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까만 도로엔 오직 나뿐이었어 / 멀리서 비추는 헤드라이트 불빛이 / 내게 덤비려는 것 같아서 / 결국 난 멈춰 서네 / 어제도 오늘도 난 실패하네."

김세영의 곡 '드라이브'의 가사다. 밴드 서교그룹사운드와 더 모노톤즈에서 노래한 김세영이 지난달 1일 통기타와 하모니카를 들고 솔로 첫 EP < Deepest >로 돌아왔다. '달이 뜨기 전에', 'Deepest', '따라가면 좋겠네', '낮과 밤', '드라이브' 총 5곡을 담았다. 음악에 모든 것을 쏟은 이십 대를 지나 이제는 세상살이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다는 그가 들고 온 노래의 정서는 차고 쓸쓸한 기운이다. 지난달 30일 종로 익선동에서 그를 만났다. 이날 김세영은 다음처럼 말했다.

"우선은 곡 스타일을 제일 먼저 고민했고요, 가사는 그 이후의 문제라고 항상 생각해요. 가사를 쓸 때 이전까지의 작업보다 좀 더 솔직함에서 있어서 과감해지려고 노력했어요. 약점, 치부, 제가 가진 결핍된 부분을 드러내는 데 조금 더 거리낌이 없었던 것 같아요."

우연히 만들게 된 앨범, 나온 것 자체가 기뻐

 밴드 서교그룹사운드, 더 모노톤즈에서 노래한 김세영이 솔로 음반을 발표했다.

밴드 서교그룹사운드, 더 모노톤즈에서 노래한 김세영이 솔로 음반을 발표했다. ⓒ 김광섭


- 첫 EP < Deepest >를 발표했는데 기분이 어떤가요?
"일단 냈다는 것 자체를 기쁘게 생각을 하고 있어요. 음반이 나온 것만으로도요.(웃음)"

- 준비 기간은 어느 정도였나요?
"준비 기간은 길지는 않았어요. 지난 1월 즈음에 녹음 이야기가 오고 가서 아마 7월 쯤에 끝냈을 거예요. 실질적으로 녹음한 기간은 되게 짧은데 어떻게 녹음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을 하는 기간이 조금 있었어요."

- 수록곡은 언제 만든 노래들인가요?
"'달이 뜨기 전에'가 제일 오래된 노래인데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요. 나머지 곡들은 2년 내외로 만든 노래들이에요."

- 가사도 그 시기에 쓴 것인가요?
"네. '낮과 밤' 노래가 가장 최근에 만든 노래예요."

- 올해요?
"올해 만든 노래예요."

- 솔로 활동을 생각한 때는 언제인가요?
"음반이 나온 것만으로 기쁘다고 한 게, 사실 음반을 내야겠다는 계획이 전혀 없었거든요. 활동 자체에 대해 생각이 전혀 없었던 상황이었어요. 프로듀서를 맡아준 형에게 '포크송이 몇 개 있다' 이야기하다가 '녹음 한번 하자' 이야기가 되었죠. 어찌 보면 우연히 시작이 된 거죠."

- 만족도는 어떤가요?
"'출사표다', '솔로 활동을 해야겠다'는 마음은 아니에요.(웃음) 지금도 그런 마음은 아니고요."

- 음악 하는 친구들의 반응은?
"연락을 잘 안하고 지내서요.(웃음)"

- EP 제목을 < Deepest >로 지은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음반 이름에 대해서 되게 오랫동안 고민을 했어요. 일단 'Deepest' 곡이 있잖아요? 그 곡 제목도 제일 마지막에 지은 것이거든요. 음반 커버를 맡아준 친구에게 노래를 보내주었는데, 그 친구가 그림을 그려주면서 제목을 Deepest라고 적었더라고요. 커버 그림도 음반하고 콘셉트와 맞아야 하는데, 잘 어우러지는 것 같았어요."

- 커버 이미지가 기이한데, 디자이너에게 요구한 부분이 있나요?
"애초에는 그런 느낌은 아니었어요. 처음에 그림 그려준 친구에게 이야기했던 것은 조금 더 접근하기 쉬운 스타일이었는데, 그 친구가 음악을 듣더니 저와 상의 없이 그림을 만들어준 거예요. '내가 음악을 듣고 느낀 느낌은 이렇다, 어떠냐?' 했는데 저는 너무 마음에 들고 좋더라고요."

- 디자이너 친구는 누구인가요?
"유승보라고 밴드 '포니'에서 베이스를 치는 친구예요."

"곡의 '느낌'이 가장 중요해요"
 김세영의 EP앨범 < Deepest >의 커버

김세영의 EP앨범 < Deepest >의 커버 ⓒ 김세영


- 통기타를 들었어요. 포크 음악으로 나온 이유가 있을까요?
"음반 스타일에 있어서 프로듀서와 고민했던 부분인데요, 밴드 버전으로 편곡된 곡도 있거든요. 두 가지를 두고 초반에 어떤 스타일로 가야 할까 계속 고민을 했어요. 비교해서 들어보니 목소리와 통기타 둘만 갔을 때, 그만의 강렬한 느낌들이 있더라고요. 조금 더 깊게 들어갈 수 있고요."

