는 부산지검에서, 1심과 2심 판결을 내린 판사와 재심을 기각한 판사들은 현직 판사 또는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섯] <문라이트>

문라이트 포스터

▲ 문라이트 포스터 ⓒ 오드


올 아카데미 시상식 다크호스로 꼽히는 <문라이트>가 시상식을 나흘 앞둔 22일 개봉한다. 영화팬들에 생소한 감독과 배우들이 만들었지만 아카데미에 앞서 열리는 유수의 시상식 주요부문에서 수상하며 기대감을 한껏 높였다. 특히 뉴욕, 시카고, LA 비평가협회상 주요부문을 휩쓸며 다크호스를 넘어 주인공이 되는 게 아니냐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앞서 데이미언 셔젤의 <라라랜드>가 엄청난 호평을 받으며 상을 몰아받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드니 빌뇌브의 <컨택트>와 배리 젠킨스의 <문라이트>를 본 관객은 전혀 다른 예상을 내놓고 있는 형국이다.

<문라이트>는 배리 젠킨스의 세 번째 작품으로 전작과 무려 7년여의 시간차를 두고 만들어졌다. 영화를 본 이들은 모두 공감하는 부분이지만 영상과 음악이 특출나 관객을 시청각적으로 사로잡는다고 전한다. 마약중독자 어머니, 폭력과 가난이 일상적으로 파고드는 삶 가운데서 살아온 한 남자의 삶을 유년기, 청소년기, 성인기 세 시점으로 나눠 사실적으로 그린다.

<노예 12년>에 이어 3년 만에 후보에 오른 흑인영화가 아카데미 시상식을 휘어잡을 수 있을까? 지난해 흑인배우, 흑인 관련 영화가 단 한 편도 주요부문에서 수상하지 못하며 인종차별 논란이 부각됐고 설명이 필요 없는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상황에서 오스카가 어떤 결정을 내렸을지도 관심을 모은다.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촬영상, 편집상, 음악상 등 8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배급에 난항이 예상되므로 보고 싶은 독자는 최대한 일찍 극장을 찾을 것.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컨택트 재심 문라이트 기대작을 소개합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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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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