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백>의 각본을 쓴 정재홍 작가와 지난 3일 홍대입구역 근처에서 만났다.

<자백>의 각본을 쓴 정재홍 작가와 지난 3일 홍대입구역 근처에서 만났다. ⓒ 이영광


7일 폐막한 17회 전주 국제 영화제에서 국정원의 간첩 조작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자백>이 관객을 끌어모아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자백>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사건'으로 알려진 유우성씨 사건을 큰 줄기로 탈북자들과 재일 동포에 대한 국정원의 간접 조작을 고발한 영화다. 이 영화는 비영리 독립언론인 <뉴스타파>에서 제작해서 더욱 화제를 모았다.

영화 제작 뒷이야기가 궁금해 각본을 쓴 정재홍 작가를 지난 3일 홍대입구역 근처 사무실에서 만나 영화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과 참여하게 된 계기 등을 들어 보았다. 다음은 정 작가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방송쟁이'들이 만든 영화

영화 <자백>의 한 장면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넷팩상과 한국단편경쟁 부문 우수상을 차지한 <자백>은 최승호 <뉴스타파> PD가 감독이 된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정재홍 작가는 이 영화의 각본을 맡았다.

▲ 영화 <자백>의 한 장면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넷팩상과 한국단편경쟁 부문 우수상을 차지한 <자백>은 최승호 <뉴스타파> PD가 감독이 된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정재홍 작가는 이 영화의 각본을 맡았다. ⓒ 시네마달


- 다큐멘터리 영화 <자백>이 전주 국제 영화제에서 상영되어 반응이 뜨거웠는데 소감은 어때요?
"첫날과 둘째 날 객석에서 봤는데 관객들이 진지하게 보시더라고요. 일반인도 계시고 언론 쪽 관계자들이 있어서 그럴 것이라 생각은 됩니다.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굉장히 진지하고 몰입도가 높았던 것 같아요, 영화인들 이야기를 들어도 뭔가 가능성이 보인다는 얘기가 많아서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지 않느냐는 희망을 가졌어요.

<자백>에서 나오는 수익은 모두 국가 폭력 피해자들이 변론하는 데 쓰이기 때문에 <뉴스타파>나 제작진이 별도로 돈을 받는 건 없어요. 그러나 상업적으로 성공한다는 건 많은 사람이 본다는 의미이고 그렇게 됐을 때 우리 사회, 특히 국정원이 변할 수 있죠. 해방 이후 70년 동안 냉전 이데올로기로 장사한 부분이 바뀌어야죠, 그런 부분에서 이 영화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어요."

- 반응이 뜨거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작진이 가져왔던 진정성이 관객들에게 통하지 않았나 생각해요. 특히 최승호 PD가 가진 '국정원은 바뀌어야 한다'는 신념과 책임을 묻는 국가 폭력 피해자에 대한 애정 등이 관객들에게 감성적으로 다가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 <자백>에 작가로 참여하셨잖아요. 어땠어요?
"제가 <PD수첩>을 할 때 간첩으로 몰린 대한민국 국적의 사람, 특히 납북어부 이야기로 '누명'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분노도 하고 느낀 점이 많아요. 한국사회에서 간첩이라고 하면 무협지에 나오는 멸문지화라는 게 있잖아요. 혼자 죽는 게 아니고 온 집안이 멸문의 화를 당하는 거죠. 당시 누명을 취재했을 때, 가정이 해체됐기 때문에 취재하기가 어려워요.

이번에 최승호 PD가 탈북자 취재한 걸 가지고 영화를 하자고 했을 때 제가 '누명' 프로그램을 하면서 느낀 부분들과 같이 상승됐다고 할까요. 누군가는 해야 했는데 아무도 하지 않았던 아이템이에요. 그리고 모두가 알아야 할 문제인데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문제제기이기도 하고. 나름 하고 싶다는 생각과 같이하게 돼 기쁘다는 것, 그리고 꼭 해야겠다는 생각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 '누명'이라는 프로그램이 도움되었을 것 같아요.
"네 도움되죠. 왜냐면 간첩 시스템을 잘 못 알면 관객과의 대화에서도 나왔지만, 그 사람들이 애국심을 갖고 간첩을 박멸하는 과정에서 억울한 사람이 나올 수 있지 않냐고 하는데 '누명'을 제작할 때나 <자백>을 제작하며 느낀 점이 뭐냐면 간첩은 철저하게 마케팅이에요. 간첩을 만들려는 사람이 있고 그걸 이용해서 어떤 효과를 얻으려는 사람이 있고 그걸 유통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래서 최종적으로 이득을 얻는 집단이 있고 그래서 간첩이 실제로 존재해서 있다기보다는 간첩을 만들어 내고 우리 사회에 유통함으로써 특정 목적을 달성하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누명' 할 때도 느꼈고 이번에 <자백>할 때는 더 세게 느꼈던 거죠."

