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자 웃음 지난 16일, 서울 대학로 동양예술극장에서 진행된 뮤지컬 <빨래> 마티네 공연의 커튼콜. 배우 홍광호의 트레이드 마크나 다름 없는 특유의 입술 모양이 나왔다.

▲ 'W'자 웃음 지난 16일, 서울 대학로 동양예술극장에서 진행된 뮤지컬 <빨래> 마티네 공연의 커튼콜. 배우 홍광호의 트레이드 마크나 다름 없는 특유의 입술 모양이 나왔다. ⓒ 곽우신


홍광호가 돌아왔다. 그것도 대학로로.

오리지널 <미스 사이공>의 투이로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열연을 한 뒤 국내로 돌아온 홍광호. <데스노트>로 복귀 신고식을 치른 그가 다음으로 선택한 작품은 한국 창작뮤지컬계의 역사이자 스테디셀러 <빨래>였다. 그러니까 이건,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았던 홍광호의 솔롱고, '홍롱고'가 2009년 이후 7년 만에 돌아왔다는 뜻이다.

내가 뮤지컬 <빨래>를 처음 접한 건 지난 2012년 대학로 학전그린소극장에서였다. 뒤늦게 접한 <빨래>는 충격과 감동이었다. 그 후로 '회전문'(동일 작품을 여러 번 반복해서 관람하는 관객)까지는 아니었지만, 아프고 지칠 때마다 문득 생각나는 극이 <빨래>였다. 언제든 부담없이 가서 치유받고 올 수 있는 <빨래>를 가끔씩 찾고는 했다.

하지만 동시에 쓰렸다. 2009년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공연 당시 솔롱고 역할을 배우 홍광호가 맡았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왜 뒤늦게 이 장르에 '입덕'하여 홍광호의 솔롱고를 볼 수 있는 기회를 평생 놓치고 말았는가?"라며 가슴을 치고 후회했던 게 수 년. 기대하지도 않았던 홍롱고의 컴백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반드시 표를 붙잡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다졌다. 그리고 드디어 대망의 1차 티켓팅 날이 밝았다.

[2월 5일] 이선좌... 이선좌... 이선좌... 난 점점 멘붕이 됐다

홍롱고와 강나영 지난 16일, 서울 대학로 동양예술극장에서 진행된 뮤지컬 <빨래> 마티네 공연의 커튼콜. 솔롱고 역의 배우 홍광호와 서나영 역의 배우 강연정이 손을 맞잡고 관객 앞에 나섰다.

▲ 홍롱고와 강나영 지난 16일, 서울 대학로 동양예술극장에서 진행된 뮤지컬 <빨래> 마티네 공연의 커튼콜. 솔롱고 역의 배우 홍광호와 서나영 역의 배우 강연정이 손을 맞잡고 관객 앞에 나섰다. ⓒ 곽우신


왕자님 무릎 꿇기 지난 16일, 서울 대학로 동양예술극장에서 진행된 뮤지컬 <빨래> 마티네 공연의 커튼콜. 서나영 역의 배우 강연정이 인사할 순서가 되자 솔롱고 역의 배우 홍광호가 앞서 무릎을 꿇고 있다.

▲ 왕자님 무릎 꿇기 지난 16일, 서울 대학로 동양예술극장에서 진행된 뮤지컬 <빨래> 마티네 공연의 커튼콜. 서나영 역의 배우 강연정이 인사할 순서가 되자 솔롱고 역의 배우 홍광호가 앞서 무릎을 꿇고 있다. ⓒ 곽우신


매너손 홍광호 지난 16일, 서울 대학로 동양예술극장에서 진행된 뮤지컬 <빨래> 마티네 공연의 커튼콜. 배우 홍광호가 배우 강연정이 빨랫줄에 걸리지 않고 계단에 내려갈 수 있도록 줄을 들어주고 있다.

▲ 매너손 홍광호 지난 16일, 서울 대학로 동양예술극장에서 진행된 뮤지컬 <빨래> 마티네 공연의 커튼콜. 배우 홍광호가 배우 강연정이 빨랫줄에 걸리지 않고 계단에 내려갈 수 있도록 줄을 들어주고 있다. ⓒ 곽우신


지난달 5일 오후 3시, 뮤지컬 <빨래> 1차 티켓팅날. 홍광호의 출연 첫공은 당연히 포기했다. 주말 공연 역시 패스. 심지어 평일 저녁도 위험하다. 직장인 경쟁자를 최소화할 수 있는 수요일 평일 마티네(낮) 공연, 3월 16일 오후 4시 회차를 노렸다.

노트북 시계를 예매처 사이트 서버 시계와 동기화해놓고, 자동 로그아웃이 되지 않도록 적절한 시간에 깔끔하게 로그인했다. 혹시 몰라서 플러그인도 재확인했다. 그리고 경건한 자세로 마음을 가라앉혔다.

