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호평 속에 종영한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아래 <이아바>) 속 정수연(송지효 분)은 고달프다. 혼자 아무리 노력해도 잘하면 본전, 못하면 비난이 쏟아진다. 힘들다고 말하면 남편 도현우(이선균 분)는 "나도 힘들다"며 아내가 하는 일이 남들도 다 하는 일인데 유난스럽게 군다는 반응을 보이기 일쑤다. 결국 바람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아내의 배경에는 채워지지 않은 욕구가 있다.

물론 외도를 옹호할 수는 없다. 어떤 이유로든 외도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이아바> 역시 초반에는 아내의 외도로 인해 고통받는 남편의 모습을 조명한다. 다만 그 남편이 아내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에서 보이는 워킹맘의 고통은 지독히도 현실적이다.

<이아바> 속 '워킹맘'의 현실... 시청자를 끌어들이다


한국 가정에서 아내와 남편의 역할은 아직도 공평하기가 어렵다. 경제적인 이유로 여자도 일해야만 하는 상황임에도 집안일의 무게는 여성에게 편중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21세기가 됐지만 여자가 가사와 육아를 더 많이 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진 남성중심적인 사고방식이 남아있는 것이다. 결국 지수연은 별거로 인해 회사에서 불이익까지 받는다. 가정사를 일에 결부시키는 회사의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것이 한국 사회에서 여성을 바라보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가정도 일도 완벽하게 처리하기를 바라는 사회적인 시선 속에서 지수연은 끊임없이 위기에 처한다.

<이아바> 속 도현우 역시 아내의 외도가 아니었다면 그런 지점들을 깨달을 계기를 만들어 내지 못했을 것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더 많이 참고 인내해야 한다는 것. 또 집안일을 '같이 하는' 것이 아니라 '도와주는' 것이라 여기는 남성 중심 사고. 이 모든 것들이 공감 가게 그려지며 <이아바>의 이야기에 시청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극 중 권보영(보아 분)의 말처럼, 누군가는 "물잔을 넘치게 하는 한 방울만 막아주길" 간절히 바랐는지도 모른다. "잘했다, 그동안 애 많이 썼다 이 한마디만 해줬어도 좀 더 있는 힘껏 버티지 않았을까"라는 대사는 그래서 뼈아프게 와 닿을 수밖에 없다.

장르는 스릴러, 그 안의 고통은 '현실적'


11월 30일 개봉해 박스오피스 2위로 출발한 영화 <미씽: 사라진 여자> (아래 <미씽>) 역시 워킹맘의 비애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작품은 스릴러로 미스터리하게 흐르지만 그 안에서 보이는 워킹맘의 고통은 현실적이다. 자신의 아이를 양육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지만, 현실에서 '육아'는 뒷전으로 밀리기 마련이다. 아이가 엄마의 손길을 필요로 하지 않는 성인이 되기까지 20년 정도가 걸리고, 그나마 아이 혼자서 집을 볼 수 있는 나이까지 기다린다고 해도 10년 정도는 기다려야 한다. 1년도 채 안 되어 독립적인 모습을 갖추는 일반적인 동물에 비해 '사회적인 동물'인 인간의 교육 기간은 그만큼 길다.

부모의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를 외면해야 하는 현실은 잔혹하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특히나 워킹맘에 싱글맘인 지선(엄지원 분)은 그 현실이 더욱 암담하기만 하다. 결국 누군가 도와줄 사람을 구해야 한다. 그 사람이 믿을만한 사람인지, 내 아이를 어떻게 취급하는지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 그래도 누군가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다.

아이를 데리고 사라진 여자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지는 지선. 그의 반응은 어쩌면 단순히 모성애 때문은 아니다. 미친 듯이 아이를 찾아다니며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지선의 행동 속에는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있다. 워킹맘으로서 돈을 벌고 아이를 돌봐줄 사람을 구하고 자신도 아이를 돌보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한 사람이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은 이 모든 노력들은 아이가 실종되면서 물거품이 된다. 지선은 잘못한 것이 없지만 누구보다 고통받아야 하고 누구보다 힘겨운 싸움을 해 나가야 하는 운명에 처한다.


워킹맘이 대중문화 소재가 된 이유는 워킹맘이 늘어나서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그들에 주어진 삶의 무게가 가벼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이들에게 커리어와 가정을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사회적인 시스템이 갖추어졌다면 그들의 처지를 관객들이 공감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여전히 그들이 안아야 하는 부담감은 개인의 영역이다.

회사는 임신과 출산에 관대하지 않고, '칼퇴근'은 어불성설이다.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시설이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충분하지 않고 확실한 신뢰를 보내기도 어렵다. 생떼같은 아이들을 떼놓고 일을 해야 하지만, 아이도 제대로 돌봐야 하는 의무감이 워킹맘들을 괴롭힌다. 일하는 남자들 역시 불합리한 구조를 짊어지는 부당함 속에 살아간다. 하지만, '임신하는 주체'라는 이유만으로 엄마들이 가정을 떠맡는, 구조적 불합리함은 더욱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결혼은 하되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딩크족(DINK族)이 늘어나는 것, 출산율을 최저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 역시 삶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그 고단한 삶을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거니와 그 이전에 아이를 키울만한 물질적, 심적인 여유도 부족하다. 그런 상황 속에서 '워킹맘'은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되는 매개체로서 대중문화 속을 파고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