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새로이 시작한 SBS 수목드라마 <리멤버-아들의 전쟁>의 첫 회를 장식한 것은 영화 <베테랑>의 조태오를 찜쪄먹을 만한 망나니 일호 그룹의 후계자 남규만의 범죄였다. 회사에 출근하는 그를 향해 머리를 조아리는 직원 중, 그 수그리는 각도가 맘에 들지 않았던 자기보다 한참이나 나이가 많은 직원에게 다가가 강제로 머리를 조아리게 만드는 장면.

그의 그 막돼먹은 행동 뒤로 흐르는 박동호(박성웅 분)의 내레이션. 그 내레이션에 걸맞게 친구 안수범(이시언 분)을 들었다 놨다 하며 막대하더니, 유럽에서 묵었던 체증을 풀기 위해 고위층 자제들을 모아 환락의 파티를 연다. 그리고 그저 아르바이트 삼아 그곳에서 노래 몇 곡을 부르기 위해 찾아간 오정아(한보배 분)에게 추파를 던지는데….

다음 장면은 얼굴과 온몸에 상처를 입은 채 싸늘하게 식어가는 오정아의 시체이다. 시청자들은 이 살해 사건이 남규만의 짓이거나, 혹은 그가 연관되어 있음을 감지한다. 오정아를 발견했지만, 기억을 잃었다는 이유로 서진우(유승호 분)의 아버지 서재혁(전광렬 분)이 억울한 희생양이 된다. 전국민적 관심이 쏟아진 이 사건의 다급한 종료를 위해서.

클리셰가 되어가는 부도덕한 재벌과 권력

 <리멤버-아들의 전쟁>의 장면. 최근 미디어에서 자주 등장하고 있는, 전형적인 '나쁜 재벌'의 모습을 보여준다.

<리멤버-아들의 전쟁>의 장면. 최근 미디어에서 자주 등장하고 있는, 전형적인 '나쁜 재벌'의 모습을 보여준다. ⓒ SBS


<리멤버-아들의 전쟁>에서 사건의 시작은 <베테랑>의 부도덕한 재벌 아들 조태오가 우발적으로 저지른 배 기사 투신 사건과 흡사하다. 평범한 시민, 물론 <베테랑>에서는 화물연대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부당해고를 당해 1인 시위까지 나선 '노동 쟁의'가 있다. 그를 대하는 조태오의 태도는, <리멤버-아들의 전쟁>에서 프랑스어를 하도 들어 신물이 난다며 트로트를 부르라며 패악을 떠는 남규만의 태도와 그리 다르지 않다. 그저 이 둘은 자신이 가는 길에 자신의 발에 걸린 돌멩이를 치우듯, 배 기사를 그리고 오정아를 치워버린다.

그리고 이후 오정아의 살인 사건을 서재혁의 범죄로 만들어 가는 과정은 여전히 <내부자들>의 커넥션을 떠올리게 한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자신의 입신양명만이 목적인 검사 홍무석(엄효섭 분)은 형사들을 윽박지르고 협박한다. 형사들은 <내부자들>의 조상무(조우진 분)처럼 해결사 역할을 자처한다. 공정해야 할 법은 누군가의 성공 발판을 위해, 대중들의 마음을 현혹하는 도구가 된다. 권력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법을 예단한다. 법전의 법은 공정할지 모르나 대한민국 권력 체계에 종속된 검찰은 부도덕하다.

그렇게 <리멤버-아들의 전쟁>은 최근 우리 사회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영화들의 '악'을 모사하다시피 한다. 남규만의 망나니짓이나 패악을 보면, 자연스레 영화 <베테랑> 조태오를 떠올리게 한다. 역을 맡은 남궁민은 혹시나 조태오에 못 미칠까 봐 얼굴 한번 바꾸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재벌가의 망나니 역을 열연한다. 아니 남궁민만이 아니다.

최근 TV와 영화 속 등장하는 재벌들은, 로코 속 백마 탄 왕자가 아니라면 하나같이 조태오 부류이다. 인기리에 방송되는 주말과 아침 드라마 속 악의 근원들은 대부분 '부도덕한' 그들이다. 그들에게는 애초에 인간적 지각이라는 것이 없는 듯,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란 말을 자연스레 떠올릴 정도로 온갖 패악을 저지른다.

