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은 이번 <1박2일>의 방송이 여성을 폄하하고 여성혐오를 부추기는 방송이라 주장했고, 다른 쪽은 게시판에 글을 쓰고 있는 사람들은 '프로불편려'일 뿐이라고 했다.

한쪽은 이번 <1박2일>의 방송이 여성을 폄하하고 여성혐오를 부추기는 방송이라 주장했고, 다른 쪽은 게시판에 글을 쓰고 있는 사람들은 '프로불편려'일 뿐이라고 했다. ⓒ KBS


지난 12일 KBS <1박2일>이 방송된 이후 시청자 게시판에 항의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한 누리꾼은 "이렇게 여성을 품평하고 상품화시키는 방송 못 보겠다, 이화여대생들이 눈요기 대상인 줄 아는지"라는 내용의 글을 게시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지금 게시판의 상황을 진화심리학적으로 설명하면 여성들은 예쁜 여성들이 주목받는 걸 질투하기 때문에 그렇다, 예전부터 남성에게 선택받지 못한 여성들이 예쁜 여성들을 험담하던 것이 DNA에 이어져 그렇게 된 것이다"라는 글을 게시하기도 했다.

한쪽은 이번 <1박2일> 방송이 여성을 폄하하고, 여성혐오를 부추기는 방송이었다고 주장했고, 다른 쪽은 이들은 그저 '프로불편러'일뿐, 이들 의견은 여성들의 질투라고 주장했다. 대체 지난 12일 방송된 <1박2일>은 어떤 내용이었나.

남성들의 환상 자극하는 '여대투어'

 여성의 미모를 칭찬하는 꽃이라는 말은 사실, 여성들의 여러 가치 중에서 외모만을 강조하는 차별적인 단어다.

여성의 미모를 칭찬하는 꽃이라는 말은 사실, 여성들의 여러 가치 중에서 외모만을 강조하는 차별적인 단어다. ⓒ KBS


<1박2일>은 캠퍼스투어 2탄으로 지난 캠퍼스투어 1탄에서 서울대학교 15학번으로 입학한 멤버들이 이화여대에 교환학생으로 가는 콘셉트로 진행됐다. 출연자들은 일명 '남친룩'을 입고, 미팅을 진행하듯 멘토들의 소지품을 고르고 짝을 이루는 방식이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꽤 재밌었다. 이는 <1박2일>의 콘셉트가 여대에 대한 남자들의 환상을 충분히 충족시켜주는 방향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여대에만 존재하는 파우더룸을 보여주거나, 외모가 출중한 학생들을 멘토로 출연시켰다. 이는 남성 시청자들이 보기에 재미있을만한 요소들이었다. 하지만, 단지 그것뿐이었다.

여대에 대한 남자들의 환상은 보통 이렇다. "여대에 남자가 들어가면 다들 쳐다본다더라", "여대생들은 예쁘고, 놀기도 잘 논다던데" 등이다. 실제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여대는 으레 금남의 구역이거나 예쁜 여학생들이 모여 있을 것 같은 장소로 표현되곤 한다. 호기심에 들어가 보고 싶다는 사람들도 다수다(관련 기사 : "솔직히 여대에는 김치녀들 많잖아, 맞지?").

나도 이화여대를 방문해본 적이 있다. 신기하다는 느낌도 있었지만, 여대에 방문했다는 민망함도 있었다. 남자들도 많이 있는 것을 보고 민망함은 금세 사라졌지만 말이다. 직접 들어가 본 이화여대 모습은 내 환상과는 달랐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나 역시 여대를 신비한 곳으로 생각했다.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여대도 여자들이 다니는 학교일 뿐, 전혀 다른 대학과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한편, 이번 <1박2일>에 비친 여대의 모습은 어땠나. 우선 출연진에 요구한 의상부터 의아하다. 대학생이 입을 수 있는 옷들 중 굳이 '남친룩'을 고집한다. 의상에서부터 <1박2일> 출연진들과 이화여대에 다니는 학생들이 짝을 지어 뭔가 하겠다는 것을 예상하게 만든다. 게다가 멘토와 멘티를 짝짓는 방식은 구시대적이다. 방송은 짝을 지은 후 출연자와 학생들의 다정한 모습을 보여준다. 캠퍼스 투어인지 짝짓기 프로그램인지 혼동이 오기 시작한다.

