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현을 등장시킨 SKT 광고 포스터.

설현을 등장시킨 SKT 광고 포스터. ⓒ SKT


'일단 설현을 눕히자. 그리고 설현을 걸리버로 생각토록 하자. 우리는 설현(의 미모) 앞에서 다 소인국 백성 신세일 뿐이니까. 몸매가 드러나는 빨간 원피스는 덤이다. 그리고 밧줄로 꽁꽁 묶어 보자. 이것은 완벽한 '패러디'물. (영화 <걸리버 여행기> 포스터 속) 잭 블랙도 있으니 문제 될 건 없을 거야. 설현이면 다 괜찮아.'

일단, 혹시 이런 사고 체계로 만든 광고는 아닐 거라 가슴을 쓸어내려 보자. AOA 설현이 등장하는 SK텔레콤 광고 포스터 말이다. 이 포스터 광고가 때아닌 '성 상품화' 논란에 휩싸였다. "T로밍카드로 해외에서 데이터 꽁꽁 묶으세요"라는 광고 문구와 함께 공개된 이 포스터는 SNS를 중심으로 "성 상품화 vs. 단순 패러디" 논란의 주인공이 됐다. 남녀가 시각차가 반영된 것은 당연지사.

지난 17일, <동아일보> "'밧줄 설현' 둘러싼 논란…광고 포스터 본 남녀의 반응은?" 기사에 따르면 남성 305명과 여성 313명 등 총 618명에게 이 포스터를 보여주고 느낌을 물은 결과, 남성의 절반은 "사랑스러워 떼어가고 싶다"(52.8%)고 답했다. 여성 절반은 "선정적인 성 상품화로 불쾌하다"(44.1%)고 답했다. 남성들과 여성들이 극명한 차이를 보인 것이다. 일견 당연한 결과로 보인다.

왜 유독 '설현 광고'가 논란일까

 SKT 설현 광고 포스터.

SKT 설현 광고 포스터. ⓒ SKT


"설현이 등장하는 마케팅을 보면 흔히 말하는 '술집 달력'의 수준밖에 안 되는 것들이 보인다."

SNS상에서 회자된 설현 SKT 광고에 대한 '품평'이다. "아니다, 주류 회사 광고보다 더 심하다"거나 "내 눈에만 음란마귀가 씐 것이냐"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결국 '성 상품화'인가 아닌가로 수렴된다. 여성 모델의 성적 대상화가 어제오늘의,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유독 설현이 등장하는 광고가 논란이 되는 이유가 따로 있을 듯하다. 

일단 밧줄 광고 이전 2015년 상황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작년 10월, 빅데이터 콘텐츠 서비스 플랫폼인 셀럽타이드는 "무보정 몸매 설현은 SKT의 '신의 한 수'?"라는 제목으로 빅데이터를 검증했다.

요약하자면, 작년 9월 SKT가 광고모델인 설현의 브로마이드 6만 장을 배포하고, 방송과 보도를 통한 마케팅이 더해지면서 빅데이터 언급량과 인지도가 급상승했다는 것이다. 특히 SKT​ 대리점에서 설현의 홍보 판넬이 도난당하는 사건이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알려지며 정점을 찍었다.

이랬거나 저랬거나, 설현은 광고료와 인지도 상승이란 '당근'을 획득한 것으로 보인다. SKT 역시 예전 광고모델인 전지현이나 이정재와 비교했을 때 모델료 대비 쏠쏠한 효과를 거뒀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설현 밧줄' 광고 되겠다.

어쨌거나 광고주와 광고모델 모두 '윈윈' 아니겠냐고 누군가는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게 전부일까. 적지 않은 소비자들이 언급하는 불쾌감은 어찌할 것인가. 다시 한 번, 그러니까 왜 유독 '설현 광고'가 논란의 도마 위에 오르는 것일까.

'여혐'과 '성적 소비', 분열하는 퇴행의 시대

 KBS <본분금메달>의 한 장면.

KBS <본분금메달>의 한 장면. ⓒ KBS


일부 팬들이 "왜 우리 설현을 건드리느냐"라며 반박하지만, SKT 광고를 향한 비판점이 오롯이 광고모델 설현을 겨냥한 것은 아니다. 비판은 한국 사회가 1995년생 아이돌 여가수를 소비하는 방식에 대한 것이다.

여타 걸그룹 가수들을 제치고 설현은 갓 스무 살을 넘긴 나이임에도 '글래머 이미지'를 획득했다. 유독 '무보정 몸매'나 '설현 뒤태'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통신사 광고임에도 '몸매'를 내세우는 전략이 가능했던 이유다. 과거 SKT 광고에 등장했던 전지현과 이정재가 "잘 생겼어"란 노래를 지겹도록 불러댔던 것을 상기해 보라.

여성이라서 어쩔 수 없다고? 동년배로 분류할 수 있는 걸스데이 혜리와 비교해도 설현은 또 다르다. 하물며 십수 년 전 전지현이 '테크노 댄스'로 광고계를 평정했을 때는 뚜렷한 콘셉트라도 존재했다. 이와 비교해 통신사 광고임에도 불구하고 '눕힌 설현을 밧줄로 묶는다'는 설정은 분명 퇴보요, 퇴행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여성 이미지의 소비가 무리 없이 가능한 것은 비단 광고계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걸그룹(혹은 젊고 어린 여성)의 이미지를 아름다움과 성적 매력 등으로 재단해서 등수를 가렸던 공영방송 KBS의 <본분금메달>은 '설현 광고'의 다른 이름이다. '달력 광고'가 하위문화라면, 설현의 광고와 <본분금메달>은 공중파 채널을 통해 방송된 '주류 문화'라는 점도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다. 

그 주류 문화가 철저하게 남성적 시각을 대변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더 넓게 확장하면, 배우와 감독을 비롯한 할리우드 영화의 주요 생산자들이 백인남성인 것과 같은 이치다. 그렇지만 사회에 만연해 있다고 해서 무조건 납득되거나 옳다고 할 수는 없다. '성 상품화'나 '여성의 성적 대상화'가 만연해 있다고 설현을 광고에서 소비하는 방식이 무조건 옳다고 할 수 없는 것처럼.

왜 할리우드는 물론 서구 광고계에서 자정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지 살펴볼 때다. 이건 '손님이 왕이다'라거나 '대중이 무조건 맞다'는 소비나 대중문화의 작동방식과는 확연히 다른 차원의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 상품화가 왜 나쁘냐"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면 할 말이 없지만.

기이한 분열의 시대다. 한쪽에선 '여혐(여성 혐오)'이 극성이고, 또 한쪽에선 여성의 성적 이미지를 더욱더 맹렬히 소비한다. 그리고 소비의 시선은 점점 더 저열한 쪽으로 흘러간다. 더 어리고, 더 노골적인 방식으로. 그렇게 우리는 퇴행의 시대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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