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 영화 포스터

▲ <사냥> 영화 포스터 ⓒ (주)빅스톤픽쳐스


<사냥>은 순탄치 않은 여정을 거친 작품이다. 일부 언론보도에 따르면, 2015년 여름 크랭크인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각본을 쓰고, 연출을 맡을 예정이었던 천진우 감독은 해고당했다. 당시 천진우 감독과 제작을 맡은 김한민 감독은 각색 방향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한 상태였다고 한다.

제작자는 연출가의 자질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이유로 들었고, 천진우 감독은 <사냥>의 핵심 서사인 과거 탄광 장면을 모두 빼는 것은 무리라고 반발하며 시나리오를 돌려주길 요구했다는 게 보도 내용이다. 이후 <첼로-홍미주 일가 살인사건>(2005)을 연출했던 이우철 감독이 새로 메가폰을 잡으면서 <사냥>은 어렵게 완성되었다. 크레디트는 각본 천진우, 각색 김한민으로 정리된 상태다.

개봉을 앞두고 <사냥>은 다시 산고를 겪었다. '육체 폭력, 살상, 상해 장면 등에서 자극적이며 거칠다'는 이유로 청소년 관람 불가 판정을 받은 것. <사냥>은 재심의를 넣는 통에 예정된 언론 시사회가 한 차례 연기되는 산고를 치렀다. 몇 장면을 덜어내는 노력 끝에 <사냥>은 15세 관람가를 받아 세상에 나왔다.

간신히 탄생한 <사냥>, 그런데...

<사냥>은 우연히 금맥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동근(조진웅 분)이 엽사들을 이끌고 산에 오르고, 그들이 노파를 죽이는 광경을 기성(안성기 분)이 목격하면서 벌어지는 내용을 다룬다. 산이란 제한된 공간에서 16시간이란 시간 동안 인물들이 벌이는 사투를 담은 <사냥>에 대해 이우철 감독은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를 만큼 훅 지나갈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영화 <사냥>의 한 장면. 안성기의 열연은 분명 돋보였다. 하지만….

영화 <사냥>의 한 장면. 안성기의 열연은 분명 돋보였다. 하지만…. ⓒ (주)빅스톤픽쳐스


속도감 넘치는 추격전을 전면에 내세운 <사냥>엔 <최종병기 활>(2011)을 연출했던 김한민 감독과 <끝까지 간다>(2014)를 기획, 제작한 장원석 프로듀서가 참여했다. <최종병기 활>의 활이 뿜던 운동 에너지는 추격의 에너지로 변환되었고, <끝까지 간다>의 '심리적' 고립 상황은 '공간적' 고립 상황으로 바뀌어 나타난다.

영화는 산에서의 촬영과 총격 장면에 공을 들였다. 대부분을 산에서 촬영한 <사냥>은 관객들이 쫓고 쫓기는 추격전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처럼 느끼도록 작업했다. 이를 위해 박종철 촬영 감독은 카메라를 지게처럼 등에 메고 배우들과 함께 달리는 노력을 기울였다. <사냥>은 한국 영화로는 보기 드물게 강한 총격전도 선보인다. 국내 총포사를 통해 수입이 가능한 총기 리스트 안에서 사냥꾼 기성과 동근과 엽사 무리에 어울리는 총기가 쥐어졌다.

<사냥>은 안성기를 액션 배우로 재발견할 수 있는 기회다. 60대 중반을 넘은 국민배우 안성기는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온 몸을 던지는 기성으로 열연한다. 긴 백발과 거친 수염으로 새롭게 태어난 안성기에겐 <테이큰>(2008)의 리암 니슨, <더 건맨>(2015)의 숀 펜, ,쓰리데이즈 투 킬>(2014)의 케빈 코스트너 같은 중년 배우들의 강인함이 느껴진다.

<사냥>의 다른 주역은 '산'이다. 보통 치유의 정서를 주던 산은 <사냥>에서 다양한 얼굴을 드러낸다. "산은 열려 있는 공간처럼 보이지만, 갇혀 있는 공간이다"라는 감독의 설명대로 <사냥>의 산은 단순히 추격전의 마당에 머물지 않는다. 금맥을 독차지하려는 동근 일당에겐 산은 욕망을 자극하고 스스로 무너지게 하는 닫힌 공간으로 다가온다.

과거에 저지른 행위로 인해 죄책감에 시달리던 기성에겐 벗어날 수 있는 열린 공간을 제공한다. <사냥>의 산은 인간이 변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무대인 셈이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실수를 반복한다

 영화 <사냥>의 한 장면. 장점만큼이나 문제점이 많은 작품이었다.

영화 <사냥>의 한 장면. 장점만큼이나 문제점이 많은 작품이었다. ⓒ (주)빅스톤픽쳐스


<사냥>은 추격 장면을 숨 가쁘게 보여주고, 산을 공간으로 잘 활용했지만, 문제점도 상당히 노출한다. 비리 경찰, 속물 공무원, 사채업자, 얼룩진 세무서 직원 등 온갖 군상이 만난 엽사 무리는 욕망에 사로잡혀 저질렀다고 보기엔 너무 바보스러운 행동만 일삼는다. 그들은 일회용품처럼 대충 쓰다가 버려지는 신세다.

조진웅 배우가 분한 동근, 명근이란 쌍둥이 설정도 그래야 할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기성이 산에 집착하는 이유와 그 곳에서 저지르는 짐승 같은 행동도 세심하고, 섬세한 묘사가 필요했다.

<사냥>에서 엽사 무리가 땅의 주인이던 노파를 죽이는 장면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그들이 저지르는 뒤틀린 욕망의 몸짓엔 현재 재개발이란 명목 아래 행해지는 자본의 광기가 겹쳐진다. 산에 흐르는 탐욕의 기운은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비인간적인 물신주의와 다름없다.

욕망이 뒤섞인 지옥도를 그리려는 <사냥>의 노력은 떨어지는 개연성에 발목을 잡히고 말았다. 원래 천진우가 쓴 각본이 김한민의 각색을 거치면서 얼마나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완성된 영화가 관객의 마음을 사냥하지 못했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하다. 이것 역시 욕심이 빚은 실수가 아닌가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사냥 이우철 안성기 조진웅 한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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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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