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클로버필드 10번지> 포스터 영화 <클로버필드 10번지>가 호평 속에서 순항 중이다. 팽팽한 긴장감을 시종일관 유지하는 것이 이 영화 최대 장점이다.

▲ 영화 <클로버필드 10번지> 포스터 영화 <클로버필드 10번지>가 호평 속에서 순항 중이다. 팽팽한 긴장감을 시종일관 유지하는 것이 이 영화 최대 장점이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노르웨이 극지탐험가 로알 아문센은 1911년, 100년도 전에 남극점에 도달했다. 에드먼드 힐러리와 텐징 노르가이도 1953년, 반세기 전 히말라야 최정상에 올랐다. 이제 가장 뛰어난 재능을 가진 탐험가와 산악가도 이들을 앞지를 수 없다.

미술도 지난 몇 세기 동안 치열한 발전을 이룩했다. 사진의 발명 이후 존립의 위기를 겪었던 회화는 사진보다 더 사실 같은 극사실주의와 표면 아래 담긴 뜻이나 인상 등에 집중하는 추상주의 등의 장르, 대중이 좋아할 법한 작품을 내놓는 팝아트 등으로 세분됐다. 각 유파의 거장들은 더는 나아가기 힘들 만큼 발전된 작품을 내놓았고 그로부터 미술의 역사 가운데 자신의 자리를 확고히 했다. 이제 미술은 더는 사실적이기 힘들고 더 괴상망측해지기도 쉽지 않다.

과학 역시 마찬가지다. 현대 과학자들은 세상의 모든 의문을 풀어낸 선조들의 업적에 힘입어 세상을 폭넓게 이해하는 호사를 누리고 있지만, 극히 일부의 행운아를 제외하곤 평생을 바쳐도 새로운 발견 하나를 내놓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지금껏 인류가 풀지 못한 숙제는 어쩌면 영원히 풀 수 없는 숙제일지도 모른다.

탐험과 미술, 과학만이 벽을 느끼는 건 아니다. 많은 창작과 발견의 영역이 모두 그와 같은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가장 뛰어난 이들조차 위대한 작품은 이미 쓰였고 미지의 영역은 개척됐으며 뛰어난 발견 역시 이뤄졌다는 탄식을 내뱉곤 한다. 단 한 방울의 새로움을 얻는 것도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럼에도 한 걸음씩 나아가는 이들의 태도는 그야말로 박수받아 마땅하다.

반면 나아가지 않고서도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는 영리한 이들도 있다. 기존의 성취를 효과적으로 이용해 이 시대의 대중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들의 선택과 성과 역시 존중받아 마땅하다. 따지자면 영화 <클로버필드> 프로젝트는 그와 같은 작품이다.

장르물이 봉착한 고민을 현명하게 해소하다

영화 <클로버필드> 포스터 2008년에 개봉한 영화 <클로버필드>는 <클로버필드 10번지>처럼 장르물의 한계를 잘 뛰어넘은 작품이었다.

▲ 영화 <클로버필드> 포스터 2008년에 개봉한 영화 <클로버필드>는 <클로버필드 10번지>처럼 장르물의 한계를 잘 뛰어넘은 작품이었다. ⓒ CJ엔터테인먼트


지난 2008년 개봉한 <클로버필드>와 올 4월 개봉한 <클로버필드 10번지>는 장르물이 봉착한 고민을 현명하게 해소하고 있는 작품이다. 연출과 제작 모두에서 할리우드 블루칩으로 자리를 확고히 하고 있는 J.J.에이브럼스의 대규모 프로젝트로 알려진 <클로버필드> 시리즈는 정체불명의 괴수로부터 미국이 공격받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클로버필드>는 기본적으로 재난영화의 성격을 갖고 있으며 이번에 개봉한 <클로버필드 10번지>는 스릴러와 미스터리, 공포와 SF까지를 옮겨가는 전격적인 오락영화다. 이 가운데 재난과 스릴러, 공포 등의 장르는 2000년대 들어 전형성의 늪에 빠졌다는 비판을 줄곧 받아왔는데 유명한 감독들조차 좀처럼 해법을 찾지 못하며 기존의 공식만 답습하는 모습을 보여 왔던 게 사실이다. 지난 수년 동안 이 장르 가운데서 기억할 만한 명작이 거의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 이를 반증한다.

