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명량>을 연출한 김한민 감독은 '명량해전은 과연 승리한 전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이는 자연스럽게 <명량: 회오리 바다를 향하여>의 기획 의도로 이어졌다. <명량>이 1761만 명의 관객을 모으며 국내 박스오피스 역대 1위 자리를 차지한 것과 별개로 또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명량: 회오리 바다를 향하여>는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가져왔다. 김한민 감독이 직접 출연했고, 여기에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최민식 분)의 배에서 열연한 배우 이해영, 장준녕, 오타니 료헤이가 함께 했다. 가볍게 보면 예능 혹은 여행 다큐멘터리의 느낌이었지만, 이순신 장군의 발자취를 좇는 배우들의 깨달음이 예사롭지 않다. 일본인으로서 한국 역사를 몸소 접한 오타니 료헤이가 여정 중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다른 배우들은 자신이 맡았던 캐릭터의 실존적 의미를 곱씹기도 했다.

단순히 전쟁의 승리가 아니라, '이순신 장군의 수군 재건기'를 쫓고자 했던 것이 김한민 감독의 생각이었다. 즉, 어떻게 무너져 있던 군을 다시 세우고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웠는지그 과정을 보이겠다는 뜻이었다. 지난 7일 개봉한 이 다큐멘터리를 더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지난달 25일 강남의 한 카페에서 김한민 감독을 만났다. 

너무 쉽게 잊는 버릇..."다시 불 붙이고 싶었다"

 영화 <명량>의 김한민 감독이 18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한민 감독.ⓒ 이정민


<명량>의 대흥행이 이 다큐멘터리의 탄생 배경이었다. 당시 인터뷰에서 김한민 감독은 "2천만 관객이 넘을까 두려웠다"고 말했는데, 광풍 뒤 찾아오는 고요함처럼 이순신 장군을 향한 관심이 순식간에 잠잠해질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이번 작품의 홍보 과정에 붙은 수식어가 '프리퀄 다큐'다. 본 이야기의 이전 과정을 그렸다는 의미인데, 여기엔 너무도 쉽게 잊어버리는 대한민국 사람들을 대상으로 "다시 불붙이고 싶었다"는 김한민 감독의 의중이 짙게 깔려 있었다.

<명량>이 한창 상영 중일 때 이미 후속작인 '한산 대첩' '노량 해전'의 시나리오가 일부 나왔고, 흥행 직후 제작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됐다. 김한민 감독은 "이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이순신 장군이 수적 열세에도 늘 자신이 원하는 장소로 적을 불러들여 전쟁을 했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면서 "후속작에 그분의 과감함과 첩보력을 강화해야겠다고 느꼈다"고 전했다.

이순신은 현재 김한민 감독의 화두다. 나아가 그는 "자존감이나 비분강개 등 국내용 감성에서 벗어나 임진왜란이 일본과 중국에 미친 영향까지도 다루고 싶다"는 포부를 내비쳤다. 최근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에 대한 해답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어벤져스2>에 여러 영웅이 담기지 않았나. 개인적으론 생각한 바를 몸소 실천하는 게 영웅이라고 본다. 특히 이순신 장군은 사생관이 분명했다. 무고하게 옥고를 겪을 때, 위로차 찾아온 유성룡에게도 죽음에 의연한 태도를 보였다. <난중일기>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장군은 말하는 게 간결하면서도 원칙과 상식에 입각해 있다.

지금 이 시대에 영웅을 기대할 수 없다면 과거 인물을 재조명해 그 의식과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적어도 이순신 장군을 따라가다 보면 극단적 갈등이나 반목은 없을 것 같다. 이순신 장군이 경상도에서도 전쟁을 했고, 전라도 지역에서도 왜적에 맞섰다. 절묘하게 동서를 오갔다. 이번 촬영에서도 각 지역에서 앞다퉈 이순신 장군을 추앙하더라. 이걸 보면 동서화합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분이다.(웃음)"

역사물에 숨겨진 함정..."단순한 영웅 서사는 버려야 해"

 다큐멘터리 영화 <명량: 회오리 바다를 향하여>의 한 장면.

다큐멘터리 영화 <명량: 회오리 바다를 향하여>의 한 장면.ⓒ 박스톤 픽쳐스


핵심은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었다. 물론 역사가이기 전에 영화감독이기에 그가 "이순신 장군의 전쟁 장면을 딱 1초 만이라도 보고 싶었다. 그러면 감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회고한 것은 당연해 보인다. 이와 함께 김한민 감독은 "생동감 있는 재현도 중요했지만, 역사의식을 다층적이고 폭넓게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순신 장군이 경남 진주에서부터 약 450km를 행군하며 생각했던 건 무엇일까' '격전지가 될 진도 울돌목에 이르렀을 땐 어떤 심정이었을까' 등의 질문이 앞서 언급한 다층적인 역사의식과 이어졌다. 김한민 감독은 "안개와 회오리 바다를 보며 장군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었던 정세에 절망감을 느꼈을 것이고, 바로 전쟁 장면을 구상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결국 영화의 뼈대는 회오리였다. 이번 다큐를 찍으며 다시 찾은 울돌목도 그대로였다. 가보면 알겠지만 영화에 나오는 장면은 컴퓨터 그래픽이 아니다. 다큐를 보신 분들이 한 번쯤 그곳을 찾아가 보셨으면 한다. 가보면 깨닫는 바가 분명 있을 것이다. 영화 <명량>의 성공도 우연의 산물이 아닌 대한민국 사람들이 품은 어떤 열망의 산물 같다. 이순신 장군 같은 역사적 인물, 그리고 관련 사건을 여러 시각으로 바라보면 그걸 읽어낼 수 있겠지."

이순신 장군을 다루기 전, 김한민 감독은 독립투사인 이봉창 의사, 그리고 항일 무장투쟁사의 획을 그은 봉오동 전투를 영화로 그리고 싶어 했다. 그 바람은 여전히 유효하다. 김한민 감독은 "나보다 유능한 감독이 잘 다뤄줄 수도 있다"면서도 이야기를 이어 갔다.

"이봉창 의사가 일본 도쿄 경시청 앞에서 폭탄을 투척했던 게 굉장히 끌린다. 중요한 사건이었지. 그 사건으로 독립투사들이 중국 상해의 국민당 임시정부의 인정을 받았다. 이후 윤봉길 의사와 백범 김구 선생 등장의 밑거름이 됐다. 단순한 영웅 서사가 아니다.

일본인처럼 살고자 했던 이봉창이란 사람이 어떻게 해서 투사가 됐을까. 또 본인이 갖고 있던 두 개의 폭탄 중 하나만 던졌다. 이후 재판정에서 무고한 시민들이 있어서 던지지 않았다고 진술했더라. 우리에게 던지는 중요 화두다. 일본 도심 한복판에서 테러할 수도 있었지만 목표물에게만 집중했다. 생명 존중 의식이 있던 거다. 지금의 테러리즘과 비교될 부분이다."

김한민 감독은 역사 이야기에 한껏 신이 났다. 대한민국 최고 흥행 감독이라는 수식어 이전에 그는 뼛속까지 이야기꾼이었다.

 영화 <명량>의 김한민 감독이 18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 편집ㅣ이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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