- <자백>은 어떤 영화인지 간단하게 소개 부탁드려요.
"언론에는 유우성씨 이야기라고 소개되는데 사실 그게 아니라 아주 '나쁜 놈들 이야기'예요. 간첩이 아니라는 걸 아는 상태에서 간첩을 지목하고 사람을 희생시키는 대가로 자기는 출세하는 나쁜 사람들. 정통성 없는 권력이 안보 이데올로기를 이용해 간첩을 만들고 국민을 겁줘서 권력을 계속 견고하게 다지는, 대한민국 줄기를 이뤄온 몹시 나쁜 사람들 이야기죠."

- 기존에 방송국에서 시사 프로그램 작가로 활동하셨잖아요. 그것과 다큐멘터리 영화의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
"아직 영화는 잘 몰라요. 방송은 초 단위로 채널이 돌아갈 수 있어요. 재미없으면 바로 돌아가기 때문에 굉장히 촘촘히 구성되고 '느낌을 주는 것들'이 힘들어요. 예컨대 롱샷을 사용하면 '채널 돌아가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그러나 영화는 일단 화면 자체가 TV 모니터와 다르기 때문에 언어 자체가 다른 것 같아요. 중간에 작업하면서도 그랬고 상징적인 것들을 곳곳에 박아야했고, 충분히 관객들이 느낄 수 있도록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방송쟁이들이 만든 영화라서 호흡이 짧다는 생각을 대형 스크린 보면서 했어요."

- 아쉬움도 남을 것 같아요.
"많이 남죠, 영화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잖아요. 물론 <트루맛쇼>와 <쿼바디스>를 만든 김재환 감독이 프로듀서로 참여해 저희가 가진 약점이 보강돼 나온 게 이번 영화죠. 그럼에도 영화인들이 봤을 때는 약간 부족감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개봉할 때는 보완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원세훈 국정원장은 우산 속에서 웃고 있었다

 <자백>의 정재홍 작가는 3년 동안 취재해 온 결과물을 추려내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고 한다.

<자백>의 정재홍 작가는 3년 동안 취재해 온 결과물을 추려내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고 한다. ⓒ 이영광


- 무엇이 힘들었나요?
"사실 저는 힘들다고 이야기하기 어렵습니다. 최승호 PD가 3년 동안 취재해온 것인데 취재에는 제가 관여하지 않았어요. 취재한 것으로 영화를 만들자고 합의가 된 순간부터 같이하게 됐죠.

<자백>에 나온 간첩 사건이 4건이잖아요. 처음에는 그것 말고 다른 간첩 사건도 다 고려한 거예요. 7~8개 됐는데 3년 동안 취재해온 것이라 양이 많아요. 사건도 많을뿐더러 한 사건 안에도 이 사람이 간첩인지 아닌지, 그런 팩트를 다룬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장악하기가 힘들었어요.

그래서 상대적으로 계속해온 최 PD가 큰 역할을 했고 이후 영화 만드는 단계에서도 역시 제일 잘 알았기 때문에 나머지 스텝들이 그 엄청난 내용을 파악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힘든 과정이었습니다. 그 속에서 버릴 건 버리고 추릴 건 추려서 90분으로 만들었는데, 그런 과정들이 작가로서는 힘들었죠.

처음부터 같이 했다면 팩트들을 장악할 수 있었을텐데 뒤늦게 결합하는 과정에서 최 PD가 3년 동안 엄청나게 해온 부분들이 짧은 시간에 파악해서 한다는 게 힘들었습니다."

- 정 작가에게 가장 인상 깊은 영화 속 장면은 무엇인가요?
"영화에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우산을 뒤집는 장면이 있는데 부인의 초상권 등 여러 가지 걸려서 그걸 빼자는 얘기가 많았어요. 그런데 이미 피해자들이 있고 무죄가 난 상황에서 거기에 대해 언론인이 혹시 사과할 생각이 없느냐고 했는데 그걸 경호원들을 동원해 밀치면서 우산 속에 히죽히죽 웃고, 기억도 안 나서 사과를 안 하겠다는 거잖아요. 그것이 바로 간첩을 대하는 오늘날의 권력집단을 상징하는 것이라 보거든요.

미안한 게 없는 거예요. 냉전 시스템 아래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억울한 사람이 발생하더라도 권력이 유지된다면 정당화되지 않느냐는 거죠. 집안이 멸문되든지 정신병에 걸리든지 사형을 당하든지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든지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간첩을 어떻게든 조작해서 권력을 공고히 하는 것이 우선되지 않느냐는 뉘앙스. 원세훈씨가 우산 속에서 웃는 모습이 그걸 느끼게 만든다고 봐요."

