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에서 10년 이상 활약한 선수는 은퇴 후 5시즌이 지나면 명예의 전당에 도전할 기회가 생긴다. 이들은 기자단 투표를 거쳐 75% 이상의 득표율을 얻어야 입성할 수 있다. 최소 5%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하면, 그 해에 입성하지 못하더라도 최대 10년까지 도전할 수 있다.

이전까지 재도전 기회는 15년까지 주어졌다. 그러나 2015년 1월 투표부터 재도전 기회가 15년에서 10년으로 줄어들었다. 이미 10년차를 넘은 선수들에 한해서만 15년 재도전이 유지되었고, 이 때문에 스위치히터였던 외야수 팀 레인스는 졸지에 투표 재도전 기회 5번을 잃었다.

19일(이하 한국 시각) 결과가 공개된 명예의 전당 투표는 레인스에게 있어서 마지막 기회였다. 물론 10년의 재도전 기회를 모두 날려도 베테랑 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수는 있지만 미국야구기자협회(BBWAA) 소속 기자단 투표로 선정된 선수보다 가치가 낮게 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기자단 투표 마지막 기회에서 레인스는 간신히 명예의 전당으로 향하는 막차를 탈 수 있었다. 득표율 86%로 후보들 중 득표율 2위를 차지하면서 명예의 전당 입성의 꿈을 이뤘다. 함께 입성할 동기로는 내야수 제프 배그웰(86.2% 1위)과 포수 이반 로드리게스(76%)가 선정됐다.

뛰어난 출루와 도루, 역대 도루 5위의 '대도' 레인스

1959년 9월 16일 생의 레인스는 1977 드래프트에서 몬트리올 엑스포스에 지명되면서(5라운드)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1979년에 메이저리그에 데뷔하여 대주자로 주로 출전했으며, 1981년부터 풀 타임 메이저리그 선수가 됐다.

주전 좌익수가 된 그는 1981년에 3할 타율과 71도루를 기록, 풀 타임 첫 해에 도루왕이 됐다. 그러나 아쉽게도 신인상 수상은 실패했다. 그 해 내셔널리그 신인상을 탔던 선수는 멕시코 출신의 선발투수 페르난도 발렌수엘라(당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였다.

이후 레인스는 1984년까지 4년 연속 도루왕을 차지했고, 메이저리그에서 유일하게 6년 연속 70도루 기록을 보유하게 됐다. 또한 출루 능력도 뛰어나 1986년에는 타격왕도 차지했으며, 1987년에는 올스타 게임 MVP에도 선정됐다. 그러나 1990년 시즌이 끝난 뒤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트레이드되면서 엑스포스에서의 생활은 마무리됐다.

이후 레인스는 여러 팀을 거쳤다. 5년 동안 화이트삭스에서 활약한 그는 1996년부터 3년 동안 뉴욕 양키스에서 뛰면서 월드 챔피언 반지도 2개를 차지했다. 이후 선수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와 계약했는데, 1999년 난치병 루푸스가 발병하는 바람에 선수로 뛰지 못하게 됐다.

병 때문에 잠정 은퇴하는 것으로 보였지만, 레인스는 선수의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2001년 루푸스 완치 판정을 받은 레인스는 엑스포스에 복귀했고, 만 41세의 노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3할 타율을 달성하는 노익장을 과시했다. 이후 레인스는 아들인 팀 레인스 주니어와 함께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 잠시 뛰었고, 고향 플로리다 말린스(현 마이애미 말린스)를 거쳐 은퇴했다.

이후 레인스는 화이트삭스에서 1루 작전주루코치를 맡아 지도자로 활약하기도 했다. 이 시절 그는 2005년 화이트삭스의 월드 챔피언 달성에 기여하며 당시 불펜코치로 있던 이만수 코치(전 SK 와이번스 감독)와 함께 활약했다.

