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올 시즌 한화와의 첫 3연전에서 1승 2패로 밀렸다. 삼성은 시즌 초반부터 하위권으로 밀려나며 순탄치 않은 행보를 예고했다.

패배도 패배지만 트라우마로 남을만한 시리즈였다. 삼성은 한화를 상대로 이번 3연전에서 두 번이나 8회 역전패를 당했다. 29일 1차전에서 7회까지 5-3으로 앞서다가 8회에만 7점을 내주는 빅이닝을 허용하며 5-10으로 충격적인 역전패를 당했다. 1일에도 1회에만 5실점을 내주며 끌려다가다 난타전 끝에 결국 8-9로 재역전패했다.

삼성은 지난 해부터 유독 한화만 만나면 경기가 꼬인다. 한화가 2012년부터 2014년까지 3년 연속 꼴찌를 기록하는 동안 삼성은 한화를 상대로만 3년간 무려 36승(1무 14패)을 쓸어담았다. 결과만 아니라 내용 면에서 한화는 투타 모두 삼성만 만나면 맥을 추지못했다. 삼성의 통합 4연패에 가장 기여했던 숨은 조연이 한화였던 셈이다.

지난해 모처럼 상대 전적이 역전된 것은 김성근 감독의 부임부터다. 한화는 2015시즌 또다시 포스트시즌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정규리그 우승팀 삼성을 상대로는 10승 6패로 유독 강한 모습을 보였다. 한화가 삼성을 상대 전적에서 이긴 것은 2011년(10승 9패) 이후 처음이었다. 공교롭게도 삼성이 유일하게 정규시즌 상대 전적에서 밀린 팀이 바로 한화였다.

삼성과 김성근의 오랜 악연

 1일 대전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화와 삼성의 경기. 한화 로사리오가 1회말 2사 1루에서 홈런을 날리고 베이스를 돌고 있다.

1일 대전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화와 삼성의 경기. 한화 로사리오가 1회말 2사 1루에서 홈런을 날리고 베이스를 돌고 있다. ⓒ 연합뉴스


사실 삼성과 김성근의 관계는 오랜 악연에 가깝다. 김성근은 91년 삼성의 지휘봉을 잡았으나 성적 부진과 선수단간의 불화속에 2년만에 경질당했다. 삼성 시절은 김성근의 지도자 인생에서 대표적인 흑역사로 거론된다. 이때부터 김시진, 류중일, 이만수 등 대표적인 삼성의 레전드 출신 야구인들과는 이후로도 껄끄러운 사이가 됐다.

훗날에도 김성근 감독이 유독 삼성만 만나면 평소보다 더 악착같이 승부에 집착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평가다. 김성근은 2002년 LG 지휘봉을 잡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여 예상을 깨고 선두 삼성과 6차전까지 가는 명승부를 치렀다. 당시 승자인 김응용 감독이 김성근 감독을 칭친하며 '야구의 신'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이후 김성근의 별명으로 굳어졌다.

김성근 감독의 전성기였던 SK 시절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김성근의 SK는 2007년부터 2010년까지 4시즌 모두 한국시리즈에 올라 3번이나 우승을 차지했다. 2010년에는 선동열 감독이 이끌던 삼성을 4-0으로 완파하기도 했다. 김 감독은 2011년 SK에서 경질되기까지 삼성을 상대로 46승 2무 39패로 강한 모습을 보였다. 공교롭게도 삼성은 김 감독이 SK에서 물러난 해부터 통합 4연패와 정규시즌 5년 연속 우승을 차지하며 전성기를 열었다.

김성근 감독은 이후로도 자서전과 인터뷰, 방송 등에서 여러 번 삼성의 우승과 팀 운영을 폄하하는 듯한 발언으로 구설수에 오르며 삼성 팬들의 심기를 긁었다. 김 감독은 자서전 <김성근이다>에서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을 거론하며 "더러운 걸 덮는다고 덮어지지 않는다. 내용이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며 삼성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부정하는 듯한 언급을 했다.

