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불편한 만남이었을까? FC 바르셀로나의 팀 동료가 서로 다른 팀의 유니폼을 입은 것도 모자라 주장으로서도 마주서야 했다. 야속할 정도로 이어진 승부는 연장전이 끝난 후에도 가려지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승부차기 첫 번째 키커와 골키퍼로 맞섰다. 거기서 그만 희비가 엇갈리고 말았다. 리오넬 메시는 결국 눈물을 흘렸고 칠레의 골키퍼 클라우디오 브라보는 환호성을 질렀다. 이것도 축구였다.

후안 피찌 감독이 이끌고 있는 칠레 국가대표 축구팀이 한국 시각으로 27일 오전 9시 미국 뉴저지 이스트러더퍼드에 있는 메트라이프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코파 아메리카 센테나리오 2016 아르헨티나와의 결승전에서 승부차기까지 이어진 접전 끝에 4-2로 짜릿한 승리를 거두고 빛나는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골키퍼 '브라보'의 슈퍼 세이브

전반전도 끝나기 전에 양팀에서 1명씩 퇴장당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경기 시작 후 28분만에 칠레의 마르셀로 디아스가, 43분에 아르헨티나의 마르코스 로호가 로페스(브라질) 주심으로부터 빨간 딱지를 받은 것이다.

필드 플레이어가 9명씩으로 줄어들어 드리블과 패스 공간이 비교적 넓어졌지만 두 팀은 필드 골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만큼 양팀 선수들이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들은 지난해 칠레에서 열린 코파 아메리카 2015 대회 결승전에서도 만난 남아메리카 최고의 라이벌이기도 하다.

칠레의 주장 완장을 찬 골키퍼 클라우디오 브라보의 활약이 어느 때보다도 눈부셨다. 먼저 21분에 아르헨티나의 골잡이 곤살로 이과인에게 천금의 선취골 기회가 찾아왔는데 브라보가 각도를 줄이며 과감하게 달려나와 이과인의 킥 실수를 이끌어 냈다. 물론, 이과인이 슛 타이밍을 느리게 잡은 것이 화근이었지만 그것보다 클라우디오 브라보의 미련없는 선택이 더 압권이었다.

클라우디오 브라보의 활약은 득점 없이 정규 시간 이후에 펼쳐진 연장전과 승부차기에서 더 빛났다. 연장전 전반 10분, 클라우디오 브라보가 보여준 신기의 슈퍼 세이브는 칠레가 이 대회 2년 연속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기까지 가장 결정적인 순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르헨티나의 프리킥 기회를 리오넬 메시가 왼발로 차 올렸고 이 공을 골잡이 세르히오 아구에로가 머리로 방향을 바꿨다. 공은 절묘하게 포물선을 그리며 칠레 골문 왼쪽 톱 코너로 빨려들어 가고 있었다. 공의 비행 속도가 빠르지는 않았지만 골키퍼가 좀처럼 막아내기 힘든 궤적이었다. 하지만 클라우디오 브라보는 이를 포기하지 않고 오른쪽으로 날아올라 손끝으로 쳐냈다. 이어지는 동작에서 골대에 몸이 부딪히는 부상 위험을 감수하고 브라보는 칠레를 구했다. 

승부차기, 리오넬 메시의 눈물

결국 이 결승전도 득점 없이 승부차기까지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FC 바르셀로나의 팀 동료 리오넬 메시와 클라우디오 브라보가 승부차기 진행을 위해 주장 완장을 차고 다시 주심 앞에 마주서야 했다.

칠레가 먼저 승부차기를 시작하여 노련한 미드필더 아르투로 비달이 11미터 지점에 공을 내려놓고 오른발 킥을 날렸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의 골키퍼 세르히오 로메로도 클라우디오 브라보에 못지 않은 순발력을 자랑했다. 로메로가 왼쪽으로 날아올라 비달의 킥을 정확히 막아낸 것이다. 이렇게 되자 아르헨티나가 웃을 일만 남은 줄 알았다. 더구나 리오넬 메시가 1번 키커였던 것이다.

하지만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고 리오넬 메시의 왼발 킥은 골문 안으로 날아가지 못하고 크로스바를 넘었다. 반드시 넣어야 된다는 엄청난 중압감이 실수로 이어졌다. 그의 공을 막아내려고 하는 골키퍼가 하필이면 소속 팀 동료 골키퍼 클라우디오 브라보였기에 더 큰 부담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클라우디오 브라보의 순발력을 너무나 잘 알기에 그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더 빠른 킥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 부담감이 고스란히 왼발 킥에 담겨 높게 떠서 날아간 셈이다.

칠레 골키퍼 클라우디오 브라보는 아르헨티나의 네 번째 키커 루카스 빌리아가 오른발로 찬 공을 향해서도 오른쪽으로 날아올라 기막히게 쳐냈다. 이렇게 칠레에게 대회 2년 연속 우승의 기회가 눈앞에 찾아왔고 마지막 다섯 번째 키커 프란시스코 실바는 침착하게 오른발 인사이드 킥을 왼쪽 구석으로 낮게 차 성공시켰다. 칠레가 다시 한 번 아르헨티나를 울리고 말았다.

승부차기 1번 키커로 나와서 실축한 리오넬 메시는 한동안 벤치에 앉아 멍한 표정으로 눈물을 흘렸다. 알렉시스 산체스, 에두아르도 바르가스 등 동료들과 챔피언 세리머니를 펼치던 골키퍼 클라우디오 브라보는 소속 팀 동료 리오넬 메시에게 다가가서 진심으로 위로하는 뜻을 담아 안아주었다. 팀 동료가 이렇게 상대 선수로 만나야 하는 운명이 축구에는 있다. 코파 아메리카 100년의 열정은 이렇게 칠레 선수들의 품에서 더욱 뜨겁게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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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2016 코파 아메리카 센테나리오 결승전 결과(27일 오전 9시, 메트라이프 스타디움-미국 뉴저지)

★ 칠레 0-0(연장전 후 승부차기 4-2) 아르헨티나

◇ 2000년 이후 코파 아메리카 우승/준우승 팀 목록
2016년 우승 칠레, 준우승 아르헨티나
2015년 우승 칠레, 준우승 아르헨티나
2011년 우승 우루과이, 준우승 파라과이
2007년 우승 브라질, 준우승 아르헨티나
2004년 우승 아르헨티나, 준우승 브라질
2001년 우승 콜롬비아, 준우승 멕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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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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