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희경, "내가 감동받은 우상들과 일하고 싶었다" 노희경 작가가 4일 오후 서울 논현동의 한 호텔에서 열린 tvN 10주년 특별기획 금토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 제작발표회에서 출연배우들과 함께하게 된 소감을 이야기하며 웃고 있다. <디어 마이 프렌즈>는 '꼰대'라고 불리는 시니어들과 꼰대라면 질색하는 버르장머리 없는 청춘의 유쾌한 인생찬가를 다룬 작품으로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닌 시니어들의 우정, 사랑, 꿈, 삶을 그려낼 예정이다. 13일 오후 8시 30분 금요일 첫 방송.

▲ 노희경, "내가 감동받은 우상들과 일하고 싶었다" 노희경 작가가 지난 5월 4일 오후 서울 논현동의 한 호텔에서 열린 tvN 10주년 특별기획 금토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 제작발표회에서 출연배우들과 함께하게 된 소감을 이야기하며 웃고 있다. ⓒ 이정민


언젠가부터, 작가 노희경은 변화를 추구하고 있었다. 지극히 한국적인 '관계'를 바탕으로 가족사와 사랑, 생과 사를 아우르는 그만의 '사람' 이야기에 양념을 치기 시작한 것이다. 다층적인 시점에 미스터리한 구조를 전편에 드리운 <굿바이 솔로>(2006)가 그 시발점이었고, 결과 역시 만족스러웠다. 익숙한 소재와 다층적인 인물, 신선한 형식의 조화가 도드라졌다.

그리고, 마니아들을 양산한 송혜교, 현빈 주연의 방송국 메타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2008) 이후, 불륜 단막극 <빨간 사탕>(2010)을 거쳐 장편을 내놓기까지 3년여가 걸렸다. JTBC 개국 드라마 <빠담빠담 그와 그녀의 심장박동소리>(2011, 이하 <빠담빠담>)부터, 작가 노희경은 본격적인 변화의 시동을 걸었다. 

형식이나 장르, 판타지의 성격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것도 그때부터다. 판타지멜로 <빠담빠담>의 시간성이나 기적, 일본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그 겨울, 바람이 분다>(2013, 이하 <그 겨울>)의 멜로 장르의 극대화, <괜찮아, 사랑이야>(2014, 이하 <괜사>)의 조현병을 드러내는 형식 등등.

이러한 변화는 기존 "사람이 전부다"라는 철학을 한국식 리얼리즘으로 구현했던 노희경이 동시대 젊은 시청자들과 소통하기 위한 장치이자 노력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노희경이 작가로 데뷔했을 20세기와 견주어, '한드'보다 '미드'나 '일드', 판타지 장르에 더 친숙하고, 자극적이거나 잘 세공된 장르 드라마에 열광하며, 빠른 호흡이나 이색적인 소재, 스타 캐스팅에 길들여진 소위 요즘 시청자들을 위한 배려 아닌 배려라고 할까.  

그 결과는, 절반의 성공이자 값비싼 실험이었다. 정우성의 드라마 복귀작으로 화제를 모았던 <빠담빠담>은 종편 출범이라는 시기에 묻히며 제대로 된 평가의 기회마저 얻지 못했고, <그 겨울>은 지나친 형식미와 상업주의, 원작의 해석 실패로 인해 15%대의 평균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빛이 바랬다. '마음의 병'을 중심 소재로 끌어온 <괜사>는 전작보다 낮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역시 노희경'이란 평가를 일부 회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2016년, 노희경 작가 최초의 케이블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아래 <디마프>)가 당도했다. 종영 직후, 팬들로부터 감독판 DVD 출시 요구가 거세지고 있는 <디마프>는 분명 한국 드라마 사상 꽤나 큰 족적을 남길 드라마로 기록될 듯하다. 그렇게 '진짜 노희경'이 돌아왔다. 