출연자들의 발언들도 문제적이다. 데프콘은 "사방이 꽃이야, 꽃들이 걸어 다닌다"고 말한다. 윤시윤은 "꽃은 하나뿐인데요?"라고 맞받아친다. 꽃은 인간에게 예쁘다는 이유로 구경거리가 되거나 소유 당하는 존재이다. 우리는 꽃을 소유하려고 하지, 하나의 생명체로 존중하지 않는다. 여성의 미모를 칭찬하는 '꽃'이란 말은 사실, 여성들의 여러 가치 중에 외모만을 강조하는 차별적인 단어다. 이화여대 학생들은 다양한 재능으로 대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이지 외모로 뽑힌 학생들이 아니다. 단지 '꽃'이라는 단어를 통해 그들을 대상화하는 출연자들의 발언은 여대에 대한 뭇 남성들의 무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여성들에게 "예쁘다"는 평가가 어떻게 다가오는지 생각해보자. 단지, 예쁘고 평범하고를 떠나서 여성들에게 외모는 삶과 직결되는 무거운 것이다. 면접장에서 외모로 차별받는 사연이 나오고, '취업 성형' 등의 이야기도 나온다. "예쁘다"는 말이나, "꽃 같다"는 말이 단순한 칭찬이 아니라는 소리다.

멤버 김준호는 어떤가. "탈의실은 가지 말자고 해서 가지 않았다"고 장난스럽게 말하는 그의 발언은 여대에 대한 남성들의 성적인 호기심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목욕탕을 몰래 훔쳐보든, 탈의실을 훔쳐보든 이는 범죄다. 웃음을 위한 예능이라지만 충분히 불쾌하게 느껴질 수 있는 상황들이다. 훔쳐보려다 말았다는데 누가 좋아하겠는가.

<1박2일>은 지극히 남성 중심적인 시각으로 여대를 봤고, 그에 맞춰 방송을 진행했다. 진행된 게임에서도 별다른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윤시윤은 열심히 달릴 뿐이고 멤버들은 파우더룸 같은 곳에 가서 학생들의 머리를 묶어주는 일만 할 뿐이다. 이번 방송이 일부 남성들에게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프로그램이 됐을지 모르지만, 있는 그대로의 이화여대를 보여주길 원했던 사람들에게는 불편한 방송이 됐다. 시청자들이 원한 건 이화여대 학생들이 예쁘다는 정보가 아니었다.

이게 최선이었나

 이화여대는 여성에 대한 차별적인 시각을 깨트릴 수 있는 곳이자 성평등의 상징과도 같은 장소이다.

이화여대는 여성에 대한 차별적인 시각을 깨트릴 수 있는 곳이자 성평등의 상징과도 같은 장소이다. ⓒ KBS


지금껏 <1박2일>을 재밌게 시청해왔다. 안중근 의사를 다룬 하얼빈 특집에서는 그 당시 상황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해줘서 좋았다. 퀴즈를 술술 푸는 김종민을 보며 역사에 대해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것에 대해 약간의 반성도 했다. 또한, <1박2일>이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지역 소개를 해주기 때문에 가보지 않더라도 다양한 지역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고, 또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지역 관광에 어느 정도 기여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평소 좋아했고, 자주 챙겨보았던 예능이었기 때문에 이번 방송은 더욱 불편했다. 정말 이화여대에서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외모뿐이었을까. 적어도 공영방송에서는 이화여대생들의 외모를 떠나 다양한 능력들이나 사연들을 초점으로 다뤘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우리 사회가 여성혐오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친구와 '여성혐오'라는 개념에 대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친구는 여성혐오는 '여성을 싫어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용어에 대한 오해에 가깝다. 여성혐오(misogyny)는 단지 여성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사전에서는 여성혐오가 성차별, 여성에 대한 부정, 여성에 대한 폭력, 여성의 성적 대상화를 포함한 여러 가지 형식으로 나타난다고 정의하고 있다. 즉, 김치녀, 개념녀를 나누는 행위나 여성의 외모를 평가하는 행위 역시 여성혐오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데프콘의 '꽃 타령' 역시 포함된다.

<1박2일>의 이번 방송도 그들의 방송 콘셉트나 출연자들의 발언이 여성혐오와 관련 없다는 생각 때문에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청자들의 의식을 너무 가볍게 여긴 듯하다. 최근 여러 사건을 겪으며 사회의 여성혐오에 대한 인식은 더욱 민감해졌다. 시청자 게시판이나 온라인에서 이처럼 논란이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아직 <1박2일>에는 다행히 이를 만회할 기회가 남아있다. 캠퍼스투어 이화여대 2번째 편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화여대의 겉모습에 대해서는 충분히 잘 보았다. 여대가 어떤 곳인지 많은 시청자가 알게 됐을 거다. 그럼 남은 건 이화여대의 내면에 대해 다루는 것이 아닐까. 이번 편을 만회할 수 있는 다음 방송을 내놓기를 기대한다.

1박2일 여성 차별 여성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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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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