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꿈을 꾸는 소녀들, Pick me, Pick me, Pick me up!" - 'Pick me' 가사 중

101명의 소녀가 끊임없이 자신을 선택해 달라고 읍소한다. 국민 프로듀서 대표를 자임한 장근석은 "소녀들의 꿈을 응원해 달라"고 지속해서 독려한다. 그 꿈은 다름 아닌, 방송사가 만드는 11인조 '국민 걸그룹' 멤버로 발탁되는 것. 인기리에 방영 중인 Mnet <프로듀스 101>이 만들어 내고픈 경쟁과 성공신화의 요체다.

이를 위해 46개 기획사(개인 출연자 포함) 101명의 '소녀'들을 끌어모았다. JYP를 비롯해 카라나 씨스타 등 유명 걸그룹을 배출한 거대 기획사 연습생을 위시해 듣도 보도 못한 신생 기획사부터 개인 연습생까지.

'프로듀스 101', 시선강탈 연습생 소녀군단!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Mnet <프로듀스 101> 제작발표회에서 101명의 연습생들이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프로듀스 101>은 국내 46개 기획사에서 모인 101명의 여자 연습생들이 참가한 초대형 프로젝트로, 국민 프로듀서가 된 시청자들의 투표를 통해 발탁된 최종 멤버 11명이 유닛 걸그룹으로 데뷔하는 과정을 그린 프로그램이다. 22일 금요일 밤 11시 첫 방송.

▲ 연습생 소녀군단 지난 1월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Mnet <프로듀스 101> 제작발표회에서 101명의 연습생들이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프로듀스 101>은 국내 46개 기획사에서 모인 101명의 여자 연습생들이 참가한 초대형 프로젝트로, 국민 프로듀서가 된 시청자들의 투표를 통해 발탁된 최종 멤버 11명이 유닛 걸그룹으로 데뷔하는 과정을 그린 프로그램이다. ⓒ 이정민


이들을 트레이너들이 A부터 F까지 등급으로 나눈 후 치열하게 경쟁을 시킨다. 그리고 물론, <슈퍼스타K> 이래로 오디션 프로그램의 익숙해진 풍경들이 펼쳐진다. 하이틴부터 20대 초중반의 여성 연습생을 100여 명을 출연시키는 <프로듀스 101>은 경쟁과 성공 사이, 발랄함은 기본이요 (보기에 따라) 천차만별인 연습생들의 실력을 평가하는 이들은 '국민'이라고 강조한다. 홈페이지 인기투표를 통해 최종 11명을 가린다는 뜻이다.

그러나 '악마의 편집'은 줄었다고 하나, 제작진이 주목하는, 방송 분량이 많은 출연자가 시청자들의 관심을 더 가져가는 오디션 프로그램 특유의 구조는 여전하다. 이미 타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얼굴을 알렸거나 데뷔를 한 연습생도 출연시켰다. 이래저래 '룰'에 대한 의구심을 자아냈던 대목이다.

규모로 승부하는 <프로듀스 101>은 한국 특유의 걸그룹 양산 문화에 기반을 둔다. 이미 아이돌 그룹 멤버를 뽑는 프로그램이 성공한 만큼, 오히려 규모를 늘리고 특정 소구층에 집중하는 전략인 셈이다. 그리고 출연자들이 엠넷(Mnet)과 맺은 계약서가 공개돼 파문이 일었다.

<프로듀스 101>이 '노예 계약서'라 욕 먹는 이유

'프로듀스 101' 꿈을 향해 파이팅!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Mnet <프로듀스 101> 제작발표회에서 장근석과 가희, 제아, 치타 등 트레이너들이 101명의 연습생들과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프로듀스 101>은 국내 46개 기획사에서 모인 101명의 여자 연습생들이 참가한 초대형 프로젝트로, 국민 프로듀서가 된 시청자들의 투표를 통해 발탁된 최종 멤버 11명이 유닛 걸그룹으로 데뷔하는 과정을 그린 프로그램이다. 22일 금요일 밤 11시 첫 방송.