그리고 그들의 패악은 <내부자들>의 섹스 파티에서, 재벌이 나누어 주는 성과 환락에 기꺼이 감읍하는 정치인들과 언론·검찰들에 의해 덮어진다. 대신 누군가 억울한 자의 몫으로 돌아간다. <마을-아치아라의 비밀> 속에서 끝까지 정의를 놓치지 않으려 애썼던 경찰들이 어색할 정도로.

나쁜 재벌이어서 나쁜 게 아니다

 영화 <베테랑>의 한 장면. 유아인이 보여준 재벌의 모습 역시, 최근 대중 매체 속 '재벌'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 <베테랑>의 한 장면. 유아인이 보여준 재벌의 모습 역시, 최근 대중 매체 속 '재벌'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 CJ엔터테인먼트


그런데 여기서 문득 누가 더 나쁜 놈일까? 경쟁이라도 하듯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향연을 벌이는 나쁜 재벌과 권력들을 보면서 하나의 질문이 떠오르게 된다. 과연 그들이 재벌이어서 나쁜 것일까? 아니면 '나쁜' 재벌이라서 나쁜 것일까?

그도 그럴 것이 똑같은 재벌인데, 로코 속 재벌들은 사랑의 화신이며,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여주인공을 구원해주는 백마 탄 왕자이다. 그런 재벌들이 막장 드라마나, 사회 비판적 시선을 가진 드라마나 영화 속으로 가면 세상에 둘도 없는 나쁜 놈이 된다. 시청자나 관객들은 똑같은 재벌인데도, 이 사람에게는 절대 호응을 보내다가 저 사람에게는 손가락질하고 욕을 한다. 결국, 나쁜 놈이라서 나쁜 것일까? 조태오가 광란의 섹스 파티를 벌이는 대신, 뚱뚱한 여주인공에게 순애보라도 펼치면 연민을 가질 것인가?

최근 TV와 영화 속 부도덕하게 등장하는 재벌이나 권력들은 부의 극단적 집중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집중을 통제하지 못한 채 스스로 무장 해제된다. 예속화된 한국 사회의 실상을 재벌 캐릭터는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한국 사회의 재벌이란 해방 이래 원시적으로 부의 축적 과정을 거쳤다. 독재 정권을 지나 신자유주의의 정점에 이르기까지, 따지고 보면 정의롭거나 도덕적으로 작동한 적이 재벌은 한 번도 없다. 작품 속 그들의 패악이 해를 거듭할수록 극심해지는 건 하등 이상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최근 범람하는 도덕의 아노미를 상징하는 재벌과 권력들을 보자. 그들의 부도덕을 욕받이로 쉽게 차용하는 서사 콘텐츠들을 보자. '분노'의 과녁이 왜곡되어 가는 건 아닌가. 이건 그저 나의 노파심일까. 과녁은 그들의 '부도덕'이 아니라, 그들 자체여야 한다.

재벌은 튀어나온 돌처럼 '부도덕'이라는 극단적 상황으로 형상화된다. 이런 재벌을 향해 사회적 분노를 쏟아내는 대신, 한풀이처럼 소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마치 땅콩 회항 사건에서 보였던 분노의 파도처럼 말이다. 지금의 우리 사회 속 재벌은, 재벌 중의 몇몇 이들이 나쁜 재벌이어서 나쁜 게 아니다. 재벌이라는 것 자체가, 온 사회적 부의 초집중 현상 자체가 나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부도덕함이라는 한 현상에만 '분노'의 초점을 맞춘다. 역설적으로, 우리는 본질적 분노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조태오가 나쁜 것은, 그리고 남규만이 나쁜 것은 그들이 개인적으로 부도덕한 망나니이기 때문이 아니다. 이제는 '음서'처럼 자리 잡아 가는 대한민국의 부의 승계 카르텔 속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검찰과 언론의 부도덕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되풀이되는 '부도덕한 재벌' 클리셰는, 그 초점에 혼돈을 가져올 수 있다. 그저 액막이로 대중들의 근본적 분노를 희화화시키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송곳> 속 구고신의 대사, '사는 데가 달라지면 풍경도 달라진다'는 그 구조적 진리를 '부도덕'의 허울 아래 쉽게 소비하고 있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리멤버-아들의 전쟁 베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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