J.J. 에이브람스가 선택한 재능 있는 감독들이 연출을 맡은 <클로버필드> 프로젝트는 지금껏 개봉한 단 두 작품만으로도 매우 영리한 시리즈임을 입증했다.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으로 더욱 큰 명성을 얻은 맷 리브스의 <클로버필드>는 철저하게 재난영화의 공식을 따르면서도 형식의 파격으로 연출적 새로움을 도모했다. 그가 선택한 기법은 핸드헬드(카메라 혹은 조명 장치 등을 손으로 드는 것) 홈비디오였다.

영화는 90분짜리 홈비디오로 맨해튼에서 벌어진 재난 상황을 생중계한다. 정체불명의 괴수가 맨해튼을 파괴하는 와중에 송별파티에 참가했던 몇 명의 젊은이들이 상황에 대처하는 모습이 그들의 입장에서 고스란히 담겼다. 일행 가운데 한 명인 허드는 파티장에서 친구들의 인터뷰를 진행하던 카메라를 들고 재난 상황을 촬영하기 시작하는데 관객이 영화 내내 마주하는 영상이 바로 이것이다.

시종일관 핸드헬드로 흔들리는 카메라와 극 중 인물들이 처한 상황을 실시간으로 함께한다는 현장감은 영화가 내적으로 기존 재난영화의 공식을 답습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게 할 만큼 신선하다. 재난 속에서 꽃피는 사랑과 좀처럼 공감할 수 없는 일부 인물의 행동, 위기상황마다 등장인물이 하나씩 죽어 나가는 상황 등 기존 재난영화에서 수도 없이 보인 설정이 고스란히 반복되고 있더라도 말이다. 재난 상황 속에서도 결국 완성되는 멜로드라마는 영화가 주는 덤이다.

장르를 옮겨가며 끊임없이 이어지는 긴장감

클로버필드 10번지 밀폐된 공간에서 끊임없이 긴장감을 불어넣는 연기를 펼친 세 배우. 존 굿맨,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 존 갤러거 주니어(왼쪽부터)

▲ 클로버필드 10번지 밀폐된 공간에서 끊임없이 긴장감을 불어넣는 연기를 펼친 세 배우. 존 굿맨,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 존 갤러거 주니어(왼쪽부터) ⓒ 롯데엔터테인먼트


댄 트라첸버그의 <클로버필드 10번지>는 <클로버필드>의 속편은 아니지만, 같은 세계관을 공유한다. 시작부터 끝까지 끊임없이 이어지는 긴장감이 특기할 만하다. 스릴러와 미스터리, 공포와 SF까지 장르적 공식을 영리하게 이용했는데 미지의 공간에 이유도 모른 채 감금된 상황과 제한된 정보, 다가오는 위협 등이 <미저리> 이후 등장한 수많은 동류 스릴러와 맥을 같이 한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황과 관객에게 주어지는 단서는 주인공 미셸은 물론 관객에게도 선택을 요구하는데 미셸이 내린 선택과 결과를 끊임없이 따라가는 것이 영화의 주요 얼개라 할 수 있다. 존 굿맨과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 존 갤러거가 펼치는 섬세한 연기는 긴장감 있는 연출과 맞물려 시종일관 영화에 몰입할 수밖에 없는 요소다.

두 시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러닝타임 가운데 여러 장르물의 장점을 쏟아부은 이 영화는 결국 관객을 정해진 결말로 몰고 간다. 그리고 그 결말은 <클로버필드> 프로젝트의 거대한 세계관과 맞물려 품격 있는 방식으로 또 다른 이야기의 탄생을 예고한다. 어려움과 마주해 평생토록 도망만 쳐왔던 미셸이 자신을 필요로 하는 방향으로 핸들을 돌리는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클로버필드>가 재난영화의 구성 가운데서 한 편의 멜로드라마를 완성했듯 <클로버필드 10번지>는 스릴러와 미스터리, 공포와 SF, 액션까지를 연달아 돌파하며 이와 같은 방식으로 한 편의 성장드라마를 매조지 한다.

단 하나의 주목할 만한 새로움도 없을지라도 관객은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다. 처음부터 <클로버필드 10번지>가 의도한 게 바로 이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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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오마이뉴스 스타팀에서 방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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