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편집자말]
<사우스포>의 한 장면 빌리 호프는 위대한 복서에서 모든 걸 잃었다. 하지만 "다시" 일어선다.

▲ <사우스포>의 한 장면 빌리 호프는 위대한 복서에서 모든 걸 잃었다. 하지만 "다시" 일어선다. ⓒ 영화 홍보 동영상 캡쳐


영화배우 제이크 질렌할(빌리 호프역)의 연기 변모가 놀랍다. 그는 최신작 <사우스포(Southpaw, 안톤 후쿠아 감독)>를 통해 통쾌한 강력 펀치를 관객들에게 날렸다.

지난 18일 롯데시네마 영등포점에선 <사우스포> 시사회가 열렸다. 사우스포는 한 마디로 왼손잡이 복서를 의미한다. 대부분의 권투 혹은 운동 선수들이 오른손잡이인데 반해 주인공인 빌리 호프는 왼손잡이다. 이런 복서는 매우 드물다. 고아원 출신 복서인 빌리는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마지막 어퍼컷을 날리기 위해 혼신을 다한다.

어릴 적 트라우마 때문에 절망에서 일궈낸 분노만으로 챔피언이 된 주인공. 그리고 그의 곁을 지키는, 같은 고아원 출신의 모린 호프(레이첼 맥아담스 분). 마치 방황하는 칼 같은 빌리는 사랑스런 아내 덕분에 날카로움을 다스릴 수 있다. 빌리와 모린은 칼과 칼집 같다. 빌리는 43승 0패의 무패 신화를 달리고 있는 라이트 헤비급 복싱 세계챔피언이다. 한 마디로 성공했다.

하지만 아내인 모린은 빌리에게 경고한다. 본인에게 중요한 건 당신 그 자체뿐이라고. 몸을 돌보라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위대한 빌리 호프"라는 타이틀이 사라지면 바퀴벌레처럼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라고. 빌리는 이러한 아내의 말이 마음 속 깊숙이 다가오지 않는다. 오늘도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지켰으며, 사랑하는 아내와 딸이 곁에 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흔한 복서 영화 같다.

<사우스포> vs <밀리어 달러 베이비>

<사우스포>는 필자가 최고의 영화로 꼽는 <밀리어 달러 베이비(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2004)>와 무척이나 닮아 있다. 두 영화는 모두 뜻밖의 사건 때문에 완전히 다른 차원의 영화로 향한다. 복서 영화에서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감동적인 드라마로 탈바꿈 하는 것이다. <사우스포>의 빌리 호프와 <밀리어 달러 베이비>의 매기(힐러리 스웽크)는 모두 큰 상처를 안고 있다. 그런데 그 위에 더 큰 상처가 덧씌워진다. 앞의 영화는 아내의 죽음, 뒤의 영화는 치명적인 사고로 인한 불구가 되는 것이다. 더 큰 상처를 어떻게 극복하는지, 각각의 영화는 조금 다른 방법으로 보여주지만 상처가 '종료'된다는 의미에선 둘 다 똑같다.

빌리는 아내를 잃고 딸의 양육권마저 빼앗긴다. 원하는 삶에서 원하지 않는 삶으로의 전락. 이 부분에서 제이크 질렌할은 정말 속된 말로 '미친 연기'를 선보이는데, 광기에 사로잡힌 한 복서가 어떻게 바닥 끝까지 떨어지는지 다큐멘터리처럼 볼 수 있다. 그의 구부정한 어깨와 흔들리는 눈빛, 그리고 눈물. 특히 <나이트 크롤러(댄 길로이 감독, 2014)>에서 보여준 집착은 <사우스포>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빌리 호프는 승부 조작으로 한 게임을 이긴 바 있다. 그때 만난 상대편 선수만이 유일하게 자신을 능가했다. 그래서 그는 재기를 위해 그때 그 선수를 키워낸 코치를 찾아 체육관에 들어선다. 유명 복서가 아내와 사랑하는 딸, 전 재산을 잃고 허름한 체육관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다시"라는 건 말은 쉽지만 삶 속에서 행동으로 옮기기엔 정말 어렵다는 걸 우린 안다. 코치 역을 맡은 사람은 유명한 포레스트 휘태커(틱 윌스 역)이다. <밀리어 달러 베이비>의 메기가 프랭키 던(클린트 이스트우드분)을 만나는 것과 똑같다.

빌리는 이제 분노만으로(실제 그는 분노조절장애 치료를 받는다) 복싱을 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지키고 잽을 날리는 연습에 돌입한다. 그 가운데 사우스포 어퍼컷도 준비한다. <밀리어 달러 베이비>에서 프랭키는 메기에게 언제나 "스스로를 지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래야만 진정한 복서가 될 수 있는 것이라고. 나를 지켜야만 상대를 무너뜨릴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나를 지켜야 한다.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 불나방이 되어서는 사랑하는 이를 보호할 수 없다. 화장실 청소를 하고, 복서를 꿈꾸는 빈민가의 아이들을 만나며, 흔들리던 빌리의 눈빛은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간다. 그리고, 아내의 죽음과도 연관이 있는, 본인의 타이틀을 뺏어간 현 챔피언과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격돌한다.

나를 지키라

제이크 질렌할의 연기 영역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프리즈너스(드니 빌뇌브 감독, 2013)>에선 범인을 추적하는 차분하고 숨막히는 형사역을 열연하더니, <에너미(드니 빌뇌브 감독, 2013)>에선 단조로운 일상에 드리운 도플갱어 때문에 흥분하는 주인공 역할을 눈부시게 소화해냈다. 그런 그가, 군살을 쫙 빼고 세계 챔피언에 어울리는 몸과 마음을 갖추고 나타났다. 대단한 배우다. 권투 장면은 실제 경기를 보는 것 같은 흥분을 유발한다.

빠른 전개와 에미넴의 속사포 음악은 영화의 흥미를 돋우기에 충분한다. 스토리는 에미넴의 실제 인생을 모티브로 삼았다고 한다. 12월 3일 국내에서 개봉하는 <사우스포>가 어떻게 관객들을 만날지, 그 결과가 기다려진다.

 영화 <사우스포> 메인 포스터

영화 <사우스포> 메인 포스터 ⓒ ㈜스마일이엔티



덧붙이는 글 리뷰입니다!
사우스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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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문화, 과학 및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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