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영화 <솔로몬의 위증> 포스터.

일본영화 <솔로몬의 위증> 포스터. ⓒ 엔케이컨텐츠


미야베 미유키는 히가시노 게이노와 함께 일본 추리문학을 이끌어가는 양대 산맥과도 같은 소설가다. <모방범>, <화차>로 대표되는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들은 특히 일본 드라마와 영화의 원천으로 활용되고 있다.

히가시노 게이노가 좀 더 장르에 천착한다면, 미야베 미유키는 전형적인 사회파 미스터리물을 내놓는다. 살인사건의 심리적‧물리적 배경이 일본사회의 이면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고, 사건을 둘러싼 인물들을 통해 사회 전반을 총체적으로 반영하고자 하는 시도로 점철돼 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2001년 출간된 <모방범>이 대표작이다. 특히 이 작품은 지난 9월 일본 TV도쿄의 4시간 분량의 2부작 특집 드라마로 제작, 화제 속에 방영되기도 했다. 미야베 미유키의 날카로운 사회적인 시선이 출간 이후 15년이 지난 현재에도 유효함을 다시금 증명한 셈이다.

지난해 9월 국내 개봉한 <솔로몬의 위증> 전‧후편 역시 미야베 미유키 동명 소설 원작으로, 일본영화계에서 그 작품성을 인정받은 영화다. 잡지 <키네마 준보>가 꼽은 제89회 '키네마 준보 베스트10'의 8위로 이름을 올렸고, 제28회 닛칸 스포츠 영화대상 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 <솔로몬의 위증>이 JTBC 금토드라마로 제작, 어제(16일) 첫방송을 시작했다. 1회는 포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며 화제성을 입증했고, 1.422%(닐슨 코리아 기준)의 나쁘지 않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미야베 미유키 원작의 한국드라마를 주목하는 이유를 몇 가지 꼽아 봤다.

미야베 미유키 소설을 원적으로 한 첫 번째 한국 드라마

 드라마 <솔로몬의 위증> 공식 포스터.

드라마 <솔로몬의 위증> 공식 포스터. ⓒ JTBC


"크리스마스 밤. 한 남학생이 옥상에서 떨어져 죽는다. 경찰은 자살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학교는 서둘러 추모식을 연다. 하지만 며칠 뒤, 그가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고발장이 날아온다."

<솔로몬의 위증> 제작진이 밝힌 제작의도의 첫머리다. 그리고 여기까지가 1회의 내용이기도 하다. 정국고 3학년 이소우(서영주 분)가 죽었다. 권력층의 자제인 최우혁(백철민 분)과 거창하게 싸운 뒤 2주 후였다. 배준영(서지훈 분)과 고서연(김현수 분)이 학교 풀 숲 눈밭에서 이소우의 시체를 발견했고, 그 죽음은 진상이 규명되기도 전 빠르게 자살로 처리됐다.

물론 형사도 붙고, 향후 언론도 취재에 나선다. 하지만, 사건을 담당하게 된 오형사(심이영 분)는 우혁의 아버지 최사장(최준용 본)과 정국재단 법무팀장 한경문(조재현 분)의 훼방으로 진실에 접근하지 못한다.

이를 지켜보는 관찰자가 바로 고서연이다. 그렇게 자살로 처리된 죽음이 잊히기 전, 고서연과 전국고 교장(유하복 분) 앞으로 고발장이 당도한다. 이소우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 최우혁에게 살해당했다는 내용의 고발장이.

우선 곁눈질 주지 않고 빠르게 사건을 정리한 1회는 군더더기 없이 전개됐다. 이소우의 싸움 직후 스산한 기운이 시청자들을 엄습하기도 전에 고등학생의 난데없는 죽음이란 중심 사건이 던져졌다. 딱히 자극적인 화면이나 전개도 없었다.

대신 학생들과 학교 선생님들의 반응이 이어졌고, 향후 사회 전반과 인간 군상들을 대변할 경찰과 언론, 학부모들의 면면을 소개했다. 이러한 반응들의 피드백을 전달하는 매개자는 물론 주인공 고서연이다.

그리고 1회의 말미, 자살이 아닌 타살이라는 반전으로 기능한 고발장은 이 미스터리 드라마의 첫 회를 열어젖히는 근사한 출입문과도 같았다. 무엇보다 1회보다 2회를 기대케 한다는 점에서 <솔로몬의 위증>의 첫 회는 나무랄 데가 없었다. 미야베 미유키가 이미 촘촘하게 축조한 극의 구조를 아는 시청자라면 더더욱 기대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출발이기도 했다.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아이들의 선언과 '세월호 7시간'

 드라마 <솔로몬의 위증> 포스터.

드라마 <솔로몬의 위증> 포스터. ⓒ JTBC


"학교, 경찰, 언론 등 어른들이 각자의 이익과 입장을 위해 싸우는 동안 방화, 교통사고, 폭행 등의 사건들이 일어나며 많은 아이들이 상처 입는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보호와 도움을 기다렸지만, 누구 하나 '왜?'에 대한 해답을 주지 않은 채 사건은 혼란에 빠지고 파국으로 치닫는다.