하지만 30초 전부터 심장이, 마치 대학교 시험기간에 '붕붕 드링크'를 마신 것마냥, 아니 짝사랑하던 여학우를 열람실에서 마주했을 때처럼, 쿵쾅거렸다. 시계가 정확히 3시를 가리키는 순간, 나만이 들리는 알람 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재빨리 새로고침, 날짜 선택, 회차 선택, 짠!

예매가 가능한 자리를 표시하는 보라색 네모들이 꽤 많이 남아 있었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마음에 드는 자리를 클릭했다.

"이미 선택된 좌석입니다."

아... '이선좌'(이미 선택된 좌석을 알리는 예매처의 메시지의 줄임말). 한 번에 흔들릴 내가 아니었다. 이미 예상했던 바. 긴장하지 않고 자리 새로고침 후 다른 자리를 눌렀다. 하지만 이선좌 강림 한 번 더. 또 한 번. 그리고 또….

이선좌를 6번인가 7번쯤 뵌 후에는 정신줄을 놓아버렸다. 예매가 완료된 자리를 뜻하는 하얀색 네모박스가 반지하 월셋방 곰팡이 퍼지듯 빠른 속도로 확산하고 있었다. '이대로는 놓치고 만다'는 생각에 더 이상 자리 욕심을 부리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맨 뒷줄이라도 좋다!' 눈을 질끈 감은 채 맨 뒷줄 눈에 보이는 아무 자리나 눌렀다. 무사히 결제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무통장 입금으로 자리를 잡아놓고 '예매완료' 안내창이 떴을 때,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렇게 '피켓팅'(피가 튀길 정도로 치열한 티켓팅)을 무사히 끝내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른 날, 다른 회차를 추가로 예매할 수 있는지 확인했다. 역시나 전석 매진. 모든 창은 하얀색이 가득한 '눈밭'(전석 매진된 예매창을 일컫는 표현)이었다. '그래 '쩌리석'이지만, 괜찮아. 홍롱고를 보잖아.' 티켓팅에 성공한 내 한 자리만 뚫어지게 바라봤다. 그렇게 스스로 위안 삼았다.

그날 늦은 오후, (주)씨에이치수박으로부터 '3분 만에 전석 매진'이라는 보도자료가 도착했다. 커뮤니티에는 티켓팅에 실패한 마니아들의 탄식이 가득했다. 홍광호 배우 팬클럽에서 활동하는 내 친구는, 자신을 포함해 팬클럽에도 표를 못 구한 사람이 많아 분위기가 우울하다고 전했다. 후에 자리를 확인해보니 그 친구의 '이선좌'가 바로 나였다. 내 탓에 티켓팅에 실패한 친구는 내 멱살을 잡으려 했다. 미안한 마음에 2차 티켓팅 때는 내 표를 포기하고, 그 친구의 용병이 되어 표를 하나 잡아줬다.

[3월 16일] '홍롱고'는 혼자 빛나지 않았다

뮤지컬 <빨래> 캐스팅 보드 지난 16일, 서울 대학로 동양예술극장에서 진행된 뮤지컬 <빨래> 마티네 공연의 캐스팅 보드. 배우 홍광호가 2009년 이후 7년 만에 <빨래>의 솔롱고로 돌아왔다.

▲ 뮤지컬 <빨래> 캐스팅 보드 지난 16일, 서울 대학로 동양예술극장에서 진행된 뮤지컬 <빨래> 마티네 공연의 캐스팅 보드. 배우 홍광호가 2009년 이후 7년 만에 <빨래>의 솔롱고로 돌아왔다. ⓒ 곽우신


예매한 티켓을 발권 받으려는 줄이 제법 길었다. 생각보다 관람객의 구성은 다양했다. 커플도 눈에 띄고, 우아하게 차려 입은 중년의 관객도 보였다. 입장할 때의 캐스팅 보드를 보고서야 '홍광호의 솔롱고를 내가 보는구나'는 게 실감이 났다. 맨 뒷줄 구석진 자리에 앉고 나서 잠시간 아주 살짝의 서러움과 아쉬움이 스쳤다. 하지만 '빵' 역할의 이서환 배우 인사에 곧 언제 그랬냐는 듯 무대에 집중하게 됐다.

"이 작품은 갑자기 약 먹고 사람이 변하지도 않고, 노트에 이름을 쓴다고 누가 죽지도 않습니다."

홍광호가 출연했던 <지킬 앤 하이드>와 <데스노트>의 이야기로 분위기를 풀며 주의사항 몇 가지를 전달하는 이서환 배우. 그리고 곧이어 익숙한 이삿짐 트럭 엔진 소리와 함께 울려퍼지는 '서울살이 몇 핸가요'. 16일 오후 4시, 동양예술극장 1관에서 뮤지컬 <빨래>가 막을 올리는 순간이었다.