- 경기도 양평에서 살고 있는데 요즘 사는 건 어떤가요?
"뭐 그냥, 평범하죠.(웃음) 특별할 것 없고요."

- 서울전자음악단 2집에 실린 '따라가면 좋겠네'를 불렀어요.
"우리나라에 있는 노래 중에서 가장 감미롭고 달콤한 노래가 아닌가 해요. 너무 좋아하는 노래인데, '한번 편곡을 해야겠다' 혼자 생각을 해봤어요. 음반에 실린 곡들과 약간은 어울리는 느낌도 있으면서도 분위기가 살짝 반전될 수 있는 포인트가 될 것 같다 생각을 하고 있어서 실었어요."

- 신윤철 씨는 어떤 말을 하던가요?
"흔쾌히 허락을 해주셨어요."

- 가사가 시적인데 어떤 식으로 쓰나요?
"제가 생각이 많은 스타일이에요. 일기를 쓰지는 않지만 잡생각들을 길게 가지고 가죠. 그러다가 집중력이 발휘될 때 쓰죠."

- 한 번에 쓰는 거요?
"네. 저는 조금 그런 식이에요. 한 번에 쫙 쓰고 난 뒤 다듬어 가는 스타일이에요. 이번 음반 작업할 때는 가사의 절을 더 길게 가져갔어요. 4절 노래라면 8절까지 쓴 다음에 계속 잘라내고 모아요. 대부분 곡들을 그렇게 작업했어요."

- 주제곡 '달이 뜨기 전에'는 어떤 느낌을 담고 싶었나요?
"우선 그 노래가 제가 가장 처음 만든 포크 스타일 노래거든요. 곡을 만들 당시에 스트레이트한 느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곡의 느낌이 항상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가사는 그 가사를 쓸 당시의 마음을 담아냈겠죠.(웃음)"

- 지난 4월 밴드 파블로프 <퍽이나> 음반 발매 공연에서 게스트로 선 밴드 '이리들'은 신인 밴드로 소개되었던데요.
"아, 처음에는 활동하려고 모였어요. 밴드를 만들어서 활동하고 싶었는데 제가 사정이 있어서 지금 중단된 상태예요. 파블로프의 류준도 함께 해서 공연했던 거죠."

- 서교그룹사운드는 휴식기를 갖는다고 알린 지가 3년이 되었는데요. 무대에서 다시 볼 수 있을까요?
"없을 것 같아요."

- 개인 사정으로요?
"당시에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모이자' 하고 찢어진 건데(웃음) 아무래도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다들 너무 다른 갈래로 빠지고 있어서요."

- 음악적으로요?
"음악적으로나 개인적으로도요. 뭐 이렇게 말해놓고 또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웃음) 지금 봤을 때는 그렇게 되기는 힘들 것 같아요."

서른, 감출 수 없는 현실의 불안함

 종로 낙원아파트 옥상에서

종로 낙원아파트 옥상에서 ⓒ 김광섭


- 20대를 서교그룹사운드와 함께 했는데, 그때를 회상하면 어떤가요?
"제가 생각해도 대단했던 것 같아요. 그때는 공연도 많이 했었거든요. 주변 어떤 이야기에도 흔들리지 않고 제가 나름 가려고 하는 방향으로 가는 초지일관 태도가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부분이 '대단하구나', '젊구나' 이런 느낌이 들어요. 공연도 다 즐거웠고 좋은 기억이 더 크죠. 저의 분신처럼 생각하고 했던 밴드였으니까요."

- 그때 만들었던 노래들을 솔로 활동 때도 부르나요?
"아직 그런 적은 없지만 앞으로는 그럴 생각도 있어요. 아, 전에 만들었던 곡으로 공연을 한 번 한 적이 있네요. 서교그룹사운드 때 만들었던 노래에도 애착이 있고, 밴드 자체에도 아직도 큰 애정이 있어요."

- 더 모노톤즈에서도 활동했는데요.
"이제는 제가 했던 기간보다 저 없이 간 기간이 훨씬 길어진 밴드여서 약간 이질감이 있죠. 전에는 '내가 했던 밴드인데…' 하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전혀 멀어진 밴드가 돼 가는 것 같아요. 다 좋아하는 선배였고 동료였죠. 멋있어요."

- 학창시절 때도 음악을 했나요?
"아니요. 반에서 음악을 좋아하는 몇 안 되는 친구 중 하나였어요. 사실 그때는 음악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을 좋아했죠. 음악은 혼자 집에 가서 듣는 스타일이었어요."

- 음악을 하기로 결심한 것은 언제죠?
"스무 살 때요. 대학을 한 학기만 다녔거든요. 고등학교 때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해서 영화를 전공했었어요. 한 학기도 즐거운 마음이었어요. 학교가 재미있는 거예요. 제가 학교에서 공부를 즐기면서 한다는 자체가 신기했어요. 영화와 음악이 비교되는 포인트가 있는데, 음악은 신체적으로 조금 더 움직이는 거잖아요? 음악 듣고 공연 보는 걸 너무 좋아했으니까, '내가 할 수 있으면 해봐야겠다' 해서 그 길로 밴드를 구하러 다녔어요."

