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별에서 온 그대>로 출발해 tvN <미생>으로 끝난 한 해였다. 친숙한 듯 세련돼라, 현실을 반영하면서 밀도를 높여라, 그리고 (주조연 가리지 말고)배우의 매력을 최대한 끌어내라. 2014년의 드라마의 성공요인은 이 정도로 꼽을 수 있지 않을까.

더 넓게 2014년 드라마의 특징을 몇 가지로 꼽아 보면, 식지 않은 퓨전/정통 사극의 꾸준한 제작, '로맨틱 코미디 VS (미드를 경유한)장르 드라마'의 각축전, 멜로와 막장 드라마가 섞인 전통적인 '한드'의 식지 않은 믿음, 높아진 (특히 중국쪽에서의) 한류의 위상, 케이블/종편 드라마의 약진 등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작품들을 꼽아 보자.

'별그대'부터 '미생'까지, 2014년 드라마의 어떤 풍경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와 <미생>의 포스터.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와 <미생>의 포스터. ⓒ SBS, tvN


동시간대 드라마를 '올킬'한 두 편 외에 지상파에서는 그나마 '연민정' 이유리를 '국민악녀'로 만든 MBC <왔다, 장보리>의 시청률 강세와 정치 사극 KBS 1TV <정도전>의 호평이 두각을 나타냈다. 반면, 조인성과 공효진을 앞세운 노희경의 SBS <괜찮아, 사랑이야>는 체면치레에 그쳤고, SBS <뿌리깊은 나무>의 인기를 이어가려던 SBS <비밀의 문>은 '망작'의 반열에 올랐다. 시청률에서 선전한 MBC <기황후>를 위시해 MBC <야경꾼일지>, KBS 2TV <조선총잡이>, KBS 2TV <왕의 얼굴>과 같은 퓨전 사극은 꾸준히 제작됐다.

SBS의 경우 차승원-이승기를 내세운 <너희들은 포위됐다>, 조승우-이보영의 <신의 선물 -14일>, 손현주-박유천의 <쓰리 데이즈> 등 비교적 화제작이 많았음에도 기대엔 못 미쳤다는 중평이다. <빅맨>을 제외하고 시청률에서 바닥을 친 KBS 2TV 월화드라마는 거의 유일하게 <연애의 발견>이 호평을 얻었고, MBC 수목드라마는 장나라가 각각 장혁, 신하균과 호흡을 맞춘 <운명처럼 널 사랑해>나 <미스터백>으로 쏠쏠하게 장사를 했다. 이밖에 SBS <따뜻한 말 한마디>와 MBC <마마> <미스코리아> 등은 흥행을 떠나 배우들의 연기력과 소재 면에서 의미를 남겼다.

반면, 2014년은 평균적으로 시청률이 하락한 지상파와 달리 IPTV를 비롯한 디지털 플랫폼에서 강세를 보인 종편과 케이블 드라마의 약진과 상향평준화가 이뤄진 해이기도 하다.  <미생>의 히트는 올해의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고, JTBC <밀회>는 작가주의 드라마의 부활을 알렸다. tvN <갑동이> <라이어 게임>, JTBC <유나의 거리>, OCN <처용> <나쁜 녀석들> 등 대중과 매체의 평가를 받은 작품도 여럿이었다(물론, <삼총사>를 위시해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거나 존재감 없던 작품도 적지 않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이 모두를 뒤로 하고, SBS <세 번 결혼하는 여자>와 JTBC <밀회>, JTBC <유나의 거리>는 되새겨 봄직한 2014년의 작가주의 드라마다. 명실공히 거장 김수현 작가와 중견 작가를 대표하는 정성주, 김운경 작가. 각기  1943년생과 56년생, 54년생인 이들은 정교하고 세심한 글쓰기를 통해 삶의 연륜과 너른 시각을 작품 속에 녹여냈다. 미드도, 일드도 아닌 한드만의 매력을 보여준 이 세 작가의 작품을 올해의 드라마로 꼽은 이유는 이러하다. 

<세 번 결혼하는 여자>, 멜로드라마의 거장이 보여주는 혜안 

 김수현 작가의 <세 번 결혼하는 여자>의 은수 이지아.

김수현 작가의 <세 번 결혼하는 여자>의 은수 이지아. ⓒ SBS


김수현 작가는 한국에서 멜로드라마를 제대로 구현하고 있는 노장이다. 데뷔 40년이 넘은 그는 가부장제 하에서 여성의 삶과 성차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드라마를 통해 한국사회의 가치 변화와 이데올로기를 반영하고 재현하는 데 생을 바쳐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 손엔 훈훈한 홈드라마를, 한 손엔 파격의 멜로를 연이어 쓴 이 김수현 작가의 <세 번 결혼하는 여자>는 이혼 가정과 그 아이가 어떻게 상처받고 또 이겨내는지를 노장의 혜안으로 묘파해낸 작품이다.

