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곡성>의 한 장면.

영화 <곡성>의 한 장면.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전라남도 곡성(谷城)이 배경인 영화 <곡성>(哭聲). 중의적 단어를 제목으로 했을 때부터 단번에 알아봐야 한다. 6년 만에 신작을 들고온 나홍진 감독이 뭔가 단단히 준비하려 했다는 걸 말이다.

지난 3일 언론에 최초 공개된 이후 영화에 대한 여러 평이 나오고 있다. 공통적으로 영화의 기괴한 분위기를 언급하며 나홍진 감독 특유의 이야기 장악력을 미덕으로 꼽는 모양새다. 분명 그렇다. 창작자로서 나홍진 감독의 특징을 꼽자면 강한 자아(ego)로 설명할 수 있고, 그걸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이 뛰어난 이로 말할 수 있다.

대체 왜

평야와 여러 산으로 둘러싸인 곡성은 지형적으로 보아도 비밀과 신비감을 담보하기에 충분하다. "어릴 적 많이 놀러다녔다"던 나홍진 감독이 "꼭 영화에 담고 싶은 공간"이라 말했을 정도로 작품을 위해선 천혜의 자연환경이다. 이곳을 중심으로 순천, 구례, 고창 등 주로 남도 모습이 영화에 잘 담겨있다.

이 공간을 채우는 건 시골 청년으로 대표되는 순경 종구(곽도원 분)다. 영화의 긴장감을 이끌어 가기엔 부족해 보이는 이 평범한 인물은 감독이 추후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질문을 던지기 위한 더없이 훌륭한 재료가 된다. 아내와 홀어머니, 그리고 어린 딸과 함께 살아가는 이 인물에게 말 그대로 끔찍한 비극이 몰려오기 때문이다.

하나씩 사라지는 마을 사람들, 정체를 알 수 없는 외지인을 교차시키며 영화는 서서히 관객을 옥죄기 시작한다. 물론 '집단 야생 버섯 중독'이라는 밑밥은 깔아놓고 말이다. 그러니까 영화는 원인을 가려놓은 채로 왜 마을에서 원인 모를 기이한 사고가 이어지는지 보여주는 데 주력한다.

일반적인 스릴러처럼 보이지만 나홍진 감독은 특유의 집요함을 발휘해 장르를 비튼다. 끔찍한 사건을 나열해놓고 그 원인을 나중에 밝히는 전형적인 스릴러로 예상했다면 그를 너무 띄엄띄엄 파악한 거다. 무당 일광(황정민 분)과 무명(천우희 분) 등 예고된 주요 인물들이 중후반부에 등장하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작품의 주연으로 충분히 활약할 이들이 상대적으로 적은 분량을 감수하고서 정체를 숨겨온 까닭은 바로 <곡성>이 궁극적으로 던져야 할 질문과 맞닿아있다.

그 질문을 한 문장으로 정리해보면 '대체 왜 비극적 사건이 내게 혹은 당신에게 일어나는가'다. 따져보면 아무 인과 관계도 없는 사고들이 순수하고 평범해 보이는 보통 사람들에게 일어난다. 그래서 미칠 노릇이다. 원인을 도대체가 알 수 없으니 선택해야 한다. 그냥 받아들이던가, 미쳐버리던가.

철저히 감추다

 영화 <곡성>의 한 장면.

영화 <곡성>의 한 장면.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관객 입장에선 딸을 살리기 위해 처절하게 동분서주 하는 종구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그나마 이성적으로 이해 가능한 인물이니 말이다. 그가 무당 일광에게 의지하다가도 젊은 신부를 찾고, 때로는 근본을 알 수 없는 무명의 말에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은 곧 우리 사회 내에서 숱하게 벌어진 사건사고들의 아픈 이면이기도 하다. 가여운 영혼들이 그 사고 앞에서 무력감에 얼마나 울부짖었겠는가.

그래서 <곡성> 전면에 등장하는 여러 종교적 수사들은 일종의 미끼다. 예를 들면 십자가에 못 박힌 뒤 사흘 만에 부활한 예수가 제자들에게 다가가 던졌다는 말. "어찌하여 당황하느냐,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을 품느냐,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보아라"라는 성경 구절 등이 영화에 나온다고 기독교적 관점으로 해석한다거나, 영험한 굿을 준비하는 일광을 두고 토속적 신비주의로 푸는 건 영화를 게으르게 보는 태도일 수 있다. 그 어떤 종교도 <곡성> 안에서 원인 규명과 사건 해결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각각의 상징만 선별적으로 차용했다고 받아들이는 게 타당해 보인다.