레인스의 통산 성적은 타율 0.294에 출루율 0.385, 2605안타(170홈런) 808도루(역대 5위)였다. 역대 도루 1위인 리키 헨더슨(1406도루 2295득점)도 달성하지 못한 6년 연속 70도루 기록은 레인스만이 갖고 있다. 그러나 같은 시대에 뛰었던 헨더슨의 그늘에 가려 명예의 전당 입성 투표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그렇게 레인스는 명예의 전당 재도전 기회도 5년이 줄어들었고, 2014년 이후의 투표에서는 그레그 매덕스, 탐 글래빈, 페드로 마르티네스, 랜디 존슨, 존 스몰츠(이상 선발투수), 프랭크 토마스, 크레이그 비지오, 켄 그리피 주니어(이상 야수), 마이크 피아자(포수) 등에 밀렸다. 득표율이 점차 떨어지면서 명예의 전당 입성 기회도 놓치는 듯 싶었다.

그러나 2016년 투표에서 레인스보다 더 많이 득표하고도 명예의 전당에 가지 못했던 선수는 배그웰 뿐이었다. 2017년 투표에서 강력한 경쟁자가 다소 줄어들면서 레인스는 후보들 중 득표율 2위를 기록하며 마지막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킬러 B의 상징 배그웰, 비지오와 명예의 전당에서 만나다

1968년 5월 27일 생의 배그웰은 다리를 벌리고 자세를 낮추는 독특한 기마 자세의 타격으로 유명했다. 원래 3루수였던 배그웰은 1989 드래프트에서 보스턴 레드삭스에 지명될 때도 3루수로 뽑혔다. 미국 메사추세츠 주 보스턴 태생이었던 배그웰은 1990년 트레이드 때 구원투수 래리 앤더슨과 맞트레이드되어 휴스턴 애스트로스로 이적했다.

당시 레드삭스 3루수 자리에는 웨이드 보그스(명예의 전당 헌액 선수)가 있었다. 1루수 자리에도 모 본이라는 유망주가 있었기 때문에 배그웰은 지명타자가 아니면 방법이 없었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레드삭스는 다른 1루수들에 비해 배그웰의 체격이 다소 왜소하다는 이유로 보냈고, 이는 데이비드 오티즈라는 지명타자가 영입되기 전까지 레드삭스의 실수로 남게 됐다.

애스트로스로 이적한 배그웰은 팀에서 기존의 주전 1루수를 트레이드하면서 자리를 만들어 준 덕분에 1루수로 자리를 얻게 됐다. 1991년에는 내셔널리그 신인상을 차지했고, 1994년에는 선수노조 파업으로 110경기만 출전했음에도 타율 0.368에 39홈런 116타점이라는 괴물 같은 성적을 기록하면서 만장일치로 내셔널리그 MVP를 수상했다.

배그웰은 타격 뿐만 아니라 주루 플레이에서도 센스가 뛰어나서 30홈런-30도루 시즌도 2번이나 만들어냈다. 게다가 배그웰의 젊은 시절 타격 성적은 투수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했던 폐쇄식 지붕의 애스트로돔 시절에 기록한 성적이었다.

당시 애스트로스에는 리드오프 비지오가 있었고, 배그웰과 데릭 벨까지 합해서 이들을 '킬러 B' 1기로 불렀다. 이후 애스트로스는 비지오와 배그웰 등을 위하여 오른손 타자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개폐형 돔 구장 미닛 메이드 파크를 새로 짓기도 했다. 비지오가 역대 리드오프 홈런이 가장 많았던 이유 중 하나는 이 경기장 덕분이었다.

미닛 메이드 파크 시대가 열린 뒤 비지오와 배그웰 그리고 랜스 버크먼(은퇴), 카를로스 벨트란(2017 휴스턴 애스트로스 복귀) 등과 함께 '킬러 B' 2기를 구축했다. 이 4명의 활약으로 애스트로스는 2004년 창단 이래 최초로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까지 진출했다.

배그웰은 특유의 타격 자세로 순간적인 힘을 극대화했다. 이 때문에 애스트로돔 시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30홈런 시즌이 9번(40홈런 시즌 3번)이나 있었을 만큼 장타력이 뛰어났다. 그러나 이렇게 특이한 타격 자세 때문에 결국 2005년 어깨 부상에 시달리며 시즌의 대부분을 결장하게 됐다.

