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영화제 조직위원장인 서병수 부산시장과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조직위원장인 남경필 경기도지사

부산영화제 조직위원장인 서병수 부산시장과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조직위원장인 남경필 경기도지사 ⓒ 부산영화제, DMZ영화제


"(상영작품 선정에) 자율이라고 하는 측면을 구사하기 위해서는 책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직위원장으로서 할 수 있는 권한을 완전히 놓지는 않겠다."

"영화제는 생태계라고 생각한다. 나 같은 문외한이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건 생태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렇기에 지원은 하되 간섭은 안 한다는 원칙을 지키도록 하겠다."

영화에 대한 인식과 방향이 각각 다르게 느껴지는 두 발언이다. 공통점이 있다면 둘 다 새누리당 소속의 자치단체장들의 발언이라는 것. 앞에 것은 서병수 부산시장이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 <다이빙벨> 상영 압박 논란에 대한 입장을 나타낸 것이고, 뒤에 것은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지난 1일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기자회견에서 밝힌 영화제에 대한 기조다.

두 사람의 발언이 영화인들 사이에서 비교되면서 한 유명 영화제작자는 DMZ영화제 기자회견이 있은 직후 이렇게 촌평했다.

"꾀돌이 남경필 경기도지사에게 서병수 부산시장이 밟힌 셈이다."

만만찮은 부산영화제 외압 여파... 여기저기서 밟히는 부산시장

 지난 7월 충남영상위원회 출범식에서 안희정 충남지사가 김동호 문화융성위원장 등 영화계 인사들과 함께 축하떡을 자르고 있다.

지난 7월 충남영상위원회 출범식에서 안희정 충남지사가 김동호 문화융성위원장 등 영화계 인사들과 함께 축하떡을 자르고 있다. ⓒ 성하훈


영화와 정치와의 관계가 주목되고 있다. 17일 개막한 7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와 10월 1일 개막하는 2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정치 사회 문제를 비판적으로 다룬 작품들이 계속 등장하고 있어서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 정치와 문화의 관계를 말할 때 고전에 속하는 명제이지만, 최근 현실은 정반대로 표현의 자유가 상당히 위축되고 있는 모습이다. 영화 뿐 아니라 문학 작품 창작지원 사업에서도 정치적 이유로 인한 작품 검열과 부당 심사 개입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부산영화제가 상영한 세월호 다큐영화 <다이빙벨> 논란은 이런 사례가 극명하게 나타난 대표적 사례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이기도 한 서병수 부산시장은 올해 초부터 이용관 집행위원장의 사퇴를 압박하며 본격적으로 부산영화제를 흔들었으나, 영화계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소기의 목적을 거두는 데 실패했다. 덕분에 국내뿐 아니라 해외 영화계로부터도 비난을 받았다. 현재는 영화제를 앞두고 한발 물러선 모양새지만, 사과나 재발방지 약속은 한마디도 없어 불씨는 잠복해 있는 상황이다.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는 <다이빙벨>보다 표현 수위와 완성도가 더 높다는 세월호 다큐 <업사이드 다운>이 상영을 예정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투쟁을 다룬 작품이나 분단 70년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도 공개된다. 작품의 강도 면에서는 지난해 부산영화제 논란이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다. 지난해는 밀양 주민들의 송전탑 반대 투쟁을 다룬 <밀양아리랑>이 수상작으로 선정됐으며, 초기에는 쌍용차 노동자들의 파업투쟁과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투쟁을 담은 작품 등 소위 '문제적 다큐'가 다수 선보였다.

이 때문에 지난해부터 당연직 조직위원장이 된 새누리당 소속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간섭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솔솔 나왔다. 하지만 남 지사는 지난 1일 기자회견에서 "간섭은 없다"는 원칙을 깔끔하고 명쾌하게 정리했다. 이날 발언에 박수가 터져나올 정도였다.

부산영화제의 여파가 워낙 컸던 탓일까. 남 지사 뿐 아니라 영화 영상관련 기관이 있거나 행사가 개최되는 자치단체의 장들은 공개적인 석상에서 은근히 부산시장의 행태를 비판하거나, 문화적 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인식의 다름을 강조하는 모습도 보였다.

지난 3월 말에 열린 전주국제영화제 기자회견에서 김승수 전주시장은 "영화제는 시민들과 영화인들이 만드는 행사다, 행정과 정치가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김 시장은 "(부산시장이) 영화제에 간섭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아닌 것 같다"면서 "전주는 영화제의 독립성을 철저히 보장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7월 27일 열린 충남영상위원회 출범식에서 안희정 충남지사는 "지역 경제 발전에 대한 기대가 있지만 거기에 머물지 말고 영상위원회가 이 땅의 역사와 사람에 대한 새로운 시대의 패러다임을 제시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해 영화인들의 호평을 받았다.

망가지기도... 반대로 흥하기도

 국내 대표적인 다큐멘터리 피칭 행사로 부상한 '인천다큐멘터리포트'

국내 대표적인 다큐멘터리 피칭 행사로 부상한 '인천다큐멘터리포트' ⓒ 인천영상위원회


영화나 영상산업의 경우 전문성을 고려치 않는 정치의 간섭이 심해질 때 크게 망가지고는 한다. 2005년 당시 홍건표 부천시장이 김홍준 부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사실상 해임하면서 국내외의 반발로 인해 영화제 위상이 심하게 추락했던 것은 고전에 속한다. 최근에는 이름만 남았을 뿐 사실상 아무런 역할도 못하는 경남영상위원회가 대표적 사례다.

2009년 출범한 경남영상위원회는 지역 영상산업 활성화를 위해 설립을 주도한 영화인들이 의욕적인 모습을 나타냈었다. 그러나 경남도에 의해 영상관련 전문성이 없는 위원장들이 선임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홍준표 지사 등장 이후에는 영상위원회를 지역 문화기관들에 통폐합 한다는 결정이 내려져 영화계 인사들의 반발을 불러왔다. 경남영상위원회는 통폐합을 거부하며 홀로서기에 나섰으나 예산 지원이 끊기면서 유명무실해졌다. 경남도가 2013년 새로 발족시킨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이 영상위원회 역할도 겸하고 있지만, 국내 영상위원회의 협의체인 한국영상위원회 회원 자격은 얻지 못하고 있다.

반대로 자치단체들이 예산을 지원하되 심하게 간섭하지 않고 전문성 있는 인사들에게 맡겨 놓은 경우는 좋은 성과를 거두기도 한다.

인천영상위원회는 <관능의 법칙>, <싱글즈> 등을 연출한 권칠인 감독이 운영위원장을 맡으면서 2013년부터 다큐멘터리 지원 행사인 '인천다큐멘터리포트'를 열고있다. 피칭을 통해 다큐멘터리를 지원하는 행사로, 상금 액수가 크고 실질적인 제작에 많은 도움을 주면서 짧은 기간 안에 국내에서 주목받는 다큐멘터리 피칭 행사로 올라섰다.

이주민들을 주제로 한 '디아스포라영화제' 역시 올해 3회 행사를 치르며 문화적 다양성과 소통을 강조하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새누리당 이자스민 의원이 직접 참석해 격려했고, 관객들의 참여도 높았다. 영화나 드라마 촬영 유치에만 공들이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영상위원회의 활동 폭을 넓혔다는 평가가 나온다.


부산영화제 DMZ영화제 영상위원회 영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