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문화콘텐츠가 외국으로 나가거나 외국의 것이 한국에서 새로이 만들어지는 현상은 드문 일이 아니다. 특히 영화는 콘텐츠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분야이다. 한국 영화가 빌린 원본 중에 상당한 출처는 일본이 제공한다. 소설(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남쪽으로 튀어>와 영화 <남쪽으로 튀어>), 영화(<샤란큐의 엔카의 꽃길>과 <복면달호>), 드라마(일본 드라마 <101번째 프러포즈>와 영화 <101번째 프러포즈>), 만화(만화 <올드보이>와 영화 <올드보이>) 등 일본의 다양한 문화콘텐츠가 한국 영화로 재탄생되었다.

리메이크에 강한 제작사와 감독, <럭키> 만들다

 <럭키> 한 장면

<럭키> 한 장면 ⓒ 쇼박스


작품성과 인기를 발판으로 삼았기에 장미빛 미래를 보장해 줄 것만 같았지만,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은 일부에 불과하다. 대다수는 원작에 안주하거나 단순한 모사를 보여주며 아쉬움을 남겼다.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화차>를 원전으로 삼았던 영화 <화차>의 연출자인 변영주 감독은 "훌륭한 소설을 영화로 만드는 건 감독에겐 독이 든 성배를 마시는 것과 다름없다"고 토로했을 정도로 재해석의 작업은 어렵다.

<럭키>는 일본 영화 <열쇠 도둑의 방법>을 리메이크했다. <럭키>를 제작한 용필름의 임승용 대표와 메가폰을 잡은 이계벽 감독은 '리메이크'에 일가견이 있다. 용필름은 프랑스 영화 <포인트 블랭크>를 류승룡 배우를 앞세운 <표적>으로 만들었고, 광고 영상을 기초로 삼아 <뷰티 인사이드>를 만든 전력이 있다. 사라 워터스의 소설 <핑거 스미스>를 <아가씨>로 만들기도 했다. 가히 용필름은 리메이크의 명가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이계벽 감독은 <열쇠 도둑의 방법>의 우치다 켄지 감독과 인연이 깊다. 그가 시나리오를 맡았던 <커플즈>는 우치다 켄지 감독의 <내 마음의 이방인>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남쪽으로 튀어>의 각본에 참여하고, 데뷔작 <야수와 미녀>가 유럽의 전래 동화 <미녀와 야수>를 바탕으로 삼았던 사실을 본다면 이계벽 감독이 원본의 '재해석'에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다. <럭키>는 리메이크에 능한 제작사와 감독이 힘을 합친 셈이다.

리메이크는 날로 먹는다?... "전혀 그렇지 않다"

<럭키> 영화의 한 장면

▲ <럭키> 영화의 한 장면 ⓒ 쇼박스


임승용 대표는 <조이뉴스24>와 가진 인터뷰에서 "소설이나 영화 등 원작이 있을 때 작업하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그대로는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원작을 가지고 영화를 하면 '날로 먹는' 줄 알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고 강조했다. 임승용 대표의 리메이크에 대한 시각은 <럭키>에도 적용된다.

킬러 콘도(카가와 테루유키 분)가 사건을 처리한 후에 우연히 들른 목욕탕에서 비누를 밟고 넘어지며 기억을 잃게 되고, 삶의 희망을 상실한 무명배우 사쿠라이 타케시(사카이 마사토 분)가 자신과 킬러의 목욕탕 열쇠를 바꾸면서 벌어진다는 <열쇠 도둑의 방법>의 기본적인 설정은 <럭키>에서 킬러 형욱(유해진 분)과 무명배우 재성(이준 분)으로 유효하다. 목욕탕 장면은 원작에 바치는 존경의 의미로 똑같이 연출했다고 한다.