그래도 배그웰은 2005년 시즌 막판에 복귀하여 팀의 창단 첫 월드 시리즈에 대타로라도 출전했다. 그러나 어깨 부상이 낫지 못했고, 결국 배그웰은 2006년에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한 뒤 은퇴식도 없이 조용히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애스트로스 역대 홈런 및 타점 1위(449홈런 1529타점 202도루)는 지금까지도 배그웰의 몫이다.

이후 배그웰은 절친한 동료 비지오와 함께 팀의 영구결번 선수가 됐다. 배그웰의 5번과 비지오의 7번은 나란이 영구결번 처리되어 다른 선수들이 사용할 수 없다. 이후 비지오는 3번 만에 명예의 전당에 들어갔는데, 배그웰은 이번에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기까지 무려 7번의 투표를 겪어야 했다.

사실 비지오와 배그웰은 비슷한 시기에 배리 본즈(외야수, 5수)와 로저 클레멘스(선발투수, 5수) 등이 후보에 들어오면서 득표율에서 손해를 봤던 사례다. 약물 의혹이 있는 선수가 후보에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로 백지 투표를 제출하거나 최대 10명까지 투표할 수 있는데도 10명을 다 선택하지는 않는 기자들도 있었다.

어쨌든 애스트로스의 킬러 B를 이끌었던 비지오와 배그웰은 명예의 전당에서 다시 만나게 됐다. 공교롭게 배그웰이 내셔널리그 MVP를 받았던 1994년 아메리칸리그 MVP를 받았던 프랭크 토마스(지명타자)는 배그웰과 태어난 날이 같으며, 비지오와 함께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면서 배그웰도 다시 만나게 됐다.

입후보 첫 해에 입성 성공한 명포수, 이반 로드리게스

1971년 11월 27일 푸에르토리코 태생인 포수 이반 로드리게스는 지난 해 투표에서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공격형 포수 마이크 피아자와 다르게 공격과 수비 능력을 모두 겸비한 포수였다. 선수들 중에 로드리게스가 워낙 많아 이름을 따 'I-Rod'라 불리기도 했지만, 그는 "퍼지"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불렸다.

동시대에 뛰었던 포수 피아자가 장타력에서 뛰어났다면, 퍼지는 수준급 공격력과 함께 수비력까지 최고로 인정 받았던 포수(실버 슬러거 7회)였다. 1988년 텍사스 레인저스와 외국인 선수 자유계약으로 메이저리그 선수가 된 퍼지는 1991년부터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원래 투수를 희망했으나, 야구 지도자였던 아버지가 퍼지를 포수로 키웠다.

1991년에 퍼지는 88경기에 출전하며 도루 저지율 49%로 선전했다. 이후 1992년부터 10년 동안 아메리칸리그 포수 골드 글러브를 독식했으며, 올스타 게임도 고정 멤버였다. 1994년 케니 로저스의 퍼펙트 게임 당시 공을 받았던 포수는 퍼지였다.

1994년부터는 타격 능력도 더욱 발전하며 6년 동안 아메리칸리그 포수 실버 슬러거를 수상하기도 했다. 타격의 전성기를 달리던 중 1996년에는 처음으로 한 경기 2홈런을 날렸는데, 그 때 상대 투수는 로저 클레멘스였다.

1999년 퍼지는 보통 하위 타선에 포진되는 포수들과 다르게 주로 2번 타자로 활약했다. 그리고 세계 최초로 20홈런-20도루를 달성한 포수가 됐다. 퍼지 이후 세계에서 2번째로 20-20을 달성한 포수는 2001년 박경완(당시 SK 와이번스)이었고, 이 둘을 제외하면 20-20을 달성한 포수는 없다. 이러한 활약으로 퍼지는 1999년 페드로 마르티네스를 제치고 아메리칸리그 MVP를 수상했다.

그러나 퍼지는 2001년 이후 부상에 시달리며 도루 저지율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2002년 시즌이 끝나고 FA 자격을 얻었지만, 당시 레인저스는 박찬호, 라파엘 팔메이로, 알렉스 로드리게스 등 고액 연봉 선수들이 너무 많았던 탓에 퍼지와의 재계약을 포기했다.

