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월화드라마 <펀치>의 한 장면. 윤지숙 법무부 장관(위·최명길 분)과 이태준 검찰총장(조재현 분).

SBS 월화드라마 <펀치>의 한 장면. 윤지숙 법무부 장관(위·최명길 분)과 이태준 검찰총장(조재현 분). ⓒ SBS


SBS 월화드라마 <펀치>의 한 장면. 윤지숙 법무부 장관(최명길 분)이 커피에 프림을 탄다. 탁해지는 커피, 이를 빗대 수많은 조작사건을 만든 서울중앙지검장 이태준(조재현 분)이 검찰총장이 되면, 검찰의 물이 흐려질 것이라 자신의 반대 의사를 밝힌다. 하지만 이태준은 라이터로 달궈 검게 녹은 설탕을 입에 넣고 "아이고 달다"며, '검으나 희나 설탕이기는 마찬가지'라 당당하게 주장한다. 이렇게 이태준은 검은 설탕으로 비유된 자신의 삶에 한 점 부끄럼이 없다.

아니 오히려, 당당하다. 이태준은 자동차 회사 오너인 친형이 경비를 착복하기 위해 불량 부품을 써서 급발진 사고가 일어나고 검찰에 소환 당하게 되었을 때, 심복인 박정환(김래원 분) 검사를 수몰당한 자기 부모 무덤이 있는 강가로 부른다. 그러면서 이장하라고 준 정부의 보조금으로 자신과 형이 대학 등록금을 냈었다며 과거를 회고한다. 그렇게 부모를 물에 잠기게 하고 달려온 자신의 길이, 결국 이렇게 멈추게 되었다며, '악어의 눈물'을 흘린다.

입지전적 자수성가의 이태준은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나 자신의 능력만으로 이제 검찰총장을 바라본다. 그 자리를 위해 상대 후보자 아들의 뒤를 캐는 정도는 약과이고, 형의 자동차회사 등에서 드러날 온갖 잡음들로 인해 불리해 지자, 도마뱀 꼬리 자르듯 왼팔 격인 박정환의 등을 떠밀고 검찰총장으로 금의환향하고자 한다. '법'의 수장으로 가기위해 그가 택한 수단들은 지극히 '탈법'적이지만, 어렵게 자수성가 해온 그에게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진짜 센 놈 잡으려면 다른 힘 센 놈들 허락 받아야"

 배우 최민수.

MBC 월화드라마 <오만과 편견>의 문희만 부장검사(최민수 분). ⓒ MBC


이태준 정도의 거물은 아니지만, 자신의 성공 때문에 비리를 눈감은 법조인은 또 한 사람 있다. MBC 월화드라마 <오만과 편견>의 문희만(최민수 분). 그의 부하 직원인 구동치(최진혁 분), 한열무(백진희 분), 강수(이태환 분)의 뒤얽힌 인연은 결국 문희만이 저지른 교통사고로 부터 비롯된 것이다.

재건 그룹을 잡기 위해 자신이 저질렀던 교통사고를 덮었던 문희만. 하지만 구동치에게 그가 밝힌 진실은, 재건 그룹을 잡으려 뺑소니를 쳤던 자신이 재건 그룹을 무너뜨리려 했던 화영 그룹의 '장기판의 말'같은 존재였다고 토로한다. 그가 저지른 뺑소니 사건은 재건 그룹 붕괴 커넥션의 일부였던 셈. 하지만 문희만은 살아남기 위해 그런 비리를 눈감는다. 그리고 이제 후배 검사에게 말한다. "진짜 센 놈을 잡기 위해선, 다른 힘센 놈의 허락이 필요하다"며, 그것이 '이곳의 역사'라 단언한다.

이렇게 <펀치>의 이태준과 <오만과 편견>의 문희만이 법조계 비리에 일조하고 있는 가운데, KBS 2TV 월화드라마 <힐러>의 악의 축으로 등장한 김문식(박상원 분)은 메이저 언론 제일신문의 회장이다. 정권을 비호하기 위해 사람 목숨쯤이야 파리 한 마리 죽이는 거랑 별반 다를 게 없다. 물론 그 역시 한때는 해적 방송의 일원으로 '언론의 자유'를 위해 싸운 적도 있었지만, 이제 권력의 시녀, 아니 적극적으로 권력을 창출하는 일원이 되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1980년대 야망의 젊은이들, 기성세대가 되어 악의 축 연기

 KBS 2TV 월화드라마 <힐러>의 김문식 제일신문 회장(박상원 분).

KBS 2TV 월화드라마 <힐러>의 김문식 제일신문 회장(박상원 분). ⓒ KBS


<펀치> 이태준 역의 조재현, <힐러> 김문식 역의 박상원, 그리고 <오만과 편견> 문희만 역의 최민수는 당대 내로라하던 청춘의 꿈과 열정을 연기하던 배우들이었다. 조재현이란 이름을 알린 건,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의 선장에 반항하던 젊은 어부였다. 박상원과 최민수, 그들은 더 거들 것도 없이 1980년대를 상징하는 드라마 <모래시계>의 두 주인공이었다.

그런 그들이 이제 중후한 나이가 되어 아버지 세대의 역할을 한다. 그들이 연기하던 세상과 타협하지 않던 젊은이들도, 나이가 들면서 세상의 때를 묻혀간다. <모래시계>의 세상과 타협하지 않던 젊은 검사는 이제 '언론'이라는 수단을 통해 권력을 뒷배로 삼아 세상을 주무르려는 언론사 회장이 되었다. 박상원이 연기했던 캐릭터의 모델이었다던 홍준표 검사가 이제 젊은이들의 볼멘소리를 듣는 기성세대가 되었듯이.

부모님의 이장비로 등록금을 내던 이태준, 비리 기업을 법의 심판대로 세우고자 예각을 세웠던 문희만, 해적 방송을 통해 진실을 알리고자 애썼던 김문식이 자신의 야망을 위해 세상과 타협하고, 나아가 권력에 편승하는 과정. 그들은 그런 자신의 삶을 '검으나 희나 설탕'이라 합리화하거나, '더 큰 세력의 농간에 휩쓸리는 것이 역사'라 자조한다. 심지어, '그래도 열심히 살았다' 자부하거나.

그들이 편승한 권력의 수단이 주목할 만하다. 법과 언론, 권력의 반대편에 서서 정의를 실현하고 '진실'을 밝혀주어야 하는 잣대와 등대들이 스스로 자신의 야망을 위해 권력과 한 배를 탄다. 한때는 소나무 같은 젊은이였던 이들이 권력을 수단으로 권력이 되고자 하는 기성세대, 진실을 은폐하는 법과 언론의 수호자로서 월화드라마의 악의 축이 된 것이다.

그래서 <펀치> <힐러> <오만과 편견>에서처럼, 이 시대의 법과 언론은 '정의'와 '진실'의 수호자 대신 권력의 시녀, 정권의 나팔수 역을 자임한다. 그리고 그런 역할을 기꺼이 맡은 야망의 세대는 추한 기성세대가 되어, 다시 한때 그처럼 열정에 불타오르는 젊은이들과 일전을 앞두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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