홍롱고와 강나영 지난 16일, 서울 대학로 동양예술극장에서 진행된 뮤지컬 <빨래> 마티네 공연의 커튼콜. 배우 홍광호와 강연정이 관객 앞에서 넘버를 부르며 인사하고 있다.

▲ 홍롱고와 강나영 지난 16일, 서울 대학로 동양예술극장에서 진행된 뮤지컬 <빨래> 마티네 공연의 커튼콜. 배우 홍광호와 강연정이 관객 앞에서 넘버를 부르며 인사하고 있다. ⓒ 곽우신


홍광호는 압도적인 성량,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유명하다. 이전 필모그래피들에서, 홍광호는 강렬한 인상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관객의 뇌리에 망치질하듯이 박아 넣는 배우였다.

하지만 <빨래>의 홍광호는 달랐다. 어눌한 말투 속에 풋풋한 마음을 담아 크게 꾸미지 않고 자연스럽게 배역을 소화하는 그는 대극장 무대를 지배하던 홍광호가 아니었다. 카리스마로 관객을 찍어누르기보다, 편안하게 관객을 서울 달동네로 안내했다. 쉽게 화낼 줄도 모르는 순박한 몽골 청년 솔롱고를, 홍광호는 <빨래>의 시간적 배경인 가을의 바람처럼 부드럽게, 그리고 봄꽃처럼 화사하게 풀어냈다. 혹여 이 작은 공간, 평범한 이야기 속에서 배우 홍광호가 차고 넘쳐 극을 해치지는 않을까 싶었던 걱정은 기우였다.

'안녕'의 설렘, '참 예뻐요'의 애틋함, '내 이름은 솔롱고입니다'의 두근거림, '아프고 눈물 나는 사람'의 슬픔까지 홍광호는 각 넘버의 감정을 풍부하게, 하지만 과하지 않게 노래했다. 그가 울고 웃을 때마다 관객도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도록, 깊이 있는 공감의 공간으로 천천히 관객을 끌어들였다. <세탁노트> <빨래터의 유령> <지킬 앤 하이타이>의 유명작가 홍광호가 되어 양복을 입은 채 손에 고무장갑을 끼고 등장한 건 부가적 웃음 포인트였다.

무대에서 홍광호는 빛났지만, 홀로 빛나면서 다른 빛을 지워버리지 않았다. 서나영, 주인할매, 희정엄마, 마이클, 빵 등 모든 인물이 미소 지을 수 있으면서도 가슴 한켠이 아린 이야기를 절절하게 그려낸다. 올해로 벌써 창작 11주년인 <빨래>는 어떤 배우가 어떤 방식으로 해석해서 연기하든 극의 감동과 메시지가 흔들리지 않는 좋은 작품이다. 돌아온 홍광호를 스르륵 작품에 녹아들게 만드는 것. 그것은 홍광호의 힘임과 동시에 홍광호와 함께한 모든 배우의 힘이며, 이 작품의 힘이었다.

170분이라는 시간은 언제 흘러갔는지 모를 정도로 순식간에 지나가 있었다. 커튼콜에서 다시 객석을 메우는 '슬플 땐 빨래를 해' 넘버마저 끝났다. 모든 곡이 끝나고 배우마저 퇴장한 공간에는 감동의 여운이 채 빠져나가지 못한 채 맴돌고 있었다.

홍지킬(<지킬 앤 하이드>의 지킬 박사), 홍콰지(<노트르담 드 파리>의 콰지모토), 홍동키(<맨 오브 라만차>의 돈키호테)를 모두 좋아하지만, 그래도 홍롱고가 제일 좋다. 한 번 더 보고 싶은데, 내 손에 쥔 표가 없을 뿐이다. 홍광호는 오는 4월 24일 공연을 마지막으로 <빨래>에서 하차한다.

물론 <빨래>는 내년 2월까지 쭉 오픈런으로 계속될 예정이다. 뮤지컬 <빨래> 프로그램북에서, 홍광호는 "뮤지컬 <빨래>는 참 예쁜 작품이다"고 밝혔다.

안녕! 지난 16일, 서울 대학로 동양예술극장에서 진행된 뮤지컬 <빨래> 마티네 공연의 커튼콜. 커튼콜이 끝나는 마지막 시점, 배우 홍광호가 관객 앞에서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 안녕! 지난 16일, 서울 대학로 동양예술극장에서 진행된 뮤지컬 <빨래> 마티네 공연의 커튼콜. 커튼콜이 끝나는 마지막 시점, 배우 홍광호가 관객 앞에서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 곽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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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2000년부터 오마이뉴스에 몸담고 있습니다. 그때는 풋풋한 대학생이었는데 지금은 두 아이의 아빠가 됐네요. 현재 본부장으로 뉴스본부를 이끌고 있습니다. 궁금하신 점 있으면 쪽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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