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문으로 들었소>의 공식 포스터

<풍문으로 들었소>의 공식 포스터 ⓒ SBS


솔직히 이젠 살짝 걱정되기 시작한다. 30부작의, 미니시리즈로서는 매우 긴 축에 속하는 이 드라마가 과연 나머지를 어떤 내용으로 이끌어 갈지 말이다. SBS 월화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의 작가와 감독의 전작인 <밀회>를 본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수 있겠다. 오혜원(김희애 분)과 이선재(유아인 분)의 격정적 사랑, 자칭 '사회지도층'이라는 자들의 허와 실 등이 16부의 비교적 짧은 여정에서 밀도 있게 진행되는 것을 쭉 지켜봤으니 말이다. 

30부작의 긴 호흡, 단조롭고 싱겁지 않게 이끌 수 있을까

<풍문으로 들었소>에 그러한 우려가 드는 이유는 간단하다. 드라마의 말미에나 나올 법한 패들이 초반을 지나며 거의 나온 데다 또 거의 풀린 듯한 느낌이라는 것. 드라마 초반의 가장 큰 '떡밥'이었고, 또 화제가 되었던 것은 미성년자 서봄(고아성 분)의 임신이었다.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어떻게 참아"라고 울부짖으며 나름 임신의 이유에 대해 항변하던 그 문제는 양가의 축복(?) 속에 행복한 출산으로 마무리되었다.

또 하나는 아기 아빠인 한인상(이준 역)이 엄청난 부잣집 아들이라는 건데 그것은 경제력, 가풍 등 거의 모든 면에서 극과 극인 서봄이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이었다. 하지만 그것 또한 외형상으로는 쉽게 극복되는 듯 보인다. 이제 서봄의 남다른 영특함이 한정호(유준상 분)와 최연희(유호정 분)에게 새로운 두려움으로 들이닥쳤지만 말이다.

사실 이 드라마의 가장 큰 축으로 불릴만한 것들이 그토록 쉽게 해결되니, 이제 무엇으로 이야기를 풀어낼 것인가 하는 걱정이 든다. 충분히 가능하다. 전형적 공식으로 보자면 이 드라마는 참으로 싱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제대로 된 악인 하나 찾기 어려운 인물 설정, 파헤치기 어려울 것 같지 않은 그들의 속내, 그리고 무엇보다 그러한 이유로 인해 취약해진 갈등구조 등이 그렇다.

그래서 어쩌면 <풍문으로 들었소>는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강렬하게 사로잡을 드라마는 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극악무도한 이들이 주인공을 흔들고, 내내 사건, 사고가 점철되어 줄거리마저 위태하게 만들지만 실은 그것이 매주 시청자를 낚는 주요한 미끼가 되는 대부분의 드라마 사이에서 어쩌면 '싱거움'으로 승부하고 있으니 말이다.

 드라마의 가장 큰 갈등요인이 될 듯 했던 '출산'은 무난히 해결되었다.

드라마의 가장 큰 갈등요인이 될 듯 했던 '출산'은 무난히 해결되었다. ⓒ SBS


갑과 을 모호하니 갈등 약화...카타르시스 이끌어 낼 수 있을까

어찌 되었든 이 드라마가 단순한 '스토리텔링'은 아닐 거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그러기엔 그 구조와 얼개가 무척이나 단순한 편이니까. 그러니 이제 중요한 것은 <풍문으로 들었소>의 속내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개나 줘 버리고, 을을 향해 특권의식을 마구 휘두르는 갑의 행태, 그리고 둘 사이의 긴장감과 전이, 역전과 카타르시스 등 말이다.

현재 드라마에서 갑과 을이 누구인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얽히고설킨 관계 사이의 팽팽함, 숨 막히는 오만함, 또 누군가는 느낄 수도 있을 법한 열패감, 폭발할 것 같은 분노와 적개심 등이 영 드러나질 않는다는 거다. 아직 시작 단계일 뿐이라고 아무리 후하게 쳐준다 해도 말이다.

혹시 그러한 갈등 구조가 실제로는 영 모호한 것일 수도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 갑이 을이 될 수도 있고, 혹은 그 반대가 될 수도 있을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니, 그것도 그리 설득력 없는 설명은 아니다. '영원한 갑도, 영원한 을도 없다'라고 한다면, 적어도 전작인 <밀회>와의 차별성은 확실해지는 거니까.

하지만 그러자면 일단은 갑과 을 사이의 경계, 첨예한 대립 등이 제대로 드러나야 한다. 그래야 역전, 재역전을 통한 짜릿한 그 무엇을 드라마 내에서나마 즐길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이거야 원, 설정과는 달리 도대체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지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 한정호와 최연희의 난처한 상황에 감정이입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은 그 수상함에 방점을 찍는 일이다.

악인을 만들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선과 악의 대립. <풍문으로 들었소> 속 갑과 을의 관계는 결코 그것이 아닐 테니까. 하지만 땅콩 봉지 하나로도 갑과 을이 극명히 갈라지는 삼엄한 현실을 생각한다면, 때로 '물타기' 같이도 여겨지는 싱거운 상황 전개는 이제 조금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한경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han08101)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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