그것에 대한 또 다른 증거가 바로 나홍진 감독의 앵글 활용이다. 전작 <추격자>(2008)와 <황해>(2010)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요소인데, 유독 나 감독은 클로즈업(대상을 가까이 잡는)과 롱샷(대상을 멀리 잡는)을 명민하게 사용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화면 구성을 통해 의도적으로 정서를 만들어가는 셈이다. 언급한 두 작품에선 클로즈업과 익스트림 클로즈업(더욱 대상을 가까이 잡는)을 주로 활용했다면, <곡성>에서 나 감독은 중요한 순간에 롱샷 혹은 익스트림 롱샷(전체 풍경을 보이는)을 쓴다.

한창 긴장감이 고조되는 순간 등장하는 원거리 풍경은 관객들로 하여금 사건에 대한 일종의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 즉, 영화 속 주요 캐릭터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에 관객이 몰입할라치면 한 번씩 감독이 방해를 하는 건데, 그 모든 종교와 신앙을 의심해보라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곡성>은 철저히 감추는 영화다. 스릴러 장르로 이 작품을 단순히 분류할 수 없는 이유기도 하다.

미분과 적분

 영화 <곡성>의 한 장면.

영화 <곡성>의 한 장면. ⓒ 이십세기폭스 코리아


근대에 접어들며 합리주의가 발달한 이래 인류는 줄곧 미분적 사고에 익숙해져 왔다. 끊임없이 현상과 세계를 분석하고 해체하면서 이치와 원인을 따지는 작업 말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건 고대 그리스, 고대 이집트인들은 그 반대로 세상의 이치를 발견해왔다는 사실이다. 그림자의 움직임으로 시간을 계산하거나 수면의 차이를 통해 부피를 알아내는 식으로 말이다. 부분을 통해 전체를 가늠하는 사고는 곧 일부 사건을 통해 지금의 현실을 직시하기 위한 주요한 덕목이기도 하다.

이런 식으로 <곡성>에 접근하면 결국 이 작품에 흐르고 있는 세상에 대한 인식은 적분적 사고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과연 신이 존재하는지조차 의심하게 만드는 세상의 온갖 비극은 왜 생기는 걸까. 나의 사소한 잘못 때문에? 조상 혹은 신의 분노를 사서? 하나씩 원인을 찾기보다 그냥 이 세상에 존재하는 우리 모습을 통해 이치를 따져보는 건 어떨지.

한편으로 감독의 의도와는 별개로 이 영화가 의심스럽기도 하다. 서사 전개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다는 사실은 혹 <곡성>이 단지 상징과 이미지만 나열해 놓고 그럴싸하게 포장한 미완성품이 아닐까 생각하게 한다. 만에 하나 그렇다고 쳐도 참 치열하게 만들고 찍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케릭터 또한 소모적으로 쓰이지 않았다. 이것만으로도 높게 평가할만하다.

참고로, <곡성> 측이 전면에 내세운 홍보 문구를 보자. '절대 현혹되지 마라'이다. 이렇게 대놓고 미끼를 던졌으니 우린? 기꺼이 물고 현혹되어 주면 된다. 기괴함 너머에 그가 던지는 여러 질문들이 마음에 남을 것이다.

오마이스타's 한줄평 : 156분 내내 분위기를 장악해 놓고 큰 숙제 하나를 던지다. 그런데 그 숙제 풀이가 꽤 즐겁다.

평점 : ★★★★ (4/5)

 영화 <곡성>의 포스터.

영화 <곡성>의 포스터.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덧붙이는 글 영화 <곡성> 관련 정보

각본/감독 : 나홍진
출연 : 곽도원, 황정민, 쿠니무라 준, 천우희, 김환희
제작 : 사이드미러, 폭스 인터내셔널 프로덕션
제공 : 이십세기폭스
배급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해외배급 : 화인컷
크랭크인 : 2014년 8월 31일
크랭크업 : 2015년 2월 28일
개봉 : 2016년 5월 12일
관람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 156분
곡성 곽도원 황정민 천우희 김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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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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