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서대문구 노동인권영화제 포스터

▲ 제2회 서대문구 노동인권영화제 포스터 ⓒ 서대문구 근로자복지센터

2014년 한국사회엔 같은 일을 하면서도 다른 임금, 다른 대우를 받는 열악한 처지의 노동자들이 너무도 많다. 이름하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불법이었던 비정규직 고용계약은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정상적인 고용방식으로 운용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이 자금지원을 하는 조건으로 '노동시장 유연화'를 요구한 이래, 노동자의 권익보다도 자본의 효율을 앞세운 지난 정부들을 거치며 비정규직은 갈수록 늘어만 갔다. 2014년 한국의 비정규직 비율은 전체 노동자 가운데 절반을 넘어섰으며, 신규 취업자 가운데서는 무려 팔 할에 이르는 실정이다. 어느덧 주변을 돌아보니 너도 나도 비정규직이라는 말이 남 일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퇴직금 지급을 피하기 위한 10개월짜리 인턴직이 횡행하고, 24개월 이상 고용된 상시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현행법을 피해 24개월을 꼭 채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계약해지를 당하기 일쑤다. 지난 달 중소기업중앙회에서 24개월을 다 채우고 해고통보를 받은 한 여성의 자살이 여러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 있는데 오늘날 한국 젊은이들의 자화상이 이와 다르지 않다.

비정규직 고용계약의 문제는 비단 노동자 개인의 차원에서 그치지 않는다. 내수경제는 물론 혼인 및 출산, 사회적 갈등에 이르기까지 온갖 부정적인 영향을 낳고 있음을 우리는 언론을 통해, 책을 통해, 사람을 통해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좀처럼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최근에는 비정규직보다 계약환경이 열악한 파견노동자가 새로운 사회문제로 떠오르는 상황이다.

홈에버 사태 다룬 <카트>, 노동인권영화제서 상영

11월 8일부터 9일까지 이틀간 필름포럼에서 개최된 제2회 서대문구 노동인권영화제의 테마는 바로 이 '非정규직'이다. 어찌 보면 인권이 노동과 만나 비정규직에 다다른 것도 당연한 일이다. 동일한 노동에도 다른 처우를 받으며 고용의 안정성마저 보장되지 않는 비정규직이야말로 우리 노동과 인권의 당면한 문제가 아니었던가.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작은 영화들을 꾸준히 소개해온 필름포럼에서 개최된 이번 영화제에선 부지영 감독의 신작 <카트>를 비롯해 <10분> <쉬는 시간> <니가 필요해> <외박> <또 하나의 약속> 등 한국의 노동문제를 다룬 영화들이 상영된다. 영화제를 주최한 서대문구 근로자복지센터는 영화제 이후 GV행사와 기념품을 통해 영화제의 취지를 다함께 나누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번 영화제에서 가장 주목받은 영화는 2007년 이랜드 홈에버 사태를 다룬 <카트>였다. 당시 이랜드 그룹은 2년 이상 근무한 상시고용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하는 비정규직보호법 시행을 앞두고 홈에버의 비정규직 계산원을 포함 계열사 노동자 700여 명을 해고했다. 계약기간도 채 끝나지 않은 노동자들을 외주용역으로 전환하겠다며 일방적으로 해고를 통보한 것이다. 이후 해고노동자들은 상암동 홈에버 월드컵점을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갔고 이후 한국 사회의 노동문제를 대표하는 사태로 자리매김했다.

사회는 얼마나 부조리하며, 우리는 얼마나 무관심한가

카트 함께 카트를 미는 더 마트 해고노동자들

▲ 카트 함께 카트를 미는 더 마트 해고노동자들 ⓒ 리틀빅픽처스


<카트>는 그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리고 그건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생계를 위해 하루 종일 계산대에 서서 일해야 하는 노동자들. 영화는 어느 날 갑자기 일방적인 해고통보를 받은 이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투쟁하는 이야기를 따스한 시각으로 그려낸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조끼를 입고 전단을 돌리는 영화 속 '더 마트'의 노동자들은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이다. 누군가의 엄마이고 누군가의 아내인 그들이 불 꺼진 마트의 차가운 계산대 아래서 잠을 청하고 매일같이 천막으로 출근해 농성하기까지 그 가슴 아픈 과정들이 하나씩 펼쳐진다.

홈에버 사태는 노조 지도부의 복직 포기를 조건으로 나머지 노조원들이 전원 복직되며 일단락되었지만, 우리사회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노동관련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더욱이 노조 지도부에 억대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경찰과 용역깡패를 동원해 물리력을 행사하는 사측의 압력은 여전히 유사한 방식으로 되풀이된다.

영화 속 선희(염정아 분)의 옆에 끝도 없이 솟아 있는 벽처럼 우리 사회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앞엔 거대한 벽이 가로막혀 있다. 노동자들의 쉼터 곳곳에 붙어 있던 '우리는 항상 을입니다'라는 스티커가 더욱 가슴 아리게 다가온다.

염정아, 문정희, 김강우, 천우희 등 유명 배우들이 총출동했음은 물론, 상업영화 최초로 비정규직 문제를 전면에 다뤄 화제를 모은 영화 <카트>. 갈수록 곪아가는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이 스크린을 통해 관객들에 전해질 수 있을까? 영화 속 혜미(문정희 분)가 그러했듯 그들의 곁으로 달려가 함께 카트를 밀 수 있을까? 이 한 편의 영화 속 극적인 몇몇 순간들이 때로 신파적이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던 건 아마도 현실과 영화의 괴리가, 당사자와 대중들의 거리가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상영관에 불이 켜지면 관객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노동문제를 외면하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든다. 무관심하고 때로 무관심을 정당화하며 그들을 지나치는 우리들의 모습이 이어질까 겁이 난다.

2014년 겨울이 다가오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기륭전자, 쌍용차, 대교눈높이 등 해결되지 않은 노동문제들이 여전히 많다. 제도가 불법을 묵인하고 정의가 폭력에 짓밟히는 게 그저 영화 속 이야기만이 아니기에 서글프다. 영화는 이 사회가 대체 얼마만큼 부조리한 것이며 대중들은 대체 얼마만큼 무관심한 것인지를 되묻는다.

비정규직 문제를 다룬 첫 상업영화 <카트>가 우리 현실에 어떤 변화의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까? <카트>는 오는 13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덧붙이는 글 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 게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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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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