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백엔의 사랑> 스틸 이미지와 포스터.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던 그녀는 왜 권투를 하게 됐을까. ⓒ (주)씨네룩스


<백엔의 사랑>은 모방의 위대한 힘을 알려주는 영화다. 카프카의 어느 단편 소설에서 원숭이가 인간을 모방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학술원에의 보고>)와 마찬가지로 루저인 그녀는 권투선수를 모방한다. 그녀는 집안의 구박에 못 이겨 마지못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한다.

적어도 일본 사회에 관한 한, (나는 일본이 한국의 몇 년 미래라고 본다) 루저의 핵심 문제는 모든 구조적 부조리가 그들의 신체에 '젖어들어 있는' 상황 그 자체이다. 의식도 반성도 있을 수 없다. '젖어들어 있다면' 내가 패배자인 것은 해결 가능한 문제가 아니라 그냥 취한 상태로 지속하는 것이다. 이 영화는 여주인공의 용모와 매너, 표정으로 그 '젖어들어 있는' 루저의 상태가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준다.

그런데 싸움에서 지고도 승리한 상대자를 포옹할 수 있는가? 타성에 젖은 루저의 처지에서 본다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충격적 장면이 아마추어 권투 시합이 끝난 직후, 선수들이 포옹하는 장면에서 목격된다. 질 들뢰즈의 표현을 빌면 "순수 시지각적 상황"이 권투 시합을 막 끝낸 양 선수 사이에서 벌어지는 셈이다.

 영화 <백엔의 사랑> 스틸 이미지와 포스터.

권투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다. ⓒ (주)씨네룩스


권투시합 링에서의 캐릭터에 자신을 대입하는 것, 권투 선수의 가면을 쓰는 것, 루저인 내가 어떤 독특한 규칙이 지배하는 가상 공간의 장에 편입되는 것은 하나의 모방(미메시스)이다. 내 생활에 '젖어든' 타성으로서의 루저는 이렇게 모방을 통하여 극복된다.

만고의 적이라고 인문학이 일컫는 '현대성'이 계산적 이성, 신체 동작의 체계적 분할, 조직 일부로 편입시키는 규율에 의해서 형성된다고? 하지만 다가올 권투시합을 준비하는 체육관 훈련 생활에서는 오히려 규율 친화적인 미덕이 대두한다. 합리성과 규칙이 지배하는 사각 링에서라면 나는 비록 패자가 되더라고 다시 승자가 될 수 있는 활로가 열려 있다.

'젖어 있는' 상태란 그저 의식되지 않는 소여의(주어진) 상태다. 반면에 룰이 지배하는 시합 안에서의 패배는 이러저러한 요인들의 합이 패배를 초래한 것으로 명료하게 의식된다. 나는 이러저러해서 졌다. 하나하나 따지고 계산하는 의지는 '건어물녀', '초식남'에게는 오히려 필요한 덕목이다.

압권이 되는 쇼트는 여자와 남자가 마주 선 마지막 장면이다. 만약 한국 영화나 할리우드 영화였더라면 우렁찬 음악과 함께 포옹하고도 남았을 어색한 상황에서, 끝까지 관객 여러분을 꼼짝 못 하게 붙들어 놓고 사유를 강제하는 ('지속'을 실시간으로 경험하게 하는) 그 장면이 좋다. 좌절 금지, 낙관 금지, 그러나 동료의 위로는 OK. 나를 추스르는 게 먼저지 연애는 무슨.

 영화 <백엔의 사랑> 스틸 이미지와 포스터.

영화 <백엔의 사랑> 포스터. 마지막 장면까지 시선을 뗄 수 없는 영화이다. ⓒ (주)씨네룩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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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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