시댁과의 불화로 이혼하고 재혼 역시 남편의 불륜으로 접게 되는 은수(이지아 분). 다소 파격적인 설정 덕에 대중적으로 큰 족적을 남기는데는 실패했지만, <세 번 결혼하는 여자>는 결혼과 이혼, 그리고 삶의 연속성에 대해 '막장드라마'는 줄 수 없는 깊이와 통찰을 보여 준다. 무엇보다 김수현표 특유의 그 속사포 대사가 글이나 TV로 배운 것 같지 않고 생생하게 동시대와 교류하고 있다는 점은 놀랍기 그지없다. 70대에도 여전히 놀라운 필력을 자랑하는 이 노장에게 박수를.

<밀회>, 밀도 높은 이 불륜극의 품격  

 드라마 <밀회>의 한 장면.

드라마 <밀회>의 한 장면. ⓒ JTBC


KBS 2TV <개그콘서트> '쉰밀회'를 낳은 <밀회>는 아마도 올해의 드라마 목록에서 빠지기 아쉬운 작품일 것이다. 천재 피아니스트 선재(유아인 분)와 예술재단 기획실장 혜원(김희애 분)의 불륜드라마로 출발한 <밀회>는 올해 가장 밀도 있는 대본과 연출력을 보여줌으로써 종편(JTBC) 드라마의 새장을 열었다(그리고 안판석 PD, 정성주 작가 콤비는 다시 지상파로 진출했다)

정성주 작가와 파트너 안판석 PD는 둘의 사랑을 통해 계급과 나이를 뛰어 넘는 교감과 사랑을 조명하는 동시에 그 둘의 사랑을 공격하는 물신화된 사회와 전통적 가치 등을 그물망처럼 그려낸다. 또 둘을 이어주고 구원하는 예술의 가치까지 담아내면서 작가주의 드라마의 품격을 한 차원 끌어올렸다.

김희애, 유아인을 비롯해 조·단역 캐릭터까지도 세심하게 창조해낸 <밀회>는, 또 <아내의 자격>에 이은 '강남 사회 조명기'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상류사회의 이면과 저열함을 냉정하게 그린 작품이기도 하다. 그리고 안판석-정성주 콤비는 신작 <풍문으로 들었소>로 2015년 지상파(SBS)로 화려하게 복귀한다.   

<유나의 거리>, '오지랖'이 곧 '연대'다 

 드라마 <유나의 거리>의 출연진.

드라마 <유나의 거리>의 출연진. ⓒ JTBC


<유나의 거리>의 김운경 작가는 '오지랖'의 거장이다. 이 오지랖, 다시 말해 타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야말로 우리가 현대사회에서 살아가며 취할 수 있는 '연대'의 소시민적 변용인 것이다. MBC <서울의 달>로부터 20여 년. 김운경 작가는 여전히 변두리, 주변부, 뒷골목을 무대로 하층 계급들의 목소리와 생활사야말로 우리가 쉽고 또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인간사의 오욕칠정이 담겨 있다고 말하는 듯 하다.

소매치기 유나(김옥빈 분), 전직 건달 한만복(이문식 분), 도끼 형님(정종준 분), 꽃뱀 미선(서유정 분), 전직 형사와 소매치기 부부 봉달호(안내상 분), 박양순(오나라 분) 등 직업과 생활상만으로 서민 냄새를 풍기는 인물들과 김운경 작가의 주제가 스며든 김창만(이희준 분)의 교류는 우리 삶과 개인의 욕망들의 단편들을 능청스럽고 해학적으로 그린 인간군상극에 가깝다. 김운경 작가를 '한국의 발자크'라 부르는데는 다 이유가 있다.

드라마 <유나의 거리>는 흔치 않은 50부작을 통해 '한드'에서 사라지고 있는 인간군상극을 제대로 되살린 작품이기도 하다. 거기에 결말부분에 이르러 치매에 걸린 장노인을 통해 노인문제를 조명하고, 재벌가로 재혼했던 엄마를 만난 유나가 새 삶을 시작하는 과정을 통해 '소유의 품격'에 대해서 논하며 외연을 확장하기도 했다. 올 한해 드라마 속에서 유일하게 "세월호"를 언급하기도 했던 김운경 작가님, 부디 오래오래 자기 색깔을 품은 현역 작가로 남아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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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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