이후 <럭키>는 <열쇠 도둑의 방법>이 설정했던 서사의 궤도를 완전히 이탈한다. <열쇠 도둑의 방법>에선 여자 주인공이 잡지 편집장 미즈시마 카나에(히로스에 료코 분) 한 명이었지만, <럭키>는 구급대원 리나(조윤희 분)로 바뀌었다. 킬러의 목표물이 된 여성은 비중이 늘어난 정체불명의 인물인 은주(임지연 분)로 탈바꿈되었다. 그에 맞추어 이야기의 방향도 바뀌었다.

<열쇠 도둑의 방법>이 킬러, 무명배우, 여성에게 골고루 조명한다면, <럭키>는 유해진 배우가 연기한 킬러를 중심으로 판을 짠다. 이것은 오프닝 시퀀스부터 드러난다. <열쇠 도둑의 방법>은 갑작스레 결혼 발표를 하는 미즈시마 카나에를 보여주며 '돌연성'을 강조한다. 반면에 함중아의 '그 사나이'를 새롭게 편곡한 노래가 흐르는 <럭키>의 오프닝은 킬러의 행동에 초점을 맞춘다. 이것은 '유해진의, 유해진에 의한, 유해진을 위한' 영화라는 선언과 다름없다.

<럭키>과 원작과 다른 지점

<럭키> 영화의 한 장면

▲ <럭키> 영화의 한 장면 ⓒ 쇼박스


이계벽 감독은 "우연한 계기로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게 되는 인물의 고뇌와 통찰은 원작 영화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부분이다. 대한민국의 현실을 관통하는 소재와 정서, 극 중 인물의 캐릭터를 100% 흡수하는 유해진 배우의 장기가 만나 더욱 새롭고 유쾌한 코미디를 선사할 수 있게 되었다. <럭키>는 이전 한국 영화에서 볼 수 없던 새로운 장르라고 생각한다. 코미디 속에 실로 여러 장르가 섞여 있다"라고 작품에 대한 의도를 밝혔다.

유해진 배우는 킬러와 무명배우를 오가며 맹활약한다. 특히 칼을 이용한 장면은 그를 유명하게 만든 <공공의 적>의 명장면을 떠올리게 하며 재미를 준다. 동시에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이란 낯선 얼굴도 신선하다. 유해진 배우의 능력에 힘입어 <럭키>는 스릴러, 코미디, 멜로, 액션 등 다양한 장르를 자유로이 넘나든다.

<럭키>는 마크 트웨인의 소설 <왕자와 거지>의 '바뀜'의 모티프에 영향을 받았다. 마크 트웨인은 상반된 신분을 빌려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했다. <왕자의 거지>의 정치적인 발언은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도 이어진 바 있다. <럭키>에는 사회의 목소리가 들어 있다. 영화는 허름한 옥탑방과 근사한 펜트하우스란 공간을 강렬하게 대비시킨다. 형욱의 부를 차지한 재성은 물질적인 풍요를 마음껏 누린다. 여기엔 '로또'로 대표되는 일확천금의 심리가 담겨 있다. 무명배우인 형욱이 TV 드라마에서 발돋움하는 대목엔 벼락 스타의 욕망이 흐르고 있다.

<럭키>는 삶이 바뀐 두 사람을 통하여 상승 욕구를 동화 같은 방식으로 강하게 실천한다. 그 속에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탈출하고 싶은 바람이 존재한다. "대한민국의 현실을 관통하는 소재"라는 이계벽 감독의 말은 이런 사회 정서에 주목한 대답이다. <열쇠 도둑의 방법>의 뼈대를 유지하되 자신만의 호흡과 결을 만든 <럭키>의 성취는 여기에 있다. <열쇠 도둑의 방법>과 <럭키>는 같으면서 분명히 다른 영화다.

<럭키> 영화 포스터

▲ <럭키> 영화 포스터 ⓒ 쇼박스



럭키 이계벽 유해진 이준 조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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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음악이 주는 기쁨과 쓸쓸함. 그 모든 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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