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국내에서 유행했던 '인생극장'이라는 인기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한 주인공이 선택의 기로에서 어떤 판단을 내리느냐에 따라 인생의 전혀 두 갈래 행보를 걷게 된다는 설정이었다. 

케빈 듀란트(GSW)와 러셀 웨스트브룩(OKC)의 엇갈린 행보를 보면 동일한 선택의 기로에서 다른 결정을 내린 두 인물의 인생극장을 보는 듯 하다. 두 선수는 지난 시즌까지 NBA(미 프로농구)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원투펀치로 팀을 이끌었던 동료였다.

하지만 올 시즌 두 선수의 행보는 극과 극으로 갈라졌다. 듀란트는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로 전격 이적하며 팬들에게 충격을 줬다. 지난 시즌 정규리그 MVP 스테판 커리를 비롯하여 클레이 톰슨-드레이먼드 그린 등 올스타 선수들이 버티고 있는 골든스테이트는 2014-2015시즌 NBA 우승, 2015-2016시즌 정규시즌 최다 73승 등을 기록한 리그의 강호이자 지난 서부컨퍼런스 파이널에서는 듀란트의 OKC에게 뼈아픈 7차전 패배를 안겨준 지구 라이벌이기도 했다. 듀란트의 합류로 골든스테이트는 더욱 막강한 전력을 구축한 '슈퍼팀'으로 거듭났다.

자존심 버린 듀란트?

하지만 우승에 굶주린 듀란트가 다른  팀도 아니고 자신을 패배시킨 라이벌팀으로 이적한 것을 두고 자존심을 버렸다는 곱지않은 시선이 쏟아졌다. 과거 라이벌 르브론 제임스(클리블랜드)가 마이애미 히트로 이적하며 드웨인 웨이드(시카고)-크리스 보쉬 등과 슈퍼팀을 처음 결성했을 당시만 해도, 듀란트가 이를 부정적으로 평가했던 젼력도 있어 '말바꾸기' 논란도 벌어졌다.

NBA의 전설적인 명슈터이자 인디애나 페이서스의 '원클럽맨'으로도 유명한 레지 밀러는 듀란트를 두고 "왕은 왕국을 버리지 않는다. 듀란트는 싸구려 우승반지를 위하여 자신의 왕국을 버렸다"며 일침을 날리기도 했다. 밀러는 NBA에서 18시즌을 뛰며 우승과는 끝내 인연이 없었지만 수많은 이적 유혹에도 끝내 '스몰마켓'인 인디애나를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로 남은 케이스다.

반면 웨스트브룩은 오클라호마를 떠날 것이라는 예상이 더 많았으나 오히려 팀 잔류를 선택하며 듀란트의 행보와 대조를 이뤘다. 이로서 웨스트브룩은 명실상부한 오클라호마의 1옵션 에이스이자 새로운 '왕'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했다. 골든스테이트에서 또 하나의 슈퍼팀을 결성한 듀란트와는 이제 어제의 동지에서 오늘의 적으로 바뀌면서 관게가 어색해졌다.

다른 길을 가게 된 두 선수는 이제 각자의 팀에서 자신이 선택한 길에 따라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듀란트가 가세한 골든스테이트는 올 시즌도 18승 3패, 8할5푼7리의 가공할 승률을 기록하며 NBA 전체 승률 1위를 질주하고 있다. 경기당 평균 득점이 무려 120.2점으로 1위에 오르며 그야말로 화끈한 공격농구를 보여주고 있다.

골든스테이트는 개막전에서 라이벌 샌안토니오에게 대패하며 다소 불안하게 출발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주축 선수들의 손발이 맞아가며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특히 듀란트 이적 이후 웨스트브룩과의 첫 맞대결이었던 지난 11월 4일 경기에서는 듀란트가 친정팀 OKC를 상대로 무려 39점을 맹폭하며 완승을 이끌기도 했다.

심지어 듀란트는 이적생임에도 지난 시즌 득점왕이자 MVP인 커리를 제치고 단숨에 팀의 1옵션 자리를 꿰찼다. 마이애미로 이적하자마자 프랜차이즈스타였던 웨이드를 밀어내고 에이스 자리를 차지한 르브론 제임스의 행보와도 유사하다.

다만 아무래도 개인 기록 면에서는 손해를 보는 측면이 있다. 커리-톰슨 등 쟁쟁한 득점원들과 슈팅 기회를 분담해야 하는 듀란트는 경기당 평균 27점(지난해 28.2점)으로 득점 부문 6위를 기록 중이다. 지난 시즌 득점왕 커리 역시 26.2점(지난 시즌 30.1점)으로 7위에 올라있다. 여전히 듀란트가 기존 우승팀에 무임승차했다는 세간의 부정적인 평가와 비아냥은 끊이지 않고 있다.

고독한 원맨쇼 벌이는 웨스트브룩

한편 웨스트브룩은 그야말로 진정 '고독한 원맨쇼'가 무엇인지를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올해 웨스트브룩의 기록은 현재까지 22경기에서  31점 11.3어시스트 10.9리바운드로 놀랍게도 시즌 평균이 '트리플더블'(득점-리바운드 등 농구 기록에서 3개 부문에 두 자릿수를 넘기는 것)이다. 웨스트브룩은 올시즌 출전한 경기의 절반인 11경기에서 벌써 트리플더블을 작성했다. 득점과 어시스트는 전체 2위, 포인트가드임에도 빅맨의 전유물인 리바운드까지 9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웨스트브룩은 지난 11월 26일 덴버전부터 6일 애틀란타전까지는 무려 6경기 연속 트리플더블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하기도 했다. 오는 10일 열리는 휴스턴과의 경기에서도 트리플더블 행진을 이어간다면 1989년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이 세운 7경기 연속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다.

웨스트브룩은 커리어 통산 48회의 트리플더블로 역대 6위에 올라있으며 만일 시즌 트리플더블까지 달성한다면 1961-1962 시즌 오스카 로버트슨(30.8득점, 12.5리바운드, 11.4어시스트) 이후 역대 2번째이자 무려 55년만의 대기록을 달성할 수도 있다. 현대농구에서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만화 같은 기록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팀성적도 듀란트의 이적으로 전력 약화에 대한 우려와 달리 오클라호마는 14승 8패로 서부 5위이자 북서부지구 1위에 오르며 선방하고 있다. 특히 웨스트브룩이 트리플더블을 달성한 11경기에서 오클라호마는 무려 9승 2패를 기록 중이다.

하지만 웨스트브룩이 시즌 끝까지 초인적인 활약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는 평가가 엇갈린다. 그만큼 득점과 패싱, 리바운드까지 웨스트브룩에 대한 의존도가 과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웨스트브룩이 개인 기록에 집착하여 경기흐름을 망치는 경우도 종종 나오고 있어서 양날의 검으로 지목되고 있다.

우수한 팀동료들을 만나 쉽게 플레이를 풀어나가는 듀란트와는 비교되는 대목이다. 여전히 우승1순위인 골든스테이트와 달리 NBA 전문가들은 웨스트브룩의 오클라호마가 플레이오프 가능하더라도 우승까지는 힘든 전력이라고 냉정하게 평가한다.

'강력한 우군을 만나 우승 반지에 가까워진' 듀란트와 '자신만의 왕국에서 대기록에 도전하는' 웨스트브룩, 과연 누가 더 행복한 선수라고 할 수 있을까. 인생의 분기점에서 서로  다른 선택지를 고른 두 선수의 행보가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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