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신자: 빨간 옷 소녀의 저주> 대만에서 온 공포영화는, 올 여름 국내 관객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 수 있을까.

▲ <마신자: 빨간 옷 소녀의 저주> 대만에서 온 공포영화는, 올 여름 국내 관객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 수 있을까. ⓒ 우성엔터테인먼트


대만에서 호러 장르의 흥행 기록을 새롭게 쓴 <마신자: 빨간 옷 소녀의 저주>(아래 <마신자>)는 마신자(혹은 빨간 옷 소녀) 괴담을 모티브로 삼았다. 작은 체구에 민첩한 동작을 지닌, 붉은 빛을 내는 아이(또는 원숭이) 형상의 귀신을 일컫는 '마신자'는 빨간 눈과 소리로 시선을 끈 후에 영혼을 빼앗는 존재로 알려졌다. 마신자가 이름을 부를 때 뒤돌아보면 영혼을 잃는다는 믿음 때문에 지금도 대만에선 산에서 다른 사람의 전체 이름을 부르거나 어깨를 치는 행동이 금기시된다고 한다.

<마신자>는 숲에서 한 할머니가 마신자에게 영혼을 빼앗기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마신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단 하나 뿐이다. 다른 사람의 영혼을 바친 후에야 자신은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 숲에서 마신자에게 잡혔던 할머니는 함께 산에 갔던 다른 할머니를 희생시켜 영혼을 되찾는다.

다른 이의 희생으로 자신이 살 수 있다는 <마신자>의 작동 방식은 나카타 히데오 감독의 <링>(1998)이 보여주었던 저주 바이러스의 증식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차이점은 분명하다. <링>이 동영상이란 현대 기술과 원혼이 결합한 형상을 조사하고 근원을 탐구한다면, <마신자>는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였을 때 빚어지는 '죄책감'과 마음속 깊이 감추었던 '죄의식'에 주목한다.

 영화의 한 장면. 공포는 멀리 있지 않다. 언제나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

영화의 한 장면. 공포는 멀리 있지 않다. 언제나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 ⓒ 우성엔터테인먼트


메가폰을 잡은 웨이 하오 청 감독은 "공포의 존재는 우리 주변에 그리고 우리 마음에 항상 존재한다"라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그는 타인에게 주었던 상처가 저주의 형태로 되돌아오는 서사로 공포를 보여준다. <마신자>는 빨간 옷을 입은 소녀가 보여주는 시각적인 측면도 오싹하다. 하지만, 진정한 무서움은 죄의식이 가득한 내면이 외부로부터 공격당하는 상황에 있다.

<마신자>엔 여러 죄의식이 나타난다. 할머니는 길을 잃은 자에 대한 미안함이, 손자 허쯔웨이(황하 분)에겐 다른 이의 것으로 자신의 재물을 채우려는 욕망이 서려있다. 허쯔웨이의 여자친구인 션이쥔(허위녕 분)의 마음엔 소중한 존재를 희생시킨 상실이 가시질 않는다. 자신이 살기 위해 남을 팔았던 사람은 이기심에서 비롯한 죄책감을 이기지 못한다. 마신자는 그들 내면에 존재하는 어두운 구석을 건드리며 마음을 갉아먹는다.

<마신자>는 여타 호러 영화보다 논리적인 면이 떨어진다. 마신자의 목표가 된 사람에게 풍기는 시체 썩는 냄새라든가 경비를 보는 사람에게 나타난 마신자 등이 대표적이다. 영화는 이런 요소를 기능적으로 사용할 뿐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는다.

부족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마신자>에 흐르는 욕망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구석이 많다. 극 중에서 허쯔웨이는 부동산을 파는 일에 종사한다. 근사한 고층 아파트에서 사는 미래를 꿈꾸는 허쯔웨이에겐 자본의 멈추지 않는 허기가 엿보인다.

욕망이 잉태한 도시화와 산업화는 필연적으로 숲을 잠식한다. 웨이 하오 청 감독은 "많은 산이 깎이고 개발되면서 마신자는 머물 곳이 없어지게 되었다. 사람들은 점차 그의 존재를 잊어 갔다. 산과 숲에 있던 마신자가 이제 현대인들이 생활하는 도시로 내려와 사람들의 영혼을 빼앗는 것이다"라고 설명한 바 있다. 산에 머물던 마신자가 도시로 스며들어 영혼을 빼앗는 장면은 인간의 탐욕을 향해 경고하는 자연의 목소리다.

 이 영화에는 대만이 겪었던 역사적 아픔도 녹아 있다.

이 영화에는 대만이 겪었던 역사적 아픔도 녹아 있다. ⓒ 우성엔터테인먼트


<마신자>엔 대만이 겪었던 지난 세월도 담겨있다. 영화에서 허쯔웨이를 잃은 션이쥔에게 도움을 주는 전화는 놀랍게도 일제 강점기 시절을 살았던 망자에게서 걸려왔다. <마신자>는 도시 괴담과 억압의 역사를 연결하며 순응과 저항으로 얼룩진 현대사란 의미까지 확장한다.

<월하의 여곡성 - 여귀로 읽는 한국 공포영화사>에서 저자 백문임은 "공포라는 것은 배제되고 망각되었던 존재의 타자성이 그대로 보존되는 순간 배태되는 것인지도 모른다"라고 적었다. 저자의 견해는 <마신자>의 '빨간 옷 소녀'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타자로 존재하는 '빨간 옷 소녀'는 죄의식을 비추는 거울이자 탐욕으로 사라져 가는 것들의 귀환이다. 또한, 망각의 환기이기도 하다. 2015년에 <팔로우>가 다양한 해석의 재미를 주었다면, 2016년엔 <마신자>가 그 자리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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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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