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의 계절이다. 지난 10월 말 소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우리 사회를 강타한 이후, 현재 인터넷은 그들에 대한 온갖 패러디와 풍자들이 넘쳐나고 있다. 머리가 텅 빈 박대통령과 대통령 뒤에서 모든 걸 결정하는 실세 최순실, 그리고 그런 엄마를 배경으로 안하무인인 최순실의 딸 정유라까지.

예전 같았으면 많은 이들이 정부에게 꼬투리를 잡혀 국정원으로부터 조사를 받거나 혹은 벌금이라도 내지 않을까 엄두도 내지 못했겠지만 이젠 주저함도 없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한 자리수로 떨어진 지금, 더 이상 정부의 눈치를 볼 국민은 없기 때문이다.

 <개그콘서트>의 최순실

<개그콘서트>의 최순실 ⓒ KBS


지난주 방송은 이와 같은 사회 분위기를 알려주는 지표였다. 지난주 KBS의 <개그콘서트>와 tvN의 <SNL코리아 시즌8>이 본격적으로 최순실 패러디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시사IN>에서 촬영한, 스마트폰을 쥐고 흰 테두리의 선글라스를 착용한 최순실 씨의 사진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가 그녀에게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투사시켰다. 강남의 돈 많고 탐욕스럽고 무식하며 안하무인인 아줌마 최순실이 드디어 우리 눈앞에 잡을 수 있는 존재로 다가왔다.

물론 KBS와 tvN이 여기까지 오는데도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KBS는 말이 공영방송이지 아직까지 정부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있는 중이며, tvN의 CJ는 이전에 박근혜 후보를 패러디하고 그들의 구미에 맞지 않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간부가 퇴진하는 등 정부에게 핍박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번 같은 수준의 패러디를 만드는 것만 해도 꽤 큰 결단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방송 이후 네티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나도 그랬지만 오랜만에 TV를 통해 접하는 풍자에 많은 이들이 환호했다. 사람들은 이 어지러운 시국에 그렇게라도 잠시 웃을 수 있었기에 잠깐이나마 통쾌해했으며, 콩트를 만든 사람들의 노고와 용기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SNL>의 최순실

의 최순실 ⓒ tvN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TV 프로그램이 끝난 후 내가 느끼는 감정은 더 이상 통쾌함이 아니라 찝찝함이었다. 며칠 전만 하더라도 대통령을 등에 업고 최고의 실세를 누리던 최순실이 그렇게 조롱의 대상이 되었으니 후련할 만도 하거만 가슴 한 편이 답답한 건 매한가지였다.

무엇 때문일까? 왜 그 풍자들을 보면서 마냥 웃지 못할까? 그것은 바로 풍자의 칼날이 겨냥하는 방향 때문이었다.

최순실은 힘을 잃었다

풍자는 기본적으로 약자의 언어이다. 그것은 도덕적 명분과 정당성을 잃지 않은 약자가 강자 앞에서 취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로서, 권력자의 힘이 강할수록 그 영향력이 커지기 마련이다. 권력자에게는 소유한 힘만큼 자신을 향한 풍자를 견뎌낼 수 있는 아량이 요구되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풍자는 항상 강자를 그 대상으로 해야 한다. 어설픈 상대를 대상으로 풍자를 하게 되면 그것은 풍자가 아닌 비하일 뿐이다. 약자는 풍자로써 강자가 불편해할 만큼 그 치부를 찔러야 하며, 이를 통해 현실을 상기시켜야 한다. 만약 현 정부처럼 스스로에 대한 풍자 자체를 말살시키려 한다면 그것은 그들 스스로가 파쇼임을 자임하는 꼴이다.

그런데 현재 풍자의 대상이 되고 있는 최순실을 보자. 그녀는 더 이상 예전의 최순실이 아니다. 대통령 뒤에 숨어서 대통령을 마음대로 할 때야 최고 권력이었는지 몰라도 대통령과의 비정상적인 관계가 만천하에 드러난 지금, 그녀는 끈 떨어진 연에 불과하다. 아직까지 국정 곳곳에 그녀의 세력들이 암약하고 있겠지만 이들 역시 이번 사태가 정리되고 나면 청산될 가능성이 높다. 최순실의 힘은 사람들이 그녀를 모를 때에만 성립한다.