▲ 꿈을 향해 파이팅 지난 1월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Mnet <프로듀스 101> 제작발표회에서 장근석과 가희, 제아, 치타 등 트레이너들이 101명의 연습생들과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 이정민


"출연료 0원, 어떠한 경우에도 민·형사상 법적 청구를 할 수 없다, 10개월간 인큐베이팅 시스템에 참여한다, 음원 콘텐츠의 수익은 갑(방송사 CJ E&M)이 50%, 을(개별 기획사)이 50%를 갖는다."

지난 15일 <일간스포츠>가 단독으로 공개한 <프로듀스101>의 계약서 내용 중 일부를 요약하면 대략 이 정도다. "그야말로 촘촘한 계약"이라는 평가가 나올 만하다. 이를 두고 17일 정의당 문화예술위원회는 이러한 논평을 내놨다.

"최근 TV 예능프로그램 <프로듀스 101>에 출연하는 연습생들의 계약서가 공개되었다. 계약서에 따르면 그들은 출연료를 전혀 받지 못할 뿐 아니라 불이익에 대한 민형사상의 소송도 허락되지 않았다. 과연 이것이 연예산업의 정의일까?"

수년 간 진화해왔던 오디션 프로그램의 학습 효과란 지적이 우세하다. 스포일러 방지는 물론 일명 '악마의 편집'과 관련한 명예훼손, 향후 걸그룹 활동에 관한 계약 기간과 음원 콘텐츠 수익까지 꼼꼼하기 이를 데 없어 보인다.

출연료가 0원이라니, 보기에 따라 착취라는 시선도, '악랄하다'는 표현이 손색없을 지경이다. 오히려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췄다는 SM과 YG, FNC와 같은 거대 기획사가 왜 이 프로그램에 동참하지 않았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될 정도다.

이후 제작진은 "계약서 내용은 범용적인 표준 출연 계약에 관한 내용"이라는 공식입장을 밝혔지만 궁색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과연 이 프로그램이 소녀들의 '꿈'을 위한 것인지, 갑(방송사)과 을(기획사)의 꿈(이라 쓰고 돈이라 읽는)을 위한 것인지 헷갈리는 것도 당연지사다.

<프로듀스 101>의 익숙한 풍경은 '소녀'들의 눈물이다. 한참 감수성 예민한 나이긴 하지만 그들이 눈물짓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소속사로 돌아가도 데뷔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제작진은 이 눈물을 프로그램의 주요 동력으로 삼는다.

A부터 F까지 커다란 알파벳 표식을 몸에 부착하는 등 트레이너들의 기준에 의한 '등급제'를 수용하고 "<슈퍼스타K>보다 더 하다"는 출연자들의 볼멘소리가 그대로 전파를 탈 정도로 경쟁 구도를 제작진이 밀어붙여도 그들은 '데뷔'라는 오로지 한 가지 목표를 위해 '출연료 0원'과 '닥치고 출연'이라는 대우를 감내해야 한다. 그런데, 이 '국민 걸그룹'으로 데뷔한 11명이나 수많은 탈락자에게 기다리고 있는 미래는 장밋빛일까.

<프로듀스 101> 멤버들의 미래는 <본분 금메달>?

아이돌의 본분? KBS2 <본분 금메달>의 한 장면. 이후 해당 프로그램은 다시보기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 아이돌의 본분? KBS2 <본분 금메달>의 한 장면. 이후 해당 프로그램은 다시보기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 KBS2


요즘 대세라는 설현이 속한 걸그룹 AOA. 지난 15일, 데뷔 3년 만에 그간의 활동에 대한 소속사 FNC 엔터테인먼트와 AOA 멤버들간의 정산이 이뤄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현재까지의 투자비용에 대한 손익분기점을 넘긴 동시에 향후 활동 수익이 각 멤버들에게 의미다. 여타 걸그룹에 비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는 것이 중평이다.