우리가 아꼈던 노희경이 돌아왔다

 tvN <디어 마이 프렌즈>의 포스터. <디어 마이 프렌즈>를 통해 노희경은 자신의 존재감을 확연하게 대중에게 드러냈다.

tvN <디어 마이 프렌즈>의 포스터. <디어 마이 프렌즈>를 통해 노희경은 자신의 존재감을 확연하게 대중에게 드러냈다. ⓒ tvN


<디마프>는 우리가 아꼈던 '노희경의 귀환'이자 그간 작품들 속에서 노희경 작가가 누구보다 애정과 관심을 기울여왔던 중장년층에 대한 '헌사'다. 나와 친구들의 삶에서 죽음이 어른거리고, 또렷했던 기억을 자꾸만 잃어 가며, 그리하여 자식들에게 '꼰대'라 불리는 우리 시대 '어른'들의 이야기.

노희경 작가는 <디마프>에서 글쟁이 박완(고현정 분)의 엄마와 나이도 성격도 다 제각각인 이모들의 '오늘의 사건사고'를 통해 과하게 극적이지 않아도 충분히 드라마틱하고 공감할 수밖에 없는 우리(노년들)의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그 각각의 캐릭터도, 배우도, 친숙한 듯 생생하다. 젊은 시절, 친구와 바람난 남편을 평생 원망했던 장난희(고두심 분)나 전형적인 한국식 가부장 김석균(신구 분)에게 치이고 살았던 문정아(나문희 분), 남편과 사별하고 자식들과 떨어져 사는 조희자(김혜자 분), '한국표' 기구한 여성의 삶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박완의 할머니 오쌍분(김영옥 분) 여사까지 모두. 

'평범'에서 조금 예외적인 존재라면, 가족친지 뒤치다꺼리하느라 육십이 넘도록 부유한 싱글로 남은 오충남(윤여정 분)이나 암투병 중임에도 불구하고 막장드라마의 시어머니 역할을 놓치지 않는 배우 이영원(박원순 분) 정도일까. 모두의 엄마 같은 존재인 오쌍분을 제외하곤 모두 초등학교 동문인 이들은 서로 화해하고, 가출을 하고, 옛사랑과 새사람을 만나고, 자식들과 투탁거리고 도닥거리며, 자신들에게 닥친 심리적·육체적 변화를 맞닥뜨리게 된다.

공감할 만한 전형성과 그럴 법한 허구, 다소 극적인 과장을 섞은 이 60대 이상 여성 캐릭터들은 노희경 작가가 부여한 놀랄만한 생기 속에서 2016년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보고, 겪었을 '엄마' 혹은 '할머니'들을 형상화해 낸다. 특히나 애증이 교차하는 박완과 장난희의 관계 속에서 한국의 흔한 '엄마와 딸'의 관계를 읽어내고 공감한 여성 시청자들이 적지 않았다.

더욱이, 이 어머니, 어머니 세대에 대한 헌사는 그 자체로 여성주의적인 기운을 뿜어낸다. 직접 인용된 대표적인 페미니즘 영화 <델마와 루이스>가 보여주는 진한 '연대' 의식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극 중 문정아가 지속적으로 염원하는 "길 위에서의 죽음" 역시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꼰대'들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

 tvN <디어 마이 프렌즈> 스틸 이미지. <디어 마이 프렌즈>는 결국 '꼰대'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였다.

tvN <디어 마이 프렌즈> 스틸 이미지. <디어 마이 프렌즈>는 결국 '꼰대'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였다. ⓒ tvN


"세상이 우리한테 미안해 해야 돼."

조희자의 입을 빌린 이 대사는 극 중 맥락은 조금 다를지라도 주인공들의 처지를 대변하는 핵심과도 같다. 세상에, 남편에, 자식들에게, 그리고 자신의 운명에 치이며 삶을 감내해왔던 이 '여자'들이 황혼을 맞이하는 지금에서라도 자유롭고 함께 행복해지고 싶다는 열망. 이러한 열망을 실현시켜주는 <디마프>의 결말은 지속적으로 비춰졌던 주인공들의 녹록지 않았던 '전사'(前事)와 그 과거사에 영향을 받는 현재와 맞물리며 진한 공명을 불러일으킨다.

노희경 작가는 이 같은 열망과 연대를 딱히 '노년'과 '여성'에게 한정 지을 생각이 없다. 문정아의 가부장 꼰대 남편 김석균(신구 분)이나 정확히 김석균의 정반대에 위치한 매너 좋고 여성을 배려하는 변호사 동창 이성재(주현 분)에게까지 이 길 위에서의 삶이라는 상징적인 자유와 일탈을 넉넉히 나눠주고자 한다. '어른' 여성들만의 공동체이자 연대로 그치길 바라지 않는 것이다.