이에 곧 고3이 될 아이들이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겠다' 선언하며, 문제해결보다는 골치 아픈 일은 일단 외면하고 덮는데 급급한 학교에게, 진실을 은폐하려는 어른들에게, 교내 재판이란 이름으로 선전포고를 날린다."

<솔로몬의 위증>을 주목하는 이유는 사실 여기에 있다. 미야베 미유키가 2002년부터 2011년까지 9년 여에 걸쳐 연재로 써내려간 이 작품이 2016년 대한민국의 시청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일본 원작 소설의 드라마화를 넘어 <솔로몬의 위증>이 스스로 입증해내야 할 과제이기도 할 터.

'가만히 있지 않겠다' 선언이나 진실을 은폐하려는 어른들에 대한 선전포고라는 제작의도는 문장 자체만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니까 <솔로몬의 위증>의 주인공들이 바로 '세월호 세대'의 아이들이라는 점 말이다. 친구의 의문스러운 죽음 앞에 진실을 은폐하려는 어른들에게 맞서 분연히 일어난다는 소설 속 주인공들의 싸움은 지금, 여기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의 모습에 대입시켜도 좋을 듯하다.

또래 친구들이 진도 앞바다에 수장됐던 그 '세월호 7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대통령을 단죄하기 위해 오늘도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있는 중고등학생들의 얼굴이 <솔로몬의 위증> 속 주인공들과 겹쳐지는 것이다. 이와 관련, 강일수 감독은 지난 6일 열린 제작 발표회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관련기사 : <도깨비> 만난 미야베 미유키...결과는? )

"원작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세월호 참사가 터지고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중략) 드라마를 기획할 때까지만 해도 아이들이 모의재판을 통해 문제의 진실을 찾아간다는 이야기가 설득력이 있을까 생각했는데 지금 실제 학생들이 광장으로 나가고 있지 않나. 원작자가 하고자 했던 이야기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지 않나 싶었다."

'위증'하는 어른들에 맞서는 아이들의 교내재판

 JTBC 금토드라마 <솔로몬의 위증>의 배우 백철민, 서영주, 장동윤, 강일수 감독, 배우 조재현, 김현수, 서지훈, 솔빈(왼쪽부터). JTBC <솔로몬의 위증>은 미스터리의 여왕 미야베 미유키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하는 작품으로 친구의 추락사에 얽힌 비밀과 진실을 찾기 위해 나선 학생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JTBC 금토드라마 <솔로몬의 위증>의 배우 백철민, 서영주, 장동윤, 강일수 감독, 배우 조재현, 김현수, 서지훈, 솔빈(왼쪽부터). JTBC <솔로몬의 위증>은 미스터리의 여왕 미야베 미유키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하는 작품으로 친구의 추락사에 얽힌 비밀과 진실을 찾기 위해 나선 학생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 JTBC


반면 <솔로몬의 위증>이 가리키는 '위증'하는 어른들은 지금, 여기 한국사회에서 맨얼굴을 드러내는 중이다. 전국에 생중계됐던 국회 청문회에서 "모릅니다"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를 넘어 '위증'까지 서슴지 않는 어른들의 범죄상을 우리 청소년들도 똑똑히 봤지 않겠는가.

<솔로몬의 위증> 속 위증은 공정한 입장에서 서야 할 '어른들'이 위증을 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소설 속 고등학생들은 '교내 재판'이란 형식을 빌어 그 어른들의 범죄 상을 낱낱이 까발리게 된다. 이 역시 '19세 이하 투표권' 운동을 함께 전개해 나가는 우리 학생들의 현재와도 겹쳐지는 모습이라 할 만 하다. 경쟁에 내몰린 10대들의 자화상이란 기본 전제는 그야말로 기본이이고.

또 드라마 내적으로,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은 사건의 진상이 하나 둘 드러나는 미스터리 구조 속에 재판 형식을 도입함으로서 추리물과 법정극을 잘 버무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마도 JTBC판 <솔로몬의 위증>은 4시간짜리 영화가 다 담아내지 못했던 소설의 세세한 디테일들을 드라마라는 긴 방영 시간 속에 효과적으로 풀어낼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더욱이 조재현을 비롯해 안내상, 김여진, 신은정, 허정도, 심이영 등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들과 김소현, 서영주, 장동윤, 서신애 등 젊은 배우들의 참여 역시 <솔로몬의 위증>을 기대케 하는 또 다른 축이다. 

확실히, <솔로몬의 위증>은 작품 내외적으로 모두 이목을 끌만한 요소들을 탑재하며 출발했다. 베일을 벗은 1회의 완성도도 만족할 만한 수준이었다. <솔로몬의 위증>이 JTBC 드라마의 외연을 확장하는 완성도를 갖춘 드라마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을지, 장르적인 요소와 사회파 드라마로서의 정체성을 어떻게 조화시키는 지켜보도록 하자.

솔로몬의위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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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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