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철 여자배구 대표팀 감독.

이정철 여자배구 대표팀 감독. ⓒ 박진철


"그동안 고생도 많았고, 기쁨도 같이 했는데…."

리우 올림픽 세계 예선전에서 본선 티켓을 획득하고 금의환향한 이정철 여자배구 대표팀 감독이 고심에 빠졌다.

이번 세계 예선전(14일~22일)에 출전한 14명의 멤버 중 2명은 리우 올림픽 본선에 데리고 갈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구의 잘못이 아니다. 올림픽 규정상 본선에는 12명만 데려갈 수 있다. 다른 나라도 사정은 똑같다.

이 감독은 어쩔 수 없이 자식 같은 선수 2명을 제외시키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해당 선수는 좌절과 상처를 입을 게 자명하다. 배구 선수에게 올림픽은 최고의 무대이자 꿈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세계 예선전에서 한국 여자배구가 기대 이상의 선전을 보여주고 흥행을 거두면서 리우 올림픽 본선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더 커진 상태다. 본선 조 편성도 유리하게 이뤄져 8강 진출 가능성도 높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동메달 이후 40년 만에 메달을 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올림픽 본선 명단에서 빠지는 선수의 아쉬움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렇다고 결정을 미룰 수도 없다. 6월 5일부터 대표팀 선수들이 진천 선수촌에 다시 모여 훈련에 돌입해야 한다. 또 6월 15일까지 대한체육회에 본선 명단 12명을 제출해야 한다. 그 이후에는 부상 등 특별한 경우 외에는 사실상 교체가 어렵다.

이정철 감독은 25일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이번 주 안에는 본선에 갈 12명의 명단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진천 선수촌에도 12명만 입촌해 훈련을 하게 된다"고 밝혔다.

이 감독은 또 "이번 세계 예선전에 출전한 14명 중에서 12명을 확정할 생각"이라며 "기존 선수를 새로운 선수로 교체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14명도 최상의 멤버로 구성이 됐고, 세계 예선전까지 함께 고생했는데 새로운 선수로 교체하는 건 선수단 화합 등 여러 측면에서 옳은 선택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 감독은 "부상 등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이번에 선정되는 12명이 리우 본선까지 간다"고 덧붙였다.

12명 선정 기준은 올림픽 본선에서 만나게 될 세계 정상급 강팀들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한국의 목표가 조별 리그 통과가 아닌, 메달 획득이기 때문이다. 어떤 선수 구성이 최선의 조합인지는 이 감독의 판단에 달려 있다.

이 감독은 리베로 활용 방안에 대해 고심이 많아 보였다. 그는 "리베로 2명을 모두 데리고 가되, 리베로는 1명만 지정하고 다른 한 명의 리베로는 공격수로 지정해서 기존의 공격수 중 수비에서 흔들리는 선수가 발생할 때 교체 선수로 투입해 수비를 강화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이번 세계 예선전에서 일본이 리베로인 자야수(Zayasu)를 그런 식으로 활용했다. 다만, 이런 선택을 할 경우 현재 5명인 레프트 선수를 본선 명단에서 제외할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이 감독은 리베로 김해란의 팔꿈치가 정상이 아니라 리베로를 한 명만 데리고 갈 경우 리스크가 있고, 리베로를 2명으로 지정하는 것은 전력상 비효율적이라는 점도 함께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8강 진출은 '무난', 8강전부터는 '험난'

 지난 20일 올림픽 세계 예선전에서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이 페루전 승리 후 세레모니를 하고 있다.

지난 20일 올림픽 세계 예선전에서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이 페루전 승리 후 세레모니를 하고 있다. ⓒ 국제배구연맹(FIVB)


한편, 국제배구연맹(FIVB)은 지난 23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리우 올림픽 본선 조 편성 결과를 발표했다.

한국은 개최국인 브라질과 함께 A조에 배정됐다. A조에는 브라질(세계랭킹 3위), 러시아(4위), 일본(5위), 한국(9위), 아르헨티나(12위), 카메룬(21위)이 편성됐다. B조는 미국(1위), 중국(2위), 세르비아(6위), 이탈리아(8위), 네덜란드(14위), 푸에르토리코(16위)가 포함되면서 '죽음의 조'가 됐다.

올림픽 본선은 이처럼 12개 팀이 6팀씩 2개 조로 나뉘어 풀리그로 경기를 펼친다. 그런 다음 각 조 1~4위까지 8강에 진출한다. 8강전부터 결승까지는 토너먼트로 경쟁을 한다. 8강전에서 지면 공동 5위가 확정되고, 4강에서 지면 3~4위전을 치러 동메달을 확정한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8강전 대진표가 A조 1위-B조 4위, A조 2위-B조 3위, A조 3위-B조 2위, A조 4위-B조 1위로 짜여졌다.

그에 따라 5전 전승으로 A조 1위를 차지한 러시아가 8강전에서 B조 4위 브라질을 만나 세트 스코어 2-3으로 패하면서 탈락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반면, 조별 리그에서 고전했던 브라질은 8강전부터 승승장구하며 금메달까지 거머쥐었다.

리우 올림픽도 8강전 대진표를 같은 방식으로 할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배구 관계자들은 같은 방식이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한다.

A조에 속한 6개 팀의 최근 전력과 경기력을 감안하면, 한국은 8강까지는 무난하게 올라갈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브라질과 러시아는 한국보다 한 수 위로 평가되지만, 일본, 아르헨티나, 카메룬과는 충분히 해볼 만하기 때문이다.

일본에게는 이번 세계 예선전에서 3-1로 승리했고, 아르헨티나는 지난해 월드컵 대회에서 3-0으로 완승을 거둔 바 있다. 카메룬도 한국보다는 전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브라질과 러시아도 국가대표 1진끼리 맞붙어 한국이 승리한 경험이 있다. 브라질은 런던 올림픽 조별 리그에서 한국이 3-0으로 완파한 좋은 기억이 있다. 러시아는 2014년 월드 그랑프리 대회에서 김연경이 혼자서 42득점을 퍼부으며 3-1로 승리한 바 있다. 그러나 브라질은 이번 올림픽에서 홈 팀으로서 이점이 있고, 러시아는 2년 전보다 경기력이 더 좋아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제는 B조 팀과 맞뭍게 될 8강전부터다. 이정철 감독도 "한국이 8강에 올라간다면, 8강전이 가장 중요한 경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8강에서 만날 것으로 예상되는 B조 팀들이 너무 세다"며 "준비를 잘 하겠지만, 하늘도 좀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특히 서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강팀과 경기 때는 우리 서브가 강하고 까다롭게 들어가야 한다. 서브로 상대방의 리듬을 흔들어놔야 승산이 생긴다"고 말했다.

올림픽 본선에서는 상대적 약팀이라고 얕잡아 보는 것도 금물이지만, 강팀이라고 지레 위축될 필요도 없다. 철저한 사전 준비와 훈련만이 40년 만의 메달 획득이라는 꿈을 실현시켜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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