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광복 70년 신년특집 다큐멘터리 <대한민국>의 한 장면

MBC 광복 70년 신년특집 다큐멘터리 <대한민국>의 한 장면 ⓒ MBC


MBC는 새해를 맞이하여 '광복 70주년 대한민국 3부작'을 마련했다. 1부는 아버지가 세운 나라, 2부는 어머니가 지은 나라, 3부 자식들이 만들어 갈 나라라는 제목이었다.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니'라는 문구가 떠오르듯, 3부작 대한민국은 제목만으로도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 수 있는 다큐멘터리였다.  

이야기도 제목에 걸맞게 진행됐다. 1부에는 배우 최불암, 반도체 신화의 주역 진대제, 현대 문학계의 거장 김홍신, 가수 김도향, <먼 나라 이웃 나라>의 저자 이원복이 모여 광복이 되던 해 태어나 산업 역군으로 대한민국을 일궜던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함께 나눴다. 그들의 이야기는 새롭지 않다. 천만 관객을 달성한 영화 <국제시장>에서 구구절절 설명되었던 그 이야기이다. 나라는 일본으로부터 해방되었지만 6.25를 거치면서 찢어지게 가난했던 나라. 동생의 학비를 벌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아버지들은 총알이 빗발치는 베트남전으로, 지하 수백 미터의 독일 땅속으로, 태양이 작열하는 중동 땅으로 떠났고, 그들이 벌어온 외화가 가장 가난한 나라 대한민국을 세계 10위의 잘 사는 국가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2부 어머니가 지은 나라도 그 연장선이다. 1부가 영화 <국제시장>의 아버지를 다큐멘터리로 복원했다면, 2부가 그려낸 어머니상은 신경숙 작가의 베스트 셀러 <엄마를 부탁해>의 그 어머니이다. 광복 후 70여 년 동안 자식에게 배고픔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가발 공장에서, 청계천 봉제 공장에서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 되었던 어머니들. 그리고 그렇게 돈을 벌면서도 자식들을 번듯하게 키워냈던 '장한 어머니'의 이야기였다.

다큐멘터리는 논란을 밑거름 삼아 수월하게 천만 관객을 달성한 영화 <국제시장>의 서사를 고스란히 되풀이한다. "이렇게 잘 사는 대한민국을 물려 주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그런데 정말 자랑스럽기만 한 대한민국일까?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세계 10위의 잘 사는 국가를 만들어 낸 부모 대의 성과는 '기적'에 가까운 것이었다. 더구나 전세계적으로 불황기에 들어선 경제 기류에서 그런 경제적인 기적은 더욱 대단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대한민국의 반쪽 자리 역사이다. 마치 손님을 초대해 놓고는 가장 화려한 옷을 입고 상다리가 부러지게 음식을 차려놓고 온갖 자랑을 하는 그런 식의 역사 서술이다. 그렇게 부모님이 집안이 들썩거리게 손님을 초대해서 자랑하고 있을 때, 골방에선 신음소리를 내며 또 다른 자식이 숨죽여 울고 있다. 그것이 광복 70년 대한민국의 역사다.

역사에 대한 반성 없이 '경제'만 강조...우리의 지난 시간 맞나

독일은 전후 히틀러 치하에서 자신들이 저질렀던 범죄를 철저하게 반성하고 되풀이하지 않을 것을 반성하고 또 반성한다. 우리가 일본을 비난하는 것은 그들이 가해자였음에도 마치 자신들이 피해자인 양 굴고, 자신들이 저지른 전쟁 범죄에 대해서는 외면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쪽일까? 일본의 식민지 경험을 가진 대한민국, 6.25의 상흔을 겪고 국제 사회의 지원을 받아야만 했던 대한민국의 시작은 철저히 피해자의 그것이다. 그러나 피해자였던 대한민국이 오늘날 세계 유수의 잘 사는 국가가 되기 위해 거쳐왔던 과정에 대해 제대로 보고 있는 것일까?

