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미널> 영화 포스터

▲ <크리미널> 영화 포스터 ⓒ 조이앤시네마


SF 장르의 소재로 '기억'은 자주 소환됐다. 기억을 다루는 방식은 몇 가지 범주로 묶을 수 있다. <토탈 리콜>(1990)과 <코드명 J>(1995)는 원래 기억에 다른 기억을 주입하여 기억을 조작하거나 운반했다. <더 셀>(2000)과 <인셉션>(2010)은 타인의 의식 속에 침투하는 상상력을 발휘한 바 있다. <트랜샌더스>(2014)에선 인간이 가졌던 기억과 감정이 컴퓨터에 업로드 되는 설정을 보여주었다. 아리엘 브로멘 감독의 <크리미널>은 죽은 자의 기억을 산 자에게 이식한다는 소재를 다룬다.

CIA 요원 빌(라이언 레이놀즈 분)은 미국 국방성을 해킹하여 미사일 통제권을 손아귀에 넣은 해커가 테러를 벌이려는 세력과 접촉한다는 정보를 접하고 추적하다가 살해당한다. CIA 영국지부의 수장 퀘이커(게리 올드만 분)는 기억 이식을 연구하는 과학자 프랭크(토미 리 존스 분)의 도움을 받아 빌의 기억을 강력 범죄로 수감 중인 사형수 제리코(케빈 코스트너 분)에게 넣는다.

기억의 복원

<크리미널> 영화의 한 장면

▲ <크리미널> 영화의 한 장면 ⓒ 조이앤시네마


다른 곳으로 기억을 옮겨서 복원을 시도한다는 <크리미널>의 설정은 <트랜샌더스>와 유사하다. 그러나 <트랜센더스>가 컴퓨터에 기억을 담았다면, <크리미널>은 인간을 도구 삼아 복구를 시도하는 차이를 보여준다.

'변화'의 양상도 사뭇 다르다. <트랜센더스>에서 컴퓨터로 옮겨진 과학자 윌(조니 뎁 분)이 예전의 그인지, 아니면 윌을 흉내 낸 컴퓨터인지 모호하게 처리했다. 윌의 정체성을 짚었던 <트랜센더스>와 달리 <크리미널>은 빌의 기억을 이식받은 제리코가 두 개의 기억이 충돌하며 혼란을 겪는다. 어릴 적 사고로 인해 어떤 감정도 가질 수 없었던 존재였던 제리코는 빌의 기억이 자리를 잡으며 감정이 생긴다. 그에게 싹튼 사랑은 지켜야 할 소중한 존재를 깨닫게 한다.

<크리미널>의 각본은 블록버스터 걸작 <더 록>과 일사부재리의 원칙을 다룬 <더블 크라임>을 쓴 더글라스 쿡과 데이빗 웨이스버그가 함께 작업했다. 뇌 신경의 연결 경로를 찾으면 다른 사람에게 기억을 이식할 수 있다는 미래학자 레이 커츠웨일의 말에서 실마리를 얻은 데이빗 웨이스버그는 머지않아 기억 이식의 시대가 온다고 가정하며 각본을 썼다고 한다. 최근 실험용 쥐에게 기억을 주입하여 처음 접하는 미로를 한 번에 통과한 실험 결과가 언론에 보도된 점을 비추어본다면 <크리미널>은 더는 먼 미래가 아닌, 점차 피부로 다가오는 현실의 이야기이다.

<크리미널>은 '기억 이식'이란 소재에 <페이스 오프>(1997)의 '바꾸기', <로보캅>(1987)의 정신과 육체 사이에서 겪는 '혼란',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등 다양한 요소를 결합시켰다. 다른 기억이 영향을 준다는 상상은 인체의 세포가 뇌처럼 기억한다는 '셀룰러 메모리' 현상을 다룬 <디 아이>(2002)를 연상케 한다.

<크리미널>은 단순히 소재로 눈길을 끌려고 하지 않는다. 영화는 괴물로 취급받던 자가 인간성을 회복하는 여정에 주목한다. 다양한 장치를 이용하여 변화하는 단계를 성실히 묘사한다. 제리코는 다리에서 추락하며 어두운 과거를 끊고 새로운 길로 전진한다. 빌의 딸과 인형을 묻어주는 장면은 죽음을 깨달았음을 은밀히 강조한다. 그녀와 피아노를 함께 치는 장면은 가족으로 받아들여지는 미래의 약속이다.

빈틈은 많지만

<크리미널> 영화의 한 장면

▲ <크리미널> 영화의 한 장면 ⓒ 조이앤시네마


분명 SF적인 설정으로 본다면 <크리미널>은 빼어나지 않다. 그리고 세계의 모든 정부가 무너져야 한다고 외치는 테러 조직의 목소리도 공허하기 짝이 없다. 영화의 빈틈을 메우는 역할은 배우가 맡았다.

2016년 <데드풀>로 주가를 올린 라이언 레이놀즈는 짧은 분량이나 강한 존재감을 뿜는다.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2016)에서 원더우먼으로 깊은 인상을 준 갤 가돗은 빌의 아내인 질리언 역할로 자신의 몫을 다한다. 게리 올드만과 토미 리 존스의 연기는 두말하면 잔소리. 영화에 가장 큰 활기를 불어넣은 이는 케빈 코스트너다. 초반엔 피도 눈물도 없는 사형수였으나 후반으로 갈수록 눈물의 의미를 알아가는 상반된 캐릭터인 제리코를 그는 훌륭히 소화한다.

<크리미널>엔 집으로 온 제리코에게 질리언은 "누구세요?"라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 모르겠다는 제리코에게 질리언은 다시 묻는다. "이제 어디로 갈 생각이죠?" 영화는 마지막에 빌과 질리언의 행복한 추억으로 남은 해변으로 제리코를 인도한다. 그 순간 화면엔 <프랑켄슈타인>에서 창조주와 창조물이 대립하던 북극의 차가움과 대비되는 바닷가의 생명력과 따스함으로 충만하다. 영원한 고독에 놓였던 프랑켄슈타인과 다른, 환한 제리코의 얼굴을 보면서 <크리미널>은 <프랑켄슈타인>을 기억으로 다시 쓴 이야기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제 괴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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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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