퍼지는 2003년 플로리다 말린스(현 마이애미 말린스)로 이적했고, 포스트 시즌에서 3개의 홈런을 날리는 등 팀의 월드 챔피언 등극에 기여했다. 하지만 말린스 역시 시즌이 끝난 뒤 고액 연봉 선수들을 거의 다 처분했고, 이후 디트로이트 타이거즈로 이적하며 제 2의 포수 인생을 열었다.

이후 퍼지는 타격에서는 노쇠화를 보였지만, 본업인 포수로서의 능력은 더욱 견고해졌다. 2007년 저스틴 벌랜더의 노 히터 게임에서 공을 받는 등 여전히 정상급 투수 리드 능력을 갖고 있었던 퍼지는 2008년 여름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됐다. 그러나 양키스 선발투수였던 마이크 무시나, 앤디 페티트 등과의 호흡이 맞지 않아 시즌이 끝난 뒤 방출됐다.

이후 퍼지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출전하여 자신의 건재를 과시하면서 팀을 찾는 등 선수 생활을 계속 연장했다. 2009년부터 퍼지는 휴스턴 애스트로스, 레인저스 그리고 워싱턴 내셔널스 등을 거쳤다. 내셔널스 시절인 2010년에는 팀의 에이스 스티븐 스트라스버그의 데뷔전 공을 받아주기도 했다. 2011년까지 내셔널스에서 뛴 퍼지는 은퇴 후 레인저스 단장 특별 보좌로 일했다.

은퇴 후 레인저스에서 그의 등번호 7번이 영구결번됐다. 수비 능력이 중요시되는 포수였지만, 퍼지는 통산 0.296 타율에 311홈런 1332타점을 기록하는 등 공수 양면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여줬다. 그 결과 퍼지는 명예의 전당 입후보 첫 해에 76%을 기록, 커트 라인 75%를 한 번에 통과했다.

1% 차이로 아쉽게 떨어진 601세이브 투수 호프먼

메이저리그 최초로 600세이브를 달성했던 내셔널리그 최고의 마무리투수 트레버 호프먼은 이번이 입후보 2년차였다. 지난 해 첫 번째 투표에서 63.7%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커트 라인 75%를 맞추지 못했던 호프먼은 아쉽게 첫 해 입성의 꿈은 이루지 못했다.

사실 사이 영 상 투표에서도 그렇고,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도 아직까지 풀 타임 마무리투수가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역대 세이브 3위 리 스미스가 이번 투표에서도 그다지 높은 득표율을 기록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 이러한 추세를 말해준다.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 투수들 중 구원투수 경력이 상당한 선수들로는 호이트 윌헬름, 롤리 핑거스, 구스 고시지, 브루스 수터, 데니스 에커슬리 그리고 존 스몰츠 정도인데, 이들은 모두 선발투수 경력을 함께 갖고 있는 선수들이었다. 스몰츠는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토미 존 서저리) 재활 과정에서 3년 반을 마무리투수로 잠깐 뛰었던 것이고, 나머지 선수들은 투수 분업화 과도기 시대에 뛰었던 선수들이었다.

다만 호프먼은 재수생이었던 이번 투표에서 커트 라인에 거의 근접한 74%까지 득표율을 끌어 올렸다. 때문에 다음 투표인 2018년에는 충분히 입성할 가능성이 있다. 호프먼의 기록을 뛰어 넘어 역대 세이브 1위 기록을 세운 마리아노 리베라는 2019년 투표부터 입후보한다.

호프먼에 이은 득표율 5위는 이번에 첫 입후보했던 외야수 블라디미르 게레로였다. 2004년 아메리칸리그 MVP를 수상했던 게레로는 첫 입후보에서 71.7%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첫 투표에서 70%를 넘긴 만큼 게레로 역시 10년의 기회를 모두 소진하기 전에는 충분히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6위는 지명타자 에드가 마르티네스였다. 이번이 8번째 투표인 그는 58.6%의 득표율을 기록했는데, 앞으로 기회가 2번 밖에 남지 않아 명예의 전당 입성 여부는 불투명하다. 7위에는 선발투수 로저 클레멘스(5수, 54.1%), 8위에 외야수 배리 본즈(5수, 53.8%), 9위에 선발투수 마이크 무시나(4수, 51.8%) 그리고 10위에 선발투수 커트 실링(5수, 45%)이 이름을 올렸다.