- 그래서 시작한 팀이?
"서교그룹사운드요."

- 결성은 언제 했어요?
"2007년부터 활동을 했거든요. 2006년 겨울에 결성이 되었죠."

- 서교그룹사운드나 더 모노톤즈 공연 무대에서 에너지가 넘쳤는데, 포크 음악을 하면 근질근질하지 않나요?
"두 스타일을 다 좋아해요."

- 20대를 지나 서른 살이 되었는데 마음이 어때요?
"불안하죠. 앞으로 어떻게 사람 구실을 하고 살아야 하나 불안한 기분이 더 커요. 20대 때에는 음악적 커리어에 대해 완전히 꽂혀서 살았거든요. 음악적 지위보다는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은 음악을 할 수 있을까', '사람에게도 나에게도 떳떳할 수 있고 멋있는 음악을 할 수 있을까'란 생각을 하며 지내왔어요. 지금은 그것보다도 해놓은 것은 음악밖에 없는데 먹고 살 수 있을 만큼의 환경이 안 되니까 점점 나이가 들수록 어떻게 돈을 벌고 무슨 일을 하며 살아야 할까 고민을 하고 있죠."

큰 힘이 되어주는 친구들, 가족 같은 존재

 그는 개 네 마리를 키우고 있다.

그는 개 네 마리를 키우고 있다. ⓒ 김광섭


- 지치고 불안할 때, 힘이 되는 게 있을까요?
"고등학교 동창 친구들이 너무 큰 힘이 되고 있어요. 사실 서교그룹사운드, 더 모노톤즈 하는 거의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친구들을 안 만나고 지냈었어요. 어릴 때부터 동네 친구고 동창이며 같이 자란 친구들인데 일부러 안 만난 것도 있고요. 당시에는 다들 대학교에 다니거나 졸업을 했어요. 아닌 친구들은 일찍 직장을 구해서 적응해가는 시간이었죠. 그런데 저는 다른 꿈을 꾸고 있었으니까 이야기하면 안 통하는 것 같았어요.

나와 다르구나, 나는 이상향을 쫓아가는 사람인데 이 친구들은 벌써 사회에 적응해서 살아가는 친구들이니까 만나지 말아야겠다 싶었어요. 그런 부분에서 미안한 부분도 있어요. 10년을 그렇게 지내다가 더 모노톤즈를 그만두면서 동굴에 들어간 것처럼 아무도 안 만나는 시기에 친구들이 먼저 찾아와주더라고요. 제가 얼마 전에 또 큰일을 겪었는데, 그 일까지도 친구들이 다 도맡아주면서 도와 주웠어요."

- 고마운 마음이 있었겠어요?
"너무 고맙죠. 지난달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너무 걱정이 되는 거예요. 장례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어요. 조부상도 너무 어린 나이에 겪어서 개념이 없었는데, 사회생활 일찍 시작한 친구들이 저보다 많이 아니까 '너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마라, 우리가 다 해준다' 진짜 그렇게 해주더라고요. 진짜 가족만큼 고마운 친구들이죠."

- 아버지와의 추억은 어떤가요?
"아버지가 음악을 좋아하셨어요. 어릴 때부터 록 음악을 익숙하게 듣고 자랐죠. 아버지가 젊었을 때 LP 수집하는 것을 좋아하셨거든요. 어릴 적에는 집에 항상 록 음악이 울려 퍼지는 환경이었어요. 어릴 때 추억보다도 최근의 추억이 짙어요. 아버지와 사이가 안 좋았어요. 근데 싸웠던 만큼 그 시간들이 생각이 나죠."

- 기억에 남는 게 있을까요?
"그냥 싸우는 거죠.(웃음) 아버지하고 자주 다투었거든요. 아버지와 제가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서 집에 있다 보면 부딪히더라고요. 싸우면서 미운 정이 들었다고 해야 하나? 아버지와 같이 집 앞에 텃밭을 만들어서 토마토 등 농작물을 심었던 기억이 있어요. 그것을 심으면서 엄청 싸웠던 기억이 지금 나네요.(웃음)"

- 강아지를 좋아하나요?
"평생 개를 키우면서 살아왔어요. 강아지들도 가족이죠. 힘이 되고 귀엽죠."

- 이번 음반은 어떤 분들이 들으면 좋겠어요?
"특별히 어떤 분이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누구 한 명이라도 들어주면 고마운 입장이라서요.(웃음)"

- 쇼케이스나 공연이 계획된 것이 있나요?
"10월 즈음? 쇼케이스까지는 아니어도 음반 발매를 기념하는 공연을 해볼까 생각은 하고 있어요. 다른 활동은 고민 중이에요."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월간 <세상사는 아름다운 이야기> 10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세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