이에 대해 정의당이 "한편으로 이들이 지난 3년간 아무런 이익을 얻지 못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고 논평한 것처럼, 많은 아이돌 지망생들과 신인 연예인들이 이러한 수익 구조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데뷔까지도 첩첩산중이요, 데뷔 후에도 소위 '대세'를 위해 어떠한 요구나 굶주림도 버텨내야 한다. "너의 꿈을 위해 참아야 한다"는 형식만큼은 이른바 일반인들의 '열정페이'와 다를 바 없는 셈이다. <프로듀스 101>의 '출연료 0원'을 보라.

데뷔해서도 걸그룹 멤버들은 여성이라는 이중고를 겪어야 한다. 지난 설 특집으로 방영된 KBS 예능 프로그램 <본분 금메달>이 EXID 하니, AOA 지민 등 이미 성공한 걸그룹 멤버들을 포함해 십 수 명의 여성 아이돌을 모아놓고 벌인 행태들이 좋은 예다.

출연자와 매니저를 속이고 출연자들의 몸무게를 공개하고, "어떤 순간에도 예뻐야 한다, 이미지를 관리해야 한다"는 미명 하에 외모 품평회를 여는 것이 작금의 공영방송 수준이다. 슈퍼 갑인 방송사 제작진 앞에서 표정관리는커녕 그들의 비인권적인 행태 앞에서 그저 미소를 짓고 '섹시 댄스'를 춰야 하는 것 또한 걸그룹 멤버들의 몫이다.

<프로듀스 101> 한국사회의 축소판을 증명하다

'프로듀스 101' 베일 벗는 연습생들!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Mnet <프로듀스 101> 제작발표회에서 101명의 연습생들이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프로듀스 101>은 국내 46개 기획사에서 모인 101명의 여자 연습생들이 참가한 초대형 프로젝트로, 국민 프로듀서가 된 시청자들의 투표를 통해 발탁된 최종 멤버 11명이 유닛 걸그룹으로 데뷔하는 과정을 그린 프로그램이다. 22일 금요일 밤 11시 첫 방송.

▲ 베일 벗는 연습생들 지난 1월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Mnet <프로듀스 101> 제작발표회에서 101명의 연습생들이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 이정민


이쯤 되면 자명해진다. <프로듀스 101>을 편하게만 볼 수 없는 지점들이. <프로듀스 101>이 극대화한 이 경쟁 구도야말로 바로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냉혹한 세상' 안에서 꿈(과 돈을 포함한 성공)을 볼모로 경쟁을 강요받는 현 연예계의, 아니 한국사회의 축소판과도 같기 때문이리라. <프로듀스 101>의 계약서는 이에 대한 반증과 같다.

그런 점에서, 지난주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 '연예인 스폰서'편을 취재한 배정훈 PD가 최근 SBS와 나눈 인터뷰 중 한 대목은 눈여겨볼 만하다.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사실 이 일은 비단 연예계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이 깔린 우리 사회의 문제이자 그 안에 속한 우리 모두의 문제, 특히 이러한 세계를 만들고 유지하며 적절히 침묵하는 어른들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취재하면서 화가 나기보다는 부끄러웠습니다."

어찌 됐건 연예계에서 살아남으려는 일부 여성 연예인과 지망생들이 입문하는 스폰서라는 어두운 세계를 취재한 배 PD의 우려는 비단 스폰서의 유혹을 떨쳐내지 못한 소수의 일탈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테다.

(돈을 포함한) 권력을 쥔 이들이 약자들의 '꿈'을 볼모로 '악마의 거래'를 한다는 점에서, 빛과 그림자에 해당하는 <프로듀스 101>의 계약서와 연예인 스폰서 문제는 맥을 같이 한다. '빛'에서든 '그림자'에서든, 한국사회는 점점 너무 멀리 내달리고 있다.

프로듀스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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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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