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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암살>과 <밀정> 모두 일제시대 한국독립운동에 대해 다뤘지만, 그 결은 상이하다.

영화 <암살>과 <밀정> 모두 일제시대 한국독립운동에 대해 다뤘지만, 그 결은 상이하다.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최근 한국영화는 근대사 바로 세우기에 앞장서는 모양새다. 영화 <암살>이 월북 독립운동가 약산 김원봉과 여성 독립운동가 남자현의 존재를 일깨웠다면, 김지운 감독의 신작 <밀정>은 위장 친일파를 화두로 던지는 양상이다.

먼저 두 영화는 일제하 독립운동을 다뤘음에도 확실히 결을 달리한다. <암살>은 선과 악의 경계가 뚜렷하다. 물론 생계형 독립 운동가들이 감초처럼 들어가 있지만 말이다. 반면 <밀정> 속 의열단원들은 선과 악의 희미한 경계 사이에서 위태롭게 줄타기를 한다. 자칫 위장 친일파에게 상황 논리를 제공해 줄 위험이 높아 보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밀정>은 일제하 한국독립운동사 연구와 관련해 더욱 심도 있는 문제의식을 던진다. <밀정>은 이른바 '황옥경부사건'의 주인공인 황옥과 김시현을 불러낸다. 송강호가 분한 이정출은 황옥을, 공유가 연기한 김우진은 김시현을 각각 모델로 했다.

황옥은 조선인으로 1920년 3월 경기도 경찰부에 특채돼 밀정 역할을 했다. 그러다 도리어 의열단에 역제안을 받는다. 의열단은 조선총독부, 동양척식회사, 매일신보사 등을 대상으로 거사를 준비하고 있었고, 이에 의열단의 김시현은 황옥에게 폭탄을 경성에 반입할 수 있도록 지원해 달라고 요청한다.

황옥은 이 같은 제안을 받아들인다. 황옥은 대담하게도 일본의 조선총독부가 사용한 비표를 의열단에 건넨다. 황옥이 경찰 신분이었기에 비표를 확보할 수 있었고, 총독부 비표를 붙인 폭탄은 무사히 경성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러나 의열단의 거사는 성공하지 못했다. 조선총독부 경무국이 심어 놓은 또 다른 밀정 권상호가 밀고한 것이다. 황옥은 재판에 넘겨졌다. 황옥은 법정에서 자신의 행위가 '일본을 위한 것'이라고 강변했다. <밀정> 속 이정출처럼.

인간의 선한 본성, 현실에선 나타나지 않아

 영화 <암살>과 <밀정> 모두 일제시대 한국독립운동에 대해 다뤘지만, 그 결은 상이하다.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밀정>을 연출한 김지운 감독은 인간 존재의 선한 본성에 한 가닥 희망을 걸었나 보다. 의열단의 거두 정채산(이병헌)은 이정출이 어떤 목적으로 자신에게 접근했는지 잘 안다. 정채산은 이정출에게 먼저 술을 권한다. 이어 이정출의 마음에 돌을 던진다. 이정출을 설득하는 정채산의 말 한마디는 무척 깊은 여운을 남긴다.

"아무리 이중첩자라도 조국은 하나요."

이정출은 한동안 고민을 거듭한다. 한편으로 의열단의 폭탄 반입을 돕지만, 여전히 혼란을 감추지 못한다. 그러다 형무소 출소 이후 김우진이 못다 이룬 거사를 완성한다.

그러나 김 감독의 희망은 현실에서 이뤄지지 않았다. 고문 경찰로 악명 높았던 노덕술은 해방 이후 반민특위에 체포돼 위기를 맞이하는 듯했다. 그러나 노덕술은 그 와중에 반민특위에 대한 테러를 획책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사무처장을 지낸 정운현의 책 <친일파의 한국현대사> 중 한 대목을 인용한다.

"한편 노덕술이 반민특위에 검거된 직후에 극우 테러리스트 백민태가 놀랄만한 사실 하나를 폭로했다. 노덕술이 주동이 돼 서울시 경찰국 수사과장 최난수, 부과장 홍택희 등이 자신에게 반민특위의 중진의원인 노일환, 이문원 등 간부 7~8명에 대한 암살을 부탁했다는 것이다." - 정운현, <친일파의 한국현대사> 중에서

노덕술은 또 해방 이후 약산 김원봉을 파업 배후조종 혐의로 체포해 갖은 고문과 모욕을 가했고, 이에 김원봉은 자신의 애통함을 글로 남겼다.

"해방된 조국에서 친일파 경찰 손에 수갑을 차고 모욕을 당했으니…. 의열단 활동을 같이했던 유석현 집에 가서 꼬박 사흘간 울었다."