왜 베트남 민족의 피의 역사인 베트남전이 우리에겐 그저 총알을 뚫고 외화벌이를 해온 자랑스러운 추억담이 되어야 할까. 고엽제에 시달리는 군인들은 왜 화려한 잔칫상에 끼일 수 없을까. 해외로까지 나아가 외화를 벌어온 노동자의 이야기는 화려하게 복원하면서, 공장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한 여공들의 이야기는 하면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자신의 몸을 불태운 전태일과 극악한 노동 조건을 견디지 못해 떨쳐 일어났던 여공들의 노동조합 운동은 왜 한 줄도 끼어들지 못하는가. 축약된 경제 성장의 과정을 거치느라 결국은 드러나고 말았던 성수대교 붕괴에서 시작하여 삼풍백화점을 거쳐 세월호에 이르고야 말았던 부실한 대한민국 경제의 흔적은 왜 애써 그려내지 않은 것인가.

하긴 남들에게 살아온 역사를 이야기할 때 구질구질한 것은 끄집어내기 싫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오로지 '경제 발전'을 이루기 위해, 잘 살기 위해, '경제적 동물'로 살아온 지난날의 역사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생각해 보았는가. 결국 아비와 어미가 너희를 키우기 위해 헌신적으로 일했으니 이제 너희도 국민소득 4만 불의 시대를 향해 발에서 땀 나게 다시 뛰라는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뛰고 싶어도 뛸 곳이 없다는 젊은이들과 뛰어보니 돌아오는 건 명예퇴직이요, 폐업이라는 중년의 절망은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물론 다큐는 3부 '자식들이 만들어 갈 나라'에서 계층 간 갈등이 심각해진 현재를 짚어보고, 이 해결책을 위해 독일의 사례를 끌어온다. 그리고 그 이유를 급격한 경제 성장이라고도 짚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오늘날 한국 사회가 극단적인 갈등의 늪에 빠졌는지는 짚어보지 않는다. 그저 "부모들은 먹여 살리느라 애썼는데 왜 너희는 그러니?"라는 식이다. 그리고 형식적으로 이야기를 잘 나누어 보자고 말한다. 한 치의 반성도 없는 세대와, 그런 세대를 비판하는 세대 사이에 무슨 대화가 이루어질까.

그 좋다는 대화와 타협이 공허한 문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대화와 타협이 이루어질 수 있는 마음의 상태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럴듯한 해결 사례로 제시한 독일 비행장 활주로 건설. 결국 비행장 측은 소음 공해에 시달리는 주민들에게 방음 창과 방음 온실을 제공했다. 하지만 해고 노동자 수십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도 법원의 판결이 바뀌지 않고, 선택지는 높은 굴뚝밖에 없는 사회에서 대화와 타협은 어떤 의미일까? 여전히 그런 사회에서도 아비, 어미는 열심히 돈을 벌어 잘 사는 사회를 만들어 주었다고 공치사만 하고 있을 텐가. 강정 마을 해군 기지를 반대하는 주민들을 범죄자로 만들고, 벌금 폭탄을 때리는 나라에서 도대체 대화와 타협은 어떤 식이어야 하는가. 

만약에 <국제시장>의 주인공 덕수가 베트남에 돈을 벌러 간 것이 아니라 참전 용사이고, 그곳에서 고엽제로 인해 평생 고통에 시달리는 인물이었다면 그 영화가 천만 관객이 들었을까? 보고 싶은 역사, 양지의 역사만으로는 2015년 대한민국을 양분하는 사회적 갈등은 해결되지 않는다. 말이 좋아 국민소득 4만 불이지, 젊은이들은 결혼과, 집, 아이를 포기하는 세대다. 계층격차가 심화되어 가는 시대에 대한 설명을 이룰 길이 없다. 다시 아버지처럼, 어머니처럼 살면 국민소득 4만 불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인가. 그건 입에 발린 희망과 타협과 대화로는 불가능한 미래이다.

'아버지가 만들고, 어머니가 지어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세계 10위의 잘 사는 국가가 된' 경제적 논리 이면에 가리어진 사실, 정치적으로 독재로 점철되었던 핍박의 역사와 그 가운데에서 가치를 외면받은 인간다운 삶에 대해서도 정확히 짚어야만 한다. 부모의 세대가 천착해 왔던 '경제'의 논리가 아니라 그들이 무지하고, 외면했던 '인간적 가치'에 대해 논해야 저성장의 시대, 대한민국을 사는 사람들이 모두 행복해 질 수 있다. 그들의 희생을 '용비어천가'식으로 노래하면 할수록 아이러니하게도 현재를 살아가는 삶의 존재가 무의미해지고 고달파진다. 그것이, '아버지가 만들고 어머니가 지은 나라'의 공허한 결론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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