- 영화를 여러 번 보셨을 텐데 볼 때마다 다른가요?
"간첩으로 몰렸을 때 옆에 어설프게 갔다가는 자기도 간첩으로 몰리는 상황이기 때문에 아무도 안 도와주잖아요. 주책없이 눈물이 나더라고요. 제가 고생해서라기보다 그들의 고단한 삶이 느껴져서 감정이입된 것 같아요.

또 한편, 최승호라는 언론인이 MBC에서 해직되어 길거리에 나앉았음에도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MBC 있을 때보다 열심히 권력에 비판과 검증 등 언론 본연의 자세를 실행해 나가는 것을 볼 때도 가끔 눈물이 나요. 이명박이라는 권력과 김재철이라는 하수인이 MBC를 저렇게 망가뜨린 이유도 최승호라는 PD를 쫓아내기 위해서였죠.

하지만 그럼에도 쫓겨나서 그냥 패배하지 않고 오히려 <PD수첩>에 있을 때보다 더 강하고 건강해졌죠. 최 PD가 검찰을, 국정원장이라든지 김기춘 전 비서실장을 엠부시할 때 저게 바로 언론인을 떠나서 우리가 본받아야 할 모습이 아닌지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고생했던 지난날들이 떠올라 눈시울이 붉어질 때가 있어요."

- 중점을 둔 부분은 어디인가요?
"탈북자의 문제도 아니고 재일 동포의 문제도 아니고 간첩으로 몰린 납북어부의 문제도 아니고 일부 운 없는 사람들의 문제도 아니고 바로 너와 나의 문제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통진당 사태에서 봤지만 이 기자나 저조차 나중에 무죄가 나더라도 일단 국정원, 경찰 수사기관이 간첩으로 엮어 버리면 모든 주변의 사람들이 떨어져 나갑니다. 그리고 변론이 되지 않으면 그 속에 검사들이 유죄 구형을 하고 판사들이 유죄 판결을 하게 되면 저항할 수 없어요.

사람들이 무능해서 그런 게 아니에요. 무죄로 나온 간첩사건 가운데 똑똑한 사람들 많아요. 그러나 일단 간첩으로 지목되면 벗어나기 힘들죠. 그 누구도 브레이크를 걸지 않은 가운데 지난 70년 동안 계속돼 온 거예요. 간첩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내일이라도 내게 일어날 수 있는 문제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어요.

마지막에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이 '대한민국에 간첩 2만 명이 있는데 왜 안 잡냐'고 묻잖아요.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황교안 현 총리는 열심히 하겠다고 해요. 2만 명에는 그 누구도 속할 수 있는 거예요. 간첩이라 걸리는 게 아니라 만들면 걸리는 게 우리 현실인 거죠."

배급망 갖추는 게 관건... 정식 개봉은 9월 정도

- 국민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전주에서 영화 끝나고 맥주 마시며 천만 명만 이 영화 봐주면 세상이 변할 거라는 말을 했어요. 또한 전주에서 확인되었다시피 영화에 일반인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가 있다고 확인된 것 같습니다. 일단 가장 중요한 건 배급망을 갖추는 거예요.

부산 국제영화제 사태도 있어 멀티플렉스에서 이 영화를 안 걸려는 경향이 있지만 <자백>은 돈 되는 영화라는 가능성을 전주에서 보았기 때문에 많은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걸고 시민들이 가서 보고 좋으면 입소문 내주고 하면 세상이 바뀐다고 봅니다. 국정원도 영화 상영을 방해하기 어려울 거예요."

- 개봉은 언제 즈음 인가요?
"개봉이 제일 고민스러운데 일단 영화관 확보가 되어야 해서 비수기인 9월 정도가 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전주 국제 영화제에서 반응이 나오면 시기는 조정될 것으로 봐요. 이게 사람들이 볼만한 영화라는 것이 전주에서 확인되지 않았나 생각해요. 그게 성과죠."

- 마지막으로 <오마이뉴스> 독자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영화를 만드는 것도 어렵지만, 상영도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물론 그래선 안 되지만 검찰이나 국정원 같은 국가기관들이 자신의 잘못과 치부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영화를 정상적으로 유통되도록 놔둘 것인지 걱정이 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시민들이 이것을 조금이라도 보시고 지지를 해주신다면 영화는 성공할 수 있다고 봐요. 지금은 권력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회도 아니잖아요. 시민의 힘과 권력의 힘 중 누가 더 큰가에 따라 이 영화가 성공하느냐가 달린 것 같아요. 그래서 <오마이뉴스> 독자분들도 입소문 많이 내주시고 많이 보시길 바랍니다."

정재홍 자백 국정원 간첩 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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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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