다시 황옥으로 돌아가 보자. 황옥의 행적은 논란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황옥은 한국전쟁 때 강제납북 돼 이후의 행적을 추적하기 어렵다. 더구나 관련 자료는 일본에 있다. 황옥이 밀정이었는지, 위장친일파였는지 논란이 분분하지만 쉽게 해소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황옥, 그리고 이유필

 영화 <암살>과 <밀정> 모두 일제시대 한국독립운동에 대해 다뤘지만, 그 결은 상이하다.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사실 황옥 같은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고 본다. 역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했다가 밀정으로 오해를 받은 이들도 존재한다. 춘산 이유필(1885~1945)이 대표적인 예다. 이유필은 1933년 중국 상하이에서 윤봉길 의거 관련자로 일본 헌병에 강제 연행됐다. 체포될 당시 이유필은 백범 김구, 도산 안창호에 버금가는 거물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임시정부는 그를 밀정으로 의심해 제명한다.

그 이유는 이렇다. 일제는 이유필을 체포 후 한 달 만에 풀어준다. 독립운동가들은 일제가 이유필 같은 거물을 한 달 만에 풀어준 데 대해 의심했고, 결국 일제의 회유에 넘어갔다고 본 것이다. 실제 이유필이 풀려난 이후 많은 운동가가 체포됐기에 이 같은 의심은 타당해 보였다. 그로서는 억울했겠지만, 자신의 혐의를 반박할 근거를 제시하지 못해 평생 변절자라는 낙인을 감수해야 했다.

그러다 1990년 이현희 성신여대 명예교수는 일본 정부의 극비문서를 발굴해 이유필의 누명을 벗겼다. 이 교수가 찾아낸 문서엔 '이유필을 처벌하는 것보다 차라리 석방해 이용하면 도리어 한국통치 상 유리하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 즉, 일제는 거물 독립운동가를 속히 석방해 임시정부의 분열을 획책한 것이다.

황옥이나 이유필의 사례는 두 가지 점에서 일제하 독립운동사 연구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첫째, 독립운동은 선과 악의 싸움이 아닌 선과 악의 위태로운 경계에서 이뤄졌고, 그만큼 난관이 컸음을 방증한다.

둘째, 일본의 식민정책이 얼마나 악랄했는지 폭로한다. 협력 없이 지배 없다. 이에 일제는 조선인 협력자를 정책적으로 육성했다. 이 같은 육성은 두 갈래로 이뤄졌다. 먼저 조선 상층부 계층의 엘리트와 지식인들을 회유했다. '을사오적' 이완용이나 윤치호가 좋은 예다. 아래로는 출세주의자들을 충원했다. 현실에서는 노덕술, 영화 <밀정>에서는 하시모토가 이렇게 충원된 자들이다.

일제의 부역자 육성은 조선인을 분열시켜 영구 지배하려는 책략의 소산이었다. 어느 면에서 황옥은 이런 분열정책의 희생자 아닐까? 일제는 황옥 말고도 또 다른 밀정을 붙여 의열단의 동태를 감시했고, 끝내 의열단의 거사를 무산시켰다. 집요하게 조선인을 분열시켜 얻은 결과였다. 불행하게도 분열정책은 지금 이 시대에도 횡행한다. 현 정권은 오갈 데 없는 노인들을 일당 2만 원과 밥 한 끼로 꾀어 분열을 조장하는데 전위대로 내세우지 않았던가?

이제까지 독립운동하면 선과 악의 대립구도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했다. 일제는 악이고 독립운동은 선이라는 식이다. 영화 <암살>이 바로 이런 구도다.

그러나 이 같은 구도는 과거사 인식에 한계를 드러낸다. 특히 일제 식민지가 도리어 근대화의 맹아라는, 이른바 뉴라이트 학계의 주장에 딱히 반박할 근거를 제시하는 데 부족하다. 이런 점에서 위장친일파 연구는 반드시 필요하다. 일제의 식민정책이 궁극적으로는 조선인을 분열시켜 지배를 영속화하려는 책략이었음을 폭로하기 때문이다.

 영화 <암살>과 <밀정> 모두 일제시대 한국독립운동에 대해 다뤘지만, 그 결은 상이하다.

ⓒ 쇼박스


물론 <암살>도 크게 기여했다. 여성독립운동가 남자현, 그리고 약산 김원봉의 존재를 알렸으니 말이다. 여기에 <밀정>은 독립운동의 이면에 숨겨진 위장친일파의 존재를 들춰낸다.

정운현은 자신의 책 <친일파의 한국현대사>에서 일본 국회도서관 헌정자료실, 외무성 사료관, 도쿄대·와세다대 도서관 등 곳곳에 한국 근현대사 관련 자료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여기엔 친일파 관련 자료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이유필도 일본 정부의 비밀자료에 힘입어 누명을 벗었다. 황옥의 행적을 둘러싼 논란을 풀어줄 자료도 발굴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밀정>의 흥행으로 위장친일파의 존재가 대중에게 알려진 만큼, 차제에 공신력 있는 기관이 나서서 일본 측에 자료를 요청하는 등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여 행적 논란을 명쾌히 정리해 주었으면 좋겠다. 이들은 우리 근현대사를 이루는, 잊힌 파편들이기 때문이다.

밀정 이정출 황옥 이유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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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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