힘을 잃은 최순실 이제 더 이상 두려움의 존재가 아니다

▲ 힘을 잃은 최순실 이제 더 이상 두려움의 존재가 아니다 ⓒ 유성호


결국 방송에서 최순실 패러디를 보고난 뒤 내가 느꼈던 허망함은 풍자의 대상인 최순실의 현재 상태와 관련이 깊다. 최순실은 지금까지 대통령의 이름으로 전횡을 일삼았던 만큼 조롱과 혐오의 대상이 될 수는 있겠으나, 더 이상 풍자의 대상은 될 수 없다. 그녀는 이제 막강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요컨대 힘을 잃은 최순실에 대한 패러디는 풍자, 기개를 잃지 않은 약자의 당당한 저항이 아니다. 그것은 더 이상 재기할 수 없는 몰락한 강자에 대한 조금은 비겁한 복수극에 가까울 뿐이다.

풍자의 대상을 다시 상정하라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정국에 있어서 무엇을 풍자해야 하는 것일까? 풍자의 칼날을 과연 누구에게로 돌려야 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현 사태가 왜 벌어졌는지부터 자문해야 한다. 결국 풍자의 대상은 현 사태를 만들어낸 주체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는 표면적으로야 최순실과 그 일가가 박근혜 대통령 옆에서 국정을 농단한 사건이다. 박대통령은 40년 된 인연을 바탕으로 최씨 일가에게 모든 걸 의지했고, 그들은 이 같은 대통령의 신뢰를 기반으로 말도 안 되는 전횡을 벌였다. 이전 MB정부와 마찬가지로 국가를 사적인 수익모델로 삼았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더욱 중요한 것은 그런 깜냥도 되지 않는 박근혜 대통령을 누군가가 그 자리까지 끌어올렸다는 사실이며, 정작 그들은 이번 사태에 대해 별다른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최순실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다고 발뺌하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지만, 그들 역시 대통령을 허수하비처럼 세워놓고 자신들의 사익을 챙기느라 바빴다. 바로 새누리당과 보수언론, 재벌 등이 그들이다.

고개숙인 새누리당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와 정진석 원내대표 등 의원들이 4일 오후 국회 로텐더홀 앞 계단에서 최순실 국정개입 파문과 관련, 사죄의 뜻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

▲ 고개숙인 새누리당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와 정진석 원내대표 등 의원들이 4일 오후 국회 로텐더홀 앞 계단에서 최순실 국정개입 파문과 관련, 사죄의 뜻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 ⓒ 남소연


과연 그 오랜 시간을 함께 했던 새누리당 의원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능력을 몰랐을까? 여야를 막론하고 막강한 정보를 가지고 자신의 이익을 고수해왔던 보수 언론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배후를 몰랐을까? 최순실 딸 정유라에게 말도 안 되는 지원금을 보내왔던 재벌들이 박근혜와 최씨 일가의 관계를 몰랐을까?

이들이 비록 지금이야 최순실과의 관계 때문에 국민들의 눈치를 보며 바짝 엎드려 있는 듯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이다. 이들이야말로 이 사회의 메인 스트림으로서 아직도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으며, 여차하면 여론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우리가 풍자해야 할 대상은 바로 이들이다. 신랄한 풍자를 통해 그들이 이 사회의 강자임을 다시금 인식시켜야 하며, 이들에 대한 패러디로 이들에 대한 두려움을 동시에 극복해 나가야 한다. 결국 공포를 이기는 것은 명랑함과 웃음이기 때문이다.

최순실 패러디? 그것으로 환호작약할 시간은 이미 지났다. 이미 힘을 잃은 최순실을 풍자한다고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최순실을 이제야 알게 된 대중의 자기위안일 뿐이며, 만만한 누군가에게 화풀이하고 싶은 행태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한 풍자란 지금 당장 우리를 규정하고 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

이제 주말이다. 아마도 위에 언급한 방송들은 또 다시 수많은 패러디들을 양산하며 네티즌들의 이목을 끌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해두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풍자는 지금 대한민국을 말도 안 되게 위태롭게 만들어낸 이들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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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지금은 비록 회사에 몸이 묶여 있지만 언제가는 꼭 공부를 하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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