결국 '함께 살아가기'란 주제는 박완을 처음 화자에 위치 시킬때부터 잉태돼 있었다. 엄마로부터 끊임없이 '이모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라고 종용받는 박완은 이 징글징글한 관계를 벗어나고 싶어 하면서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 39살 여성 작가다. 노희경식 가족의 묘사가 항상 그러했듯, (장난희와 남편이 늙고 병든 오쌍분을 제외하고) 남자/남편들이 부재해도 변치 않는 '이 징글징글함'은 박완과 엄마의 관계로 대변된다.

"유부남과 장애인만은 절대 안 돼"라는 엄마의 뜻을 거스르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던 박완.  노희경 작가는 6살적 농약을 먹였던 그 엄마를 원망할 수밖에 없었던 박완에게 "우리 세상 모든 자식들은 눈물을 흘릴 자격도 없다. 우리 다 너무나 염치없으므로"라는 내레이션을 부여함으로서 직접적인 화해와 함께 '헌사'라는 주제를 마무리한다. 여기에 (다소 드라마적 판타지가 가미된) 박완의 '장애인' 남자친구 서연하(조인성 분)와의 재회와 화해까지도 아우르면서. 

화자로서 박완의 시선은 그래서 중요하다. <디마프>의 주요 시청층의 이해의 폭을 넓히는 배려인 동시에 세대 간의 이해와 연대를 도모하는 주제의 강화라 할 수 있다. 이 동창생들의 딸과 아들, 조카들이 양념을 넘어서는 꽤나 주요한 존재들로 부각되는 것 역시 서사와 에피소드의 진행을 넘어 주제와 긴밀히 연관돼 있는 것이다.

50대 문턱에 들어선 노희경이 열어 젖힌 가능성

그리하여, <디마프>와 동시기 방영된 김수현 작가의 <그래, 그런 거야>와 비교의 도마에 오른 것은 꽤나 상징적이다. 같은 노년 캐릭터들이 줄줄이 등장하는 김수현 작가의 대가족 드라마 <그래, 그런 거야>가 <디마프>에서 초반 비꼼의 표현이자 극복과 연대의 상대로 그려진 그 '꼰대'적인 시선에 갇혔다는 평가를 받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한때, 노희경 작가가 천착했던 단어는 '쿨', '쿨 함'이었다. 쿨함으로 대변되는, 개인이 성취해 나가는 삶의 태도들과 그와는 반대로 가족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징글징글한 굴레야말로 노희경 작가가 일관되게 추구했던 테마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 동시대적인 화두이자 표현인 '꼰대'가 더해졌다. <디마프>의 박완은 자신이 이뤄온 현재와 관계가 주는 속박을 수용하고 인정하며, '꼰대'들에 대한 이해와 연대를 이뤄내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어머니의 암판정과 수술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갈등 이외에 그 어떤 장르성이나 판타지와 같은 서사 외적인 영향을 받지 않고서도 말이다. <디마프>는 1997년 MBC <내가 사는 이유>로 장편 데뷔한 노희경 작가가 20여 년이 지나 가장 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가장 세련되게 그려낸 작품으로 남게 될 것이다.

작가주의 드라마를 구현해 낼 수 있는 드라마 작가들이 몇 남지 않았다. 앞서 언급한 노작가 김수현을 포함하여, <풍문으로 들었소>의 정성주, <유나의 거리>의 김운경 등 손에 꼽을 정도다. 이제 갓 50대의 문턱을 넘어선 노희경은 <디마프>를 통해 이러한 선배 작가들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젖혔다.

김혜자와 나문희, 고두심과 윤여정, 박원숙과 신구, 주현과 같은 대배우들을 데리고서. 이들을 고현정과 조인성, 이광수를 비롯한 스타들과 다수의 연극/독립영화에서 친숙했던 배우들을 조화시키면서. 무엇보다 지상파에서 꺼내기 힘들었을지도 모를 이야기를 케이블에서 성공시키면서. 여러모로 <디마프>는 오래오래 회자될 작품임이 분명하다.   

디어마이프렌즈 노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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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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