2011년 삼성의 우승 이후에는 그 공을 "선동열이 남겨놓은 것"이라고 평가하여 현역 류중일 감독을 머쓱하게 했다. 고양 원더스 감독 시절에는 종종 해설가로 등장하여 "류중일 감독이 벤치에서 편안하게 선글라스만 쓰고 있다", "차우찬의 부진을 고치지 못하는 것은 벤치의 문제다. 그건 프로도 아니다"라는 식으로 조롱하는 발언을 남발하여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반면 류중일 감독은 김성근 감독처럼 대놓고 공격한 적은 없지만, 간접적으로 김 감독의 야구스타일을 비판하는 듯한 언급을 남긴 적이 있다. 류 감독은 지난 해 "상대 투수 투구폼을 지적하여 흔들려고 하거나, 선수들을 쥐어짜내서 이기는 야구는 하고 싶지 않다. 설사 그렇게 이겨도 창피하다"며 우회적으로 일침을 날렸는데, 김성근 감독을 겨냥한 것이라는 시각이 대부분이다.

류중일-김성근 두 감독의 상대 전적은 18승 14패로 현재까지 김성근 감독의 근소한 우위다. 류중일 감독의 사령탑 데뷔 첫해이자 김 감독이 경질되기 직전 SK를 상대로는 7승 6패로 앞섰으나 지난해 김 감독이 한화로 복귀하면서부터 상대 전적이 역전됐다.

너무 다른 류중일과 김성근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두 감독의 리더십은 대조적이다. 김성근 감독은 야구는 감독이 한다는 야구관을 지녔다. 선수 교체와 작전 구사가 많고 경기 운영의 세세한 부분까지 개입하기로 유명하다. 반면 류중일 감독은 몇 경기 부진하더라도 선수들을 최대한 믿고 맡기는 유형에 조금 더 가깝다.

김 감독이 단기간에 성과를 끌어내는 데 강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선수들을 혹사하고 창의성을 억압한다는 비판을 받는다면, 류 감독은 선수들의 역량을 자연스럽게 끌어내는 데 능하여 장기레이스에서 강하다. 그러나 종종 특정 선수와 이름값에 대한 믿음이 지나쳐 낭패를 보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게 약점으로 지적된다.

삼성이 최근 한화를 상대로 고전하고 있는 것은 감독들의 성향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번 3연전은 김성근 야구 특유의 장점과 류중일 야구의 단점이 상극을 이루는 형상이었다.

삼성은 1,2차전에서 장원삼-윤성환을 앞세운 선발 싸움에서 우위를 점했지만 불펜 싸움에서 밀려 어려움을 겪었다. 29일 1차전에서는 마무리 안지만을 조기에  투입하는 강수에도 빅이닝을 막지못했고, 30일 2차전에서도 이기기는 했으나 종반까지 상대 추격에 진땀을 흘려야 했다. 1일 마지막 3차전에서는 호투하던 앨런 웹스터가 조기에 무너지면서 난타전 끝에 또 역전패를 당했다. 임창용의 방출 이후 불펜의 무게가 헐거워지며 가용폭이 줄어들었고 타선에서도 박석민과 나바로의 공백이 크게 느껴진다.

김성근 감독은 올 시즌 내내 퀵후크와 선수 혹사 논란에 시달리고 있지만, 삼성전에서는 모처럼 지난 시즌 '마리한화' 열풍을 연상시킬 만큼 용병술이 잘 맞아떨어졌다. 박정진, 권혁, 윤규진이 지난주 3경기 연속 등판했고, 3차전에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 대신 송창식과 정우람을 조기 투입한 승부수가 역전극의 밑바탕이 되었다.

부진하던 정근우와 로사리오의 부활, 3차전에서 수비형 포수 허도환의 깜짝 폭발 등 그동안 침묵하던 타선도 살아나며 모처럼 공수 밸런스가 조화를 이뤘다. 한화는 지난 주를 4승 1패로 마감하며 꼴찌 탈출의 실마리를 남겼다.

현재 삼성은 8위, 한화는 10위다. 올 시즌 나란히 하위권으로 처진 두 팀이지만 지난해부터 뜨거워진 양팀의 라이벌 관계는 그야말로 불꽃을 튀긴다. 순위를 떠나 팀이 추구하는 방향과 야구관을 놓고 이제 서로에게는 절대 질 수 없는 상대가 된 두 팀의 대결은 아직도 13번이 남아있다. 올 시즌 두 팀의 오랜 악연은 어떤 모습으로 계속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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