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리그 역대 최다 홈런(443개), 최다타점(1411개) 기록을 가지고 있는 '국민타자' 이승엽(삼성 라이온즈)에게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또 하나의 위대한 기록이 있다. 바로 14시즌 연속 규정 타석 진입 기록이다. 이승엽은 일본에서 활약한 8년을 제외하면 경북고를 졸업하고 삼성에 입단한 1995년부터 올해까지 한 시즌도 빠지지 않고 규정 타석을 채우는 기염을 토했다. 그만큼 자기 관리가 철저했다는 뜻이다.

규정 타석은 매 시즌 각 팀의 경기수x3.1로 산정된다. 작년부터 KBO리그는 144경기 체제로 운영되고 있으니 정규리그의 규정타석은 446타석이다. 규정 타석에 진입했다는 것은 그 해 한 팀의 주전 선수로 활약했음을 의미한다. 이승엽처럼 14 시즌 연속으로 규정타석을 채운 선수에게는 간단한 기록일지 몰라도 어떤 선수에게는 프로 생활 내내 한 번 달성하기 어려운 기록일 수도 있다.

올해는 총 55명의 선수가 규정 타석을 채웠다. 팀 당 5.5명에 불과한 숫자로 팀 별로 9명의 선수 중에 3명 이상은 부상에 시달렸거나 포지션 경쟁에서 완벽히 승리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올해 규정 타석을 채우지 못한 선수 중에 가장 큰 아쉬움을 남긴 선수는 누구일까. 여러 선수가 있겠지만 시즌 114개의 안타와 .322의 고타율을 기록하고도 타격 랭킹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LG 트윈스의 내야수 손주인이야말로 유력 후보가 될 것이다 .

LG 이적 후 기회를 얻기 시작한 유틸리티 내야수 손주인

 LG 2루수 손주인

LG 2루수 손주인. ⓒ LG 트윈스


서울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손주인은 대구를 연고로 하는 삼성의 지명을 받아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2002년 2차 3라운드 전체 24순위. 얼핏 보면 평범해 보이는 지명 순위지만 당시 손주인은 박희수(SK와이번스), 최형우(KIA타이거즈), 장원삼(삼성) 등 훗날 KBO리그를 주름잡는 쟁쟁한 스타들보다 높은 지명 순위를 받은 유망주였다.

하지만 손주인이 명문팀 삼성에서 자리를 잡기란 쉽지 않았다. 어느 정도 프로의 맛을 알기 시작할 때 삼성 내야는 이미 박종호, 박진만, 김한수, 김재걸 같은 쟁쟁한 선배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손주인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입단 동기 조동찬이 1군 무대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손주인은 2005 시즌이 끝나고 경찰 야구단에 입대했고 2010년까지 프로무대에서 단 하나의 홈런도 치지 못한 무명 선수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손주인이 사자 유니폼을 입고 있을 때 삼성은 무려 5번(2002, 2005, 2011, 2012년)이나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2006년은 경찰청 소속이었다). 하지만 손주인은 한 번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포함되지 못했고 동료들의 우승 뒤풀이를 한 발 멀리서 지켜 볼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손주인은 2012년12월14일 트레이드를 통해 LG트윈스로 이적했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다가 다시 자신이 태어난 서울로 오게 된 것이다. 손주인은 LG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팀을 이탈한 박경수(kt위즈)의 공백을 메우며 주전 2루수로 활약, LG가 11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데 숨은 주역으로 활약했다.

2014년엔 외국인 선수 조쉬 벨의 방출로 구멍이 뚫린 3루 자리의 구명을 메웠다. 손주인은 2014년 2루수로 73경기, 3루수로 47경기에 출전하며 LG의 멀티 플레이어로서 팀에 높은 공헌을 했고 시즌 타율도 프로 입단 후 최고인 0.290을 기록했다. 그렇게 LG를 2년 연속 가을야구 무대로 이끈 손주인은 당당한 쌍둥이 군단의 주전 내야수로 등극하는 듯 했다.

타율 .322 114안타 치고도 규정 타석 미달 아쉬움 

2015 시즌 초반 주전 2루수로 활약하던 손주인은 초반 극도로 부진하면서 신인 박지규에게 주전 자리를 위협받았다. 설상가상으로 5월21일 넥센 히어로즈전에서는 조상우의 강속구에 손등을 맞아 6주간 결장하기도 했다. 여러 가지 악재가 겹친 손주인은 2015년 98경기에서 타율 0.246 60안타 14타점에 그치며 LG이적 후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올 시즌을 앞두고도 LG에서는 30대 중반을 향해 가는 손주인보다 젊은 내야수를 키워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마침 빠른 발을 가진 청소년 대표 출신의 정주현이라는 적임자도 있었다. 정주현은 2015년 상무에서 타율 0.315 20도루를 기록한 90년생의 젊은 유망주. 하지만 손주인은 프로 데뷔 후 가장 좋은 성적을 올리며 정주현과의 주전 경쟁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보였다.

시범 경기 부진으로 개막 엔트리에서도 빠졌던 손주인은 4월 말 1군에 합류해 5월 한 달 동안 0.441라는 놀라운 타율을 기록하며 모두를 놀라게 했다. 시즌 성적은 타율 0.322 114안타 2홈런 39타점. 프로 데뷔 15년 만에 처음으로 세 자리 수 안타를 기록했고 타율, 출루율, 장타율 부문에서 모두 본인의 커리어 하이 기록을 달성했다.

하지만 손주인은 이런 놀라운 기록을 세우고도 규정 타석을 채우지 못했다. 올 시즌 409타석에 들어선 손주인은 단 37타석이 부족해 규정 타석 진입에 실패했다. 시즌 초반에 개막 엔트리에 포함되지 못하면서 시즌 출발이 한 달 가량 늦어진 것이 결정적이었고 시즌 후반 팀이 치열한 순위 다툼을 벌이느라 손주인의 기록을 챙겨 줄 틈도 없었다(반면에 두산 베어스의 오재일은 시즌 막판 3번 타순에 고정되면서 간신히 규정 타석을 채웠다).

만약 손주인이 올해의 성적으로 규정 타석을 채웠다면 타율 19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올해 100안타를 넘긴 LG타자 중에서 손주인보다 좋은 타율을 기록한 선수는 박용택(0.346)밖에 없다. 올해 2루수로 110경기에 출전한 손주인은 유격수로 9경기, 3루수로 8경기, 1루수로도 2경기에 출전했다. 내야 전 포지션을 소화하면서 0.322의 타율을 기록할 수 있는 선수는 10개 구단 전체에서도 결코 흔치 않다.

손주인은 전문 대타 요원도 아니고 수비가 불안한 반쪽 짜리 선수도 아니다. 오히려 LG내야에 구멍이 생길 때마다 어떤 자리든 확실히 메워주는 보물 같은 선수다. 무엇보다 2003년부터 2012년까지 6668787667이라는 창피한 숫자를 찍었던 LG는 손주인이 합류한 2013년 이후 4년 동안 3번이나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다. LG 구단은 손주인이 팀에서 얼마나 가치 있는 선수인지 더 정확히 깨달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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