클레멘스와 본즈의 경우는 여전히 약물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이번에 처음으로 득표율 50%를 넘기는 했지만, 남은 기회가 5번 뿐이라 가능성이 높지는 않다. 클레멘스는 사이 영 상 역대 최다 수상자(7회)였고, 본즈는 역대 홈런 1위(762개) 선수로 둘 다 약물 논란만 아니었다면 역사상 최고의 선수였다.

무시나와 실링은 리그를 대표하는 에이스들이었지만, 같은 시대에 더 뛰어난 에이스들이 많은 까닭에 사이 영 상 수상이 한 번도 없었고, 그들의 그늘에 가려진 선수였다. 무시나는 전년에 비해 득표율이 올랐지만, 실링은 최근 언행 문제로 ESPN 해설위원에서 해고되는 등 이미지 실추로 득표율이 떨어졌다.

득표율 11위에 올랐던 세이브 역대 3위 리 스미스(34.2%)는 이번에도 높은 득표를 받지 못했다. 2015년 투표 당시 이미 10년차를 넘었기 때문에 도전 기회를 예전 제도에 의하여 15번이나 받았지만, 그럴게해도 이번 투표가 마지막 기회였다. 마지막 기회에 성공한 레인스와 달리, 기자단 투표를 통해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기회를 잃은 스미스는 이후 베테랑 위원회에서 불러주길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이외에도 매니 라미레스(23.8%), 래리 워커(21.9%), 프레드 맥그리프(21.7%), 제프 켄트(16.7%), 개리 셰필드(13.3%), 빌리 와그너(10.2%) 그리고 새미 소사(8.6%) 등은 후보 자격 유지 기준인 득표율 5%를 넘겼다. 이들은 다음 해에도 입후보 자격을 유지하여 다시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5%를 넘지 못한 후보들은 내년 투표에 입후보할 자격을 잃었다. 호르헤 포사다(17표), 매글리오 오도네스(3표), 에드가 렌테리아(2표), 제이슨 배리텍(2표), 팀 웨이크필드(1표) 등이 5% 미만의 득표를 얻어 안타깝게 됐다.

나머지 후보들은 아예 0표를 받는 굴욕을 겪었다. 케이스 블레이크, 팻 버렐, 올랜도 카브레라, 마이크 카메론, J. D. 드류, 카를로스 기옌, 데릭 리, 멜빈 모라, 아서 로즈, 프레디 산체스 그리고 맷 스테어스 등은 올해 처음으로 입후보했지만 기자들로부터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했다.

후보 자격을 유지한 선수들은 2018년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다시 새로운 후보들과 경쟁하게 된다. 2018년에 처음으로 입후보하는 선수들로는 스위치 타자 치퍼 존스, 600홈런 타자 짐 토미, 스캇 롤렌, 앤드류 존스, 오마 비즈켈, 자니 데이먼 그리고 선발투수 제이미 모이어 등이다.

선수로서 최고의 영예는 오랫동안 꾸준히 선수로 활약하고, 은퇴 이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어 그 영광의 기록이 영원히 남는 것이다. 그러나 그 선택을 받는 선수는 극히 드물다. 아무리 많아도 한 해에 4명 만이 그 좁은 문을 열고 들어갔을 뿐이다. 2013년에는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선수가 한 명도 없었던 적도 있다.

이번에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수 있게 된 레인스, 배그웰, 퍼지 외에도 다른 많은 선수들이 자신의 이름을 미국 뉴욕 주 쿠퍼스타운에 있는 동판에 새기고 싶을 것이다. 다음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는 전설들이 누가 될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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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 브랜더/서양사학자/기자/작가/강사/1987.07.24, O/DKU/가톨릭 청년성서모임/지리/교통/야구분석(MLB,KBO)/산업 여러분야/각종 토론회, 전시회/글쓰기/당류/블로거/커피 1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있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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