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희망은 ‘아이’다. 아이처럼 맑은 영혼의 소유자다. 그들은 누가 뭐라 해도, 어떤 상황에서도 소신과 신념을 굽히지 않는 강인한 영혼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그들이 만든 세상이어야만 한다. 영화 <부산행>의 한 장면.

영화 <부산행>이 열심히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 NEW


<부산행>은 미국 좀비 영화들을 좀 본 사람이라면 손이 오그라들 정도로 베낀 장면이 많지만, 중요한 건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말하자면 주목할만한 현상은 영화 자체가 아니라, 좀비물을 선호하는 관객의 취향이다.

우리 사회에서 공포 영화는 참 인기가 없는 장르였다. 외환위기의 충격으로 인해 여고괴담 시리즈가 특수를 누렸던 것을 제외하면 뚜렷이 기억에 남는 게 없다. 귀신은 물론이고 (기독교 전통이 각인되지 않은 아시아지역이라) 오컬트물도 이 나라에서는 잘 안 먹힌다. 좀비물은 나름 합리적 세계관(탈주술적 가치관)으로 무장했다고 득의양양해 하는 현대인들에게 먹히는 공포물이다. 그 약효는 서구에서 1960년대 후반부터 검증되었고 이제 한국에서 연착륙하고 있다. 아래에서는 좀비 영화가 어떻게 탈주술적 가치관을 손상하지 않고 우회해서 현대인의 상상을 자극하는지를 살펴보자.

좀비 영화가 대중을 불러들인 이유

좀비 영화가 탈주술 사회에서 파고드는 원리는 이렇다. 그림 형제가 수집한 민담 중에 마녀의 저주를 받아 개구리로 변신한 왕자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여기서 '마녀'든 '저주'든 전근대적이고 주술적인 단어이므로 제거하고 왕자가 개구리로 변신하는 기이한 사건만 남긴다. 그리고 그 변신을 병에 의한 생리적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이렇게 되면 사태는 미궁에 빠지게 된다. 민담의 틀에서는 마녀가 원하는 것을 만족하게 하면 개구리는 다시 왕자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변신의 원인이 제거된 지금 변신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과학 현상'이 된다. 민담과 병리학적 설명 가운데 어떤 것이 더 미신적인가? 민담은 장르 자체가 주술적이지만 그 내부에서는 저주가 인간의 합목적적 노력인 선행으로 풀리는 회로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병리학적 설명에서 인간이 개구리로 변신하는 것은 영문을 도저히 알 수 없는 질병이며 따라서 그러한 감염으로부터 영원히 풀려날 길이 없다. 그렇다면 현대인은 대중을 진퇴양난에 빠지도록 주관하는 신에 관한 미신을 신봉하면서 의식에서는 탈주술적이라고 자처하는 것 아닐까?

좀비 영화에 관한 얘기로 돌아가자. 모든 영화가 그런 것은 아니나, 대체로 이 장르에는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 감염의 원인이 중요하지 않다. 많은 좀비 영화가 왜 감염이 발생했는지 형식적이고 모호하게 (핵전쟁, 세균전) 밝히거나, 심지어는 아예 밝히지 않는다. 재앙은 절대 명제로 주어진 것이며 따라서 신의 변덕에 가깝다. 인류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사회의 어떤 계층 소행인지를 좀비 영화는 묻지 않는다. 어차피 세상은 잘못 돌아가게 되어 있고 파국이 올 것은 자명한 냉소적 전제를 깐다.

다음으로 한 번 감염되면 치유되지 않는다. 이야기의 화자는 사실 치유할 의도를 못 느낀다. 그 때문에 애초에 원인도 모호한 것이다. 좀비 이야기는 도마뱀 꼬리 자르듯이 썩은 부분을 잘라내는 이야기지, 진단하고 구제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귀신 들린 소녀에게 성수를 뿌려 잡귀를 쫓는 오컬트나, 침공한 외계인을 내쫓고 지구를 원상태로 돌려놓는 SF나, 귀신의 원한을 풀어서 산 사람들이 행복을 찾는 원귀 영화 달리 좀비 영화는 일방통행적이다. 감염되면 죽어야 한다. 좀비 영화에서 종종 등장하는 백신은 아직 걸리지 않은 사람을 위한 것이다. "탈락하면 아웃이다"는 명령이 쾌감으로 다가오는 동시대 문화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감염된 자의 모습과 행태는 이미 인간이 아니다. 비단 그 정도가 아니라 - 개구리의 모습을 한 왕자와 달리 -  인간으로 되돌아가서도 안 될 정도로 천인공노의 식인을 저지른다. 이런 용서할 수 없는 집단을 왜 상상하는가? 사실 그런 집단에 대한 상상은 현대적인 것이 아니라 유구한 족보를 가진다. 신의 사법절차를 거쳐 선고받은 후 지옥에 억류된 군중이 그것이다. 좀비의 원형은 지옥의 군중이다. 그들은 자신의 죄로 그렇게 된 것이기에 치유할 필요가 없으며, 하부세계에 있으므로 당연히 정상인의 질서와는 다른 지옥의 규범 (몰려다니기, 사람 먹기, 이상한 제스처)을 따른다.

탈주술 그리고 주술

'원인 부재', '치유 불가능성', '하부세계 성원'이라는 점은 좀비가 주술적인 상상의 산물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들은 저승에 머물러 있지 않고 현세에 풀려나서 살아 있는 사람들을 괴롭힌다. 여기서 탈주술적 의식의 역할에 주목하자. 탈주술적 의식은 지옥이나 지옥의 군중에 관한 상상 자체를 무시해야 옳다. 그러나 지옥의 군중을 세속적 형태(감염된 군중)로 둔갑시켜 탈주술이 지배하는 현대적 일상에 불러들인다.

물론 탈주술적이라고 자임하는 현대인들의 의식에 적합하도록 좀비를 실제로 형성하는 '신'이나 '지옥'이라는 개념은 비가시화할 것이다. 그렇게 됨으로써 역설적이게도 진정한 주술이 형성된다. 중세 사람들과 용어만 달리할 뿐, 사회의 부패와 상쟁, 비인간화를 주관하는 '신'에 대한 굳건한 신앙이 작동하는 것이다. 이것이 신앙인 이유는 합리적으로 따지고 자시고 할 것 없이 무조건 믿기 때문이다. 이중의 삭제가 벌어지는데, 좀비 군중이 대동하는 신이나 지옥이라는 개념에 관한 삭제가 일차적인 거라면, 그러한 삭제를 했다는 사실 자체를 삭제시킨다. 그 결과 감염된 군중이 정상인을 해치는 것은 과학적이고 자연스러운 상상으로 나타나게 된다.

엄밀하게 말해서 탈주술이 주술을 (혹은 SF가 미신을) 은폐하는 것이 아니다. 민담처럼 주술적이었을 때는 탈주술적 행동의 정당성, 보상이 있었으나 이제는 주술적 용어를 제거함으로써 진정한 주술이 탈주술 안에서 작동한다. 탈주술 자체가 자기 내부에 세계의 불가피한 병듦에 관한 염세적 신앙을 만든다. 강조하건대 탈주술을 '통해서'가 아니라 탈주술 '속에서' 주술이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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