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스페인 영화 <캄포스>는 자기만의 독특한 색깔을 잘 유지한 영화이다. 스페인 공포 영화의 맥을 잇는 이 색깔은 예측과 관성을 불허한다.

▲ 공포 스페인 영화 <캄포스>는 자기만의 독특한 색깔을 잘 유지한 영화이다. 스페인 공포 영화의 맥을 잇는 이 색깔은 예측과 관성을 불허한다. ⓒ (주)메인타이틀 픽쳐스


1990년대 후반부터 전성기를 맞이한 스페인의 공포 영화는 선명한 자기 색깔로 유명하다. 자신만의 고유한 장르 지형을 개척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는 스페인 공포 영화는 정형화된 장르의 관습을 거부한다. 좀비로 가득한 건물에 갇힌 사람을 페이크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에 담았던 <알.이.씨>와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오퍼나지-비밀의 계단>은 대표적인 스페인산 공포 영화다. <더 바디> <이머고> <줄리아의 눈> <마마>도 스페인이 공포의 명가로 자리 잡도록 만든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알.이.씨> 시리즈를 제작한 필맥스가 내놓은 <캄포스>도 주목할 만한 스페인의 공포 영화다.

다른 영화와 그 결을 달리하는 공포

누가 괴물인가 괴물이 됐다가 인간이 됐다가, 등장인물들은 서로 쫓고 쫓기며 두려워 하고 동시에 괴로워 한다.

▲ 누가 괴물인가 괴물이 됐다가 인간이 됐다가, 등장인물들은 서로 쫓고 쫓기며 두려워 하고 동시에 괴로워 한다. ⓒ (주)메인타이틀 픽쳐스


<캄포스>엔 스페인과 할리우드 공포 영화에 잔뼈가 굵은 인물로 가득하다. <알.이.씨> 시리즈를 연출한 자움 발라구에로 감독이 제작 총지휘로 참여했다. 필맥스 그룹을 지휘하는 훌리오 페르난데즈와 <컨저링>과 <애나벨>을 제작한 피터 샤프란도 힘을 보탰다.

<캄포스>의 연출을 맡은 이는 <알.이.씨 2> <페인트볼>에서 프로듀서를 하고, <더 헌터> <레트리뷰션 : 응징의 날>의 시나리오를 썼던 알베르토 마리니다. <슬립타이트>로 제16회 판타지아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으며 명성을 높였던 그는 <캄포스>에 연출과 각본으로 참여하며 처음으로 메가폰을 잡았다.

영어 캠프의 선발대이자 강사로 스페인의 외딴 마을을 찾은 안토니오(안드레스 벨렌코소 분), 윌(디에고 보네타 분), 크리스트(조셀린 도나휴 분), 미셀(메이애라 월시 분)은 작은 파티를 연다. 지하실에서 와인을 찾던 안토니오가 갑자기 검은 피를 토하면서 윌을 공격하는 일이 발생한다. 이를 보고 겁에 질려 도망친 크리스티와 미셀. 그런데 미셀마저 갑자기 변하며 공격하기 시작한다.

바이러스를 소재로 삼아 감염된 자와 감염되지 않은 자의 사투를 그린 <캄포스>에서 인물을 바꾸어 가면서 싸움을 한다는 설정은 눈길을 끈다. <월드워 Z> <28일 후> <알.이.씨> <크레이지> 등 바이러스를 소재로 다루었던 영화에서 감염된 자는 보통 다시 인간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반면에 <캄포스>의 바이러스는 일정한 시간이 흐른 후엔 정상으로 돌아온다. 여기에서 <캄포스>는 좀비, 또는 바이러스를 소재로 삼았던 다른 영화와 차별을 형성한다.

바뀌는 인물, 바뀌는 싸움

시간이 지나면 다시 인간으로 되돌아오고, 괴물이 된 상태에서 마음껏 욕망을 표출하는 <캄포스>의 설정은 <지킬 박사와 하이드>에서 빌린 '가면 놀이'의 변형이다. 계속해서 적이 변하는 상황에 대해 연출을 맡은 알베르토 마리니는 "영화 속에서 누가 친구이고 누가 적인지 절대 확신할 수 없게 된다, 결코 가담하고 싶지 않지만 벗어나기 위해선 때로는 공격만이 유일한 방법인 게임이 시작된다"고 설명했다.

영화는 인물을 번갈아 가며 괴물로 만든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는 집 안팎을 분주히 오가며 생존의 '술래잡기'를 벌인다. 처절하면서, 황당한 가면 놀이와 술래잡기는 계속 이어진다. 뒤바뀌는 술래와 "날 믿어야 해"를 외치는 인물을 보여주며 영화는 신뢰와 의심 사이에서 줄타기한다. 괴물이 되었다가 인간으로 돌아온 사람이 "내가 누굴 죽인 건데?"라고 괴로워하는 대목에선 죄의식도 건드린다.

<알.이.씨> 시리즈에 참여했던 알베르토 마리니는 최근 작업한 두 편의 영화, 각본을 쓴 <최후의 인류>와 각본과 연출을 맡은 <캄포스>에서 모두 바이러스를 소재로 주목했다. 일반적인 좀비 영화처럼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인류가 멸망하고, 9년이 흐른 시간을 담은 <최후의 인류>는 <나는 전설이다>를 변주한 듯한 종말론적 세계를 가져오고, 여기에 <에이리언>의 액션 색채를 가미했던 수작이다.

<캄포스>는 슬래셔 영화의 전통을 바탕으로 좀비 영화의 변화를 꾀하며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 호러 영화나 좀비 영화에서 익히 보았던 장면들을 영화의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인물을 숨어서 응시하는 시선이나 정체를 알 수 없는 낯선 자는 슬래셔(얼굴을 가린 살인마가 등장하는 영화) 장르의 관습에서 가져왔다. 사방에서 공격하는 감염된 자들은 좀비 영화에 언제나 등장하는 장면이다. 이렇듯 장르 문법을 충실하게 활용한 <캄포스>는 가면 놀이와 술래잡기를 더해 나름의 변형을 가하면서 새로운 재미를 끄집어낸다.

<캄포스>는 제한된 공간에서 긴장과 공포를 추출한, 저예산 장르 영화의 모범 답안과도 같다. "공포로 무장한, 아드레날린을 솟구치게 하는 특별한 영화로 관객들을 사로잡길 바란다"는 알베르토 마리니 감독의 바람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장르 영화의 팬은 <캄포스>를 꼭 보시길 추천한다.

영화 <캄포스>의 포스터 지난 12일 개봉한 영화 <캄포스>. 저예산 영화이지만, 스페인 장르 영화 특유의 매력을 마음껏 뽐내는 작품이다.

▲ 영화 <캄포스>의 포스터 지난 12일 개봉한 영화 <캄포스>. 저예산 영화이지만, 스페인 장르 영화 특유의 매력을 마음껏 뽐내는 작품이다. ⓒ (주)메인타이틀 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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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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